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타임트레인-124화 (124/519)

124화

최인범은 일단 관아에 왔으니 구경이나 해볼 심산으로 관아 시설을 슬쩍 둘러보았다.

덕원부는 다른 고을보다 다소 크고 웅장하게 건물들을 지어 놓았다. 이곳은 강수량이 많은 지역이라 북부지역이지만 벼농사를 짓기에 아주 좋은 곳이다.

덕원부는 한양에서 함경도로 가는 길목이라 여기에 거점이 있으면 좋다고 판단되었다. 그래서 미래를 생각해 덕원 부사에게 슬며시 물었다.

“부사님, 혹시 해결하기 곤란한 점이 있나요? 제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돕고 싶군요.”

일단 부사에게 호감을 보일 생각으로 이렇게 말했다. 그런 소리를 듣게 되자 부사는 눈빛을 빛내며 매우 곤란한 일이라도 있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자네, 혹시 면포 어음을 가지고 있나?”

“갑자기 그것은 왜?”

“사실 관아에 매우 곤란한 일이 생겨서 그러네. 혹시 자네라면 해결할지 몰라서 그러네.”

부사의 이런 말에 최인범은 귀가 쫑긋해서 물었다.

“무슨 일인데요?”

부사는 천천히 자기가 처한 곤란한 점을 설명했다.

“사실은······.”

덕원부사의 설명에 의하면 덕원부에는 관노비가 아닌 사노비로 야인(여진족) 출신이 많다는 것이다. 전에 야인들과 전쟁해서 포로로 잡아와 노비로 쓰는 놈들이라고 했다.

야인들은 본시 유목민으로 거칠게 살던 습성을 버리지 못해 성격들이 매우 거칠어 부리기 힘든 노비에 속한다고 했다. 특히 포악한 성품으로 때로는 주인 여자를 강간하는 사태까지 벌이고 있다고 했다.

물론 그런 놈들은 효수해서 죽였지만 그런 사건들 때문에 야인출신인 노비를 가진 백성들이 관아에 해결해 달라고 하소연을 했다.

그런 여진족인 노비들을 민간인에게서 덕원부사는 모두 인수해 따로 관리하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조정에서 화폐제도를 시행하며 관아의 재물의 재고를 파악한다고 했다. 관아의 재물을 임시로 변통해 구입해 두고 있던 노비를 빨리 팔아야 될 상황이라고 했다.

“최 사정, 자네는 무력이 뛰어나니 거친 그들을 사서 다룰 수 있지 않나 해서 물어보는 것일세. 노비들은 이제 막 20살이 되어 젊고 힘들이 좋다네.”

“알겠습니다.”

“말도 잘 타고 사냥은 잘할 걸세 모두 끌려온 지 10년이지나 조선말도 아주 잘하네. 면포 200필 씩만 주면 자네에게 팔겠네.”

“그래요? 그런 놈들이 몇 명이나 되나요?”

“모두 20명이지만 거친 놈으로 10명만 골라서 사시게.”

최인범은 이미 5장의 호피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쉽게 답해 주었다.

“좋습니다. 제가 모두 사도록 하죠. 하지만 당장에 면포를 드리기는 곤란합니다. 백두상단이 덕원부로 오고 있으니 그들이 도착하면 정산하고 그게 아니면 호랑이를 잡아 호피가 생기면 계산하죠.”

“알았네. 일단 그렇게 정리하도록 하지.”

가지고 있는 호피를 지금 넘겨줘도 되지만 아직은 사냥한 모양새를 갖추기 전이라 이렇게 구두로만 흥정을 끝냈다.

조정에서는 화폐제도를 시행하며 지방의 큰 도시인 도호부까지는 모두 관아의 재물을 파악하기로 했다. 그래서 현물은 앞으로 모두 상평창에 속하도록 하고 그 대신 상평통보를 내려 보내기로 했다.

지방의 창고에 보관되는 현물을 관리하는 상평창 소속으로 창고장을 보낸다고 한다.

“그럼, 이제는 호방이 하던 업무가 약간 달라지겠군요.”

“그렇지. 호방은 이제 상평통보만 만지게 되지.”

