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화
<개마고원의 생활>
최인범이 개마고원에서 부하들과 같이 힘들게 목장건설과 더불어 무술을 수련하는 동안. 한양에서는 그의 행적 때문에 약간 소란이 일어났다.
한양의 왕십리에 용호영이 설치되어 2000명의 갑사들이 주둔했다. 그리고 용호영 대장군으로 병조판서가 겸임하다가 나중에 왕세자로 변경됐다.
이어서 용호영이 별로 할 일이 없다는 무용론이 나오자 수문장청을 용호영에서 지휘하도록 만들어 버렸다. 이렇게 되자 조정의 신료들은 그 때문에 다들 수군거리고 있었다. 도성을 출입하는 문을 모조리 윤임의 부하들이 장악하자 불만이 생겼다.
“수문장들도 모두 윤임의 수하들이 한다니 이게 무슨 경우야?”
“그야 병조판서인 윤임이 우리를 은근히 압박하기 위해서 저리 만든 거지. 우리가 도성 밖으로 움직임을 파악하려는 거지.”
“이제 완전히 윤임 대감의 세상이야.”
“그것을 자네는 이제야 알았나?”
조정의 중요한 자리는 어느새 윤임 일파가 장악한 상태다. 전에는 반정 공신들이 장악하던 조정이었으나 몇 차례 옥사가 벌어진 이후 조정은 큰 변화가 있었다.
조정의 대신들은 모이면 윤임 대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새로운 화폐제도의 도입에 대해서도 생각들이 너무 달랐다.
“전에는 현물로 받던 뇌물도 사용하기 편한 상평통보로 받고 있다니 사헌부의 관리들도 뇌물이 오간 증좌를 찾기도 어렵다고 하더군.”
“화폐제도는 결국 윤임의 뇌물을 챙기는 수법을 감추기 위해서 급하게 시행된 거야.”
“윤임의 집에서는 제기도 10냥(兩) 은화로 만들어 사용한다고 하더군.”
“그게 정말인가?”
조선의 오랜 전통놀이 중 하나인 제기 차기를 위해 상평통보의 동전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흔히 1푼(分) 짜리 동전을 사용했다. 물론 부유한 양민이나 양반들의 자손들이 그리 하고 있다. 하지만 세도가인 윤임의 집에 재물이 몰리자 이런 말들이 떠돌았다.
상평청에서는 관포 어음 발행을 중단했다. 큰 재물의 거래 편익을 위해 은화로 10냥(兩)짜리를 새롭게 주조해 유통시키고 있었다. 작은 은화에 불과한 10냥짜리 한 개면 면포가 100필이나 되니 사실 거액의 뇌물들이 쉽게 오갈 여지가 많아졌다.
전국의 큰 고을에는 상평청 창고장이 보내졌다. 그런 자리는 어김없이 윤임과 선이 대고 있는 관료들로 채워지고 있었다. 그러니 조정은 이제 윤임 대감 한 사람의 힘으로 움직인다고 볼 정도다.
건강이 나빠지자 주상은 윤임의 일당을 더욱 중하게 쓰고 있었다. 그래서 왕세자의 외숙인 윤임 일파가 조정의 요직을 모두 차지했다.
병조판서에 윤임이 있고 의금부 판사, 이조판서, 호조 판서, 도승지, 그리고 좌 우 포도대장이 모두 윤임과 아주 가까운 사람들이 차지했다.
더구나 새롭게 화폐제도를 실시하면서 상설기구로 만들어진 상평청의 우두머리인 청사(廳事)도 종2품의 직급으로 윤임의 친척으로 임명되었다.
이런 와중에 춘 3월인 봄이 되자 멀리 경상도 예천과 영천에서 많은 양반들이 수결한 연판장으로 만든 상소가 올라왔다.
상소 내용은 풍기에 사는 최인범 사정(司正)이 수시로 거액의 내기바둑을 두어 많은 재물을 부당하게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는 양반으로 지켜야할 도리를 못하고 있다며 명예직인 검교직에서 파직해야 옳다는 것이다.
조정에서는 이런 상소 때문에 최인범의 행적을 두고 심한 격론이 오갔다.
“선비들이 잠시 머리를 식히는 수담을 두면서 그런 큰 재물을 거는 내기를 하다니 그건 나라에서 금지하는 도박이 아니요?”
“한 판에 면포를 8000필이나 거는 실로 어마어마한 내기바둑을 두었다니 그건 조정에서 금지하는 도박이 확실하니 그를 의금부로 압송해 처벌해야 합니다.”
“옳소. 그는 미풍양속을 해치는 사람이니 처벌해야 합니다.”
