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화
<입춘대길은 동해에서>
평소 별로 신경 쓰지 않아 장인마을이 잘 살게 된 이유가 조금은 궁금해 물었다. 권영묵은 약간 신이 난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소대장님, 착호 부대인 우리만 새로운 개인 장비를 주문한 것이 아닙니다.”
“뭐? 어디서 또 주문해?”
“소대장님, 백두상단에 있는 호위무사들도 우리 부대원과 똑 같은 장비를 지니고 다닙니다. 물론 단창과 활 그리고 검은 빼고요. 그래서 이제 풍기는 많은 군수품을 생산하는 아주 중요한 생산단지로 변했습니다. 앞으로 계속 조정에서 장비와 무기를 주문할 것이라 점점 잘사는 고을로 변할 겁니다.”
“잘 살게 된 이유가 그것뿐인가?”
“물론 백두상단이 풍기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사업을 벌이는 영양도 아주 큽니다.”
이런 대답에 백삼수의 행적이 궁금해 연락병인 최산필에게 물었다.
“최 상병, 백두상단은 지금 어디에 있나?”
“소대장님, 백두상단은 지금쯤 울진 현으로 가 있을 겁니다. 아마 그곳에 면포를 팔고 어물을 사오려나 봅니다. 울진으로 떠나기 전에 백 집사가 저에게 그곳에서 어물을 사오겠다고 연락했으니까요.”
“울진으로 가다가 보면 어쩌면 중간에 만나겠군.”
“아마도 그럴 겁니다.”
백두상단은 수시로 자신들의 행적을 최인범에게 연락한다.
연락하는 방법은 연락병들에게 서신을 풍기로 오는 다른 상단을 통해 보낸다. 상단의 운영에 대한 내용은 없고 그저 행선지만 계속해서 알렸다. 자신이 직접 상단을 따라 다닐 수 없으니 이런 식으로 해서 백두상단의 활동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앞으로는 월녀가 농장으로 계속해서 연락하겠군.’
이제 어느 정도의 계산 능력과 회계를 배운 월녀는 백두상단에 합류해 같이 다니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월녀는 다른 방식으로 상단에 대해 계속 보고하게 된다.
산길을 통해 말을 타고 장인마을로 들어서자 마을의 촌장 격인 갖바치가 반겼다.
“나리, 어서 오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만사형통하시고요.”
이렇게 가볍게 인사하고 최인범은 천천히 마을을 돌아보았다.
장인마을은 전에 비해 조금 더 깔끔해지고 풍요로운 모습으로 변했다. 전에는 어린아이들이 배가 골아 바짝 말라보이더니 제법 살이 통통해진 아이들도 보였다.
보급병인 임무영이 갖바치에게 다가가 물었다.
“관아로 넘기지 말고 놔두라는 장비가 그대로 있나요?”
“예, 그 물건들은 따로 보관해 두고 있사옵니다.”
갖바치의 집으로 들어가자 안에는 20명에게 필요한 군복이나 배낭, 모포, 천막 그리고 대검, 활, 화살, 장검, 단창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지금 같이 있는 부대원들은 충분히 무장할 장비다.
최인범은 즉시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각자 빨리 개인 장구를 꾸려!”
“넷!”
군복이나 군화도 있고 집신도 많이 준비되었다. 명령을 받자 부하들은 서둘러 개인 장비를 챙겨서 배낭을 꾸렸다. 모포와 천막은 말의 안장 뒤쪽에 붙잡아 멨다.
중요한 무기인 활이나 화살도 챙기고 단창도 2개씩 챙겼다. 삼실과 무명으로 엮어서 만든 가느다란 긴 밧줄도 많았다. 암벽 등반에서 꼭 필요한 철제로 만든 각종 고리들도 챙겨서 각자 휴대했다.
최인범도 부족해 보이는 장비인 화살들을 추가로 챙겼다. 부하들과 똑 같이 기본적인 장비로 배낭을 꾸리며 갖바치에게 물었다.
“장비 구입 대금은 어찌 정산됐소?”
“전에 배도치 반장이 찾아와서 모두 지불했사옵니다. 추가로 주문하신 장비는 모두 모래재로 보내주기로 약속했고요. 반은 사또께 보내고 반은 모래재로 보내게 되옵니다.”
“알았소.”
모두 군장을 꾸려서 준비하는 동안 갖바치가 조심스럽게 최인범에게 말했다.
