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화
최인범은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모두 포박해.”
“넷!”
드디어 마을을 완전히 점령하고 나자 마을 전체에 대한 수색이 진행되었다. 재물이 될 만한 물건들은 모조리 압수했다. 수색을 담당하던 칠복이가 신이 나서 보고했다.
“칸! 이놈들이 의외로 비단도 많고 면포나 패물도 많이 가지고 있네요. 이놈들은 여기서도 주로 마적 질로 재물을 모았나 봅니다.”
“획득한 재물들은 모두 칠복이가 가지고 떠나.”
“알겠습니다.”
마을에서 움직이기 곤란한 노인들만 따로 가두었다. 여진족인 어린아이를 포함해 나머지는 모조리 공터에 모아 놓았다.
공터에 모여 있는 200명의 포로들에 대한 개별적인 심문이 진행되었다. 조선의 국경지역에서 끌려온 포로들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언제 여기로 끌려왔소?”
“10년이 지났소. 저 사람은 갑사 출신으로 20년이다 지났고요.”
“알았소. 우리가 조선출신이라는 것은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마시오. 조선으로 돌아가도 마찬 가지요. 그저 여진족들 끼리 벌어진 약탈 행위로 만들어야 매사 조용합니다.”
“예. 잘 알겠습니다.”
여자들은 이미 여진족과 같이 살아 여러 명의 자식들도 있어 따로 분리하기가 곤란했다. 포로들에 대한 심문을 전담한 칠복이가 매우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칸! 어쩌죠. 조선으로 돌아가기 싫다는 여자들도 있는데 그대로 놔두고 돌아갈 수는 없고?”
“마을 사람을 모조리 끌고 간다.”
“넷!”
결국 포로로 끌려온 갑사 10명과 청장년인 조선 출신 20명으로 후방부대는 구성되었다. 전투력을 지닌 조선 사람이 30명이나 되니 그들이면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최인범은 본래 계획대로 하후돈에게 지시했다.
“너는 먼저 갑사출신들이나 청년들과 같이 마을 사람들을 모두 끌고 이도백하로 이동해. 포로로 잡은 여진족 부족장이나 부하들은 잘 단속하고.”
“넷!”
이런 지시를 받은 하후돈은 마을사람 100명과 포로로 잡혀 있던 갑사 출신 10명과 조선출신 장정 20명과 같이 먼저 떠났다. 중간 지점에서 합류하기로 단단히 약속했다.
“모두 40명 정도가 되니 전에 봐두었던 작은 마을만 공격해. 보급만 하고 되도록 죽이지는 말고 무리에 합류시켜. 모두 개마고원으로 끌고 가서 정착시킬 생각이니.”
“넷! 잘 알겠습니다.”
이곳에서 데리고 가는 여진족이 순종하면 개마고원에 정착시킬 계획이다. 설사 그것이 여의치 않으면 멀리 덕원부로 데리고 가서 그곳에서 노예로 팔던 아니면 투항한 무리라고 해서 평민으로 만들어 정착시킬 생각이다.
포로로 잡혀 있던 갑사들은 무력은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힘든 노예생활을 오래하면서 체력이 많이 떨어져 함께 움직일 수 없어 먼저 이동시킨 것이다. 마을 전체의 사람들이 같이 이동하게 되자 자연히 기동력이 떨어진다는 점도 참고했다.
“하후돈. 너무 무리하지 말고 남하하면서 퇴각하는 지점의 마을을 공격해서 후방 부대원의 수를 계속 늘리도록 해. 특히 조선출신 노예나 또는 부녀자는 반드시 합류시키고.”
“알겠습니다.”
“이제부터는 퇴각하며 지나치게 되는 마을에 있는 말이나 모든 가축은 모조리 수거해서 가져가고.”
“넷!”
압록강을 넘어 북쪽으로 이동하며 이미 퇴로의 마을에 대한 조사를 모두 끝냈다. 그 때문에 후방 부대가 지나가는 마을의 무장의 상태나 또는 말이나 가축의 수는 파악해두었다.
