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화
여전히 함경도 지역은 아직도 면포나 미곡이 화폐로 사용되고 있다. 각자 10필씩의 면포를 지니고 왔다. 면포를 팔고 말에게 먹일 콩이나 보리를 사고 떠날 생각이다.
최인범은 부하들과 같이 풍산을 거쳐 개마고원의 북부 지역으로 갈 계획이다. 이윽고 보급병과 같이 행정병과 의무병들이 풍산 시장으로 가서 풍산개 10마리와 필요한 생필품을 사가지고 돌아왔다.
“우리 행적을 잘 모르게 했지?”
“넷! 시장으로 나오는 사람들을 만나 바꾸고 시장으로 직접 가지는 않았습니다.”
“그럼 됐어. 관아에서 알지 못하는 것이 좋으니 잘 처리했군.”
풍산개를 많이 산 이유는 여러 가지로 복합된 목적 때문이다. 최소한의 인원을 데리고 북쪽으로 가기 때문에 숙영지 주변을 경계하는 병력이 부족하다고 판단해 풍산개를 경비견으로 적극적으로 활용할 생각이다.
이런 계획이야 최인범 혼자만 알고 있어 부하들은 많은 풍산개를 사자 다소 이상하게 생각했다. 곡물을 많이 구입한 상태라 풍산부터는 말을 타지 못하고 짐을 말 등에 올리고 걸어가고 있었다.
이윽고 점점 높은 산으로 오르자 마팔복이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
“소대장님, 어디로 가는 거죠?”
이런 물음에 최인범은 그제야 덕원부에서 구한 함경도 지도를 꺼내놓고 설명했다.
“우리는 개마고원의 북쪽으로 간다.”
“그렇다면 압록강과 가까운 곳으로 가겠군요.”
“그렇지. 앞으로는 정찰을 떠날 때 확대한 지도도 같이 가져 가도록해. 그리고 직접 살핀 지역은 항상 확대한 지도에 세밀하게 표시하고.”
“알겠습니다.”
최인범은 덕원부에서 구한 함경도 지도에서 서쪽 지역만 크게 확대해 여러 장을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이동하는 지역은 직접 기호나 선으로 계속해서 자세하게 지도를 그렸다.
남쪽과는 달리 이곳 함경도 지리에 대해 전혀 모르니 이번 기회에 세밀하게 지도를 만들어 보려는 것이다. 물론 그저 목측에 의한 지도라 정확성이야 떨어지지만 그런대로 나중에 군사적으로 이용이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지나가는 마을의 이름이나 골짜기 명을 기록했다. 추후에는 지도만 보면 쉽게 찾을 수 있도록 지도에는 많을 설명이 적히고 있었다. 나중에 시간이 나면 이것을 토대로 보다 정밀한 지도를 직접 그려볼 생각이다.
이윽고 풍산을 떠나 한반도의 지붕이라고 불리는 개마고원의 서남쪽에 도착했다. 다소 가파른 산을 오르자 갑자기 넓은 초원이 한없이 펼쳐지고 있었다.
산의 꼭대기라고 보는 높은 지역에 넓은 초지를 보게 되자 부하들은 모두 감탄했다. 마칠복이 넓은 초지를 보자 욕심이 생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와! 넓은 초지군요. 소대장님 여기에서 목장을 운영하면 좋겠네요.”
“그러냐? 그렇지 않아도 나도 그걸 생각해 온 거야.”
“예, 정말 여기에 목장을 만드실 생각입니까?”
“그래, 물론 너희보고 여기서 목장을 운영하라고는 안하니 걱정하지 마.”
이런 응수에 부하들은 매우 놀라면서 바라보았다. 개마고원은 초지야 아주 넓고 좋지만 이곳은 사람이 살기에는 너무 좋지 않은 곳이다.
흔히 이곳 개마고원 지역은 한번 오게 되면 다시는 살아서 돌아가지 못한다고 널리 알려진 조선왕조의 유배지로 유명하다.
그래서 이곳을 흔히 삼수갑산(三水甲山)이라고 하며 흔히 힘들 일을 결행할 때 쓰는 ‘삼수갑산을 가더라도.’하며 뭐를 하겠다고 단단히 각오하는 말이 생긴 곳이다.
개마고원에 왔다고 해서 목적지에 도착한 것은 아니다.
최인범 일행은 여전히 계속 이동해 개마고원 중에서 제일 북쪽의 초원 지대로 가게 되었다. 이곳은 압록강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이다.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하자 주변을 정찰하기로 했다.
여전히 정찰병 역할을 수행하는 칠복이 형제에게 지시했다.
