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화
잠시 상단운영에 대해 문제점이 뭔지 생각하다가 결심했다.
“내가 상단을 직접 따라 다니지 않아 그런 허점은 잘 몰랐구나. 네 생각이 그렇다면 내가 백 행수를 만나서 확실하게 지시해주마.”
“그게 좋겠어요.”
최인범은 백삼수를 만나 상단운영에 대해 직접 지시했다.
“앞으로 상단 운영은 네가 전담해. 다른 상단들과 똑 같이 앞으로 너는 상단의 행수로 칭하고 월급은 30필을 받아. 호위무사 중에 한명은 계장으로 올리고 8명은 사원으로 올려서 운영해.”
“접장님, 요즈음 산적이 없어 사실 호위무사가 필요 없어요.”
백삼수가 호위무사가 필요 없다니 너무 한심해 보였다. 그래서 약간 언성을 높여 다부지게 지시했다.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지금은 산적이 없어도 언제 산적이 나타날지 모르니 방심하면 크게 당해. 그러니 호위무사를 잘 대해줘. 더구나 앞으로는 더 멀리 다녀야하니 반드시 능력 있는 호위무사를 데리고 다녀 ”
“알겠습니다.”
“백 행수, 지금부터는 상단과 착호 부대는 재물을 서로 주고받는 일도 모두 일반적인 거래로 취급하니 그렇게 알아. 그러니 배도치나 분대장들의 월급은 안줘도 되고.”
“잘 알겠습니다.”
면포 5000필을 들여 새로 농토를 사게 되었다. 앞으로 그 농토에서 나오는 수익으로 심복 부하들의 생활을 보장해줄 생각이다. 물론 사냥해서 수익이 생기면 전처럼 나누어주면 된다.
앞으로 심복부하들은 면포 1000필을 들여 농토를 구입해 소작료를 받아서 생활이 가능하도록 해줄 생각이다.
‘심복을 늘리려면 이런 방법이 제일 좋아.’
사실 이런 방법은 조선에서는 잘 쓰지 않는다. 그러나 왜와 유럽에서는 지역을 총괄하는 영주들이 세력권을 관리하는 방법이다.
최인범은 왜나 유럽의 경우를 모방해서 이런 식으로 운영하려는 것은 아니다. 보다 효율적인 방법으로 심복부하들을 관리하려다 보니 이런 구상을 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되면 장차 내가 풍기를 완전히 장악하는 호족이 되는 건가?’
물론 왜나 유럽과 전혀 다른 통치체제인 조선이다. 이런 식의 큰 무리를 이루어 장원을 만들어 관리하면 자칫 모함을 받을 수 있다.
통치체제를 반대하는 이질적인 행동으로 보여 역적이란 누명을 쓸 위험성이 많았다. 하지만 아직은 나이가 어린 관계로 크게 주목 받지는 않고 있었다.
‘남은 호피 5장을 판 면포로 배도치와 분대장들 농토를 사야겠어.’
모두 6명이니 함경도로 가서 호랑이 7마리만 잡으면 된다. 운이 좋아서 더 이상으로 10마리 정도를 잡으면 백두상단의 자본금을 1만필까지 대폭 늘려볼 계획이다.
‘그런 정도의 자금력은 가지고 있어야 국제무역을 추진할 수 있어.’
월녀에게 특별히 자금 관리를 당부하고 백두상단과 헤어지게 되었다. 그들과 헤어지고 나자 조금 빠른 속도로 동해안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갔다.
‘이제 단출하게 가게 됐군.’
이제 휘하에는 모두 사노비들로만 구성되었다. 물론 면천된 칠복이와 팔복이가 있지만 그들의 아비가 자신의 사노비라 사실 상 여전히 사노비나 똑 같은 처지다.
새삼스럽게 이렇게 평민이나 사노비라는 신분을 생각하는 것은 최인범은 함경도로 가면 일반사람은 쉽게 생각하기 어려운 큰 모험을 벌일 생각이라 이런 것을 염두에 두는 것이다.
‘그런 모험이야 말로 극비에 속하니 자칫 비밀이 새면 정말로 만고의 역적으로 몰릴 수가 있어.’
그가 무서운 계획을 가지고 함경도로 바쁘게 올라가는 중에 한양에서는 새로운 정책들이 논의되었다.
새해가 되어 처음부터 조정은 소란스러웠다. 한동안 개혁 정치나 새로운 정책을 시도하지 않던 주상께서 정초부터 계속해서 새로운 제도를 시행하라고 하교했다.
