소설리스트

타임트레인-140화 (140/519)

140화

<고토를 바라보는 마음>

압록강을 따라 이동하기로 결정한 최인범은 의주로 향할 다음 이동로를 결정하고 있었다.

‘어디로 가는 것이 최선이지?’

사람들이 주로 다니는 길인 산길을 통해 서쪽으로 이동하면 미인이 많다는 강계로 갈 수 있었다. 그쪽으로 가는 길이 더 빠르다. 하지만 최인범은 본래 생각한 그대로 압록강을 따라 이동하기로 결정했다. 조선 영토의 최북단을 자신의 눈으로 살펴보고 싶었다.

전에 4군이 있었던 그 지역은 출입이 금지된 땅이라 들어가려면 관아에 신고해야 한다. 하지만 관아로 가려면 다른 길로 이동해야 하니 최인범은 장주한에게 지시했다.

“혹시 관아로 가는 사람이 있나 확인해서 관아로 서찰을 보내서 신고하도록 해. 마패를 사용해서 인장을 찍어서 서창을 써.”

“넷!”

야영에 필요한 개인장구를 모두 지니고 왔다. 그 때문에 천막만 치지 않은 형태로 주막에서 하룻밤을 지냈다. 그래도 온돌방이라 콩대를 불을 때서 뜨뜻하게 잠잘 수 있었다. 두터운 흑곰 가죽인 외투를 덮고 눈을 감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런 호사도 오늘로 끝이군.’

다음날 아침 식사를 마치고 떠날 준비를 하는 중····.

주막의 마당으로 대나무 광주리를 파는 등짐장수가 들어왔다. 장주한은 상인에게 서찰을 건네며 면포 1필을 건네주었다.

“면포를 받고 관아로 이 서찰을 보내 주시오.”

“예, 반드시 전해 드리죠.”

심부름 값으로 너무 후하게 주자 서찰을 받아든 상인은 연신 굽실거렸다. 말에게 충분히 먹이를 먹이고 나자 최인범 일행은 주막을 떠나 강변을 따라 빠르게 이동했다.

강물이 얼어버린 압록강에는 가끔 오리들이 날아와 하얀 눈만 보이는 강 위에서 모여 있다가 어디론가 날아가고 있었다. 겨울 철새들이 먹이를 찾아 이리저리 이동하고 있었다. 북쪽의 차가운 겨울은 이곳에서 사는 사람들이나 야생동물이나 지내기가 너무 어려운 환경이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그나마 보이던 작은 집들도 보이지 않았다. 마을은 고사하고 사람들의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강변을 따라 길도 없어 보이는 야지를 가는 세 사람은 계속해서 얼음이 두껍게 얼린 압록강을 살피고 있었다.

“나리, 말 발자국이 전혀 없네요.”

“그래도 모르니 잘 살펴.”

“넷!”

북쪽에 사는 여진족들이 말을 타고 압록강을 넘어 올 수 있기 때문에 살피며 이동하는 것이다. 여진족들을 물리치자는 것이 아니라 적이라 공격당할 위험성이 많으니 경계하는 것이다.

강변에는 전에 사용하던 길의 흔적이 남아있어 이동은 수월한 편이다. 그러나 때로는 절벽으로 작은 산자락을 넘어야 계속 강을 따라 이동할 수 있었다.

드디어 날이 어두워지자 최인범 일행은 강변의 숲에 4인용으로 사용하는 천막을 쳤다.

강 쪽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장소에 모닥불을 피워 놓고 야영했다. 모닥불 위에 나무를 걸치고 반합에 물을 넣고 안에 육포를 넣고 쌀과 잡곡을 넣어 끓였다.

“내일부터는 사냥해야 되겠어.”

“나리, 사냥하다 보면 의주에 너무 늦게 도착하지 않을 까요?”

“누가 사냥물을 오래 추적해서 사냥하나? 압록강으로 날아들어 잡기 쉬운 오리나 지나가는 길에 만나는 사냥감만 잡자는 거지.”

“알겠습니다.”

다음날 다시 강변을 따라 북쪽으로 다소 빠르게 이동했다.

드디어 전에 여연(중강진)이라고 부르던 지역에 도착했다. 4군이 폐쇄 된지 벌써 수십년이 지나서 마을들이 있었던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이런 모습에 최인범은 안타까운 마음에 중얼거렸다.

“세종대왕께서 지하에서 통곡할 일이군.”

