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화
속심이야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김시철 풍기군수 그래도 겉으로는 매우 반가운 표정으로 맞이했다. 벼슬을 받는 과정이라 다들 동헌 앞마당에서 엎드려 절하며 풍기군수가 전해주는 교지를 받았다.
제일 먼저 최인범은 오위도총부 갑사인 사정(司正)(정7품)으로 임명되었다. 풍기 관아의 동헌에서는 계속해서 ‘성은이 망극하나이다.’라고 목소리가 우렁차게 터져 나왔다. 여러 명이 계속해서 검교직으로 벼슬을 받았다.
교지의 내용은 칠복이 형제가 죽죽이 주막에서 알아냈던 정보와 똑 같았다. 벼슬을 진짜 받게 된 대원들의 표정들은 너무 환하게 밝았다. 이제는 남보란 듯이 고개를 들고 다니게 되자 다들 싱글벙글 좋아했다.
부하들이 다들 너무 좋아하니 최인범도 마음이 흐뭇해졌다. 제일 기분 좋은 일은 무엇보다도 칠복이 형제를 면천시키게 되고 벼슬까지 해서 너무 기뻤다.
‘그동안 고생한 보람이 있어 정말 다행이야.’
주상께서 내린 교지 이외에 최인범에게 별도로 내린 교서가 있었다. 그 안에는 새로운 내용이 담겨 있었다. 교서에는 조정에서 호피가 많이 필요하니 착호 부대를 50명 이내로 구성해 멀리 함경도로 가서 활동하라는 명령이다.
내용을 자세하게 살피던 최인범은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토했다.
“후우! 전에는 면포를 조금이라도 주더니 이번에는 식량도 지원을 전혀 안하는군.”
교지를 권영묵에게 넘겨주자 읽어보고 그도 역시 난감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소대장님, 교서 내용은 완전히 그냥 사냥허가서와 똑 같군요. 공적에 대한 보상도 전혀 없고. 착호 부대에 속하면 군역을 면하게 해준다는 혜택 말고는 전혀 없네요.”
“앞으로 점점 먹고 살기가 힘들겠어.”
“그렇습니다. 이런 식이면 착호부대를 운영하기 너무 힘들죠.”
언제까지 함경도로 가라는 시기도 없고 또한 호랑이를 얼마나 잡으라는 내용도 전혀 없었다. 결국 무기를 소지하고 부대원을 소집할 명분만 있는 사냥허가장에 불과했다. 다만 보상금으로 호피를 한 장당 면포 500필로 정한다고 했다. 이런 내용을 듣자 배도치는 신이 나서 말했다.
“소대장님, 빨리 함경도로 떠나죠.”
배도치가 서두르자 최인범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아니야, 조정에서 호피가격을 대폭 올린 것으로 봐서 이제 호랑이를 찾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거야. 그러니 마냥 좋아할 일은 아니다.”
“아하, 그렇군요. 조정에서 그냥 호피 가격을 올릴 이유가 없죠.”
“내가 보기에 함경도로 가도 호피를 쉽게 구하기는 어려울 거다.”
“그렇겠군요.”
최인범은 풍기군수와 작별 인사를 나누고 동헌을 나와 행정병인 권영묵 상병에게 지시했다.
“권 상병은 전에 소집됐던 부대원에게 재소집하고 새로 모집되는 착호 부대원은 모두 22세 이하로 정해. 선발 시험은 내년 정월 대보름으로 정해서 알려.”
“넷! 모집 방법은 전과 같나요?”
“전처럼 장비는 모두 개인이 면포 50필 주어 구입하는 것으로 정해.”
“명을 따르겠습니다.”
최인범은 전에 양반들만 진급한 사례가 떠올라 추가해서 지시했다.
“일단 시험에 응시하는 사람은 모두 양민으로 정해. 풍기 지역의 주점에 벽보를 부착하고 타지로 떠나는 상인들에게 전해서 다른 고을의 주점에도 모집요강이 적힌 벽보를 붙여서 널리 알리도록 해. 그게 끝나면 집으로 돌아가서 쉬다가 준비가 필요할지 모르니 10일 정도에 동물농장으로 와.”
“알겠습니다.”
다른 부하들도 모두 집에 돌아가도록 조치를 내리고 동물농장으로 갔다.
동물 농장에는 여전히 사랑채 건축이나 기타 행랑채 건축으로 많은 목수나 인부가 있었다. 가축도 점점 늘어나고 이곳에서 지내는 사람 수가 늘어나 집의 규모는 더욱 커졌다.
