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화
지게 되면 많은 재물을 잃게 되니 윤 진사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송송 배어나왔다. 마음이 흔들리니 자꾸만 무리수를 두었다. 그의 바둑 집는 손가락은 조금씩 떨렸다.
그러나 마주 앉아 대국하는 최인범은 매우 여유롭다. 그는 어떻게 하면 아주 미세한 차이로 이길지 고심하며 천천히 두었다. 그런 생각 때문에 진즉에 끝낼 바둑은 길어졌다.
워낙 큰 내기를 두게 되자 배도치가 찾아와서 기웃거리며 슬슬 눈치를 봤다. 너무 큰 내기라 은근히 걱정이 안 될 수 없었다.
‘소대장님이 무슨 일로 저런 큰 모험을 하시는 거야?’
자칫 하여 바둑을 지기라도 하면 정말 큰일이다. 최인범이 허물어지면 같이 몰락할 처지라 은근히 걱정이다. 그래서 불안한 표정으로 대국을 지켜보았다.
최인범은 태연하게 부대 업무에 대해 물었다.
“배 반장! 신병들의 선발은 모두 끝났나?”
“넷! 모두 1차로 전처럼 500명이 합격했습니다.”
“그럼, 접수비로 1천필이 들어 왔으니. 말을 5필은 사겠군.”
“넷! 말은 개인장비까지 팔아서 10필을 구입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빨리 마무리하고 움직일 생각이라 부대 구성에 대해 물었다.
“분대 배치는?”
“최종까지 선발해 기존의 대원들과 같이 분대별로 6명씩 배치까지 끝났습니다. 개인장비는 아직 완전히 지급하지 못했습니다. 아마 내일 정도면 장비가 모두 납품되어 무장하게 될 겁니다.”
“알았어. 그렇다면 모래재로 가서 그곳 상황이 지금은 어떤지 살펴야 되겠어. 선임분대인 1분대를 먼저 정찰대로 보내서 별 이상이 없는지 살펴 봐.”
“넷!”
“실수하면 안 되니 산길을 잘 살피고.”
“알겠습니다. 원거리까지 수색하도록 지시하겠습니다.”
모래재는 전에 왕눈이라는 산적이 거점으로 삼던 곳이다. 최인범은 부대원들을 그곳으로 보내 집중적으로 특수훈련을 시킬 계획이다.
이런 지시를 간단하게 내리고 다시 대국에 약간 신경을 썼다. 최인범은 여유롭게 바둑을 두면서 가끔 집안일이나 부대 업무를 챙겼다.
천천히 두는 바둑이라 늦은 오후가 되었다.
대국은 어느새 중반을 넘어 끝내기로 접어들었다. 이제 싸움은 모두 끝나고 별로 많은 수가 남지도 않았다. 이때부터 최인범은 서서히 집수를 헤아리며 만족했다.
‘내가 3집을 이겼어.’
바둑 고수야 3집 차이면 아주 큰 차이로 승부가 났다고 판단한다. 하지만 하수인 윤 진사는 여전히 자신이 얼마나 지고 있는지도 잘 모르는 상태로 끝내기에 집중했다.
결국 오후 늦게 서야 대국이 모두 끝나게 되었다. 최인범이 계산한 그대로 정확하게 3집 차이가 났다. 그의 바둑 실력은 본래보다 더욱 늘었다.
윤 진사는 집수를 헤아려보고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한숨을 토했다.
“허어! 내가 두어 집은 이긴 줄 알았더니.”
“그렇군요. 정말 고맙습니다. 어려운 저를 도와주기 위해 이렇게 일부러 집까지 찾아와서 후하게 재물을 주시는 선심을 써주시고.”
엄청난 재물을 잃은 사람의 속을 박박 긁어대는 격장지계를 썼다. 이런 격장지계에 자극 받아 흥분하면 그때는 더 큰 내기를 두자고 제안할 생각이다.
‘걸려들면 완전히 알거지 만드는 거야.’
운 진사가 미몽에서 벗어나 내기바둑을 그만 두기 전까지 그의 재산은 최인범의 개인금고나 다름없었다.
“서운하시면 한판 더 두시죠.”
그러나 윤 진사도 너무 큰 재물을 잃어서 그런지 다시 두자는 말을 못했다.
“아니요. 오늘은 그만 둡시다.”
윤 진사가 결국 포기하는 말을 토했다. 최인범은 둘이 똑 같이 걸어 놓았던 어음과 매매증서를 재빨리 챙기고 큰 소리로 밖을 향해 크게 외쳤다.