제일먼저 발표한 내용은 오위도총부 이외에 한양에 별도로 용호영을 둔다는 것이다.
호환과 산적들의 준동으로 착호갑사나 갑사들이 동원되어 소탕작전을 펼쳤다. 그 와중에 많은 비리가 들러나자 함경도와 평안도에 있는 양계갑사만 놔두고 갑사제도를 완전히 폐지시키기로 했다.
하지만 주상의 대궐 밖 나들이나 기타 의전행사에 갑사들은 반드시 필요했다. 그리고 언제 또 호환이나 산적들의 준동이 있을지 몰라 갑사제도는 부활했다. 그래서 오위도총부에서 완전히 분리된 용호영이 병조에 속해 만들어졌다.
구성원은 극히 일부를 빼고는 대부분 갑사로 구성된다. 처음에는 총원이 500명이라더니 그 병력을 2000명으로 대폭 늘린다고 했다.
이런 사실 때문에 한양의 조정은 시끄러울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용호영의 수장인 대장군은 병조판서가 담당한다. 그 수장인 병판 자리에 왕세자 외삼촌인 윤임을 임명하자 조정은 크게 술렁였다.
‘왕세자를 보호한다고 하지만 너무 한쪽으로 권력을 주시는 거야.’
실제 휘하에 직접 지휘할 병력이 전혀 없는 병조판서가 지휘할 병사가 있는 대장군을 겸했다. 세상은 이제 완전히 윤임 일파에게 넘어갔다.
그 때문에 사림파는 물론 소윤 파로 분리되던 사람들은 모이기만 하면 불평했다.
이런 상황에서 주상께서는 또다시 새로운 정책을 추진했다. 그 내용은 파격적으로 노비들을 면천시켜 양민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향교에 모인 양반들은 연일 이런 문제를 놓고 열띠게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노비가 양민으로 변하다니 이건 체제자체를 흔드는 일이야.”
“나는 좋아 보이는 정책인데.”
“무슨 소리야. 너무 파격적이지 않나? 더구나 나라에 공로가 있어서 면천시켜 주는 것도 아니고 면포를 받고 양민으로 만들다니. 양반을 면포를 주고 사라는 정책이나 똑 같군.”
이렇게 말하자 한 선비가 나서서 반박했다.
“노비에서 양민으로 만들어 주면서 면포를 두당 300필을 받으면 가족이 모두 면천하려면 적어도 1천필 이상의 면포가 필요하지 않나?”
“그렇지. 자네 말을 들으니 그렇겠군.”
“나라에 면포 1천필을 바친다면 그거야 말로 공로가 많은 거지.”
이런 대화를 나누며 양반들은 술렁이고 평민들은 평민들 데로 여러 가지 말들이 오가고 있었다.
한편 한양의 중심인 대궐에서는 주상전하의 명을 받은 호조판서가 중요한 정책을 논의 했다. 노비의 면천법 시행을 놓고 의정부의 정승들과 심각하게 논의했다.
호조판서의 설명을 듣던 영의정이 약간 언성을 높여 말했다.
“호조판서께서는 주상전하의 명이라고 기어이 노비들을 양민으로 만드는 특별히 노비 면천법을 올해부터 시행하시겠다는 거요?”
“그렇습니다. 영상대감, 전하께서는 노비들을 면천시켜 양민으로 만들어야 조세 수익도 늘고 앞으로 군대에서 꼭 필요한 병졸들도 쉽게 확보할 수 있다고 하십니다. 그러니 영상께서도 전하의 뜻을 따라 주세요.”
호조판서의 말에 영의정은 심히 불쾌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그렇다면 결국 새로 용호영을 만들었으니 그 용호영의 군졸들을 양성하기 위해 노비들을 면천시키겠다는 것이 아닙니까?”
“물론 그렇게 볼 수도 있지만 노비들을 면천시키면서 받게 되는 면포로 생산성을 높이는 국책사업을 벌이시려는 뜻도 있습니다.”
신분이 노비인 사람들 중에서 개인당 면포를 300필씩 납부하면 면천시켜 양민으로 만드는 특별법을 시행한다는 새로운 정책이다.
“나는 반댑니다.”
영의정은 무반 벼슬이 늘어나는 점이 너무 싫어 반대했다. 이유는 조선왕조는 어디까지나 문치위주로 정치를 하기 때문이다.
다른 구성원들인 좌우찬성이나 좌우참찬들도 영의정의 말에 동조했다.