“나리, 부탁이 있사옵니다.”
“뭐죠?”
“여기 장인마을에는 사노비가 여러 명 있사옵니다. 소인이 강릉에서 오래전에 사와 데리고 온 노비들인데 이제 막 호패를 차게 된 녀석으로 두 명이 있습니다. 그 노비들을 나리께서 사주셨으면 하옵니다.”
갑자기 이런 제안을 하자 혹시 살림형편이 나빠져서 그런가 생각했다.
“갑자기 노비를 팔려고 하죠? 돈이 필요한 가요?”
“나리, 그게 아닙니다. 그 애들이 하고 싶다는 일을 하며 살게 해주려고요. 한 놈은 지금까지 백정 일을 도왔지만 도통 적응을 못하고 있사옵니다. 다른 한 놈은 대장간에서 일을 시켜봤지만 별로 나아질 기미가 없어서요. 두 놈을 팔고 다른 노비를 사서 새로 기술을 전수해 보려고요.”
일반적으로 장인들은 천민으로 취급 받아 노비와 비슷하게 생각하지만 사실 그렇지는 않았다. 그들의 신분은 엄연히 양민에 속한다. 그 때문에 마음대로 사고파는 사노비와는 전혀 달랐다.
장인 마을사람들도 사노비를 소유할 수 있었다. 그런 경우 흔히 천민이 천민을 노비로 부린다고 한다.
“노비들이 하고 싶다는 일이 뭐죠?”
“노비 주제에 군사가 되겠다고 하며 시키는 일은 잘 안하고 매일 같이 틈만 나면 무기를 들고 산 속으로 들어가 사냥만 다니고 있사옵니다.”
“노비가 주인 말을 안 듣다니 이상하군요.”
“꼭 그렇지는 않죠. 말 못할 만큼이야 일은 하고 있으니까요. 나리, 두 녀석은 모두 힘이 장사입니다. 저대로 놔두면 언젠가 도망쳐서 산적으로 변할까 걱정이옵니다.”
이런 갖바치의 하소연에 최인범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어차피 주변을 노비로 감쌀 생각을 하던 중이라 만나봐서 쓸 만하면 데리고 다니기로 했다. 설사 그게 아니더라도 힘이 좋다면 동물농장에서 막노동을 시키면 된다고 판단했다.
“좋아요. 일단 데리고 오세요.”
“예.”
잠시 뒤에 두 청년이 갖바치와 같이 오자 최인범은 깜짝 놀랐다. 이제 막 호패를 찼다고 해서 어린 아이를 겨우 면했다 싶었더니 두 청년은 덩치가 어른들 보다 더 컸다.
조선의 남자들 평균 신장보다 한 뼘 이상은 더 크다.
두 청년은 모두 떡 벌어진 어깨며 모두 힘이 좋게 생긴 타고난 역사로 보였다. 타고나길 호걸이나 또는 산 도적으로 태어난 놈들이 분명했다. 체형으로 자신과 흡사한 점이 많은 녀석들이다. 저런 체형은 흔히 통뼈라고 해서 힘이 장사인 경우가 많았다.
‘어라! 덩치가 꼭 폭력조직의 똘마니들과 비슷하네.’
생긴 것도 그렇고 더구나 어쩜 저렇게 생겼나 할 정도로 인상도 험악했다. 일부러 인상을 쓰지 않아도 눈매나 표정들은 매우 흉측해 보였다. 갖바치 말대로 얼굴의 모습만 봐서는 누구도 산 도적 같다고 평할 인상들이다.
‘인상이 참으로 더럽게들 생겼어.’
약간 검은 피부에 커다란 얼굴은 마마 자국으로 깊게 얽어 있으니 더욱 그렇다. 꼴에 군사가 되겠다고 손에 들고 있는 무기가 겁나고 흉측하게 생긴 투박한 언월도다.
‘그래, 저 정도면 인상으로도 한몫은 단단히 하겠어.’
일단 너무 험악해 보이는 인상이라 옆에 두면 두루두루 써먹기 좋다고 판단했다. 본인들이 굳이 군사가 되고 싶다니 힘들어도 불평하지 않게 생겼다.
그래도 혹시 몰라 두 녀석에게 다그치듯이 물었다.
“너희들 모두가 군졸이 되겠다고? 너희들은 내 사노비라 평생 내가 어디를 가던 무조건 졸졸 따라 다녀야 하는데?”