“마 병장, 주변을 모두 정찰해. 혹시 이곳에도 사람들이 살지 모르니까.”
“알겠습니다.”
최인범 일행은 이제 병장이 2명, 상병이 5명, 일등병이 2명, 이등병이 10명으로 구성되어 총 20명으로 구성되었다. 모두 말을 가지고 있는 기마병이다.
칠복이 형제들이 주변을 정찰하는 동안 다른 부하들은 빠르게 소형 천막을 치고 있었다. 겨울이면 엄청 추은 곳이라 월동 준비를 단단히 해야 된다.
최인범은 그들에게 다가가 지시했다.
“이 상병, 앞으로 여기서 겨울을 보내게 되니 천막을 치고 나면 나무를 잘라서 통나무집을 세워.”
“넷!”
“목장으로 만들 것이니 울타리도 잘 구상해서 시작해.”
“알겠습니다.”
최인범은 이곳을 거점으로 삼고 자신은 압록강을 넘어 만주로 가볼 요량이다. 물론 허가도 없이 월경하게 되니 신분은 철저히 숨겨야 한다. 더구나 한양으로 오라는 어명 내용을 알고도 이곳으로 왔으니 관아에서 알면 절대로 안 된다.
칠복이 형제가 정찰을 하기 위해 떠나자 하후돈과 장익덕에게 지시했다.
“너희들은 혹시 근처에 석탄이 있나 확인해. 불을 땔 정도가 아니어도 되니 찾아 봐.”
“넷!”
조금 지나 근처에서 하후돈이 석탄의 부스러기 같은 검은 바위를 가져오자 최인범은 부하들에게 지시했다.
“이제 군복을 모두 검게 염색해. 먹도 있으니 그것도 이용하고.”
“넷!”
목적지에 도착했으니 다들 군복을 벗어서 새 것으로 갈아입고 개울에 빨래를 하면서 검게 물들였다. 무더운 여름이지만 고지대라 아주 서늘해 지내기가 좋았다.
아직은 여름이라 지금부터 겨울을 지낼 월동 준비를 시작하면 충분히 필요한 시설을 만들 것으로 판단했다.
최인범도 도끼를 들고 나무를 직접 자르고 있었다. 임시 거처인 천막을 치고 나자 이내 모든 대원들이 도끼를 들고 나무들을 잘랐다. 하나 같이 힘들이 좋기 때문에 큰 나무들은 빠르게 잘라져 옮겨졌다.
저녁이 되자 정찰을 나갔던 칠복이 형제가 돌아와 보고했다.
“소대장님, 근처에는 전혀 민가가 없습니다. 적어도 사방 20리 까지는 사람들이 전혀 없나 봅니다. 내일은 더 멀리 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알았어. 그렇다면 여기가 제일 적당하군.”
초원지대의 끝인 삼림지역에 터를 잡기로 했다. 굳이 이곳에 터를 잡는 이유는 연료나 건축에 필요한 나무를 쉽게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살아 있는 나무를 그대로 울타리의 지주로 써먹기 좋다고 판단했다.
“목장 울타리 지역은 나무를 자르지 말고 그대로 가로로 나무들 연결해.”
“넷!”
여기서 영원히 정착할 생각은 없으니 임시로 산 나무를 지주목으로 이용해 크게 울타리를 치고 말이나 양을 가둘 장소를 만들었다.
해발 고도가 1000미터 이상인 고지대인 이곳은 넓게 평야와 같이 보이는 초원지대가 펼쳐져 있었다. 몽골의 넓은 초원과 비슷한 곳이다. 고지대라 여름은 서늘하고 겨울은 매우 춥다.
20명의 청년이 달려들어 커다란 나무를 잘라 통나무집을 만들자 며칠이 지나자 우선 지낼 장소는 만들어졌다. 통나무로 엮은 방식이라 빈 공간으로 바람이 숭숭 들어왔다. 바람이 들어오는 공간은 모두 진흙으로 단단히 틀어막았다.
여전히 주변을 정밀하게 정찰하며 사냥감을 찾던 칠복이가 저녁에 돌아와 보고했다.
“소대장님, 겨울을 지내려면 온돌도 놔야죠. 저쪽 개울로 가니 온돌을 놓을 편편한 돌들이 보이네요.”
“알았어, 말을 모두 가지고 가서 편편한 돌을 많이 주어와 온돌도 놓고 지붕에도 올려 놔.”
“넷!”
20필이나 되는 말을 이용하니 큰 나무들을 나르거나 또는 무거운 돌을 운반하기는 수월했다.
