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타임트레인-113화 (113/519)

113화

“나리, 이것들은 뭐에 쓰는 거죠?”

그러자 최인범은 즉시 답해 주었다.

“그 시설들은 모두 계란을 인공으로 부화하는 거야.”

“어미닭이 품어서 병아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해도 알이 부화가 돼요?”

“당연하지. 일단 불을 때서 방안의 온도가 일정하게 유지되어야하니 연료로 대장간에서 사용하는 석탄을 이용하도록 해.”

“알겠습니다.”

최인범은 고정적인 수익 사업을 생각하다가 병아리 부화장을 운영해 보기로 결정했다. 물론 성공하기 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리겠지만 일단 시작하기로 했다. 그게 성공하면 다음에는 오리나 꿩도 인공으로 부화해 사육해볼 계획이다.

꿩의 깃털은 사용처가 아주 많았다. 펜으로도 사용하고 화살을 만드는 중요한 재료다. 물론 살코기도 닭보다 맛이 좋아 고가에 팔수 있었다. 오리털로는 겨울에 사용하는 침랑을 만들어볼 생각이다.

부화장으로 사용할 방은 온돌인 구들 방식이 아니다. 배관을 통해 더운 공기를 보내 방의 온도를 조절한다. 온돌과는 조금 다른 방식이다.

“함경도로 떠나기 전에 한번은 부화시켜야 되니 서둘러.”

“넷! 빨리 만들겠습니다.”

사노비인 행정병들은 모두 최인범이 지시하는 그대로 움직였다. 대장간도 다녀오고 작은 집에 길게 옹기로 만든 배관 시설을 하고 있었다. 전혀 새로운 방식이고 배관의 설치가 매우 힘들기 때문에 대규모로 만들기는 어렵다.

이런 작업들을 감독하며 며칠을 보내자 착호부대원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설날은 가족들과 보내고 나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배도치가 사랑방으로 찾아와 보고했다.

“소대장님, 이미 벼락주막에 착호부대원으로 들어오겠다고 시험을 본다며 사람들이 모이고 있사옵니다. 바로 1차 시험을 시작할까요?”

“많이 모였나?”

“넷! 전과 비슷하게 많이 모였사옵니다.”

주상전하께서 이미 하명하신 터라 함경도로 가긴 가야 하니 서두르는 것이다. 최인범은 다른 복잡한 일이 없고 그런 기본적인 업무야 배도치가 충분히 감당하게 생겨 승낙했다.

“선발은 빠를수록 좋으니 그게 좋겠군. 공연히 시험에서 떨어질 사람을 계속해서 붙잡아 둘 필요는 없으니까. 그보다 군복이나 개인장비는 모두 주문했냐?”

“넷! 개인장비는 100벌을 주문하고 무기는 50벌, 군복은 500벌을 주문했어요. 대량으로 주문하니 싸게 제작이 가능하더라고요. 만드는 사람도 고정적으로 수입도 생기고요.”

너무 많은 군복을 주문해 이내 물었다

“왜? 그렇게 군복을 많이 주문해?”

“소대장님, 부대원이 필요한 만큼은 쓰고 나머지는 비축해 놓으려고요. 그리고 주문한다고 금방 만들어 지지는 않죠. 그래서 처음에는 200벌을 가져오고 매달 30벌씩 가져올 겁니다. 사실 무기 이외에는 거의 새로 지급해야 되게 생겼어요. 평소에도 입고 다녀서.”

“알았어. 모두 보급병에게 넘겨줘서 원가를 잘 계산해서 판매하도록 처리해. 면포가 생기면 그것으로 말을 구입하도록 하고.”

“넷!”

산적에게 빼앗은 재물이 많아 그것을 모두 소모하기 위해서 주문을 많이 했다. 배도치는 자신이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어봐야 관리하기만 거북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배도치가 명령을 받고 벼락주막으로 돌아가자 양반인 권영묵 등 세 명의 행정병들이 찾아 왔다.

“일찍 돌아왔군.”

“넷! 부대의 신병들도 새로 선발해야 하고 소대장님께서 함경도로 언제 떠날지 너무 궁금해서요.”

“문과를 볼 생각은 없고?”

“예, 문과는 완전히 포기하고 내년에 무과나 볼 생각입니다.”

올해는 기해(己亥:1539년)년으로 내년에는 조정에서 정기적으로 과거를 보는 식년이다. 그 때문에 각 지방에서는 올해 초시(향시)를 보게 된다. 검교 직으로 임명된 사람들은 초시를 보지 않아도 무과에서 본과를 볼 수 있다.

이제 행정병들이 왔기 때문에 신병들의 선발 업무는 내무반장인 배도치와 분대장 그리고 행정병들이 같이 하게 되었다.

