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화
“우선 임시로 묵을 집부터 선정해.”
“넷!”
이제 겨울이 다가오니 밤에는 무척 춥다. 그래서 야전 천막 보다는 그래도 바람을 피할 수 있는 폐허가 숙영지로 적당하다고 판단했다. 문짝도 모조리 부서진 집안으로 들어가 모닥불을 피우고 숙영했다.
그동안 칠복이 형제가 압록강 상류로 가서 정찰하며 기록한 지도를 살펴 지시했다.
“칠복이 형제는 지도를 지니고 양쪽으로 분산해서 먼저 출발해. 지도에 기록된 사항 이외에 다른 변동사항이 있는지만 알아내서 풍산개를 이용해 수시로 보고하고.”
“넷!”
풍산개에게 편지를 적어 돌려보내면 필요한 정보를 후방에서도 알 수 있었다. 이런 새로운 방법은 매우 효율적의 적진을 정찰할 수 있는 방법이다.
다음날 새벽에 정찰을 떠난 칠복이 형제는 여진족이 넘어온 압록강을 살펴 넘어가는 길을 알아냈다.
“밤에 넘어갈 수 있지?”
“넷!”
밤이 되자 최인범 일행은 아주 조심스럽게 압록강을 넘고 있었다.
하늘에는 눈이라도 내리려는지 별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때보다 어두웠다. 강물은 이제 추워진 날씨 때문에 매우 차가웠다.
“헛! 차가워!”
장익덕이 물속으로 말을 몰고 가다가 차가운 강물이 얼굴에 튀기자 자신도 모르게 외쳤다.
그러자 최인범이 노한 표정으로 나무랐다.
“물소리나 말소리가 안 나게 조심해.”
“넷!”
압록강 상류인 곳이라도 수심이 사람의 키를 훌쩍 넘어 매우 깊었다. 하지만 전에 여진족이 넘어온 지역은 여울과 같이 낮아 걸어서 넘을 수 있었다.
작은 물소리를 내며 밤의 어둠을 이용해 아무도 모르게 압록강은 넘었다. 불법으로 월경을 했으니 남들이 알면 문제는 아주 심각해질 수 있었다.
‘나야 상관없어.’
이렇게 생각하며 도강을 끝낸다.
최인범 일행은 산의 능선을 따라 신속하게 이동해 북쪽으로 깊숙하게 들어갔다. 드디어 오래 벼르던 은밀하고 과감한 군사작전을 펼치기 시작했다.
완전군장으로 급하게 말을 따라 달리는 이등병들 입에서 거품이 토해지기 직전이다.
“헉! 헉!”
“정지!”
정지하라는 명령에 부하들은 모두 그 자리에 서서 후들 거리는 다리로 겨우 버티고 서있었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던 최인범은 엄하게 지시했다.
“여기서 감시 쉬면서 주변을 정찰해.”
“넷!”
명령을 받은 부하들은 지친 몸을 나무에 기대어 쉬고 있었다. 정찰병인 칠복이 형제는 양쪽으로 나뉘어 주변 정찰을 위해 사라졌다. 그들이 떠나고 나자 최인범은 쉬고 있는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조금만 더 쉬고 주변에 사냥물이 있나 살펴.”
“넷!”
모든 보급품을 현지에서 조달해야 한다. 비상식량이 있다지만 그것의 최악의 경우에 사용할 요량이다. 그러니 제일 급한 것은 먹을거리를 찾은 것이다. 각자의 배낭에는 비상식량으로 미숫가루나 육포가 어느 정도 들어 있지만 그것은 최대한 아껴야 한다.
숲으로 들어가 토끼 몇 마리와 작은 멧돼지 한 마리를 잡아오자 모닥불을 피워 굽고 있었다.
이때 주변을 정찰하고 칠복이 형제가 도착해 보고 했다.
“칸! 찾으시던 규모의 목장을 발견했습니다.”
“털기에 적당하고?”
“넷! 마을과 조금 떨어진 목장입니다.”
“됐어. 그럼 식사를 끝내고 그곳으로 가자.”
“넷!”
모닥불에 구워진 고기를 나누어 먹고 나자 최인범은 목장이 있다는 지역으로 이동했다. 이제는 습격을 하거나 은밀하게 털어야 하기 때문에 이동 속도는 느렸다.
송화강의 상류로 백두산에서 시작되는 이도백하 강변의 작은 마을.
이곳은 여진족들이 작은 부족 단위로 모여 사는 곳이다. 칠흑 같이 어두운 밤에 검게만 보이는 깊은 숲속에서는 작은 소리들이 들렸다.
사삭 사삭. 부스럭 부스럭.
작은 소리를 내며 은밀하게 움직이는 검은 물체들이 보였다. 검은 그림자들은 아주 천천히 이동해 아름드리 소나무 숲속으로 모여들었다.
그러자 칠복이가 다시 보고 했다.
“칸, 목장의 막사에는 목부 2명만 있습니다.”
“그들은 뭐하고.”
“방안에서 술을 마시고 있어요. 조금만 지나면 모두 술에 취해 잠들게 생겼습니다.”
“됐어. 저 목장을 털자!”
이들이 모여 있는 주변은 돋게 뻗은 장백송들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또한 초저녁에 내린 눈으로 천지는 하얀 눈꽃들이 만발해 있었다. 적에게 흔적이 노출될 위험성이 너무 많은 자연 환경이다.
잔가지가 벌로 없이 하늘로 곧게 뻗은 미인송들이 빼곡했다. 조금 떨어진 어두운 숲속에서 최인범은 부하들과 전방을 주시했다. 그가 바라보는 곳에는 20개의 가옥들이 있고 작은 마을에서 떨어진 말을 사육하는 목장이다.
