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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트레인-136화 (136/519)

136화

이어서 최인범은 소대와 중대와 규모의 보병 편제를 그림으로 그려서 보여주며 지시했다.

“앞으로 부대 지휘는 이 도표 그대로 편성해서 운용해 보도록 해.”

“넷! 명을 따르겠습니다.”

최인범은 계속해서 지휘관으로 지내야 할 덕목들에 대해 당부하자 금일여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언제고 칸께서 저를 다시 찾아 주시길 기다리며 최대한 세를 불려 놓고 있겠사옵니다.”

“내 기대를 해보지.”

“염려 놓으세요.”

금일여의 생각에는 최인범이 언젠가는 다시 이도백하로 오게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동안 최인범의 행동을 보니 그는 조선에 대한 애착심은 어느 정도 있지만 그곳 사람들과 생각 자체가 너무 달랐다.

남에게 구속당하는 것을 아주 싫어하고 또한 조선의 국왕에 대한 충성심도 별로 없어 보였다. 하는 행동으로 보아서는 조선의 양반이 아니고 여진족의 부족장들이 취하는 행동 양식과 매우 흡사했다.

금일여가 100명의 부하들과 같이 압록강 변을 떠나 북쪽의 이도백하 쪽으로 사라지자 최인범은 나머지 200명을 데리고 압록강을 넘었다.

약속한 것과 달리 압록강 남쪽에는 혜산진에서 보낸 매복군도 없었다. 그렇다고 마중하는 사람들도 전혀 보이질 않았다. 도무지 어찌된 사실인지 알 수 없었다.

“장익덕, 바로 개마고원으로 가자.”

“넷!”

다소 이상하게 생각하며 최인범은 부하들을 독촉해 개마고원으로 들어갔다. 완만한 경사를 이루지만 높은 고지에 도착하자 드넓은 초지가 펼쳐졌다.

광활해 보이는 넓은 초지에는 수많은 말, 소, 양떼들이 한가롭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아주 넓은 초지라 가축들이 겨울에도 마른 풀을 뜯어 먹고 있었다.

만주를 떠나 먼저 도착한 여진족들은 초지 끝의 삼림 근처에 옹기종기 집을 지어놓고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조선으로 넘어와 살 걱정이 많던 부하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토했다.

“와! 초지가 좋다. 가축도 많고.”

“넘어오길 정말 잘했어.”

초원을 통과해 개마목장에 도착하자 이인철이 놀란 표정으로 반겼다.

“소대장님, 아직 조정으로 장계도 올리지 않았는데 벌써 데리고 넘어 왔네요.”

“왜? 문제가 생겼나?”

“혜산진의 병마절제도위께서 투항은 받아들이지만 소대장님께서 요청한 장계를 조정으로 보낼 수 없다고 결정했어요. 그리되면 공적은 고사하고 오히려 반역죄로 문책을 당할 수 있다고요.”

“뭐라? 그렇게 판단하는 이유가 뭔가?”

“병마절제도위께서는 소대장님이 북쪽으로 월경한 사실을 기록으로 남기면 나중에 조정에서 크게 문제가 생긴다고 판판 하십니다. 그래서 절대로 압록강을 임의로 넘어 월경한 사실이 드러나게 하면 안 된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두 병장인 형제분들은 다시 북쪽으로 넘어가지 못하고 혜산진에서 무작정 기다리고 있고요.”

이런 설명을 듣자 최인범은 자신이 큰 실수를 했다는 것을 느끼게 됐다.

‘아차! 나 죽을 구멍을 스스로 팠네.’

여진족을 투항하는 형식으로 정착시킨다는 생각만 앞섰다. 그래서 자신이 월경해서 군사적으로 활동한 사항을 병마절제도위에게 알려 무사히 넘어오도록 조치를 취할 생각만 했다.

‘후우! 내가 조선의 양반이라는 점을 깜빡했군. 더구나 양자로 양반이 된 반쪽짜리라 남들이 계속 주목한다는 사실을 잠시 잊었던 거야.’

왕정국가에서는 좋은 일을 하기 위해서도 관리들이 군대를 함부로 움직이지 못한다. 그런데 군왕의 명령도 없이 남의 나라 영토에 함부로 들어가 군사적인 활동을 했다면 그것은 반역행위가 될 수 있다.

‘이것을 알면 조정이나 사림에서 벌떼처럼 달려들 거야.’

그런 점을 처음에는 고려해 비밀리에 압록강을 넘어 월경했다. 여진족의 안전한 정착만 생각해 돌아올 때는 정식으로 들어올 계책을 사용했으니 실로 멍청한 짓을 벌인 것이다.