“행랑아범, 손님들 모두 집으로 돌아가시니 배웅해.”
“예이!”
더 이상 여기에 남아 있어야 귀찮아 보기 좋게 축객령을 내리는 것이다. 윤 진사는 물론 다른 양반들도 결국 슬며시 일어나 떠났다.
집안에 어른이 없다고 판단해 마냥 눌러서 퍼마시던 양반들이다. 오만한 생각으로 접근한 윤 진사는 결국 큰 재물만 잃고 떠난 것이다. 떠나는 그들은 모두 풀이 죽어 있었다.
‘누굴 함부로 보고 까불어.’
나이가 어려져서 그런지 모르나 전에 보다 두뇌 회전이 더욱 빨라졌다. 다른 것으로는 좋아졌는지 잘 알 수 없지만 바둑을 둬보니 확실하게 머리가 많이 좋아진 것을 느꼈다.
‘수를 보거나 또는 계가와 복기도 전보다 수월해졌어.’
며칠간 양반들 시중을 들었지만 큰 재물이 다시 생겼다. 식솔들은 다들 기가 막힌다는 표정들이다. 도대체 어떻게 바둑을 내리 이기기만 하는지 그저 신기하기만 했다.
‘사정님은 투신이 아니라 내기에는 귀신에 속하는 신투야.’
신투(神投)란 투전판에서 말하는 속칭 고도의 기술자를 지칭한다. 그리고 각종 노름판에서 돈질을 잘해 항상 돈을 따는 사람을 칭하기도 한다.
논이나 밭을 그리고 관포가 엄청나게 생기자 최인범은 즉시 장판중 목수를 불러 지시했다.
“장 목수. 면포 500필을 선불로 줄거니. 좋은 나무도 많이 사놓고 집에 담장도 하고 축사도 더욱 늘려서 지어. 주변에 초가집도 여러 채 짓도록 하고.”
“알겠습니다. 계속 공사하겠습니다.”
장판중 대목수는 이집의 가솔은 아니다. 그러나 계속 공사하게 되자 근처로 이사를 와서 지낸다. 그는 최인범이 벌이는 사업에서 필요한 모든 건축을 담당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제는 거의 가솔이나 비슷해졌다.
집도 계속 지어야 하지만 대가축이 늘어나게 되자 축사를 마구간과 외양간으로 구분할 필요성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축사 건립에 많은 재물이 필요했다.
산에 있는 큰 소나무를 베어서 쓴다고 하지만 그것으로 재료가 모두 충당되지는 않았다. 기둥 같은 것은 아무래도 오래 말려둔 나무를 사서 써야 하니 건축 재료비가 많이 필요했다.
새로 농토가 생기자 행랑아범인 마순돌과 축산 담당인 양돌쇠를 불러 지시했다.
“행랑아범은 여기 토지 문서를 가지고 소작을 짓는 농민을 만나서 땅 주인이 바뀐 사실을 알려. 올 가을의 소작료는 우리가 받는다고 정확하게 전해.”
“알겠습니다. 나리, 그런데 소작료는 얼마나 받죠?”
“수확물의 3할만 받고 대신 볏짚은 우리가 가축 먹이로 필요하니 여기로 가져오라고 해. 농사에 필요한 거름은 얼마든지 가져다가 써도 되고.”
“알겠습니다.”
이 시절은 보통 반타작이라고 해서 소출의 반을 토지 주인이 차지하나 아주 후하게 소작을 주기로 했다. 그렇게 함으로 점차 자신에게 호의적인 사람을 늘릴 생각이다.
관포도 넘겨주며 마순돌에게 지시했다.
“관포로는 말의 수를 망아지로 사서라도 50필로 늘리고 나머지는 소를 사도록 해. 물론 소도 50두가 되도록 송아지로 사고.”
“알겠습니다.”
“집안에 일손이 부족하면 면포는 비상금으로 가지고 있다가 젊은 사노비를 2-3명 사서 쓰도록 하고.”
이런 지시에 마순돌은 조심스럽게 건의했다.
“나리, 명봉댁이 분가하면 집에서 살림할 여자가 모자랍니다. 그러니 당장 여자 노비를 사는 것이 좋사옵니다. 일순이 자매는 양민이라 언제 시집을 갈지도 모르고요.”
“여자노비가 필요하면 여자로 사.”
