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화
“관아에서 매매 절차를 끝내고 농장으로 가서 행랑아범에게 노비문서 맡겨놓고 면포 400필짜리 어음을 여기로 가져오고.”
“넷! 그런데 이름은 뭐로?”
두 청년의 이름을 지으려고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 험악한 인상을 바라보다가 문뜩 적당해 보이는 이름이 떠올라 지시했다.
“생긴 것이 험악하고 인상도 그러니 장익덕이라고 짓고 하후돈이라고 지어서 호패를 새로 만들어 와. 돌아오면서 농장에 들려 말 2필을 안장 채워서 가져 오고.”
“넷!”
속담에 ‘체를 보고 옷을 짓고 꼴을 보고 이름을 짓는다.’고 했다. 그래서 험악하게 생긴 인상에 적당한 이름으로 지어버렸다.
위나라 장수인 하후돈은 화살 박힌 눈알을 빼서 씹어 먹었다. 장익덕이야 촉나라의 용맹한 장수로 유명했다. 두 사람 모두 결점이 많았으나 그래도 용장들은 확실했다.
조선에도 널리 알려진 맹장들이라 알기 쉽게 그 사람들의 이름을 차용하기로 했다.
이런 지시를 듣고 있던 두 청년은 매우 난감한 표정으로 우물쭈물했다. 하후돈이라고 부르게 된 놈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나리, 저희들은 말을 탈 줄 모르는데요?”
이런 응수에 큰 목소리로 지시했다.
“말을 탈 줄 모르면 끌고 다니던 아니면 등에 지고 다니던 그것도 아니면 타고 다니는 기술을 속히 배워.”
“알겠사옵니다.”
두 녀석은 다행히 개인장구를 꾸리는 것은 이미 잘 알고 있었다. 이곳 장인마을에서 개인장구와 무기를 제작했기 때문에 사용방법을 터득해 놓고 있었다.
“너희들도 빨리 개인 장비와 무기들을 챙겨.”
“넷!”
두 녀석의 개인 장비를 챙겨주고 점심을 먹었다. 오면서 먹고 싶어 하던 돌나물과 냉이 등 나물무침으로 꽁보리 비빔밥을 만들어 먹으며 권명묵이 돌아오길 기다렸다.
이윽고 풍기 관아로 갔던 권영묵이 말을 2필 끌고 돌아와 보고했다.
“소대장님, 풍기군수가 전에 선전관에게 받았다가 반환하신 2두 마패를 주더군요.”
“그건 왜 어디다 쓰라고?”
“함경도로 가시면서 혹시 말이 병나던가 하면 역참의 말을 이용하라고요. 마패를 신분증으로 사용해야 하고 필요하면 우리 모두 역참에서 지낼 수도 있고요. 혹시 조정으로 보낼 서찰이 있으면 마패를 찍어서 한양의 용호영의 별기군 대장 앞으로 보내면 된다고 했어요.”
마패를 품속에 갈무리를 했다. 전에는 항상 풍기군수를 통해 조정으로 보고해야 하는데 그게 변했다는 것이 떠올라 물었다.
“앞으로 관할 관아를 통하지 않고 용호영으로 공문을 보내라면 우리도 오위도총부에서 용호영 소속으로 완전히 변했다는 거야?”
“그렇습니다. 오늘 파발로 연락을 받았답니다. 용호영의 대장군은 병조판서께서 겸임하시고 한정문 선전관께서 대호군으로 승차해 용호영의 별기군을 지휘한다고 하네요. 우리 착호부대는 용호영의 별기군 소속으로 예비 병력에 해당된다고 하더군요.”
“알았어.”
오위도총부의 품계인 대호군은 종3품의 건공장군이다. 흔히 알려진 병마첨절도사(兵馬僉節度使) 또는 수군첨절도사(水軍僉節度使) 등이 같은 품계에 해당된다.
한정문이 선전관에서 실제로 병력을 지휘하는 장군으로 변했다. 이런 사실은 앞으로 조선의 군부에 많은 변화가 있을 조짐이 분명했다.
‘주상전하께서 뭐를 생각하는 거지?’
