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화
호색한으로 무능한 가정제는 허세까지 아주 심했다. 그래서 조선을 통해 조공무역으로 전과는 다르게 많은 물품을 요구하고 있었다.
단기적으로는 조선이 다소 어렵지만 결국에는 큰 이득을 보게 되는 외교정책을 펼치고 있었다.
한편 함경도 최북단인 회령에서는 동여진과 교역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관무역과 사무역을 통해 많은 말들이나 가죽이 조선으로 유입된다. 동여진 족들에게는 면포와 소금 그리고 도자기가 공급되었다.
이런 대대적인 무역이 동북쪽에서 벌어지는 가운데 백두산 서쪽의 회령에서는 전혀 다른 사건이 벌어졌다.
압록강 상류인 깊은 계곡의 물길을 넘어 여진족들이 갑자기 민가를 향해 공격했다. 수확시기를 노려 곡물을 약탈하러 넘어 온 것이다.
“적이다!”
당황한 마을 사람들은 급하게 혜산진으로 달려와 보고했다.
“여진족이 쳐들어 와서 마을을 쑥밭으로 만들고 있어요.”
“뭐요?”
혜산진의 주변 마을들이 갑자기 여진족들의 공격을 받자 급하게 군대를 소집했다.
병마절제도위인 김찬중은 급하게 갑사들과 군졸들을 이끌고 국경 마을로 달려갔다. 김찬중 절제도위는 말 탄 갑사들과 먼저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
혜산진에서 서쪽으로 80리 정도 떨어진 국경마을이다. 압록강에서 불과 5리도 떨어지지 않았다. 그곳에는 화전을 가꾸고 사는 20여 가구가 두 곳에 분산되어 모여 살고 있었다.
여진족의 습격을 받은 마을은 너무 처참했다. 곳곳이불타거나 약탈을 당해 피해 규모가 상당했다. 많은 백성들이 처참하게 살해당했다.
김찬중 절제도위는 침통한 표정으로 탄식했다.
“허! 너무 늦게 와서 모조리 죽었어!”
너무 처참한 모습을 보게 된 병사들은 모두 크게 분노했다.
“이런 쳐 죽일 놈들. 아이도 죽였어.”
여진족에서 기습적으로 밤에 습격을 당한 마을은 너무도 참혹했다. 마을에는 어린아이들이 싸늘하게 주검으로 변한 부모들 옆에서 울고 있었다.
“으앙! 앙!”
붉은 피를 흘리고 죽어 있는 시체들이 천지사방에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부모의 품에 안겨 죽어 있는 갓난아기들도 간혹 보였다.
습격당한 마을에 살아 있는 사람은 나이 많은 병든 노인 그리고 아주 어린 아이들 뿐이다. 쉽게 이동이 가능한 가축이나 사람들은 여진족들이 모조리 끌고 가버렸다. 운이 좋아 숨어서 있다가 겨우 살아난 사람들은 참혹한 사실로 다들 넋이 빠져 있었다.
‘죽일 놈들, 한동안 잠잠 하더니 또 시작했어.’
국경마을 곳곳은 불에 탄 초가집들만 보이고 곳곳에는 사람이나 짐승들이 무수히 죽어 있었다. 까마귀가 날아와 파먹은 사체에서는 썩은 냄새가 진동했다.
“부관, 아이들이나 살아있는 노인들부터 모아.”
“넷!”
이미 습격하고 멀리 사라진 여진족이라 절제도위인 김찬중은 망연자실했다. 흔히 겨울에 압록강이 얼면 침범해 오는 경우는 있었다. 이렇게 수확철인 가을에 대규모로 내려와 약탈하는 경우는 없었다.
‘이놈들이 겨울에 내려오기 전에 사전에 전력을 알아보려고 벌인 소규모 전투 같군.’
여진족은 큰 전투를 벌이기 전에 가끔 이렇게 소규모로 기마부대를 동원해 마을을 기습적으로 습격하고 철수하는 경우가 가끔 있었다.
국경마을을 돌아다니면서 조사하던 갑사가 절제도위에게 다가와 급하게 보고했다.
“여진족들은 이미 이틀 전에 떠났다고 하옵니다. 이미 압록강을 너머로 멀리 달아났사옵니다. 이쪽에 분초가 없다는 점을 알고 이곳을 습격한 것 같습니다.”