전에는 지방관아의 아전인 호방(戶房)이 관리하던 재물을 중앙정부기관인 상평창에서 일괄해 관리하겠다는 뜻이다. 그리고 상평통보를 상평창 창고장에게 제출해 현물과 바꿀 경우는 화폐의 1푼을 수수료로 받기로 결정했다.

화폐제도를 정착시키기 위해 앞으로는 관포어음 사용은 완전히 폐지한다. 관아에서 발행된 어음은 일정기간 내에 해당 관아에서만 현물로 바꿀 수 있다. 발행처가 아닌 관아에서는 현물을 인수할 수 없게 된다.

“부사님, 어음은 이제 사용을 전혀 못하겠군요.”

“그렇다고 봐야지. 하지만 현금보관증은 관아와 상평창이 공동으로 발행하게 될 거네.”

전에는 관포어음을 이런 식으로 발행했지만 화폐가 관포 어음 대신으로 사용되도록 한 것이다. 관아의 재물은 1차적으로 미곡, 면포, 보리 등 식량과 면포만 화폐로 계산하기로 했다.

이런 내용을 듣자 최인범은 궁금해서 물었다.

“그럼 지금 사용하는 관포 어음은 앞으로 어떻게 되죠?”

“일정한 기간이 되어도 발행한 관아로 들어오지 않는 어음은 모두 무용지물이 되네.”

“그럼 그것을 모르고 관포 어음을 소유하고 있다가 기간 내에 현물로 바꾸지 않으면 많은 재산을 잃게 되겠군요.”

“그렇다고 봐야지.”

결국 수표에 해당되는 관포어음은 완전히 사라지니 여러 가지 불편한 점이 많게 생겼다. 관찰사가 있는 관아에서 발행하는 현금보관증은 수표로 활용이 가능하다는 것도 알았다.

‘다행이군. 앞으로 큰 자금을 거래하며 현금보관증을 활용하면 기록으로 남게 되겠어.’

최인범은 부사와 잠시 새롭게 시행하는 화폐제도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다. 두 사람은 여진출신인 노비들이 있다는 감옥으로 가게 되었다. 대부분 폭행죄로 잡혀서 감옥에 있거나 탈출 등 문제점이 많아 가두었다.

최인범은 서류를 보며 물었다.

“10년이 넘어도 포악한 습성은 완전히 버리지 못했군요.”

“그렇지. 하지만 잘만 다루면 매우 유용하게 쓸 수 있을 거네.”

감옥을 천천히 돌아보다가 적당한 놈을 보면 지목해 10명을 고르게 되었다. 다른 것은 보지 않고 덩치나 또는 건강상태와 나이가 어린 것만 확인했다.

모두 고르고 나자 녀석들에게 새로운 이름을 지었다. 여진족이라 그들 식으로 이름을 부르기가 난해해 조선식으로 새로운 이름과 성을 준 것이다.

“앞으로 너는 금일려라고 해. 너는 금이려라고 하고.”

“넷!”

10명에게 일부터 십까지 가운데 자만 다른 이름을 지어 주었다. 금(金)이라고 성을 지은 것은 여진족들이 새운 금나라를 떠올렸기 때문이다.

야인들도 무기는 휴대해야 하기 때문에 관아에서 나와 대장간을 찾았다.

“반월도를 만들어 주시오.”

“저는 잘 만들지 못하는데요.”

“부엌칼 만드는 솜씨면 되니. 투박하고 날이 거칠더라도 만들어 주시오. 우선 계약금으로 면포 20필을 드리고 나중에 잔금을 주며 찾죠.”

“알겠습니다.”

최인범은 새로 산 노비들과 같이 북쪽으로 이동했다. 백두산으로 간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덕원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나 백성들이 출입하지 않는 산속으로 들어갔다.

사방에는 아주 높은 산이 이어지고 계곡은 아주 깊은 곳에 도착하자 부하들에게 지시했다.

“여기서 백두상단이 덕원부로 올 때까지 숙영한다.”

“넷!”

“야인들은 천막이 없으니 거적을 구해 와 움집을 지어서 숙영 준비를 끝내면 주변을 정찰하고 여기서 무술을 수련하거나 사냥하며 보내자.”

“알겠습니다.”

인적이 전혀 없는 산골짜기에 천막을 치고 움집도 지었다. 오래 숙영할 생각으로 터를 잡고 나자 하후돈과 장익덕에게 지시했다.