“나리, 여기는 환경이 너무 열악해 철수한 것이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힘들게 만든 4군을 철수시키면 되나.”

4군이란 세종 조에 최윤덕 장군이 이곳에서 살던 여진족을 몰아내고 압록강 변에 만들었던 여연, 자성, 무창, 우예의 4개 군을 칭한다.

이미 폐쇄되어 주민들까지 모두 강계나 다른 고을로 이주시켜 버린 군이다. 그 때문에 이곳은 흔히 폐사군이라고 칭하고 있었다.

최인범은 잠시 이곳에 전처럼 4군을 설치하던가 아니면 2개 군 정도라도 유지시키면 어떤가 생각했다. 함경도 지역은 조선의 조정에서 상당히 기피하는 지역이다. 그 이유는 세조 시절에 일어난 이시애의 반란 사건 때문이다.

“조정에서 쉽게 4군을 부활시키지는 않을 거야.”

“나리, 저도 그렇게 생각되는 군요. 여기로 오는 동안 아무리 살펴봐도 압록강 변에 농토로 쓸 만한 곳도 별로 없고요.”

“농토가 없으면 다른 산업이라도 시작하면 되지. 광업도 좋고 임업도 가능하니까.”

“나리, 나무를 잘라서 하류로 보내면 돈 거리가 되나요?”

“물론 그만큼 하류에서 나무가 많이 필요해야 되겠지.”

압록강 유역은 냉대림이 무성하여 조선낙엽송, 자작나무, 전나무, 가문비나무, 분비나무 둥이 무성하다. 그래서 하류지역의 도시들이 발전하면 그곳에서 필요한 목재를 이 지역에서 충당하면 어느 정도 인구가 살 여건은 된다.

반합에 넣은 곡물이 부글부글 끓었다. 그러자 홍성철이 대검으로 부지런히 저었다. 이윽고 걸쭉한 죽이 만들어지자 야전용 수저로 퍼먹으며 지시했다.

“밤에 모닥불이 보이면 적이 습격할 위험성이 높으니 모닥불을 꺼.”

“넷!”

세 사람은 교대로 불침번을 서며 겨울밤을 보냈다. 오목한 곳에 천막을 쳐서 그런지 의외로 그렇게 춥지 않은 밤을 보냈다.

이윽고 긴긴 겨울밤이 지나고 날이 새자 최인범 일행은 천막을 빠르게 걷고 다시 강변을 따라 이동했다. 여전히 압록강을 살피던 홍성철이 작게 외쳤다.

“나리, 여진족입니다.”

홍성철의 외침에 하얀 색인 압록강을 바라보자 수 십필의 말이 남쪽으로 들어온 발자국들이 어지럽게 찍혀있었다. 분명 어젯밤에 압록강을 넘어온 것이 틀림없었다.

“나리, 어쩌죠?”

“지금부터 경계를 더욱 철저하게 하며 이동해.”

여진족이 찍어 놓은 발자국도 강변을 따라 가는 형태다. 한참을 발자국을 따라 이동하던 최인범은 드디어 작은 천막을 여러 개 친 여진족을 발견할 수 있었다. 20필의 말과 함께 20여명의 여진족들이 사슴을 잡아서 구워놓고 맛있게 먹고 있었다.

숲에 숨어서 여진족들을 조심스럽게 살피던 최인범은 부하들에게 지시했다.

“너희들은 먼저 남쪽의 만포로 이동해. 나는 나중에 따라갈 것이니.”

“나리, 혼자 공격하시고 나중에 철수하려고요?”

“그래, 그러니 빨리 먼저 이동해. 혹시 모르니 만포로 가서 마패를 제시하고.”

“넷!”

부하들은 빠르게 말들을 가지고 멀리 우회하는 방법으로 만포로 향했다. 혼자 남은 최인범은 타고 있는 말을 소나무에 메어놓고 조심스럽게 공격하기 좋은 위치로 이동했다.

사사삭, 사락 사락.

숲에 있는 눈을 조심스럽게 밟으며 이동해 드디어 작은 바위 위로 올랐다. 이곳이라면 적은 올려다봐야 하는 장소라 활을 쏘아 공격하기에는 적당했다.

‘우두머리를 한방으로 잡아야 해.’

100미터 정도 거리라 충분히 저격이 가능했다.

조심스럽게 여진족들을 살피던 최인범은 드디어 우두머리로 짐작되는 놈을 발견했다. 나이가 많아 수염도 길고 더부룩했다. 목에는 번쩍거리는 긴 목걸이를 여러 개 걸치고 있었다.

