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화
“장 상병, 덕원부에 백두 상단은 와 있더냐?”
“넷! 지금 기다리고 있사옵니다.”
“뭐야? 여기까지 와서 건방지게 내가 오길 기다려?”
기분이 별로다 보니 정상적으로 행동하는 백삼수도 건방지다는 느낌이 들었다. 최인범이 이렇게 조금 전과 달리 변한 이유는 산속에서 계속해서 무술만 수련했기 때문이다.
본시 다소 자유분방하고 또한 거칠어진 성격이다. 그런데 2달이나 사회와 접속을 완전히 끓고 숲속에서 야생 상태로 지내다 보니 호랑이 기질이 더욱 강해진 것이다.
어명이라니 무조건 거역하면 자신이 지금까지 이룬 모든 것이 사라질 수 있다. 그래서 잠시 생각하다가 장주환에게 지시했다.
“덕원부로 가서 백삼수 행수를 이곳으로 불러. 다른 사람은 절대 모르게. 혼자만 데리고 와. 그리고 나를 만났다는 소리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고.”
“넷!”
“상단의 호위무사들이 지니고 있는 개인 장비를 12벌과 말 10필을 달라고 해서 가지고 오고. 또 어명의 내용이 뭔지 비밀리에 알아 와.”
“알겠습니다.”
명령을 받은 장주환은 말에 올라 빠르게 덕원부로 다시 돌아갔다.
의무병들이 덕원부로 호피 5장을 넘기고 사노비 구입대금을 정산하고 남은 재물로는 반월도와 각궁 그리고 생필품을 가득 사왔다.
이제 야인들도 무장시켜야 되니 최인범은 즉시 명령했다.
“일등병들은 이등병들에게 무기를 나눠줘서 모두 무장시켜!”
일등병들은 장익덕과 하후돈이다. 두 사람은 야인들을 부하로 받아들이게 되자 이제 한 계급이 올라 일등병으로 변했다. 기존에 행정병과 의무병들은 모두 상병으로 올렸다. 그리고 칠복이 형제는 병장으로 변했다.
야인들이 합류하자 사노비인 행정병이나 의무병은 자연히 숙영지에서 지내는 행정병이나 보급병으로 변했다. 마칠복이나 마팔복이는 여전히 척후병으로 활동하고 이제 최인범의 호위병 역할은 하지 않는다.
그런 임무는 새로 들어온 10명의 야인들과 하후돈과 장익덕이 담당하게 되었다. 몽둥이를 들고 무술을 연마하던 이등병들은 무기가 지급되자 신이 났다.
“야효!”
“키야아!”
갑자기 괴성을 지르며 신나서 소란스럽게 떠드는 야인들을 바라보며 최인범은 다부지게 명령했다.
“모두 나에게 덤벼!”
“예? 진짜로요?”
“그래.”
10명의 이등병들은 다소 주저하면서 무기가 손에 들렸다는 자신감으로 최인범을 둘러싸고 반월도를 크게 휘둘렀다.
“이얏!”
획! 쨍!
“퍽!”
최인범은 같은 모양이지만 조금 더 큰 반월도를 들고 가볍게 이등병들이 휘두르는 반월도를 막고 발차기로 복부를 걷어찼다. 이어서 다른 놈은 주먹으로 얼굴을 얻어맞고 나가 떨어졌다.
“아고고. 내 코!”
코피를 질질 흘리며 눈에서 별똥별이 보이자 고개를 흔들었다. 10명이 포위한 상태로 공격해 보지만 하나 둘 얻어맞아 쓰러지고 있었다. 10명이 모두 땅에 뒹굴게 되자 야인들은 넋을 잃었다.
‘와! 진짜 강해.’
무기를 들었으니 조금은 상대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 모두 허망했다. 맨손으로 상대하나 무기를 드나 자신들 10명이 덤벼도 털끝하나 건드리지 못하고 전혀 상대가 되지 않았다.
어려서 포로로 잡혀와 산지 10년이 지나 온전한 여진족은 아니다. 하지만 강하고 자신들을 배불리 먹이는 자에게 맹종하는 유목민의 기질이야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강한 사람의 부하로 살면 평생 배불리 먹고 호이 호식하는 것이 야인들에게는 인생에서 최고의 목표다. 그러니 굳이 충성을 강요하지 않아도 그들은 마음 깊이 충성심은 높아지고 있었다.