“야인들을 5명씩 부하로 삼아서 관리해.”

“넷!”

“그놈들이 잘못하면 너희들이 혼나니 그렇게 알고.”

사냥한다고 했지만 그 업무는 칠복이 형제가 담당하고 하루 종일 12명의 부하들과 같이 무술 수련만 하고 있었다. 간단한 제식훈련이나 개인 장비를 꾸리는 방법만 알려주고 거칠게 격투기만 수련시켰다.

내년에는 무과를 봐야하기 때문에 최인범은 가끔 무술을 지도해 주며 대부분의 시간은 궁술이나 검술 수련에 집중하고 있었다. 가끔 무술을 지도한다며 하후돈과 장익덕과 2대1의 격투기를 벌였다.

“타!”

퍽!

“아이쿠!”

무술을 지도하는 것이 아니라 두 녀석을 일방적으로 마구 패고 있었다. 발로 차고 주먹으로 치면서 거칠게 다뤘다. 그런 일이 있으면 그날 밤에는 어김없이 10명의 야인들은 두 녀석에게 기합을 받았다.

투박한 언월도를 들고 두 녀석은 야인들의 목을 당장이라도 자를 기색으로 호통 쳤다.

“빨리 배낭을 꾸려!”

“예예!”

야인들이 배낭을 꾸리면 바로 짊어지고 산속을 달리는 산악구보를 하게 된다.

포악한 성품이라지만 깊은 산속으로 들어와 거칠게 군사 훈련을 시키자 야인들은 눈치를 슬슬 보았다. 직접 어떤 협박을 말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만약 탈출하려고 시도하거나 또는 반항하는 기색을 보이면 무섭게 생긴 장검이나 언월도로 목을 댕강 자르게 생겼다.

“새로운 주인들은 전혀 달라 보이네. 덩치도 크고.”

“충성해야 살아남게 생겼어.”

이런 소리를 나누던 야인들은 덕원부사의 말과는 달리 아주 고분고분했다. 야인들은 본능적으로 무술이 뛰어난 최인범에게 정신적으로 굴복한 것이다.

하늘은 점점 검은 구름이 끼고 드디어 소나기가 내렸다.

쏴아! 쏴아!

천막 안에서 행정병들에게 산수를 알려주며 내리는 빗줄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곳으로 들어와 무술을 수련한지 벌써 두 달이 지났다.

지금쯤 덕원부로 백두상단이 도착할 시간이다. 빨리 호피를 덕원부로 넘기고 북쪽의 백두산 지역으로 이동할 생각이다.

최인범은 의무병인 장주환에게 물었다.

“내일은 마을로 가서 생필품을 가져 온다고?”

“넷! 사가지고 왔던 식량이 모두 떨어졌어요.”

“그럼, 이번에는 멀더라도 덕원부까지 가서 백두산 근처에서 잡았다고 하며 호피를 덕원부로 넘겨줘. 대장간으로 가서 반월도를 인수해서 오고. 백두상단이 언제 도착하는지도 알아 봐.”

무려 두 달간을 산속에 처박혀 다른 일은 하지 않고 무술 수련만 했다. 그러다 보니 최인범 본인의 무력은 물론 부하들의 무술도 많이 향상되었다. 특히 야인들은 산악 구보로 단련해 이제 전보다 빠른 속도로 산속을 다닐 수 있게 되었다.

덕원부로 같던 의무병들이 돌아와 급하게 소리쳤다.

“소대장님, 빨리 덕원부로 가셔야 되겠습니다. 한양에서 어명이 내려왔습니다.”

어명이 덕원부로 내려왔다는 말에 순간 느낌이 별로 좋지 않았다.

그동안 조선시대로 와서 나름 적응하면서 조용히 살려고 했다. 물론 자신의 생각처럼 그저 조용하게 지내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제도나 또는 왕명을 거역해 보지는 않았다.

그러나 본시 타고나길 조금 거칠고 왕조국가 체제를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 기질이 있다. 어명이 내려 왔다고 하자 그저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이번에는 또 뭐를 하라고 어명을 내려 보낸 거야.’

자신이 하고자 하는 목적이 있기 때문에 어명을 빙자해 여기로 왔다. 그런데 어명을 내려 보내 뭔가 간섭하려고 한다는 느낌이 들자 반항아 기질이 드러났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