하후돈이 먼저 남쪽으로 떠날 무리를 이끌고 출발했다. 그들이 떠나고 며칠이 지나도록 최인범은 무리를 체계적인 군대 조직으로 바꾸는 작업에 전념했다.
남아 있는 10명의 여진족 출신인 금일여를 비롯한 이등병들에게 지시했다.
“이등병들은 모두 앞으로 일등병인 작대기 둘로 표시하고 조장으로 10명씩 이끌도록 해!”
“넷!”
위계질서를 확립할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해 추가해서 지시했다.
“모두 검은 두건과 옷을 검게 물들이고. 그들은 별도로 일등병의 표시로 작대기 하나씩을 이마에 표시하도록 해.”
“칸! 명을 따르겠습니다.”
군대란 오합지졸로 구성되면 수가 많다는 것이 오히려 문제점으로 나타난다. 이런 상태로는 대규모인 말을 일시에 남쪽으로 이동시키거나 습격하기가 힘들다고 판단했다.
최인범은 그런 점을 고려해 당초 공격하려던 길림 근처에 있는 큰 목장의 공격을 뒤로 미루고 다른 곳으로 잠시 이동했다.
목표에서 떨어진 전에 모두 이주시킨 마을로 돌아왔다.
최인범 일행은 깊고 은밀한 골짜기로 들어와 새로 합류한 부하들을 혹독하게 조련했다. 자신이야 부하들 앞에 잘 나서지 않고 진급시킨 여진출신인 일등병들을 조장으로 내세웠다.
‘훈련 받은 그대로 써먹으며 조련을 잘 하는군.’
금일여나 다른 일등병들은 오래 조선에서 노비로 살아서 그런지 적응 능역이 뛰어났다. 그리고 개마고원에서 받은 군사교육의 강도가 높아서 그런지 부하들을 혹독하지만 잘 다루고 있었다.
조련하는 방식이야 아주 단순했다. 명령을 수행하지 못하면 마구 패는 행동으로 쉽게 다른 여진족들 청년들을 굴복 시켰다.
며칠 지나지 않아 새로 합류한 여진 출신인 이등병들은 모두 명령에 잘 순응하는 군인으로 변했다. 무술이야 형편없지만 명령은 잘 따르게 만든 것이다.
이제 지휘계통은 확실하게 자리를 잡았다. 이런 정도라면 길림에 있는 대형목장을 습격할 때 일사 분란하게 움직일 정도는 됐다.
겨울의 하늘이 다시 점점 검은 구름으로 가려지고 있었다. 이제는 대규모인 군대로 변한 처지라 날씨에 따라 군대의 운용방법이 달라야 한다.
최인범은 검은 구름으로 가득한 하늘을 바라보며 팔복이에게 물었다.
“내일 새벽 정도에는 많은 눈이 내리겠지?”
“예, 제가 보기에도 눈이 내릴 것 같습니다.”
“너도 그렇게 본다면 빨리 길림목장의 공격을 시작해야 되겠어. 모든 이등병들에게 떠날 준비를 지시해.”
“넷!”
힘들게 훈련하던 부하들에게 떠난다고 지시했다. 최인범은 자신도 바쁘게 전투 준비를 마쳤다.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면 아무래도 적에게 노출되니 안전을 생각해야 된다.
수시로 주변을 정찰을 보내 알아보니 여진족들도 서서히 자신들이 숨어 있는 곳을 향해 수색대를 보내는 등의 압박을 가해 오고 있었다.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하다보면 많은 여진족 무리에 완전히 포위될 위험한 상황이 올 수도 있었다.
‘서두르는 것이 좋겠어.’
날씨가 흐려지는 기회에 길림의 대형목장을 털어 최대한 남쪽으로 빨리 이동할 생각이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팔복이가 찾아와 보고했다.
“칸! 떠날 준비를 끝냈습니다.”
“그래? 그럼 출발하지.”
최인범이 이끄는 여진족의 무리가 어느새 100명이나 된다. 그 때문에 충분히 2000필의 말을 몰고 이동이 가능했다. 부대는 서서히 목장 근처로 다가가서 숲속에서 대기했다.