낡고 작았던 본채는 허물어져 이미 다른 건물의 건축 재료로 사용했다. 2동의 사랑채에서 1동 역시 마찬가지로 허물어져 다른 건물의 재료로 이용되었다.
커다란 양반집 형태인 집은 안채, 별당, 사랑채, 행랑채, 축사, 관리사로 축사와 관리사는 조금 떨어져 지어졌다. 여전히 건축 중이라 약간 어수선하지만 그래도 질서정연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이제 집안의 대소사를 모두 챙겨야 하는 마순돌과 먹쇠를 옆에 데리고 다니며 자신의 계획을 말했다.
“건축은 목수에게 맡기면 되지만 가축은 직접 자주 살피세요.”
“예, 잘 하겠습니다.”
이제 새로운 도약을 하기위해 획기적인 방법을 모색해봐야 하는 시기다. 이미 건축이 끝나 사용하는 사랑채로 가솔들을 모두 불러 지시했다.
“앞으로 집안 대소사는 마순돌이 책임지니 그렇게 알고 월녀는 백두상단을 같이 따라 다니도록 해.”
“예! 오라버니.”
“다른 사람은 전에 하던 업무 계속하고. 갑중이는 올 봄에 삼포와 과수밭을 만들면 그 관리를 책임져.”
“알겠습니다.”
천먹쇠는 여전히 벌목과 판매 담당이다. 양돌쇠는 가축 담당, 조갑중은 과수밭이나 인삼포를 담당하도록 업무를 분담해 주었다. 하루 종일 집안일을 챙기고 나자 어느새 밤이 되었다. 자리에 누워 잠시 다음에 챙겨야 될 일들을 골몰해 구상했다.
‘내년 초부터 바쁘겠어.’
제일 시급한 업무는 필요한 군마를 최대한 확보하는 일이다. 다음에는 주상전하의 명을 받았으니 언제 함경도로 갈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더구나 좋은 돈벌이가 되던 호랑이도 대부분 사라졌으니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새해가 시작되는 정월 초하루. 이날은 민족의 큰 명절로 흔히 설날이라고 부른다. 최인범은 차례를 지내고 나서 사랑채에서 가솔들과 같이 식사를 했다.
주변에 따로 가족이 없으니 사실 가솔들이 자신의 가족인 셈이다. 가솔들은 떡국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소곤거리고 있었다. 대부분 어떤 여자가 안방마님으로 들어오게 될지에 대해 궁금했다. 서로 각자의 성향이나 성품대로 예상해보고 있었다.
대부분 한양에서 고관으로 있는 명문가문의 규수로 의견들은 모아졌다. 그런 이야기를 듣던 천먹쇠가 한마디 했다.
“혼인은 전에 과거에서 급제해야 한다고 하셨는데.”
“그렇게 되면 한양에서 혼인하게 될지도 몰라.”
“그렇지.”
작은 소리로 나누는 대화지만 모조리 듣고 있었다. 하지만 최인범은 그런 가솔들의 말에 답하거나 아는 척을 하지 않았다. 이유는 자신도 어떤 여자를 아내로 맞을지 전혀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혼인을 빨리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정초부터 공연한 이야기들 하는군.’
오늘은 최인범의 생일이라 생일상을 같이 먹게 되는 것이다.
본래는 같이 먹도록 상을 차리라고 했다. 하지만 가솔들의 수도 너무 많았다. 신분의 차이가 분명한 조선사회에서는 말썽이 생긴다고 해서 상만 따로 차렸다.
다른 건물이야 한창 건축 중에 있다. 이미 준공되어 제일 큰 방인 사랑채에서 모여 같이 식사하게 되었다.
안방마님이 있었다면 아마도 사랑채 대신 안채부터 지었을 것이다. 집은 제일 먼저 행랑채가 지어지고 다음에 사랑채 그리고 마지막으로 안채가 한창 지어고 있었다.
사랑방에 차려진 생일상은 길게 늘여 있었다.
중앙의 상에는 최인범이 앉고 좌우에는 마칠복과 마팔복이 앉았다. 그리고 길게 한 줄로 놓인 상의 우측에는 행랑아범인 마순돌, 천먹쇠, 양돌쇠, 조갑중이 앉았다. 맞은편에는 새로 사노비가 된 행정병인 이인철, 임정범, 조남우, 장주환, 홍성철이 앉았다.
그 끝에는 별도로 상을 놓고 이 집에서 사는 여자들인 최월녀, 명봉댁인 임씨, 조일순, 조이순, 조삼순이 상을 놓고 앉아서 떡국을 먹었다.
사랑방으로 들어와 있는 식솔들을 바라보며 최인범은 나름 만족했다.
