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화
<동북쪽에서 부는 흑풍>
두두두두.
사라지는 많은 말들 속에는 100명의 부하들과 최인범도 같이 있었다. 일단 목표한 그대로 많은 말들을 탈취할 수 있었다. 이제부터는 무사히 개마고원에 도착하기만하면 된다.
그들이 떠난 뒤에 있는 여진족의 마을에서는 큰 혼란이 벌어졌다. 마을의 사방으로 불이 크게 번지고 있었다.
“불이야! 불!”
곤하게 잠자던 여진족들은 놀라 다들 깨어났다. 그들은 거세게 타오르는 불길을 잡아 보려고 물동이를 들고 이리저리 내달렸다. 부락의 지휘자들은 다들 허둥대며 소리치고 있었다.
“빨리 마구간의 불부터 꺼.”
“넷!”
대부분 낮은 처마인 초가집이나 나무로 지은 집들은 거세게 타올랐다. 꽁지에 묶인 건초더미 붙은 불 때문에 말들이 날뛰자 사방에서 큰 불로 계속 번졌다. 너무 불길이 거세서 뜨겁기도 하고 주위로 번지니 허둥댈 수밖에 없었다.
“창을 던져서라도 말을 잡아!”
부족장이 길길이 날뛰며 크게 외쳤다. 하지만 그런 목소리는 다른 사람들이 지르는 처절한 비명으로 널리 퍼지지 못했다. 여진족들은 처참하게 울부짖고 있었다.
“으악!”
“악!”
“으아앙!”
“살려줘!”
불타는 집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여진족들이 처절하게 비명을 지르며 죽어갔다. 여진족들은 어떻게 해서라도 불길을 잡아 보려고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불길은 점점 거세지고 마을 전체는 화마에 둘러싸여 버렸다. 겨우 겨우 집에서 사람들만 구한 여진족들은 다들 타오르는 불길을 피했다. 큰 불이 마을 전체로 번지자 뜨거운 열기가 너무 거세 옆에 서있을 수 없었다.
여진족들은 마을에서 조금 떨어져 넋을 잃고 불타는 건물들을 바라보았다. 너무 황당한 사건이 자신의 부족에게 벌어진 것이다. 이제 추운 겨울이라 살기가 더 힘들어 아득하기만 했다.
‘이제 살 길이 전혀 없어.’
이때 팔에 화살이 박혀 심하게 다친 청년이 부족장에게 다가와 급하게 보고했다.
“족장님, 우릴 공격한 무리는 얼굴에 가면을 쓰고 모두 검은 옷을 입은 흑풍대입니다.”
“정확한가?”
“넷! 목장을 순찰하다가 화살 공격을 당했으니 정신을 잃고 있다가 겨우 살아났습니다. 그들은 아무래도 동여진 족들 같습니다. 들고 있는 반월도나 그리고 명령하는 목소리로 보아 틀림없습니다.”
이런 보고에 부족장은 눈에서 매서운 불길이 품어 나오며 크게 분노했다.
“그 놈들이 조선국과 회령에서 많은 말을 거래하더니 이제 우리말을 약탈해 모자라는 수를 채우려는 것이 분명하군.”
“그렇습니다. 소문에 동 여진족이 이미 조선으로 면포와 소금을 받고 좋은 말을 2천필이나 팔아먹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확실하군. 그놈들 짓이 분명해.”
말 사육이 중요한 생계 수단인데 일시에 2000필이나 팔아먹었으니 생활에 절대로 필요한 말의 수가 부족할 수 있었다. 그렇게 판단하자 아무래도 동여진 족이 습격했다고 단정했다. 조선에서 쳐들어 왔다고는 전혀 예측하지 못햇다.
능숙하게 말을 다뤄며 약탈해간 공격 방법으로 보아도 여진족이 틀림없었다.
“두고 봐라. 완전히 씨를 말려주지.”
복수를 하기로 단단히 마음속으로 다지고 있었다. 방심하고 경계를 소홀하다가 같은 부족인 동 여진족에게 많았던 말들을 약탈당했다.
졸지에 부족 전체가 추운 겨울에 굶어 죽게 생겼다. 앞으로 어떻게 부족의 사람들이 먹고 살 길이 막막했다. 진짜 적이 누구건 간에 이제는 다른 부족을 공격해 말이나 생필품을 습격해 오는 것이 최선이다.
족장의 측근들이 주변으로 모여 모두들 이구동성으로 권했다.
“족장님, 우리도 남은 말들을 모조리 동원해 동 여진족들을 털어야 합니다. 서 여진은 공격하기가 약간 버겁습니다. 자칫하면 명나라 병사들과 교전이 벌어집니다.”
“알았어, 우선 살아남은 부족민들의 먼저 챙기고 남아 있는 말을 모조리 모아서 동쪽으로 떠나자.”
“넷!”
화공으로 부족민들이 사는 마을은 대형 화재를 당해 모조리 불탔다. 여진족들은 흑풍대에 의해 약탈당해 멀리 사라지는 목장의 말들 추적할 엄두가 나질 않았다.
더구나 화재로 추적하기 위한 마을에 있던 말들까지 사방으로 흩어지거나 많은 말들이 몰려간 쪽으로 달아났다. 도망가서 숲에 있는 말들부터 찾아야 한다.
부족장은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빨리 달아난 말들을 찾아.”
“넷!”