“그래서 이런 사실을 다른 사람이 아나?”

“아닙니다. 병장님들이 공교롭게 아무도 없는 틈에 병마절제도위를 만나 전달해 그분만 압니다. 그래서 그분이 병장님들에게 절대 다시 넘어가지 말고 기다리라고 엄명하셨습니다.”

“알았어.”

최인범은 먼저 넘어와 개미고원에서 지내는 여진족에 대해 물었다.

“모두 평민으로 정착하게 됐나?”

“그 문제는 아직 조정에서 교서가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병마절제도위께서는 투항한 것으로 기록하고 그에 따른 장계를 조정으로 올려 좋게 해결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말들은 어떻게 됐고?”

“1000필은 여기로 들어왔고. 투항 조건으로 걸린 500필과 좋은 말 500필은 모두 혜산진에서 기마갑사나 기마병들이 사용하게 됐고요. 그래서 조정으로 말 1000필에 대한 대금으로 면포 5만필을 보내달라고 장계를 올렸습니다.”

1필당 면포 50필씩에 조정에서 구입한다는 뜻이다. 아주 헐값으로 정산하니 1000필이나 되는 말을 공짜로 조정에 보내게 된 격이다.

“너무 싸게 파는군.”

“그런 시세가 본시 여진족에게서 정상적으로 말을 사들이는 금액입니다.”

“아하, 그렇군.”

조선과 여진 사이에는 말의 가격차이가 있으니 그런 정도면 억울하다고 볼 수 없었다.

최인범은 잠시 생각하다가 이인철에게 지시했다.

“네가 혜산진으로 가서 이곳에 추가로 200명의 여진족이 투항하기 위해 넘어 왔다고 연락해. 나는 잠시 산으로 들어가 사냥이나 하면서 지낼 것이니 이곳은 네가 처리해. 혹시 혜산진의 병마절제도위께서 여기로 찾아오면 그때나 나에게 안내를 하고.”

“넷!”

최인범은 말 두필에 개인장구를 모조리 챙겨가지고 가까운 숲속으로 들어갔다.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14마리의 풍산개를 모두 끌고 들어갔다.

숲으로 들어가자 소형천막을 치고 천막 안에 두툼하게 낙엽을 깔고 모포나 곰 가죽으로 잠자리를 만들었다. 그런 숙영 준비를 마치자 본격적으로 편전을 사용하는 궁술을 익히며 기다렸다.

‘절제도위를 만나서 여진족에 대한 처리를 끝내면 풍기로 돌아가야 되겠어.’

주상이 부른다고 함부로 한양으로 올라가서는 절대로 안 된다고 판단해 이렇게 결정했다. 중앙 정치는 모략과 음모가 난무하니 어떤 억울한 누명을 쓰고 제거될 수도 있다고 판단했다.

‘백두산 출신이라고 했으니 그것이 조선 사대부의 눈에는 이질적으로 보일 거야.’

누워서 있는 최인범의 귀에는 싸늘한 바람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고 있었다.

고지대인 개마고원의 겨울 날씨는 너무 매섭게 추웠다. 살을 가볍게 스치는 찬바람도 칼날 같은 서늘함을 느끼게 했다. 추운 날씨가 지속되는 가운데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이곳은 북쪽에서 내려오는 찬바람으로 눈도 많이 내렸다. 겨울에는 정말 지내기 어려운 지역이다. 그러나 북쪽에서 내려온 여진족들은 이곳 환경에 쉽게 적응하고 있었다.

‘남쪽에서 오라온 이주민들은 적응하기가 너무 어렵겠어.’

그러니 삼수갑산이란 단어가 생겼다는 느낌이 들었다. 최인범은 날씨가 그나마 좋은 낮에 주로 궁술을 수련했다. 자칫하면 얼어 버리는 손가락을 다칠 위험이 많았기 때문이다.

혼자서 많은 화살을 준비해 편전 사격을 연습하다 지루하거나 날씨가 차가워지면 검술을 수련했다. 전에는 마상 무술이 약했지만 이제는 기마술도 완벽할 정도로 익혀 주로 검술만 수련했다.

“탓!”

쉬익! 쉭! 쉭!

다른 사람이 들게 되면 너무 무겁다고 느낄 정도의 무거운 장검을 들고 검술을 수련했다. 높이 도약하며 힘차게 내리치는 장검에 커다란 나무들이 싹둑 잘라졌다.

검의 모양은 그저 평범해 보이지만 약간 날이 두텁고 조금 길다.

최인범은 북쪽에서 약탈하다가 우연히 작은 부족장이 소유하던 장검을 찾게 되었다.