“우리도 반댑니다. 그러니 우리의 뜻을 주상께 전하세요.”
“노비를 면천시키고 대신 필요해 보이지도 않은 용호영을 만들어 더 확장한다니 절대로 시행해서는 안 되는 정책입니다.”
“그렇습니다.”
더구나 상공업을 천시하는 풍토에서 생산성을 운운하자 농본위주의 기본적인 경제 틀도 바꾸려는 의도라 반대했다.
그래서 영의정은 호조판서에게 물었다.
“생산성을 높이다니 그건 또 무슨 소리입니까?”
“전하께서는 함경도나 강원도의 광산들을 집중해서 개발하실 생각도 있습니다. 그래서 철이나 기타 광물을 많이 생산해 그것으로 화폐를 만들어 보급하실 뜻도 있고요.”
“뭐요? 화폐도 발행해요?”
“화폐제도와 마찬가지로 광산업을 늘리고 특히 전라도는 간척 사업을 더욱 활발하게 해보실 생각도 있습니다.”
호조 판서의 이런 의견에 영상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허어, 화폐까지 만들어 보급해요? 지금 너무 무리하는 것 아닙니까?”
조선은 개국한 이후 수없이 화폐 발행해 정착시키려고 했다. 하지만 매번 실패로 끝난 통화정책이다. 또 다시 많은 재화를 들여 시도한다고 하자 공연히 일거리만 많아지고 또 사회만 혼란해진다고 판단했다.
의정부에서 반대하기 위해 주상을 만났지만 소용없었다. 더 이상 영의정이나 좌우정승들이 고집하면 조정을 새롭게 만드는 환국을 시도할 생각이다.
주상전하는 새로운 정책들을 극구 반대하다가 물러난 노신들을 바라보며 한숨을 토했다.
“아직도 저러니 어린 세자가 보위에 오르면 군왕을 훈구 대신들이 마음대로 주무르려고 할 거야.”
옆에 있던 상선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전하,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훈구 대신들은 진심으로 나라를 걱정해서 주청하는 것이옵니다.”
“자네가 뭐를 알아서 입을 놀리나? 그 입 다물라.”
주상전하께서 새로운 제도의 시행을 서두르는 이유는 자신의 건강이 전과 같지 않다는 점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남은 생이 불과 몇 년도 남지 않은 점을 생각하면 추진하는 정책들을 반드시 시행해야 한다.
‘후우! 마음은 급한데. 대신들이 반대만 하고.’
주상은 요즈음 더욱 몸이 약해지고 있어 초조했다.
오랜 만에 일찍 퇴청하고 문정왕후와 후원을 거닐면서 깊이 생각하고 있었다. 건강이 악화되자 왕세자의 허약함도 걱정되었다.
후원에는 수려한 자태를 뽐내는 봄꽃들이 만발해 있었다. 후원은 유달리 화려하지는 않지만 조용히 산책하기는 적당한 곳이다. 중전은 여전히 귀양을 가서 지내는 친정식구들이 은근히 걱정이다.
‘휴우! 전하께서 언제나 풀어주려고 하시는지.’
자신의 형제들이 조금 방자하게 굴었어도 그렇지 매정하게 멀리 귀양을 보내 무척 서운했다. 그러나 중전은 그런 서운함을 함부로 표현하기는 곤란했다.
윤임이 여전히 경원대군 때문에 상당히 경계하고 친정 식구들을 감시하고 있었다.
‘난정이를 불러 상의를 해야 되겠어.’
주변에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는 남동생인 윤원형의 첩인 정난정 뿐이다.
중전이 후원을 거닐며 친정 식구들을 걱정하는 순간.
주상은 약간 허약한 왕세자와 여전히 드센 대신들 때문에 고심하고 있었다. 요즈음 들어 내의원에서 들여오는 탕약이 아니면 지탱하기 힘들 정도로 몸이 약해졌다.
‘봄이 되자 몸은 전보다 더 나른해지고 내가 앞으로 얼마를 살지.’
스스로 건강에 자신이 없다보니 앞일이 더욱 걱정이다. 그래서 주상은 허약한 왕세자 옆에 든든한 사람을 두고 싶었다. 그래서 풍기에서 사는 최인범 사정을 오래 전부터 주목하고 있었다. 무술 실력도 높고 여러 가지 능력을 지닌 그라면 왕세자 옆에서 잘 보좌해 줄 것 같았다.
‘최 사정을 빨리 한양으로 불러야 되는데 적당한 명분이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