‘이제야 동물농장이 아니고 사람들이 사는 꼴로 조금 변했어.’
새해라 가벼운 덕담이야 이미 끝났다. 올해에 시작하는 삼포나 사과밭에 대한 이야기가 주종을 이루었다. 최인범은 명봉 댁을 바라보며 슬며시 물었다.
“명봉 댁은 전에 잠시 지내던 명봉사에서 인삼을 재배해 봤다고?”
“예, 그저 작은 화초밭처럼 삼씨를 뿌려서 키워봤어요.”
최인범은 이런 응수에 귀가 번쩍해서 급하게 물었다.
“몇년 동안?”
“5년 동안 전국을 떠돌며 다니다가 명봉사로 가서 주로 삼을 키워 봤어요.”
“어떻게 삼을 관리해야 되는지는 잘 알겠군.”
“예.”
이런 말을 듣자 최인범은 삼포와 과수밭을 책임지기로 결정한 조갑중에게 지시했다.
“갑중아! 앞으로 삼포 관리는 명봉 댁과 같이 협조해. 재배 경험이 있는 명봉 댁은 갑중이에게 신경을 써서 잘 알려주고.”
“알겠사옵니다.”
이렇게 지시하자 듣고 있던 천먹쇠가 실실 웃으며 말했다.
“사정 나리, 그렇지 않아도 두 사람은 밤이고 낮이고 협조를 아주 잘하고 있어요.”
매우 의미 삼삼한 요상한 말로 이미 두 사람 관계가 그렇고 그렇다는 뜻이다. 그러자 최인범은 약간 놀란 표정을 지으며 큰 목소리로 물었다.
“뭐라? 벌써 둘이 그렇단 말이지.”
“예! 그러니 둘이 잘 해 나랄 것이니 염려하지 마세요.”
이런 천먹쇠의 응수에 듣고 있던 명복 댁이나 갑중이는 어느새 얼굴이 벌게졌다.
‘어! 저 녀석 봐라 제법인데.’
조갑중은 전에는 옆집 과부를 꼬이더니 이번에는 비구니 출신을 꼬였다. 아무튼 생긴 것과는 달리 여자를 잘 꼬이는 남다른 재주가 있었다.
최인범이 보기에 여자를 꼬이는 재주로 돌쇠가 많아 보였으나 실상은 전혀 달랐다.
이미 집안에 있는 남녀가 정분나면 혼인시켜줄 생각이 있던 터라 즉시 마순돌에게 지시했다.
“행랑아범은 바로 혼인하도록 주선해. 같이 살 집은 근처에 따로 지어서 마련하고. 앞으로 다른 사람도 혼인하면 마찬가지로 근처로 이사하고.”
“알겠습니다. 그렇게 준비하겠습니다.”
이런 대화를 나누고 다시 삼포를 만드는 일에 대해 지시했다.
“갑중이는 내가 전에 알려준 그대로 그늘막을 지어 삼포를 만들어 봄에 파종하고 다른 사람들은 내년에 옮겨 심을 수 있도록 그늘막을 만들 준비를 철저히 해.”
“넷!”
사과 밭을 만드는 경우야 이미 대부분 잘 아는 터라 특별히 지시하지 않아도 된다. 다행이 좋은 품종의 묘목을 구해 봄에 심기로 결정되었다. 심게 되는 사과나무 사이가 넓어 그곳에는 호밀을 심기로 했다. 이미 남쪽인 집 주변의 밭에는 호밀이나 콩을 심어 사료작물로 사용했다.
말, 소, 돼지나 멧돼지가 그리고 닭과 오리가 많아 관리하기가 조금 어렵다. 하지만 부근에 사는 양민들이 찾아와 돕기 때문에 별로 힘들지는 않았다. 우마차로 천먹쇠가 그들의 일을 도와주기 때문에 품앗이로 일을 도왔다.
대가축인 소나 말은 계속해서 증식시키고 있다. 돼지나 닭과 오리는 새끼를 팔거나 비육시켜 판매해 사료구입비를 충당했다. 식사가 모두 끝나고 상이 치워지자 각자 해야 할 일들을 위해 부지런히 움직였다.
최인범은 사노비인 행정병과 의무병들과 같이 새로운 사업을 신중하게 상의했다. 그동안 틈틈이 그려놓은 그림을 보여 주며 지시했다.
“장주환과 홍성철은 그림대로 한 번 만들어봐.”
새로운 방법으로 지붕이 낮은 방을 만들고 그 방 안에 놓게 되는 기물들이 다들 처음 본다. 그래서 장주환이 조심스럽게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