“알았어. 살아있는 백성들을 모아서 병력의 수나 기타 무기들에 대해 자세하게 조사해.”
“넷!”
절제도위는 조정으로 속히 장계를 올려야 한다. 적에게 관할 지역인 마을이 습격당해 처벌이야 받겠지만 상황을 정확하게 알릴 의무가 있었다.
김찬중은 조정에 여러 번 장계를 올려 대규모로 군사를 동원해 여진을 토벌하던가? 또는 이곳의 국경선을 지킬 군사의 수를 대폭 늘려달라고 강력하게 요구했다. 하지만 조정에서는 평화 시에 군사를 늘릴 수가 없다고 주장하며 자신의 의견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다.
“후우! 분초를 늘리라는 조치만 받아 들였어도 이렇게 철저하게 당하지는 않는데.”
“조정이나 병마절도사께서 너무 안일하게 판단해서 그렇습니다.”
이곳 혜산진에는 병마절제도위 아래로 갑사들이 200명 군졸들이 800명이 있다. 모두 1000명의 병사들이 압록강을 방어선으로 포진되어 있었다. 군졸 중에 300명은 상설 군인이고 500명의 혜산진 부근에서 사는 장정들이 유사시 동원되어 구성된다.
혜산진을 중심으로 양쪽에 3개씩의 분초를 두고 있었다. 분초에는 갑사 3명과 군졸이 30명씩 배치된다. 분초의 수도 2개를 더 늘리고 분초에 주둔하는 부대원도 100명으로 늘려야 한다고 조정이나 병마절도사에게 건의했다. 그러나 어느 것 하나 받아들이지 않았다.
“진즉에 조정에서 대비하도록 조치를 내렸어야 하는데.”
“조정에서는 조그만 국경마을 하나 정도야 별로 중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저 백성들을 진과 가까운 곳으로 이주 시키라는 조치만 하달됐으니까요.”
월경해서 국경마을을 습격하고 멀리 도망친 여진족을 추적할 수도 없었다. 병력을 동원해 함부로 압록강을 넘어 진격하면 명나라에서 시비를 걸게 된다.
백두산 동쪽은 조선이 두만강을 넘어 북쪽으로 군대를 보내도 간섭하지 않는다. 하지만 압록강 지역은 여전히 명나라에서 자신들 영토라고 주장해 조선에서는 마음대로 올라갈 수 없었다.
김찬중 도위는 조정으로 장계를 올리고 경계를 강화하고 백성들의 수확이 모두 끝나기를 기다렸다. 수확이 어느 정도 끝나자 비상체제로 혜산진에 속한 장정들을 모조리 소집해 훈련이나 경계업무에 투입했다.
이윽고 기다리던 장계에 대한 조치가 조정에서 내려왔다.
“이제야 북쪽으로 따라 올라가 여진족을 소탕해도 된다는 허가가 내려왔군.”
“장군, 그렇다고 함부로 군대를 움직일 수는 없잖아요.”
“당연하지. 우리가 보유한 병력의 수로는 북쪽으로 함부로 넘어 갈 수야 없지.”
조정에서는 필요한 경우 북쪽으로 가서 소탕작전을 펼칠 수 있다고만 했다. 그런 군사작전을 펴기에 필요한 병력지원이나 예산 지원은 하나도 없었다.
조선 조정에서는 그저 입만 가지고 하는 허울 좋은 명분으로 조치를 내리고 있었다. 전투를 벌이려면 재물이 많이 들지만 그에 대한 조치는 내려 보내지 않았다.
“하나마나한 조치만 계속해서 내리는군.”
“그냥 가만히 당하고 살라는 건지.”
다만 그 지역에 있을 최인범 사정이 혜산진으로 찾아올 경우는 그가 요청한 병력을 지원해주라는 의미로 면포 500필만 보냈다.
“허어! 면포 500필로 최 사정에게 병력도 지원해주고 습격당한 마을을 지원해 주라니 면포의 사용처가 참으로 애매모호하군.”
“착호부대로 유명한 최인범 사정이 아마 이곳으로 와 있나 봅니다.”
“조정에서 내려온 서류로 보아서는 그가 여기로 와 있는지도 확실하지도 않아. 그러니 이런 애매모호한 조치를 내리지.”
