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화
용호영의 별기군인 부대원들은 모두 집에서 숙박하는 출퇴근 방식이다. 400명이 5개 조로 나누어 5일에 한 번씩 부대에서 야간에도 지내게 된다.
별기군들이 훈련하는 커다란 연병장에 풍기군에서 보낸 개인장비와 무기들이 도착했다. 용호영의 별기군을 지휘하는 한정문 장군은 부하들에게 지시했다.
“이번에 도착한 장비는 새로 오게 된 갑사들에게 나누어 줘.”
“넷!”
당초 용호영을 500명으로 정한다고 하다가 그 수가 대폭 늘어 400명 단위의 5개 부대인 총 2000명으로 변했다.
용호영의 5개 부대는 청룡군, 백호군, 주작군, 현무군, 별기군으로 나뉜다. 용호영의 규모가 커지자 착호갑사 출신들로 구성된 별기군도 500명으로 늘어나게 되었다.
5개 부대들의 지휘관은 모두 정4품인 호군이 지휘하나 별기군은 정3품 당상관인 대호군이 지휘하는 부대다. 그래서 용호영의 실질적인 지휘관은 부사령관 격인 한정문 장군이 담당하는 셈이다.
청룡군과 백호군 전통적인 보병으로 창, 검으로 무장했다. 주작군은 기마갑사들로 구성되고 현무군은 화포로 무장한 포병들이다. 별기군은 전혀 새로운 무기인 단창으로 무장했다.
새로운 방식의 제식훈련과 다소 이질적인 무기나 장비로 무장한 별기군은 총 부대원인 400명을 아직 채우지 못했다. 그 이유는 모두 양반출신으로 구성하기로 정해 지원자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양민 출신들도 갑사를 선발해서 채웠다.
조정에서는 실제로 병력을 지휘하는 위치인 대장군이자 병조판서로 윤임이 임명되자 반대들이 심했다. 그러자 주상께서는 겸직하던 용호영 대장군의 직책은 슬며시 왕세자에게 넘겼다.
왕세자가 실제로 병력을 지닐 수 있게 해서 힘을 실어줘 버린 것이다.
이 역시 조정에서는 대신들이 반대하는 의견들이 무수히 많았다. 성균관의 유생들도 술렁이기도 했다. 그러나 주상을 기어이 왕세자를 용호영을 지휘하는 대장군으로 임명했다.
20대 중반으로 한창 혈기가 왕성할 나이지만 왕세자는 다소 병약했다. 하지만 틈틈이 용호영의 주둔지로 와서 군사들이 조련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왕세자는 특히 별기군이 훈련하는 모습을 자주 보았다. 오늘도 찾아와 한정문과 같이 제식 훈련하는 모습을 보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장군, 이런 군복을 처음 만들어 보급한 최 사정은 함경도로 갔다고요?”
“저하, 그렇사옵니다. 전하의 명을 받아 함경도로 가서 호랑이를 잡고 있사옵니다. 이미 백두산 쪽으로 이동하고 있답니다.”
이런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던 왕세자가 다시 물었다.
“최 사정은 언제나 만날 수 있나요? 기골이 장대하고 무술이나 능력이 뛰어나 당장 장군으로 임명해도 될 정도라니 빨리 만나고 싶군요.”
“저하, 늦어도 내년이면 무과를 보기 위해 반드시 한양으로 올라 올 겁니다. 아직은 때가 아니옵고 그때 만나시면 되옵니다.”
왕세자는 부왕이 자신이 왕위를 물려받으면 옆에서 보좌해줄 인물이라고 점지한 최인범에 대해 무척 궁금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그의 소식을 한정문에게나 다른 사람을 통해 수시로 듣고 있었다.
왕세자는 호기심어린 얼굴로 물었다.
“장군, 최 사정이 이번에는 경상도에서 바둑대회를 열어 경북 최고수라는 칭호를 받았다고요? 더구나 그 와중에 면포도 많이 땄고요. 그렇게 많은 면포를 주고받는 바둑이라면 도박이 아닌가요?”
“저하, 그러하옵니다. 너무 큰 내기라 도박에 해당됩니다. 하지만 최 사정이 그들에게 그런 내기를 두자고 해보지는 않고 그들이 최 사정을 허수로 보고 그의 재산을 노리고 덤비다가 당한 일이옵니다.”
“그렇군요. 그래도 그런 큰 내기는 조정에서 금지하는 도박과 같으니 삼가야 되죠.”
“저하, 아마 이런 저하의 뜻을 알면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최 사정은 바둑이나 장기도 무척 잘 둡니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로 신묘한 재주들이 많사옵니다.”
왕세자는 자신과 달리 무용이 뛰어난 최 사정이 부러웠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그를 만나서 그가 살아왔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재주가 많고 건강한 그가 무척 부럽군요. 백두산에서 무예를 익혔다니 몸이 허약한 나와는 전혀 다른 세상에서 사는 별나라 사람 같군요.”