‘무기도 주신 분이야.’
야인들에게 꼭 필요한 무기를 직접 구해 준다는 것은 그가 바로 자신들의 진짜 주인인 부족장이라는 큰 의미가 있었다.
일단 야인 출신인 부하들을 철저하게 굴복시킨 최인범은 큰 목소리로 명령했다.
“앞으로는 마상에서 반월도를 사용하고 각궁을 사용할 수 있도록 훈련해. 지금 즉시!”
“넷!”
편하게 쉴 틈 없이 부하들은 무기를 들고 수련에 들어갔다.
이틀이 지나 백두상단의 행수인 백삼수가 훈련장으로 찾아왔다. 의무병이 귀띔을 한 것인지 약간 겁을 집어먹고 조심스럽게 인사를 했다.
“접장님, 제가 덕원부에서 장사하느라. 미쳐 여기로 와서 인사를 못했습니다.”
“그건 이따 따지기로 하고 한양에서 왔다는 어명의 내용이 뭐냐?”
우선은 얻어맞지 않게 생기자 안도의 숨을 토한 백삼수는 급하게 보고했다.
“내용은 복잡하지 않사옵니다. 접장님께서 빨리 호랑이를 잡아 덕원부로 넘기고 함경도에서 철수해 한양으로 오라는 전갈입니다.”
“다른 내용은 없고?”
“접장님, 있사옵니다. 제가 어명을 전달하는 선전관과 같이 오면서 알아보니 한양으로 올라오시면 아마 주상전하를 만나게 되고 공주님과 혼사가 거론될 것 같다고 하더군요.”
“뭐야? 공주와 나를 결혼시킨다고?”
“그렇습니다. 물론 그저 소문에 불과하지만 중전마마도 이미 마음을 그렇게 먹고 있다고 하더군요.”
이런 보고에 최인범은 별로 느낌이 좋지 않던 것이 사실로 나타났다고 판단했다.
공주의 남편인 부마도위란 계급이 정1품으로 상당히 높지만 정사에 개입할 수도 없고 실직을 주지 않는 위치다. 그러니 그저 명예직인 검교나 똑 같았다.
‘이것들이 지랄들을 하네. 하필이면 공주와 혼인시켜서 내 발목을 완전히 잡으려고 하네.’
이미 자신은 많은 재력을 지녀 먹고사는 것에는 급급할 위치가 아니다. 또한 주변에 심복부하도 많아 외로운 처지도 아니다. 그러니 꼭 벼슬을 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다만 양반들이 큰소리치는 조선에서 그래도 주변의 양반들에게 무시는 안 당할 정도의 벼슬은 해야 된다고 판단해 무과를 보려고 했다.
지방 수령인 현령이나 현감 정도에게 굽실거리고 싶지 않도록 그저 비슷한 위치면 족하가고 판단했다. 그런 정도면 아주 적당하고 자유롭게 살기에 제일 편하다고 판단했다.
사실 그런 정도의 직위에는 이미 도달한 상태다. 그래서 보다 자유롭게 하고자 하는 일을 하려는데 어명으로 간섭을 하는 것이다.
‘졸지에 그게 다 틀어지면 앞으로 뭐하며 무슨 재미로 살아?’
공주의 남편이 되면 마음에 드는 여자를 첩으로 받아들이기도 힘들다. 재수가 없어 투기가 심한 공주를 만나면 다른 여자와 접하는 것도 일일이 간섭을 당하니 별로 좋지 않았다. 왜 이런 걱정을 하느냐는 이 시절은 맛선도 보지 않고 그냥 첫날밤을 맞이하는 혼인이라 그렇다.
진짜 재수 없으면 못생기고 성질만 더러운 꼴 보기 싫은 공주를 아내로 맞이할 수 있다. 주상이 주선하는 혼인이 공주라니 한양으로 올라가면 거절하기는 진짜 어렵다.
‘부마도위야 말로 그저 빛 좋은 개살구야.’
이미 전에 자신에게 부여된 임무인 호피는 5장을 획득해 덕원부로 보상금을 받고 넘겼다. 그러니 어명이야 아주 성실하게 수행한 것이다.