김찬중 절제도위는 우선 습격당해 겨우 목숨만 살게 된 백성들을 돕는 일이 제일 시급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혜산진에 속한 아전인 호방에게 지시했다.
“당장, 면포를 식량으로 바꾸어 이재민에게 나누어 주도록.”
“예이, 그런데. 얼마 정도나.”
“우선 200필만 그렇게 조치해.”
“넷!”
김찬중은 조정에서 보낸 면포 200필을 사용해 습격당해 이재민이 되어버린 백성들에 대해 지원을 신속하게 했다. 그리고 갑사들에게 지시했다.
“최인범 사정이 관할 지역으로 사냥하기 위해 와 있다니 마을을 다니면서 그의 소식을 아는 백성들이 있는지 잘 알아 봐!”
“넷!”
한편 고지대의 초원지역인 개마고원의 목장·····.
넓은 초지가 이어지는 산림지대와 접해 건설된 목장은 이제 많은 건물들이 들어섰다. 건축기술을 가진 목수가 지은 건물이 아니라 모두 허술했다.
그러나 굻은 나무를 이어서 지은 건물들은 비교적 튼튼하게 지었다. 집의 형태인 건물이 5개 동이고 마구간을 겸한 헛간이나 사료창고로 쓰는 건물도 2개 동이나 추가로 크게 지었다.
개마고원은 겨울에는 너무 혹독한 추위라 남쪽에서 자란 말들이 견디기 어렵다고 판단해 마구간도 추가로 지어 놓은 것이다. 사료인 건초 저장에도 큰 건물이 필요했다.
최인범 일행은 개마고원에서 목장을 운영하며 정착할 터전을 만들기 위해 힘든 생활을 하고 있었다.
자신의 숙소에서 최인범은 정찰병으로 혜산진을 다녀온 칠복이 형제로부터 보고를 받고 있었다.
“소대장님, 얼마 전에 여진족들이 국경과 접한 마을을 습격해 백성들이 수십명 끌려가 작은 마을 두 개가 완전히 파괴되었다고 하옵니다.”
“뭐? 압록강을 어찌 넘어오고?”
“여기는 상류라 말을 타고 넘어오기 쉬운 지역도 있습니다.”
“그게 언제야?”
“10일 정도 지났다고 합니다.”
“됐어. 우리가 북쪽으로 넘어 갈 명분이 생겼어.”
압록강을 넘어 만주로 들어갈 생각이던 최인범은 여진족의 습격을 좋은 기회다.
부하들이 목장 시설도 하고 힘들게 군사훈련을 계속했다. 각종 생존술이나 무술을 수련해 이제는 어느 정도 움직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최인범은 부하들을 모두 불러 모아 지시했다.
“행정병과 의무병은 모두 여기서 목장을 관리하며 기다려. 주변에게 계속 사냥해서 비축 물자를 늘려 놔!”
“넷!”
말이 많고 개도 있어 주변에 늑대나 기타 살쾡이들이 출몰했다. 그리고 표범도 나타나 사냥 전담인 칠복이 형제가 야생동물을 잡아 계속 콩이나 보리를 사와 비축하고 있었다.
초조한 기색으로 눈치를 보는 부하들에게 지시했다.
“나머지 병사들 모두 나와 같이 내일 북쪽으로 떠날 수 있도록 완전군장으로 준비해.”
“넷!”
“이인철 상병이 잔류 병력의 지휘자니 명령을 잘 듣도록.”
“넷!”
모두 같은 상병이라 누군가 지휘해야 하니 지목해 주었다.
다음날 최인범은 군장을 꾸리고 나서 주둔지인 개마목장을 떠나고 있었다.
칠복이 형제와 최인범 그리고 하후돈과 장익덕만 말을 타고 있었다. 나머지 여진출신인 이등병들은 모두 풍산개만 데리고 개마고원을 떠났다.
최인범 일행은 한동안 머물던 개마고원을 떠나 은밀하고 이동해 북쪽에 있는 폐허로 변한 마을에 도착했다. 칠복이 형제는 마을을 한 바퀴 돌아보고 와서 보고했다.
“소대장님, 사람의 흔적이 전혀 없는 것으로 보아 여기서 살던 사람들은 완전히 혜산진으로 철수했네요. 안전하기만 하면 그런대로 정착하기 좋은 곳인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