“저하, 어이 그런 말씀을?”
최인범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권력의 핵심부에서 자주 거론되는 인물로 변해있었다. 그와 동시에 훈구파나 사림파도 그에 대해 주시하고 있었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전혀 새로운 인물이 자꾸 거론되자 긴장하고 있었다.
잠시 이런 대화를 나누던 왕세자가 슬며시 입을 열었다.
“장군, 전하께서는 최 사정을 부마도위로 점찍고 있다고요?”
“저하, 그렇사옵니다. 하지만 소신의 생각으로는 조정으로 출사하기 어려운 부마도위를 만들어 최 사정을 붙잡아 두는 것은 반대하고 싶군요.”
“왜요? 부마도위는 실제로 벼슬을 못하기 때문인가요?”
“그렇사옵니다. 타고나길 무골로 태어난 최 사정은 본시 자유분방한 성품이라 작위만 높지 실제로는 정치에 개입할 수 없는 부마도위로 만족하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능력을 그렇게 억지로 제한하는 것도 좋지 않고요.”
한정문의 말에 왕세자는 즉시 그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다.
“설사 부마도위를 그렇게 묶는 다고 하지만 군왕이 원한다면 얼마든지 새로 구성되는 용호영을 지휘하는 대장군으로 봉할 수 있지 않나요?”
“저하, 그야 그렇지만 실제로 전쟁이 터지면 전장으로 나가기는 조금 어렵습니다. 소신이 보기에는 전쟁이 터지면 그는 누구보다도 먼저 전선으로 달려가려고 할 것이니까요.”
“성품이 너무 다혈질은 아닌가요?”
“그렇지는 않사옵니다.”
주상은 아무 연고가 없으면서 능력이 뛰어난 최인범은 장차 공주의 배필로 생각했다. 공주라면 문정왕후의 소생들뿐이라 그렇게 해서 차남인 경원 대군까지 은근히 보호하려는 숨은 의도가 있었다.
하지만 백두산에서 살다가 풍기로 내려와 양반 가문으로 입적해 정착한 그를 지금 부마도위로 삼기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그래서 속으로만 생각하고 그런 내색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그런 마음은 왕세자와 한정문에게만 말하고 비밀로 하라고 지시했다. 그래서 한정문을 통해 계속해서 최인범의 주변을 조사하고 또한 감시하도록 했다.
주상은 무술도 뛰어나고 다른 분야에서도 활동하는 최인범을 왕세자의 측근으로 만들 계획이다. 그래서 자신의 사후를 대비하면서 또한 공주의 남편인 부마도위로 삼아 후비소생인 경원대군도 보호해볼 요량이다.
극비로 취급되는 최인범에 대한 검증은 이미 끝났다. 이제 어떤 식으로 그를 한양으로 불러 대궐 안으로 끌어 들이냐가 중요했다.
한편 조정에서는 부산포에 새로 왜관을 설치하면서 거래한 호피 때문에 약간 소란스러웠다. 대마도주가 서신을 보내 많은 호피를 사겠다고 요청하며 전보다 더 비싸게 산다고 했다.
“전에 사간 것을 모두 배가 난파당해 수장됐다고 하더군.”
“우리도 호피를 명나라로 보내야 하는데 왜로 보낼 수는 없지 않소?”
화폐를 발행해야 하는 상평청의 관리는 매우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왜에서는 호피를 보내지 않으면 구리나 주석을 수출할 수 없다고 합니다. 아마 우리가 화폐를 발행하기 위해 주석이나 구리가 많이 필요한 것을 알고 저러는 것 같습니다.”
“거참, 전에는 호환으로 나라가 시끄럽더니 이제는 호피가 부족해 난리로군.”
대마 도주는 호피 1장당 조선의 관포 600필을 기준으로 사겠다고 제안한 것이다. 한창 왜의 열도 전체가 지방의 영주들로 나눠져 치열하게 전쟁을 벌이는 중이다.
수많은 왜의 영주들은 서로 자신이 최고라는 의미로 호피를 소장하길 원했다. 또한 조선의 백자와 청자 그리고 인삼을 고가로 사겠다고 대마 도주를 통해 서신을 보냈다.
병조판서인 윤임은 나름 믿는 것이 있는지 장담했다.
“우리 용호영 예비 병사들인 착호부대가 백두산으로 호랑이를 잡으러 떠났으니 호피부족 문제는 해결될 겁니다. 그러니 다들 걱정하지 마세요.”
“대감, 우리가 듣기에는 백두산에도 호랑이가 없다고 하던데 그게 그렇게 쉽겠어요?”
“그거야 일시적인 현상이죠. 그 문제 보다 호판께서는 면천으로 들어온 면포나 아니면 상평통보를 빨리 용호영으로 보내세요. 월급제인 갑사들의 급료는 줘야죠.”