주상전하의 심복으로 호위무사인 선전관에게 실제 병력을 지휘하는 자리를 주고 있으니 뭔가 단단히 준비하고 있는 것 같았다. 당장은 자신에게 영향이야 없겠지만 나중에는 연결될 일들이라 약간 신경이 써졌다.
‘나중에 한정문이 자세하게 설명해 주겠지.’
최인범은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새 한정문 장군계열인 무관으로 분리되었다. 그런 본의 아닌 줄서기가 썩은 동아줄이 될지 진짜 튼튼한 배경이 될지는 아직은 잘 모른다.
갖바치에게 사노비 매매 대금을 건네고 나자 최인범은 부하들과 장인마을을 떠나게 됐다. 떠나는 인사를 하며 갖바치에게 당부했다.
“조정으로 보내는 장비를 반드시 기일 내에 납품해 줘요.”
“예, 염려 마세요. 성실한 노비를 사서 부지런히 제작해 납품하겠사옵니다.”
이윽고 최인범 일행은 이웃 고을인 영천군에 도착했다.
중앙에 흐르는 서천(西川)과 가까운 영천주막에서 묵게 되었다. 조금 늦게 이동하게 된 이유는 새로 산 노비들이 말을 타지 못해 새로 산 두 녀석은 달려서 왔기 때문이다.
졸지에 두 녀석은 말을 타지 못해 완전 군장인 상태로 여기까지 구보했다.
척후병인 칠복이 형제가 먼저 도착해 잡아 놓은 영천주막이다. 이곳에 도착하자 최인범은 즉시 행정병인 이인철에게 지시했다.
“이 일병, 새로 들어온 이등병들도 말을 타도록 책임지고 훈련시켜. 지금처럼 천천히 이동하면 언제 함경도에 도착할지 모르니 속히 배우도록 지도해.”
“넷!”
새로 산 사노비인 장익덕과 하후돈은 짐을 방에 놓고 나자 약간 숨을 돌렸다. 그러나 거친 숨이 멈추기도 전에 이인철에게 호되게 혼났다.
“너희들은 말도 못타면서 왜 군사가 되겠다고 해서 내 속을 썩여. 남들은 편하게 쉬는데 나만 쉬지도 못하게.”
“죄송합니다. 지금부터 열심히 배우겠습니다.”
“말을 끌고 나를 따라와.”
“넷!”
새로 합류한 장익덕과 하후돈은 승마를 배우기 위해 말을 끌고 주막을 떠났다. 그들은 영천 고을의 서쪽을 흐르는 서천(西川)으로 가서 승마 연습을 했다.
“우선 말 등에 올라 타!”
“무조건 타요?”
“타라면 타!”
무조건 말의 등에 올라타게 하고 긴 줄을 잡고 계속해서 뺑뺑이를 돌렸다. 알아서 중심 잡고 승마를 배우면 같이 데리고 가고 아니면 떨어트려 부상당하면 동물농장으로 보낼 심산이다.
이제 군사가 됐다고 좋아하던 장익덕이나 하후돈은 서천 변의 모래밭에 수시로 머리를 처박으며 죽을 고생이다. 그래도 기본적인 무술 실력은 있어서 그런지 다들 떨어질 때는 약간 낙법을 쓰고 있었다.
그러자 이인철은 더욱 빨리 달리라며 거세게 몰아세웠다.
“더 빨리 달려.”
“넷!”
배우기 어려운 승마지만 두 녀석은 의외로 빠르게 배웠다. 아직은 말을 타고 무기를 다룰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같이 말을 타고 천천히 이동할 수준으로 도달했다.
일단 기본적인 승마술을 습득했다고 판단한 이인철은 두 녀석에게 명령했다.
“오늘 날을 꼬박 새워서라도 말을 타고 따라 올 정도로 더 배워!”
“넷! 반드시 해내겠습니다.”
어떤 조직이고 후임자는 고생문이 훤하다. 아무튼 혹독한 훈련 덕분에 두 녀석은 제법 빠른 속도로 말을 타고 이동이 가능하게 되었다.
한편 최인범은 영천주막에서 다소 한가하게 함경도로 가면서 들릴 지방에 대해 생각했다.