결국 여자 사노비를 3-4명 사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사실 일순이 자매는 양민이라 마구 부리기는 곤란해 마순돌은 같은 신분인 사노비를 사서 부리려는 것이다.
“나리, 여자노비는 앞으로 많이 필요합니다. 사실 과수밭 일은 여자들이 할 일이 많습니다.”
“딴은 그렇군. 그렇다면 앞으로 여자 노비 사는 일에 조금 신경을 써 보도록 하지.”
조갑중이가 혼인하게 되자 먹쇠나 돌쇠가 은근히 불만이 생겼다. 여자노비를 사서 그들과 혼인시킬 생각이다. 그들이 아니더라도 이 집에는 이제 결혼하지 않은 젊은 사노비가 5명이나 더 있었다.
그 사노비들은 착호부대 행정병과 의무병으로 활동하지만 그들도 적당한 시기에 혼인시켜줘야 되니 이런 제안을 하는 것이다.
‘그들도 혼인을 시켜줘야 충성심이 늘어나게 될 거야.’
사노비의 경우 주인이 반역 행위를 벌이지만 않으면 절대로 배신할 수 없다. 제도적으로 오래 그렇게 지속되어 노비들은 주인을 배신하는 일은 상상하지 못하게 세뇌되어 있었다.
‘노비 제도가 좋은 제도는 아니지만 일단 내 안전을 위해서는 노비들로 주변을 완전히 에워싸는 것도 좋은 방법이야.’
최인범은 아직도 무슨 나라를 완전히 변화시키고 싶다는 생각이 없다. 이렇게 앞으로의 계획을 구상하고 있었다. 물론 사노비라고 무조건 믿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그게 제일 안전해 좋다고 판단했다.
이제 대략 집안일은 마무리했다고 판단한 최인범은 여전히 부화장 일에 매달리는 두 의무병에게 지시했다.
“부화장 일은 모두 돌쇠와 명봉댁에게 인계하고 떠날 준비를 해.”
착호부대 편성을 모두 끝났으니 풍기군수에게 신고해야 한다.
착호부대는 여전히 오위도총부에 속해 있으며 풍기군 소속으로 파견된 형태다. 그래서 일단 풍기군수에게 신고하고 떠날 생각이다.
정월 대보름이 되어 모래재로 정찰을 떠났던 1분대원들이 돌아왔다.
“어떻게 됐나? 산적들의 흔적은 보이던가?”
“아닙니다. 사람들의 흔적은 전혀 없습니다. 소대장님 예상대로 그곳에서 훈련하면 아주 적당해 보입니다.”
“알았어. 그럼 훈련 장소는 그곳으로 정하지.”
부하들을 훈련시킬 장소를 결정하자 최인범은 착호부대를 이끌고 풍기군의 동헌으로 가게 되었다.
동헌으로 가자 김시철 풍기군수가 매우 반가운 표정을 지었으나 조금 난감해 하면서 한양에서 내려온 공문을 슬며시 내밀었다.
“이게 뭐죠?”
“한양의 병조에서 보낸 서류네. 이것 때문에 자네를 찾아가려고 했더니 마침 잘 왔네.”
조정에서는 특별히 오위도총부와는 별도의 군 편제로 500명으로 구성되는 용호영을 새로 만든다고 했다. 그 용호영의 군사들은 모두 양반 출신인 갑사들로 구성하고 보유 장비는 풍기의 착호 부대와 똑 같이 한다는 내용이다.
또한 그러기 위해서 풍기군수는 착호 부대가 보유한 무기나 장비를 100벌 회수해 한양으로 보내라고 했다. 무기나 장비 구입 대금은 일괄해서 면포 50필로 정했다.
이런 공문을 보자 순간 자신의 부대를 무장해제하려는 의도가 엿보였다.
개인장비나 무기를 일괄해서 관포 50필로 정했다는 것은 별로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부하들에게 50필씩 받고 팔았으니 원가에서 조금은 남는 가격으로 구입한다는 뜻이다.
굳이 한양이 아니고 지방에서 장비나 무기를 구입하려는 이유는 한양에서 제작해보니 생산단가가 더 높았기 때문이다. 한양으로 올라간 전에 부하들의 실력이 인정된 의미도 있었다.
‘그들의 실력을 보고 조정에서 군사 정책이 조금 변했군.’
최인범은 조정에서 나름 지방에 우수한 군대가 있다는 것과 자신의 출신성분 때문에 상당한 견제가 있다는 것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