“알겠소. 그렇게 하죠.”
빨리 화폐제도가 정착되기 위해서는 관료들에게 주는 연봉이나 월급을 화폐로 지급하는 것이 제일 빠르다. 그래서 새로 생긴 용호영 부대원부터 월급을 새로 발행되는 상평통보로 지급할 생각이다.
한편 백삼수는 호피 15장을 가지고 동래에 도착해 왜관에 있는 사사키를 몰래 만나 그와 흥정을 벌였다. 그래서 그에게 호피 한 장당 조선관포 1천장씩 받는 거래를 성사시켰다. 무려 관포 15000필에 해당하는 재물과 교환했다.
그리고 그 대금으로 받은 구리와 백은을 소금배로 싣고 낙동강을 거슬러 올라와 예천을 거쳐 풍기에 도착했다.
울진에서 발행한 5000필의 어음은 백두상단의 자금으로 왜인들에게서 산 백은을 토지 주인들에게 주고 완전히 회수해 소각 처리해 깔끔하게 정리했다. 또한 면포 6000필에 해당하는 백은으로 배도치나 분대장들 명의로 토지를 구입하도록 했다. 그런 일을 끝내자 9000필의 관포에 해당하는 구리나 백은을 가지고 행정병들과 같이 한양으로 올라왔다.
한양의 상평청으로 찾아온 백삼수는 과감하게 관리와 흥정했다.
“그동안 전국을 떠돌며 모은 백은과 구리입니다. 그러니 상평청에서 사시죠.”
“좋소. 마침 구리와 백은이 많이 필요한 시점이니 잘 됐소. 대신 새로 발행되는 상평통보로 계산해 드리겠소.”
“뭐요? 관포 어음이 아니고 화폐로 지불한다고요?”
“그렇소. 상평통보를 가지고 호조로 가면 관포로 바꿀 수 있으니 가지고 가시오. 1냥이 관포어음 10필이니 1천냥을 가지고 가시오.”
물건이야 이미 상평청으로 넘긴 상태다. 분명 접장인 최인범이 관포를 어음이 아닌 현물로 사가지고 덕원부로 오라고 했으니 걱정이다.
‘가져가서 안 바꿔주면 곤란한데.’
장사꾼이 거래에서 이득을 안볼 수 없으니 거래하는 과정에 이득금이 붙어 1천냥이다. 그래서 관포로 계산하면 1만필이란 가치로 늘었다.
호조로 도착해 1천냥을 제출하자 매우 놀라며 물었다.
“이것을 모두 관포로 바꿔 달라고?”
“예, 상평창에서 그리 말하던데요.”
“이보시오. 관포 1만필이 애들 이름이요? 그런 면포를 한 번에 찾아가겠다니 지금 제 정신으로 하는 말이요? 그런 면포가 없으니 기다리시오.”
“뭐요? 못주겠다면 동전들은 화폐로 전혀 가치가 없다는 것 아니요?”
“우린 그렇게 많은 면포를 내줄 수 없으니 상평창으로 가서 해결해 보시오.”
이렇게 되자 백삼수는 상평창과 호조를 오가며 면포를 받아내기 위해 뛰어 다녔다. 결국 한 번에 면포를 다 바꿀 수 없어 5천필만 바꾸고 5천필에 해당하는 500냥이란 화폐를 가지고 덕원부로 떠나게 되었다.
이런 일이 벌어지자 호조나 상평창에서는 대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그래서 급하게 상평창이나 호조에서는 현재 조정에서 보유한 면포나 미곡 그리고 보리나 기타 곡물에 해당하는 금액만 화폐를 발행하기로 결정했다. 화폐를 발행하는 양에 대한 기준점이 정해진 것이다.
“이런 일이 또 벌어지면 큰일이니 창고에 면포나 미곡을 충분하게 비축해야 되겠소.”
“그럽시다.”
주상께서는 이런 정도의 화폐 유통으로는 성공하기 힘들다고 판단했다.
내탕금으로 보관된 면포나 또는 중국비단 그리고 금과 은을 상평창으로 보냈다. 그 대신 상평통보를 받아와 사용하는 방법으로 유통시키게 되었다.
한편 강원도의 동해안을 따라 북쪽으로 이동한 최인범 일행은 덕원부에 도착했다. 이제부터는 조정에서 지시한 함경도에 도착했으니 호랑이 사냥을 해야 한다.
최인범은 가지고 있는 호피를 나중에 관아로 넘길 생각이 있어 덕원부를 찾아갔다.
덕원부사는 이미 소문을 들어서 그런지 최인범을 반갑게 맞이했다.
“최 사정, 어서 오시게. 온다는 연락을 받았네.”
“반갑습니다. 부사님, 혹시 근처에 호환이 발생하거나 또는 호랑이를 봤다는 백성들의 이야기를 들었나요?”
“호랑이야 전에 많았지 요즈음은 울음소리를 듣지 못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