차림새로 보아 조금 큰 무리를 이루는 부족장이다. 4군이 폐쇄된 이곳은 무인지경이라 사냥감들이 많았다. 여진족의 족장이 사냥하기위해 부하들과 같이 월경한 것이 틀림없었다.

물론 사냥하려고 넘어도 오지만 때로는 정찰해서 조선의 방어 태세가 허술하면 대규모 병력을 이끌고 습격해 오는 경우가 있었다.

‘복장으로 보아 서여진 놈들이군.’

만주의 남쪽에서 사는 건주여진의 경우 크게 둘로 나뉜다. 그래서 조선에서는 흔히 서여진과 동여진으로 구분했다.

서여진은 퉁화를 중심으로 큰 세력을 이루고 과거 고구려 수도이던 집안 근처까지 내려와 활동하는 여진족이다. 서여진은 자주 국경선인 압록강을 넘어 약탈하기 때문에 조선에서 여러 차례 많은 군사를 보내 정벌했던 부족이다.

‘서여진 놈들이 또 약탈하려고 움직이는군.’

목에 주렁주렁 걸고 있는 목걸이의 수로 보아 큰 무리의 족장이 틀림없었다. 큰 무리의 족장을 발견하자 최인범은 짧은 화살을 들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저 놈을 잘못 죽여서 오히려 전쟁이 터지는 것 아냐?’

여진족은 조선의 적이 분명하니 우두머리를 잡는 것이 제일 효과적이다. 하지만 이후에 벌어질 여파를 생각하니 조금 망설였다. 그래서 여진족의 우두머리를 잡으려다 마음이 약간 변했다.

‘옆에 있는 졸개를 잡아야 되겠어.’

그렇다고 해서 별 볼 일 없는 놈을 잡자는 뜻은 아니다. 늙은 족장 옆에 있는 심복으로 보이는 아주 건장한 체구를 지니고 험악해 보이는 놈을 공격하기로 했다. 어떤 조직이고 우두머리 옆에는 반드시 전투력이 제일 강한 행동대장이 있으니 그렇게 보이는 놈들을 죽이기로 했다.

‘뭐! 늙은 추장이야 세월이 조금 흐르면 자동으로 죽으니 젊은 놈을 우선 죽여야 해.’

통아를 이용해 짧은 화살인 편전으로 공격하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입에 짧은 화살인 편전 3개를 물고 하나를 먼저 걸어 힘차게 시위를 당겼다가 살며시 놓았다. 매우 침착하고 부드러운 동작이다.

팅! 쉬익!

빠르게 바람을 가르며 날아간 짧은 화살은 아주 정확하게 젊은 여진족의 심장에 깊숙하게 박혔다.

“크아악!”

쉭! 퍽!

크게 비명을 토하며 땅으로 쓰러지려는 놈의 이마에 또다시 편전이 날아와 깊이 박혔다. 심장에 화살을 박는 것으로 부족해 확인 사살하듯이 치명적인 급소인 이마에 화살을 깊숙하게 박아 버린 것이다. 그러자 이마에서 붉은 피가 품어 나와 사방으로 튕겼다.

쉭! 푹!

“큭!”

이어서 날아온 화살은 옆에 있는 다른 젊은 여진족의 목덜미를 보기 좋게 관통해 버렸다. 그러자 그놈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붉은 피를 품으며 땅으로 쓰러졌다. 3번째 화살이 날아가 2명을 죽이고 나서야 여진족들은 적의 공격을 눈치 채고 크게 외쳤다.

“적이다!”

“와!”

적에게 공격당한다는 사실만 알고 어디서 자신들을 공격하는지는 몰라 여진족들은 이리저리 날뛰며 우왕좌왕했다.

숨어서 화살을 날리는 최인범의 눈은 어느새 먹이를 노리는 맹수의 눈빛으로 붉게 변해 있었다. 높은 위치에서 여진족들의 모습을 내려다보던 최인범은 또다시 편전을 날렸다.

쉬익! 핑!

“크어억!”

부하들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치고 있는 족장의 허벅지에 편전을 깊숙하게 박았다. 4발의 편전을 날리고 나자 최인범은 공격하던 자리에서 재빨리 떠났다.

두두두두

소나무에 메어놓은 말을 타고 신속하게 북쪽으로 내달렸다. 당연히 부하들이 먼저 간 남쪽으로 가야하는데 전혀 다른 방향인 북쪽인 압록강 너머로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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