최종적으로 결론을 내린 것은 어명을 받지 못했다는 식으로 멀리 떠나기로 했다. 어명을 받고도 거역하면 불경죄에 해당되어 약간 문제가 된다. 그러나 모른 척 오지로 가서 사냥을 하느라 소식을 전혀 듣지 못했다고 변명하면 심한 비난은 듣지 않고 불경죄에 해당은 안 된다.
최인범은 이렇게 판단하고 백삼수에게 단호한 목소리로 명령했다.
“백 행수, 너는 여기로 와서 나를 만난 사실도 없고 그 누구도 나와 연락한 사실이 없는 거다.”
“넷!”
이런 대화를 끝내고 나서 백삼수는 백두상단의 업무를 보고했다.
동래로 가서 호피 15장을 거래한 내역이나 풍기에서 배도치와 분대장들 명의로 토지를 매입한 사실을 보고했다. 그런 보고를 듣자 이내 간단하게 정리했다.
“앞으로 백두 상단은 화폐로 회계처리를 하고 자본금은 면포 1만필로 정해. 상평통보로 1000냥이라 10만푼(分)으로 계산되니 회계는 푼(分)단위까지 기록하고.”
“알겠습니다. 월녀나 사원들에게 그렇게 주지시키겠습니다.”
“나는 멀리 떠나서 돌아다닐 것이니 네가 백두상단의 사업은 잘 이끌어. 나중에 돌아와서 거래 내역을 확인해 보고 문제가 있으면 목을 잘라 버릴 거야.”
“잘 알겠습니다.”
많은 면포를 한양에서 가져왔다는 것을 알고 그에 대한 조치도 명령했다.
“면포를 가지고 왔으면 그것을 모두 덕원부에서 넘기거나 함경도를 돌아다니며 팔고 풍기로 돌아가서 월녀를 면천이나 시켜줘. 혹시 북쪽 끝에서 여진과 거래가 가능하면 그들에게 말을 사도록 하고.”
“넷! 잘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남은 자금으로는 모두 소금을 사서 거래해야 되겠네요.”
“그것도 좋은 방법이지. 여진족은 소금을 아주 귀하게 여기니까. 그들에게서 말을 최대한 많이 사오면 큰돈을 벌거니 그렇게 알아.”
“넷! 명을 따르겠습니다.”
조선과 여진족과 거래는 관무역과 사무역으로 하게 된다. 조선에서 소금, 소, 도자기, 농기구 등을 판매하고 대신 말이나 모피를 들여오고 있었다.
일단 이런 지시를 내리고 나자 최인범은 훈련장에서 벗어나며 명령했다.
“삼수, 따라와.”
“예.”
조곤조곤 잘 대화를 나누어 그냥 넘어가나 했다. 그러나 기어이 숲으로 끌고 들어가니 백삼수는 뒤따라가며 겁에 질려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이제 와서 생각하니 자신이 전에 비해 건방져진 것은 사실이었다. 상단 일을 잘 간섭하지 않았는데 아마도 월녀가 수시로 보고하는 것 같았다.
어두운 숲에서 큰 목소리가 들렸다.
“엎어지고 빨리 까!”
“여기 서요?”
“너 죽을 래? 나 지금 바쁘다 그러니 빨리 안 까!”
그와 동시에 검고 어두운 숲속에서는 괴이하게 철떡 거리는 요상한 소리가 연달아 들렸다.
철떡!
“아고고! 나 죽네.”
철떡!
“으아아악!”
백삼수가 크게 토해내는 괴이한 소리가 들리자 숙영지에 있는 부하들은 여자 같이 얼룩이 곱상하게 생긴 백삼수를 떠올리며 다들 묘한 미소를 지었다. 웃는 이유는 크게 들리는 묘한 신음소리가 뭐를 하는 것과 거의 같았기 때문이다.
‘아하! 저 여자처럼 생긴 남자와 소대장님은 그렇고 그런 사이군.’
깊은 숲속의 커다란 나무를 부여잡고 백삼수는 비명을 토했다.
“아고고. 접장님 제발 살살!”
“지랄하네. 너 왜 산삼은 사서 거래한 내역은 회계처리를 안했어? 더구나 전에 한정문에게 판 인삼 거래도 빼먹고. 목을 당장에 잘리고 싶어?”
“살려주세요.”
백삼수는 엉덩이를 까고 소나무를 부여잡으며 엎어졌다. 그러자 최인범은 투박하고 큰 반월도로 홀라당 까진 엉덩이를 마구 후려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