거세게 타오르는 불길 속으로 하늘에서는 하얀 눈이 소록소록 내렸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눈덩이는 더욱 굵어지고 있었다. 이런 상태면 목장에서 사라진 많은 말들의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힘들게 생겼다.
조선에서 많은 군사를 동원해 명나라와 힘을 합쳐 군사 작전을 펼치는 경우는 있었다. 이런 식의 약탈은 당해보지 않아 조선의 지휘관이 벌인 사건으로는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모두 같은 부족인 여진족 중의 딴 무리들이 저지른 약탈 행위로 판단했다. 그래서 추적대는 동쪽으로 수색을 떠나고 있었다.
한편 목장을 털어 길림을 떠난 최인범 일행은 빠르게 길림에서 완전히 벗어나고 있었다. 말들을 몰고 이도백화와 가까운 산골마을에 도착했다.
수많은 말을 몰고 도착하자 칠복이가 급하게 다가와 보고했다.
“칸, 근처의 마을에는 조선에서 포로로 잡혔던 갑사나 병졸 출신들이 모두 100명이나 됩니다.”
“포로들이 의외로 많군. 그런데 갑자기 그렇게 사람이 불어났나?”
“칸! 전에 잠시 스치듯이 지난 작은 마을의 구리와 은 광산에서 노예로 지내던 중이였습니다. 그래서 마을로 들어가 집단으로 조선에서 끌려온 포로를 모조리 구하게 되었습니다.”
“수고 많았군.”
작은 산골마을이라 너무 가난하다고 판단해 그냥 지나친 곳에 구리와 은 광산이 있다는 보고에 매우 놀랐다.
“구리와 은 광산이 근처에 있어?”
“넷! 상당히 많은 구리와 은을 생산하던 곳이고요. 광산을 차지하면 큰 돈벌이가 될 곳 같습니다.”
“그래서? 구리나 은괴를 획득했나?”
“넷! 광산에서 생산된 구리와 은이 많아 모조리 탈취해 왔습니다. 커다란 은괴가 아주 많아요.”
이런 보고를 듣자 최인범은 즉시 지시했다.
“칠복아! 너는 관직에 있으니 내가 주는 마패를 가지고 혜산진으로 가서 병마절제도위에게 정식으로 보고해. 여진족들이 집단으로 투항하니 그들을 모조리 받아 달라고 해. 일단 그들은 모두 개마고원에서 지낸다고 전해.”
“넷!”
이제 한겨울이라 압록강이 두텁게 얼어 도강할 수 있으니 전보다 빠른 이동로를 이용해 남하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만약 추적대가 있을지 모르니 그에 대해 대비하는 방법을 말해 주었다.
“압록강을 넘으면 좁은 골짜기가 있는 곳으로 통해 개마고원으로 들어가. 좁은 골짜기에는 혜산진의 병사들에게 매복하라고 전하고. 투항한 여진족들에 대한 정착은 내가 도착하면 처리할 것이니 병마절제도위에게 그렇게 전하면 당분간 그대로 개마목장에서 지낼 수 있을 거야.”
“알겠습니다.”
최인범은 많은 말들이나 기타 가축을 그대로 개마고원으로 모조리 보낼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혜산진의 전력 강화를 위해 필요한 조치를 지시했다.
“지금 가지고 가는 말 중에서 500필은 투항하면서 바치는 선물이라며 병마절제도위에게 넘겨 줘, 그러면 말이 필요했던 절제도위도 투항으로 인정해 줄 거야. 그래야 절제도위도 전력이 보강되니 우리가 원하는 대로 좁은 곳에 매복을 서줄 것이고.”
“잘 알겠습니다.”
전에 이도백화에서 잡았던 여진족 족장이나 그의 부하들에 대해서도 명령했다.
“포로로 잡아가는 여진족 족장은 죽지 않도록 잘 단속해. 아직은 죽일 때가 아니니까. 적당한 때에 그들을 처리할 예정이니 반드시 살려서 데리고 가.”
“알겠습니다.”
“개마고원으로 모두 보내고 나면 행정병들에게 여진족을 인계하고 너희들은 다시 나를 찾아 와 처리된 결과를 자세하게 보고해.”
“넷!”
이번에 자신이 벌인 사건을 누군가 책임지게 할 필요성이 있었다. 나중에 문제가 복잡해지면 여진족 두목과 그의 심복을 희생양으로 삼을 생각이다. 분쟁이 생기면 상황을 보아서 처리하면 된다.
2000필이 넘는 말들을 인계 받은 칠복이는 여진족 무리와 포로에서 구해진 조선 사람들과 같이 떠나게 되었다. 목적을 달성 했으니 빨리 탈주해야 된다. 이렇게 되자 100명의 여진족들이 약간 술렁였다.
지휘관이 분명 자신들과 같은 여진족으로 알다가 낌새가 이상해서 수군거렸다.
“우리 칸은 도대체 왜 조선으로 말을 보내는 거야?”
“너무 이상하군.”
이런 술렁임을 알자 최인범은 장익덕에게 지시했다.
“당장 많은 말들을 이끌고 정착할 적당한 위치가 없어. 이곳에서 약탈하며 지내다가 주변에 적들이 너무 많아지면 조선으로 넘어가 정착해 산다고 해. 그래서 미리 조선과 교섭을 위해 말을 조선으로 보내게 됐다고 설득시켜.”
“알겠습니다.”
일종에 살길을 하나 더 뚫어 놓겠다는 계책이다. 나중에는 자연히 알겠지만 아직은 주변을 속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