최종 시험일로 공고일이 정월 대보름날이라 미리 1차 시험은 끝내기로 했다. 혹시 늦게 응시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당일에 접수 받아 시험을 볼 수 있으니 별로 문제될 것은 없었다.

부하들이 신병들의 선발 시험을 보는 동안.

사랑채에는 많은 양반들이 모여 바둑을 두었다. 전에 윤 진사와 내기 바둑을 두던 예천의 두 진사들이나 경상북부 지역의 고을에서 모여든 양반들이다.

벼슬이 올라 축하한다고 찾아와 내기바둑을 두며 죽쳤다. 30여명이 모인 사랑방은 완전히 동네에서 흔히 보이는 기원처럼 변했다. 매일 같이 닭이며 돼지고기며 먹고 마셨다.

‘이 양반들이 남의 집에 와서 사발 농사를 짓나? 왜 며칠씩이나 눌러 있는 거야?’

내기바둑을 두어 얼마든지 재물을 딸 수 있다. 하지만 최인범은 그저 가볍게 맞바둑으로 두어주면서 다른 사람들이 내기하는 모습만 지켜보았다. 굳이 내기바둑을 두어 재물을 모으지 않아도 충분할 정도의 재력은 이미 있었다.

아무래도 뭔가 대하는 것이 달라야 돌아갈 속셈으로 보였다. 그냥 가라고 할 수는 없고 기왕에 재물들은 가지고 왔다는 것을 아니 최인범은 슬며시 제안했다.

“우리 이렇게 산만하게 바둑을 둘 것이 아니라 새로운 내기 바둑을 두죠.”

“지금도 내기를 두고 있지 않나? 최 사정도 같이 내기바둑을 두지 그러나?”

양반들의 이런 응수에 최인범은 조심스럽게 새로운 방식을 제안했다.

“제 이야기는 그런 내기가 아니라. 여기 모인 분들이 모두 면포를 200필씩 내고 단판으로 계속 승부를 보아 최종적으로 승리하는 사람이 모두 차지하는 바둑대회를 열자는 겁니다. 패한 사람은 그 즉시 손을 탁탁 털며 깔끔하게 여기서 떠나고요.”

이런 제안에 처음에는 다소 의아한 표정이던 양반들은 자세하게 설명하자 모두 찬성했다.

“좋네. 그럼 대진표는 어떻게 되나?”

“그야 16개의 숫자가 적힌 번호표를 뽑아 같은 번호끼리 두시면 됩니다. 우승자는 앞으로 경상북부의 최고수로 칭하고요.”

우승하면 6000필의 면포가 생기니 견물생심이라 다들 덤벼들고 있었다. 결국 자신의 재물을 걸고 두는 바둑대회가 벌어졌다. 실로 어마어마한 큰 판을 두기로 했다.

패자부활도 없는 단판 승부라 한 판이 끝날 때마다 한 사람씩 사랑채에서 조용히 떠났다. 그들은 떠나면서 그제야 알았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젊은 최인범은 바둑 실력이 상당한 고수라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여전히 대국에 대한 아쉬움은 많았다.

‘에이, 이길 수 있었는데. 한 수의 실수로 졌어.’

길게 이야기할 것도 없었다. 32명이 참여해 결국 그간 대접한 비용을 제하더라도 무려 관포가 6천필이라는 거금이 최인범의 손아귀로 들어왔다.

최인범은 바둑대회를 열어 스스로 우승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스스로 만든 바둑대회지만 이른 봄에 찾아온 엄청난 재물의 복이다. 이른 봄에 찾아온 이런 행운으로 최인범은 느낌이 아주 좋았다.

‘올해는 계속 행운이 찾아오게 생겼어.’

다들 아쉬움이 많이 남는 바둑대회다. 그래도 조금 고수에 속한 양반들은 이런 결과가 나오자 최인범이 바둑의 최고수라는 것을 인식했다.

“확실히 운이 좋아서 최종 우승자가 된 것은 아니야.”

세상이란 이렇게 꼭 당해봐야 아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세상에는 당하고 나서도 모르는 사람들이 있었다. 윤 진사는 당하고도 모르는 사람에 속했다.

아침이 되어 다들 떠나고 몇몇 사람이 남은 가운데 윤 진사는 여전히 미련이 남았다. 그는 최인범에게 다시 대국하고 싶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 눈치가 보이자 최인범은 좋은 기회라고 판단해 슬며시 말했다.

“운 진사님, 전에 제가 창락골에서 말을 사면서 드린 약속어음 저에게 돌려주세요. 제가 그 대신 관포 어음으로 바꿔드리죠.”