“나리, 그것이 저희들이 가장 소원하는 삶입니다.”
당돌하게도 자신을 평생 따라 다니는 것이 소원이라니 약간 놀란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
“뭐라? 나를 따라다니는 것이 소원이야? 나중에 전쟁터에도 가서 사람을 죽이고 죽는 치열한 전투도 벌여야 하니 나를 따라 다니는 것은 매우 위험한데.”
이렇게 말하자 즉시 답했다.
“나리, 앞으로 뭐든 시켜만 주세요. 소인들은 평생 나리 옆에서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여기서 허접한 물건이나 죽게 만들며 평생 늙고 싶지는 않사옵니다.”
“진심으로 하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나리.”
사람의 얼굴이 다르듯이 인생을 바라보는 관점도 다르다. 두 청년은 타고난 무골로 자신들이 지닌 그런 전투력이나 용력을 마음껏 발산시킬 방법으로 군인의 길을 선택했다. 전쟁이 벌어져도 같이 따라간다니 눈에서 빛이 보이며 오히려 좋아했다. 두 눈에서는 강한 투지가 보였다.
‘하긴 나도 저런 식으로 생각했었어.’
중간에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그만 두기는 했다. 하지만 자신도 저들처럼 힘들다는 군인의 길을 선택했었다. 그 때문에 두 청년의 심리 상태를 조금은 짐작할 수 있었다. 이런 녀석들을 잘 조련하면 칠복이 형제보다 더 우수한 전사로 만들 것 같았다.
칠복이 형제는 몸이 날래기는 하지만 용력에서는 두 녀석보다 못해 보였다. 독한 기운도 지금 두 녀석이 더 독종으로 보였다. 정신력이 트릿하면 적진에서 살아남기 힘들다.
‘진짜 걸물 들을 만났어.’
다부지게 치켜뜬 눈빛이나 뭐를 봐도 고된 훈련이나 또는 혹독한 부대생활에서 불평할 녀석들로 보이지는 않았다. 특수전을 수행할 전투병으로 제일 적당하다고 판단되는 부하를 만났다.
누구 말대로 정초에 까지가 울더니 자신이 그토록 원하던 독종으로 생긴 부하들을 만났다.
‘이제야 진짜 마음에 꼭 드는 부하를 찾았군.’
다른 부하들이 만족스럽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특전부대의 경우 험한 상황에서 냉혹하게 전투를 벌여야 한다. 그 때문에 때로는 독한 성품을 지녀야 하니 해보는 생각이다.
현재 성품이나 또는 무술 실력으로 봐서는 제일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칠복이와 팔복이 뿐이다. 그들 이외에 새로 믿을 수 있는 최측근이 생긴다면 그만큼 자신의 전투력도 향상된다고 판단했다. 주변에서 자길 보호해줄 호위병이 있다면 자신의 능력은 더욱 높이 상승된다고 판단했다.
‘전투력이 우수해도 독불 장군은 한계가 있어.’
자신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전투력을 지녔다고 해도 옆에서 도와주지 않으면 그 능력은 한계가 있다. 그러나 주위에서 자신을 돕게 되면 뛰어난 전투력은 큰 힘을 발휘한다고 판단했다.
‘좋았어. 이런 놈들을 골라서 사노비로 모아 보자고.’
아직 나이가 어리고 체계적인 수련을 안했다. 현재의 무술 실력이 별로겠지만 일단 힘이 장사라니 사노비로 사서 옆에 데리고 다니기로 결정했다.
“좋습니다. 내가 데리고 가죠. 그런데 이름은?”
“나리, 이름이야 새로 지으면 되지요. 전에는 쇠똥이와 말똥이라고 불렀으니 관아에 신고하며 지으시면 됩니다. 한 놈은 하씨고 한 놈은 장씨이옵니다.”
사노비라 매매서류를 작성해야 되기 때문에 갖바치에게 물었다.
“한 명에 얼마면 되죠?”
“면포 200필씩만 주시면 되옵니다.”
갖바치의 이런 대답에 즉시 권영묵에게 지시했다.
“권 상병, 지금 즉시 둘의 매매서류를 작성해서 풍기관아로 가서 신고하고 착호 부대는 13명이 함경도로 간다고 보고해. 그리고 새로운 소식이 있는지 알아 봐.”
“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