작은 목장에는 4-50마리의 말들이 작은 초지 옆에 있는 축사를 들락거렸다.
“마 병장은 속히 말을 끌고 탈출로를 정찰해.”
“넷!”
칠복이 형제는 탈출로로 정해진 북쪽으로 모든 말을 이끌고 정찰을 떠났다. 그러자 최인범은 초조하게 기다리던 두 일병에게 지시했다.
“장익덕은 목부들이 있는 막사로 가서 제압할 준비를 해. 술에 취해 깊이 잠들어 있으면 그냥 놔두고.”
“넷!”
지시를 받은 장익덕과 하후돈은 막사를 향해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검은 숲에서 움직이는 이들은 모두 검은 색의 군복과 얼굴에는 검은 두건을 쓰고 있었다. 손에는 모두 반달모양으로 생긴 반월도를 들었다. 자신들의 정체를 숨기기 위해 무기도 다른 것을 들고 옷도 검게 물들였다.
조선관헌도 모르게 압록강을 넘어 월경한 최인범은 이제부터 만주지역을 돌아다니며 마적질할 계획이다. 조선에서 꼭 필요한 말을 대량으로 약탈해 압록강 너머 남쪽으로 보내야 한다.
결국 마적질해서 털어온 말들을 넣어둘 장소로 사용하기 위해 개마목장을 건설한 것이다.
‘큰 목장을 발견하면 털어서 돌아가야지.’
매번 여진족에게 당하고 있는 조선이다. 그래서 심복 부하들을 이끌고 들어와 말들을 탈취할 생각이다.
공격할 준비를 마친 최인범은 금일여 등 10명의 부하들에게 지시했다.
“이제부터 탈취하는 말들은 모두 너희들이 사용하니 잘 고르도록.”
“넷!”
금일여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칸! 말은 몇 필 씩이나?”
“모두 안장을 채워서 타고 별도로 2마리씩 끌어.”
“알겠습니다.”
결국 망아지는 놔두고 큰 말들은 모두 탈취해 떠날 생각이다.
“말에 안장을 채우고 나서 그래도 시간이 있으면 다른 말 등에는 건초나 콩을 싣고.”
“넷! 잘 알겠습니다.”
압록강을 넘어 계속해서 북쪽으로 이동했다. 중간에 1-20필을 사육하는 목장도 여러 개 있었다. 하지만 그런 소규모 목장은 정찰만 하고 그대로 지나쳤다.
작은 목장을 털면 필요한 말들을 충분히 확보하기 전에 행적이 노출될 수 있었다. 그것을 피하기 위해 힘들게 부하들은 여전히 걸러서 이동했다.
드디어 털기에 적당한 크기의 목장을 발견하자 말을 탈취하기로 결정했다.
현지 조달 방법을 택하기 위해 힘들지만 금일여 등은 일부러 완전군장 상태로 힘들게 걸어서 이동했다. 이곳은 완전히 여진족들이 모여 사는 적진이라 말 몇 마리를 털고 그들에게 경각심을 줄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자신들이 필요한 말이 충분히 있는 목장이 발견될 때까지 이동했었다.
목부들이 술을 마신다는 막사까지 두 부하들이 침투하자 최인범은 지시했다.
“시작 해! 앞으로는 모두 여진 말로 대화해.”
“넷!”
지시를 받은 부하들이 빠르게 목장의 축사로 접근했다. 그리고 축사 안에 있는 많은 말안장을 빠른 속도로 말 등에 올려놓는 작업을 했다. 안장은 20여개가 되기 때문에 20필의 말에 안장을 채웠다.
푸드드. 푸두두.
처음 접하는 사람들 때문에 일부 말들이 이리저리 움직이며 울음을 터트리지만 금일여들은 아주 능숙하게 말들을 진정시키며 안장을 채웠다.
안장을 채우던 금일여가 말을 끌고 와 낮은 목소리로 보고했다.
“칸, 이 말이 제일 좋습니다.”
“알았어.”
완전히 검은 색인 말은 다른 말보다 약간 크고 날렵해 보였다. 부하들은 20필의 말에 안장을 채우고 다른 말들도 모두 굴레를 채웠다.
한 사람이 타는 말 이외에 다른 2필들을 안전하게 끌고 가기 위해서다. 말에게 굴레를 채우면 이동 중에 안장만 바꿔서 타면 되니 말을 교체하는 시간을 줄일 수 있다.
지금까지는 은밀하게 움직여 적에게 추적당할 염려가 없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여진족들의 추적도 많이 고려해야 된다.
10명의 부하들이 안장과 굴레를 채우고 말 등에 건초나 또는 콩 자루를 모두 싣고 나서 떠날 준비를 했다.
“왜 안와?”
막사로 가서 목부들의 동태를 감시하던 두 일병이 축사로 오지 않자 그쪽으로 행했다. 빨리 범죄 현장인 이곳을 떠나야하니 서두르고 있었다.
이때 막사 안에서 문이 열리며 두 목부가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밖으로 나왔다. 수십 필의 말들이 움직이자 이상한 느낌이 들어 술에 취한 상태에서 살펴보기 위해 밖으로 나온 것이다.
문 옆에서 기다리던 두 일병이 재빨리 두 목부의 입을 손으로 강하게 틀어막고 대검으로 목을 그어 버렸다.
싹!
“컥!”
대검으로 잘라진 목에서는 붉은 피가 품어져 나왔다. 이미 절명한 목부는 약간 부들거리다 힘없이 땅에 쓰러졌다. 목부들을 죽이고 그들을 끌어 막사 안에 집어넣었다. 역겨운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부하들이 목부를 처치하고 나자 최인범은 방안을 재빨리 살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