“그럽시다.”

윤 진사에게 써준 약속어름을 받고 1500필의 관포 어음을 넘겨주었다. 그러자 윤 진사는 대국 중에 아주 미세한 차이로 패한 사실이 떠올라 슬며시 제안했다.

“우리 단판에 어음을 모두 걸고 한 판 합시다. 최 사정은 이제 경북지역에서 최고수니 대접하는 의미로 두 점 접바둑으로요.”

바둑대회로 둔 대국에서는 겨우 3집을 지는 정도로 미세한 차이다. 서로 실력이 비슷해 보이는 대국이었으니 두 점 접바둑이면 반드시 이길 수 있다고 확신했다.

나름 많이 생각한 반드시 이기기 위한 좋은 술수다.

윤 진사의 이런 멍청스러운 제안에 최인범은 속으로야 ‘너는 진짜로 잘 걸렸어.’하며 좋았지만 은근한 투로 거절했다.

“맞바둑을 두다가 갑자기 두 점 접바둑으로 큰 내기를 두기는 그렇군요.”

접바둑이라면 승률을 10할이라고 확신한 윤 진사는 느긋하게 다시 내기를 제안했다.

“최 사정은 경북 지역에서 최고수라는 위치도 있으니 그런 정도의 치수로 둬야지. 우리 한 판을 두어 깔끔하게 끝냅니다.”

많은 면포 어음을 보자 욕심이 나서 이런 제안을 했다. 노탐도 이런 정도면 치유 불가능한 중증이다. 하지만 이미 내기 바둑에 푹 빠진 윤 진사는 그런 자신의 어리석음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윤 진사가 다시 이렇게 말하자 최인범은 속으로 생각했다. 내기바둑을 두어 남의 재물을 딸 기회가 날이면 날마다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이번에 윤 진사의 재물을 최대한 우려낼 결심을 했다.

‘마침 군마도 많이 필요한데. 이참에 최대한 털어야겠어.’

돈벌이 잘되던 호랑이도 너무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사라졌다. 또한 만만하던 산적들도 이미 경북 지역에는 사라져 그들을 잡아서 돈을 벌기도 어렵게 생겼다. 더구나 함경도로 가도 호랑이가 없게 생겨 별로 기대하기 어려워 보였다. 그러니 지금은 이런 방법이 유일한 큰 돈벌이다.

윤 진사의 재산을 털어 먹기로 작정하고 최인범은 더 많은 재물을 걸자고 슬며시 제안했다.

“윤 진사께서 그렇게 저와 승부를 보시길 원하시면 두도록 하죠. 기왕에 두는 내기니 한판에 면포 8000필을 걸고 해보죠. 제가 가진 전부를 거는 겁니다.”

아니면 말고 식으로 과감하게 제안했다. 그러자 윤 진사는 약간 놀란 표정을 지으면서도 쾌히 응답했다.

“좋소. 그럽시다.”

두 사람의 이런 엄청난 대화에 아직도 미련이 남아 사랑방에서 떠나지 않던 양반들은 입이 떡 벌렸다. 엄청난 내기를 벌이자 나가려던 발길을 돌려 바둑판 옆으로 다가와 둘러앉았다.

큰 내기가 결리면 구경꾼들도 긴장해 보게 되는 재미가 있는 법이다. 다들 면포를 잃고도 여전히 뭐가 어찌 되어 가는지 눈치를 채지 못한 양반들만 남아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큰 내기를 둔다는 두 사람을 보며 물었다.

“진짜로 그런 큰 내기를 하는 거요?”

“하기로 했으니 반드시 해야죠. 이번 판을 이겨야 경북지역에서 최고 고수죠.”

결국 최인범은 우승상금인 200필짜리 어음 36장으로 7200필 관포 어음을 비롯해 몇 장의 마적과 우적을 내놓았다. 그러자 윤 진사는 1500필의 관포 어음과 모자라는 판돈은 다른 식으로 채웠다.

이집과 가까운 곳에 있는 넓은 밭과 논을 거는 매매증서를 써서 거는 형식으로 판돈을 맞추었다.

두 사람 모두 재력이 많은 갑부다. 하지만 이번의 단판 승부로 살림이 기우뚱할 정도인 너무 큰 내기다. 시원치 않은 재력가는 한방에 망하게 되는 수준이다.

드디어 대국은 시작되고 시간은 점점 흐르고 있었다.

탁! 탁!

긴장한 상태로 두는 내기바둑이라 두 사람 모두 매우 느린 속도로 두었다. 윤 진사는 어떻게 해서라도 크게 이기려고 고심했다. 그러나 대국은 의외로 자기의 생각과는 다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이거 자칫하며 지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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