무거운 장검이라 그저 치장용으로 소장하던 장검이나 아주 적당한 무게를 지녔다. 부족장은 이 장검을 만년한철로 만들었다고 했다. 그러나 검에 얽힌 전설로 해석해 추측해 보니 백두산 근처에 떨어진 운석을 검으로 주조한 것 같았다.

‘이런 검이 실제로 존재하다니.’

장검은 돌과 부딪치거나 다른 검과 부닥쳐도 흠집이 전혀 생기지 않은 보검이다. 확실히 부족장이 말한 그대로 천하의 명검이 틀림없었다.

새로운 장검에 매료된 최인범은 전보다 더욱 검술 수련에 집중했다. 약간 검은 빛이 나기 때문에 장검의 이름은 흑선검(黑仙劍)이라고 지었다. 그런 이름을 지은 이유는 칼을 빠르게 휘두르면 약간 검은 빛을 발하는 선이 그어지기 때문이다.

보검이지만 손잡이나 검집은 다소 평범하게 만들어졌다. 아무래도 명검이란 것을 감추기 위해 장인이 일부로 그렇게 만든 것 같았다.

검술을 수련하던 최인범은 말을 타고 천천히 개마고원의 농장들을 돌아보았다. 이주민들이 차츰 자리를 잡아가자 매우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됐어, 이제 이곳에서 앞으로 많은 수익이 들어 올 거야.’

개마농장에는 선발대로 오게 된 남녀노소로 구성된 500명 이외에 최인범과 같이 오게 된 청년 200명까지 포함되어 700명이 정착했다.

이들 이외에 하삼도에서 죄를 지어 잡힌 1000명까지 조정의 명령으로 강제로 이송되어 총 1700명이 최근에 들어왔다. 물론 그 외에도 전부터 이곳에서 살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 때문에 개마고원 지역의 북부는 총 4000명 정도가 살게 되었다.

갑작스러운 인구의 팽창이다. 본래 정착민들이 거의 없던 곳이라 전에 비해서 약간 번잡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전에 비해 많다는 것이지 토지 면적에 비해 인구수가 많은 것은 아니다.

넓은 초원에는 많은 가축들이 방목되었다. 700명의 여진족이 모여 사는 개마목장은 가축으로 만주에서 약탈해온 말 1000필, 소 50두, 돼지 200두, 양 200마리, 염소 200마리가 사육되고 있었다.

말은 모두 5개의 개마(중동서남북)목장으로 나뉘어 200필씩 관리했다. 최인범은 빠르게 말을 달려 4개의 목장들을 방문했다.

관리인으로 정해진 사람들에게 물었다.

“목장은 잘 운영되나? 애로사항은 없고?”

“넷! 건초도 충분하고 먹이인 콩도 충분해 너무 살찔까 걱정입니다.”

“종마로 고른 말은 쓸 만하고?”

“넷! 그놈은 요즈음 살판이 났어요.”

2000필의 말 중에서 수말만 모두 외부로 반출하고 남은 1000필은 대부분 암놈이다. 그리고 고르고 골라 종마로 10마리만 남게 되었다. 종마는 사실 조금 무리다 싶을 정도로 교미하기에 바빴다. 100대 1이라 조금은 걱정되었다.

‘너무 암놈의 비율이 높으면 허접한 망아지가 생산되는데.’

5개 목장에서 기르는 모든 말들은 최인범 개인소유다. 그 외에 여진족 청년들이 타고 넘어온 말 400필이나 선발대가 가져온 소, 양, 염소 등 다른 가축들은 정착민들이 마을마다 집단으로 혹은 개별적으로 소유해 기르고 있었다.

어느새 새해인 경자(1540년)년이 되었다.

올해는 3년마다 정기적으로 보는 과거시험인 대과가 있는 식년이다. 새해 첫날 아침 일찍 눈을 뜨자 과거를 보는 해라는 생각이 먼저 떠올랐다.

‘나도 벼슬을 높이고는 싶은 것 같군.’

새해 첫날에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이 과거 시험이라 이렇게 판단했다. 개마목장에도 설을 보내기 위해 다들 양이나 염소를 잡아 조상께 차례를 지냈다.

푸짐하게 상을 차려놓고 여진족들은 모두 백두산을 향해 절하고 있었다. 이주민들은 본래 백두산을 성산으로 알고 있기도 하지만 최인범이 백두산 출신이라 그를 공경한다는 의미로 백두산을 향해 절하고 있었다.

“칸의 은총으로 우리가 편하게 사는 거야.”

“당연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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