“최인범 사정을 당장 한양으로 압송해야 한다고 주상전하께 주청 드려야 됩니다.”
“옳소! 우리 주상전하께 그리 주청을 드립시다.”
조정에서는 올해 봄인 3월부터 도박 금지령을 내렸다. 소소한 도박이야 완전히 근절시키기 힘들다고 판단했다. 결국 판돈이 면포 50필 이상이 되면 엄하게 처벌한다고 했다.
큰 도박을 한 사람이 벼슬아치의 경우 파직시키고 있다. 일반 백성의 경우는 거액의 벌금과 곤장 50대 이상의 태형을 가하겠다고 했다.
물론 소소한 내기인 도박의 경우 포도청에서 도박사범을 잡게 되면 벌금형과 병행해서 20대 정도의 태형에 처하고 있었다.
소소한 내기라는 기준이 애매모호해서 문제가 있었다. 어찌되었건 총 판돈이 면포 10필이면 도박으로 법을 적용했다. 그 때문에 한양의 포도청에는 수많은 도박 사범이 감옥으로 끌려와 판결에 의해 처벌을 받고 있었다.
문제는 예천의 선비들이 올린 상소 때문에 바둑을 두면서 거는 내기를 과연 도박으로 적용해 처벌해야 되는 것이냐의 해석의 문제가 생겼다.
일부에서 양반들 사이에 널리 보급된 바둑이다. 내기바둑을 둔다고 해서 도박으로 법을 적용하면 안 걸리는 양반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흔하게 노비를 걸고 두는 내기 바둑을 모두 도박으로 적용하면 당장 우리부터 의금부로 끌려가야 되는 것 아닙니까?”
“그러면 안 되는 것이죠.”
조정의 신료들 중에 바둑을 즐기는 사람은 최인범이 벌인 내기바둑은 도박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바둑을 두지 않는 신료들은 이번 기회에 누군가를 몰아내기 위해 큰 내기바둑도 도박이라고 해석했다.
공교롭게 윤임은 바둑을 즐기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서 윤임은 이번 기회에 반대파를 또다시 몰라내려고 내기바둑도 도박이라고 주장했다.
“전하, 내기바둑도 엄연히 도박이옵니다. 그러니 내기바둑을 두는 사람도 모두 도박금지령을 적용해 엄하게 처벌해야 되옵니다.”
“과인도 두는 내기바둑인데 그건 시행하기 어렵지 않겠소?”
“전하, 어찌 전하와 백성들을 같이 생각할 수 있사옵니까? 도박금지령을 어기고 내기바둑을 둔 관리들은 모두 파직해야 옳습니다.”
은근히 왕세자의 측근으로 발탁될 최인범은 포섭하려는 그로써는 의외의 행동이다. 윤임 대감 패거리는 한양의 모처에서 만나 이 문제를 놓고 의견을 나누고 있었다.
호조판서가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병판 대감, 어찌하려고 내기바둑을 도박으로 규정하려는 겁니까? 우리 편도 내기 바둑을 즐기는 사람이 많아 여러 사람이 다칠 수도 있어요. 대감께서 중하게 생각하신다는 최 사정도 다치는 것 아닙니까?”
“그런 염려는 안 해도 됩니다. 최 사정의 경우 도박금지령을 내리기 전인 정초에 그런 내기바둑을 두었으니 처벌하기는 곤란하니 문제가 없어요.”
윤임 대감의 이런 설명에 모임에 참석한 중신들은 다들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쌍방 간에 치열하게 격론이 오가는 중.
주상께서는 처음으로 윤임의 의견인 내기바둑도 도박이라는 법의 적용을 허락하지 않았다. 편전에서 대신들을 만나 주상이 하명했다.
“흔히 두는 수담에서의 내기라 그런 경우는 도박으로 보기 힘드니 그 문제는 일단 달리 적용하시오. 내기 금액이 면포 100필 이상이 되면 도박으로 적용한다고 명확하게 해서 널리 알리시오.”
“예이.”
“앞으로 도박 금지법을 더욱 보강하도록 하시오.”
“예이.”
이른 봄에 전라도의 중 2000명을 모두 군적으로 넣어 두었다. 전부터 전라도 남쪽에 왜구들이 자주 출몰해 그것을 대비하기 위한 방편이다. 군적을 피하려는 중들의 경우 체포해서 멀리 함경도의 개마고원 쪽으로 강제 이주시키는 법을 시행했다.
여름이 될 무렵에 이런 결정을 내리고 보다 강하게 새로운 정책들을 연달아 발표했다.