여름에도 시원해 작업 속도는 매우 빨랐다. 한 달 만에 통나무집이 5동이 완공되고 목장으로 사용할 지역에 작은 목책도 설치가 끝났다.
5개 중에 하나는 최인범이 사용하고 하나는 행정병들이 사용하는 공간으로 정해졌다. 다른 하나는 12명의 부대원이 지내는 곳이다. 하나는 주방으로 식량창고로 사용하기로 정했다. 마지막으로 남은 집은 창고로 사용하게 된다.
이때부터 최인범은 주변 산을 돌아다니며 야생동물 사냥에 전념했다.
초원지대라 이곳에는 늑대도 많고 사슴도 많았다. 간혹 호랑이 울음소리도 들려 추적해 봤지만 너무 멀어서 아직 잡지는 못했다.
“소대장님, 여기서 20리를 가면 화전민들도 있고 혜산진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필요한 생필품은 그곳에서 조달하면 되겠어. 너희들이 사냥해서 가죽을 가져가서 물물 교환으로 최대한 조달해봐.”
“넷!”
주변에서 사냥물이 사라져 버리자 이제 사냥은 칠복이 형제만 전담하기로 결정했다. 다른 사람은 무술 수련을 하고 5명의 행정병과 의무병은 집의 건축에 매달렸다. 겉모양만 집처럼 만들어 졌다고 해서 겨울을 보낼 정도로 완공된 것은 아니었다.
쉬는 시간에 이인범이 조심스럽게 다른 병사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소대장님은 무슨 생각으로 유배지인 이곳에서 자청해 유배 생활을 하려나 모르겠어.”
이곳이 아주 유명한 유배지라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이인범의 말에 장주환은 가볍게 응수했다.
“소대장님은 어떤 복안이 별도로 있으니 이런 시설을 여기에 하는 거겠지.”
그러나 초지만 있고 말은 20필에 불과하니 그에 대해 말했다.
“말도 우리가 타는 말 이외에는 한 필도 없고 양들도 전혀 없는 이곳에 무슨 목장을 한다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어.”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라 모든 병사들은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어떤 이의를 달거나 불평하지는 않았다. 다들 소대장을 신뢰하는 마음이 강했다.
“겨울을 보내기는 어렵지 않겠어.”
“그렇지만 겨울에 그냥 여기서 지낼까? 내가 보기에는 겨울이 되면 북쪽으로 갈 것 같은데.”
이들이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정찰병인 칠복이 형제는 언제부터 며칠씩 정찰을 나갔다가 돌아오기 때문이다. 아주 멀리 북쪽까지 다녀오는 것이 분명했다.
이곳에서 제일 가까운 혜산진으로 가서 일부 생필품은 조달할 수 있다. 그 때문에 사냥해서 좋은 가죽만 생긴다면 겨울을 보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생필품의 조달은 사냥을 전담하는 칠복이 형제의 몫이다. 그들은 정찰을 겸해 사냥해서 생기는 가죽을 혜산진으로 가져다주고 필요한 물품을 계속 구해오고 있었다.
높은 지대인 개마고원은 강수량도 매우 적다. 이곳은 감자를 심으면 적당한 곳이지만 아직은 조선에 감자가 없으니 그저 일부 토지에 가을 콩을 심었다.
“소대장님, 벌써 늦은 여름이라 잘 여물지 모르겠네요.”
“그러면 대충 콩대를 쌓아 놓고 겨울에 말의 먹이로 주면 되지.”
“아하, 그렇군요. 사료 작물로 쓰시려는 군요.”
이 지역은 원래 고구려의 옛 땅이었으나 고려 시대에는 여진족들이 오랜 기간 점유해서 살았다.
개마고원은 그 후에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세종의 사군육진 개척으로 여진족을 몰아내고 남부 지방의 주민들을 집단으로 이주시켰다. 남부 지방으로부터의 이주한 백성들은 화전민들이 대부분이다.
최인범은 거처할 곳이 어느 정도 만들어지자 본격적으로 궁술과 기마술을 부하들에게 수련시켰다.
무술도 중요하지만 적진에 침투해 살아남을 수 있는 생존술도 배워야 한다. 더구나 겨울에 말에게 먹일 건초도 많이 필요해 아침이면 어김없이 목초를 베어서 말리고 있었다.
자신이 시도하려는 목적을 달성하려면 병사들은 궁술도 뛰어나야 하고 기마술은 더욱 뛰어나야 된다.
처음보다 실력이 늘기는 했지만 아직도 부족한 점들이 너무 많았다. 모든 병사는 잠자는 시간 이외에는 계속해서 무술 수련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