달빛도 없는 어두운 밤이라 은밀하게 움직이기는 제일 좋은 날이다. 많은 말들을 보유한 기병대라 여진족들이 눈치를 챌 수 있었다. 그 때문에 숲속에서 숨어 대기하고 있는 부하들은 다들 긴장해서 공격 명령이 떨어지길 초조하게 기다렸다.
최인범은 멀리 보이는 목장을 바라보다 정찰할 필요성 때문에 칠복이에게 지시했다.
“마 병장, 먼저 정찰을 다녀와.”
“넷!”
칠복이는 자신의 직속 부하로 삼은 여진족인 2명과 함께 목장으로 향했다.
말을 타고 목장 근처에 접근하자 칠복이는 말을 나무에 매어 놓고 은밀하게 목장 안으로 스며들었다. 그리고 목장의 목부나 또는 주변을 경계하는 여진족들의 동태를 자세하게 살폈다.
멀리 남쪽에서 약탈을 해서 그런지 아직 이곳의 여진족들 경계상태는 그리 심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전보다 보초병의 수가 2배로 늘어나 20명 정도가 목장 주변을 말을 타고 순찰했다.
‘전혀 모르게 습격하기는 틀렸어.’
방법은 정면으로 돌파해 목장의 울타리를 부수고 말을 몰아 남쪽으로 도망가는 수밖에 없었다.
목장을 자세하게 살피고 돌아온 팔복이가 조심스럽게 보고했다.
“칸! 목장 주변에 전보다 보초가 2배로 늘어 20명이 순찰을 돌고 있습니다.”
“순찰 이외에 막사에는 병력의 수가 많나?”
“그렇게 많지는 않습니다. 5명 정도가 목장의 막사에 있습니다.”
잠시 생각하다가 결단을 내렸다.
“내가 먼저 목장의 막사로 침투해 막사 안에 있는 병사들은 모조리 해결하지. 퇴로 쪽에서 순찰을 도는 녀석들은 네가 처치해. 불을 지를 것이니 그것을 신호로 일제히 공격해.”
“넷! 명을 따르겠습니다.”
최인범은 말을 타고 급하게 이동해 목장 근처에서 말을 버리고 목장 안으로 조용히 들어갔다. 조심스럽게 포복해 목부들이 있는 막사로 갔다.
창문 틈으로 안을 살폈다. 목부들은 서로 술을 권하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대부분 부족장이나 또는 젊은 아내들에 대한 이야기다. 아직은 익숙하지 않은 여진족 말이라 그저 대충 알아듣고 있었다.
“남쪽에 새로운 마적들이 돌아다닌다고 하던데.”
“그런 소리를 듣기는 했지만 거기와 여기는 너무 먼 곳이잖아?”
“그래도 조심해야지.”
한참을 숨어서 엿들어도 자신들에 대한 정체를 아는 것 같은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다.
아직은 흑풍대의 우두머리가 조선 사람으로는 생각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고비인 여기서만 적의 눈을 속이면 처음 목적한 바를 이를 수 있다고 판단됐다.
‘됐어! 아직도 속고 있어.’
이곳 목장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여진족들이 모여 사는 큰 마을이 있었다. 그 곳에 사는 여진족들은 개별적으로 말을 지니고 있으니 그들의 추적도 고려해야 된다.
‘모조리 남쪽으로 끌고 가기 어렵겠어.’
최인범은 목장의 말을 이용해 화공을 펼쳐 적들에게 혼란을 줄 계획이다. 그러자면 일부 말을 이용해 공격할 작전을 펼치기로 했다.
일단 막사 안에 있는 적을 처치해야 하니 최인범은 문으로 다가가 두드렸다.
쾅! 쾅!
요란하게 소리를 내며 문을 두드리자 술을 마시던 두 녀석이 슬며시 일어나 문 쪽으로 향해 다가왔다. 문의 옆에서 기다리던 최인범은 여진족이 문 밖으로 나오자 커다란 반월도를 크게 휘둘렀다.
“탓!”
짧은 기합을 토하며 십자 배기로 동시에 두 녀석의 목을 겨누고 휘둘렀다. 강하고 빠르게 휘두른 반월도에 두 녀석의 목이 거의 동시에 싹둑 잘라져 땅에 뒹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