주상은 덕원부로 선전관을 보내 최 사정을 한양으로 오라고 어명을 내렸다. 그러나 선전관은 최 사정을 만나지 못하고 빈손으로 돌아왔다.
편전에서 주상은 윤임, 호조판서, 도승지가 있는 자리에서 선전관의 보고를 받고 있었다. 선전관은 어명을 전달하지 못해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전하, 소신이 덕원부로 갔지만 최인범 사정을 만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이미 호피를 5장 덕원부에 넘기고 보상금을 받고 안개처럼 사라져 소식이 완전히 두절 되었사옵니다.”
이런 보고를 받자 주상은 노한 목소리로 크게 물었다.
“뭐라? 덕원부사도 그가 어디로 갔는지 소식을 전혀 모른다는 건가?”
“예, 최 사정은 덕원부에서 여진족출신인 사노비만 10구를 사고 그 후로는 소식이 전혀 없다고 하옵니다.”
“주변 고을로 연락해 찾아는 보았나?”
“예이.”
벼르고 별러 드디어 최 사정을 한양으로 불렀지만 소식을 전하지 못했다니 주상을 은근히 열이 났다. 마음은 급하지 하는 일이 뜻대로 잘 안 되고 있었다.
대대적인 호랑이 잡이를 벌이자 조선에서는 호랑이가 자취를 감추었다.
상황이 이런데 남쪽의 왜에서는 ‘호피를 안 팔면 구리나 은의 거래를 중단하겠다.’고 주장하니 머리가 아팠다. 더구나 봄에 명나라에서 오게 된 사신까지 호피를 무려 20장이나 보내라고 요구하자 답답하기만 했다.
주상은 호조 판서에게 물었다.
“호판, 조정에 보관된 호피가 몇 장이나 되는 거요?”
“전하, 이번에 덕원부에서 보낸 호피를 포함해 20장을 채웠습니다. 우선 명나라로 호피를 보내는 것이 좋다고 판단되옵니다.”
“그렇게 하시오.”
전에 풍기로 내려 보낸 어명인 호피 조달 업무는 아주 성실하게 수행했다. 그러니 처음 계획대로 품계를 올릴 명분이 생겨서 좋기는 했지만 돌연 사라져 버렸으니 일이 어긋났다.
주상은 최인범 사정을 공주의 남편인 부마도위로 점찍고 있었다. 중전의 경우 학자를 사위로 보고 싶어 했다. 자신과 반대되는 의견을 가진 중전을 상대로 몇 차례 설득 작업을 벌였다.
결국 중전도 무인인 최인범 사정을 직접 만나 보는 것이 좋다고 응하게 되었다. 그래서 최인범 사정을 대궐로 불러서 은밀하게 보이려던 계획도 완전히 틀어져 버렸다.
선전관이 덕원부에서 있었던 사실을 모두 고하자 주상은 최인범 사정이 어명을 회피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분명히 한양으로 올라오라는 어명을 보낸 사실을 미리 알고 급하게 피해 버린 거야.’
겉으로 드러난 행적이야 분명 어명을 받을 수 없는 모양새를 갖추었다. 그러나 주상은 이미 통치 경험이 30년이 넘는 경력이 있기 때문에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최인범 사정은 어명을 받으면 한양으로 올라와야 하고 부마도위로 낙점하게 되면 그것을 피하기가 어렵다.
누구처럼 부모의 상중이라고 하거나 홀몸이라 부모님이 병환 중이라는 핑계도 댈 수가 없다. 그러니 사전에 그런 것을 피하기 위해 갑자기 말도 없이 사라진 것이 분명했다.
감히 자신의 말을 거역하자 주상은 화가 났다.
‘이런 괘씸한 놈이 있나? 감히 과인의 딸이 싫다고 거절하다니.’
선전관이 덕원부로 가면서 부마도위 후보로 지목된 사실을 여러 번 거론했다. 그러니 같이 덕원부까지 이동하던 백두상단 무리가 그런 내용을 모를 리 없다고 판단했다.
이런 사실이 외부로 그대로 노출할 경우 군왕으로 체면이 서지 않는다. 무인인 사위가 싫다는 중전을 설득해 놓고 이런 결과가 나오자 그 역시 체모가 서지 않게 됐다.
신료들과 일단 대화를 끝내고 그들이 모두 떠나자 주상은 한정문을 부르기로 했다. 그라면 혹시 최인범의 소식을 알까 싶어서다. 상선에게 급하게 하명했다.
“왕십리로 사람을 보내 한 장군으로 불러와!”
“예이.”
저녁 무렵이 되자 한정문이 급하게 편전으로 들어왔다. 주상은 다소 급한 목소리로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