‘바다로 가면 오징어 회도 먹어 봐야지.’
한가하게 유람하면서 갈 수는 없다. 하지만 그래도 기한이 없으니 조금은 여유가 있었다. 그래서 가다가 평소 구경하고 싶었던 명승지가 있으면 틈틈이 들릴 생각이다.
“권 상병, 나가서 강원도와 함경도의 지도 좀 구해와.”
“넷!”
자신이 가려는 울진부터는 강원도에 속하기 때문에 강원도의 지도를 찾는 것이다. 울진이 경상도로 변한 것은 나중에 일이다.
최인범은 일단 종이에 대략 강원도 해안선을 그려놓고 대충 기억나는 도시들을 표시했다. 커다란 종이에 울진, 강릉, 속초, 고성, 원산들을 표시했다.
‘지도가 없으니 너무 어렵군.’
전생의 기억과 지금의 명칭이 똑 같지는 않다. 하지만 그래도 이런 식으로라도 대략 가면서 들릴 지역을 표시해 참고하려는 것이다.
함경도로 들어서서는 어디로 갈지 막연했다. 남쪽이야 지리를 대략 잘 알지만 북쪽은 평양 근처 이외에는 잘 모른다.
‘원산에서 무조건 북쪽으로 이동해 백두산으로 이동해 버려?’
함경도로 가서 어디로 가라는 지시는 없으니 해보는 생각이다. 조정에서 분명 무슨 의도가 있어 보이는데 아직 자신을 굳이 그곳으로 보내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다소 한가하게 그림 지도를 만들고 있는 가운데 밖으로 나갔던 권영필이 급하게 돌아와 보고했다.
“소대장님, 강원도 지도는 울진이나 아니면 도호부가 있는 강릉으로 가야 구할 수 있다고 합니다.”
“알았어. 그런데 왜 급하게 돌아왔나? 상인들은 만나보고 오지.”
“그보다 급하게 소대장님께 전할 말이 있기 때문에 그냥 왔어요. 영천에 사시는 민 진사께서 소대장님을 만나자고 하십니다.”
민 진사라는 말에 여러 명의 진사가 떠오르고 있었다. 그래서 다시 물었다.
“민 진사라니 어떤?”
“전에 풍기농장으로 찾아와 사랑방에서 지내며 바둑대회에서 마지막 결승에 오르신 나이 많은 진사분요. 만나서 수담을 나누시자고요.”
이런 설명을 듣자 나이가 많던 민택선 진사가 떠올랐다.
큰 욕심이 없다는 담담한 표정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그는 제일 먼저 최인범의 실력을 정확하게 알아보고 인정한 사람이다. 그래서 영천에 오면 반드시 만나서 수담을 나누자고 굳게 약속했었다.
그 사람이라면 부담감 전혀 없이 만나도 된다.
“아, 나와 바둑 두던 민택선 진사. 어디서 만나자고 하는데?”
“산월이라는 기생집에서 만나고 하십니다.”
“알았어. 가보도록 하지.”
거액이 걸린 바둑대회에서 결승까지 올랐던 민택선은 3-4급은 되는 실력이다. 그 사람이 경북 지역의 고을에서는 지금까지 최고수로 통했었다.
최인범은 전보다 머리회전이나 기타 능력이 좋아지며 동시에 바둑실력까지 덩달아 좋아졌다. 이제 1급이 훌쩍 넘어가는 실력으로 향상되었다. 그러니 그를 만나 거액의 내기를 두더라도 별로 부담이 없었다.
‘설마 내기바둑을 두자고 하지는 않겠지.’
묘수풀이나 기타 속수도 빨리 보고 여러 수를 동시에 빠르게 보게 되었다. 또한 집계산이나 마무리하는 계산 능력이 높아지자 바둑 실력은 분명 프로 수준으로 훌쩍 올랐다.
이런 평가야 최인범 스스로 내린 자체적인 평가다. 객관적으로 이를 검증할 길은 조선 천지에는 없었다.
군복을 입은 상태로 기생집을 가기가 조금 거북해 장주환에게 지시했다.
“의관을 가져와. 흑립은 근처에서 구해오고.”
“넷! 바로 준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