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화
내무반장 휘하에는 1분대장인 민정만을 부내무반장으로 정해 제일 선임분대장임을 정확하게 명시했다. 앞으로 부대를 어떻게 육성할지도 말했다.
“우리는 모두 기마 부대원으로 전력을 보강하니 모두 승마 연습을 자주 하고 또한 각궁으로 편전은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훈련해.”
“넷!”
최인범은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기마부대는 일단 전 대원이 말을 보유하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기동성을 높이고 전투 시에는 일부 부대원만 말을 타고 전투에 참여해 수시로 말을 교체해서 타는 방법으로 전투력을 높이기로 했다.
이런 자세한 설명에 배도치가 은근히 걱정되어 물었다.
“소대장님, 그러려면 말이 많이 부족하네요. 말은 어떻게 확보하죠?”
“그건 너무 걱정하지 마. 내가 말은 모두 확보해 줄 테니까. 승마 연습이나 자주해서 지금보다 더 능숙하게 말을 다룰 수 있도록 해.”
“잘 알겠습니다.”
자신도 연습이 필요하지만 부대원들도 앞으로 기마부대원으로 양성하려면 오랜 기간 훈련해야 된다. 그러니 본래 구상하는 부대가 되려면 아직도 한참 멀었다.
기마부대라고 해서 말만 잘 타면 되는 것도 아니다. 말을 타고 활을 잘 쏴야 되니 시간이 그리 넉넉한 편도 아니다. 최소한 몇 년은 고된 수련과정을 거쳐야 된다.
“기본 훈련은 동물농장에서 하고 승마 연습은 내성천에서 해. 다른 특수훈련은 모두 산으로 들어가서 할 거다. 지금 생각에는 전에 산적들을 몰아낸 산채를 이용하는 것도 좋을 거야.”
“그렇군요. 거기라면 훈련할 장소로 적당해 보입니다.”
당장 착호부대를 소집할 수 없는 입장이고 또한 그런 부대를 유지해 나갈 재력도 없었다. 현재 간부급이 20명 이내라 이들만이라도 계속 거느려야 한다.
동물농장에도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 또한 백두상단에도 호위무사가 필요했다. 자신이 백두상단과 같이 상행을 떠날 때는 이들을 같이 데리고 다닐 계획이다.
부대원들과 같이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부대 발전에 대한 의견들을 교환했다. 밤이 늦도록 술을 마시며 시간을 보내다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잠에서 깨어나 밖으로 나오자 윤 진사 댁 행랑아범이 찾아왔다.
“무슨 일이요?”
“나리, 진사어르신이 아침 식사는 댁으로 오셔서 하셨으면 합니다.”
“그래요? 무슨 일이요?”
“긴히 드릴 말씀이 있다고 하십니다.”
“알았소. 가도록 하지.”
윤 진사가 초대했으니 그 댁으로 찾아가서 두 가지 사실을 확인해볼 생각이다. 하나는 단순한 호기심이고 하나는 자신에게 매우 중요하다면 중요한 일이다.
낡은 군복 차림이라 보기는 조금 그래도 그런 외모에 별 신경 쓰는 입장이 아니라 주막에서 나와 윤 진사 댁으로 갔다.
“어서 오시오. 내가 찾아가야 하는데 번거롭게 오라고 했군요.”
“아닙니다. 저도 만나서 부탁할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사랑방으로 들어가 거창하게 차려놓은 아침상을 먹으며 서로 상대방을 찾은 용건에 대해 말했다. 먼저 윤 진사가 입을 열었다.
“제 딸아이가 생명을 구해준 은인을 만나고 싶다고 해서.”
“아, 그래요.”
잠시 기다리자 윤봉화가 어미인 임여녀와 같이 고급스러운 비단 옷으로 곱게 차려입고 와서 큰절을 올렸다. 만난 지 벌써 1년이 지나 전보다 성숙해지고 미색이 고와졌다.
최인범은 직접적으로 물어 보기는 뭐해 슬며시 간접적으로 물었다.
“윤 소저는 혹시 전에 은장도를 지니다 잊은 적이 있어요?”
이런 갑작스러운 물음에 윤봉화는 잠시 생각하다가 이내 답했다.
“저는 아직까지 은장도를 지녀 본 적이 없는데요. 그러니 그런 일은 없습니다.”
“그렇군요. 잘 알았습니다.”
이런 대화가 오가자 윤 진사와 임여녀는 눈빛을 빛내다가 딸의 말에 얼굴이 우거지상으로 변했다. 두 사람은 거의 동시에 이렇게 생각했다.
‘아이고, 좋은 기회를 제 발로 보기 좋게 차네.’
뭔가 사연이 있어 보이는 은장도 이야기다. 일단 자기가 잃어 버렸다고 하면 인연이 될 수도 있는데 은장도 자체가 없었다고 답하니 참으로 멍청한 딸이다.
일단 은장도의 주인이 자신이 구해준 윤봉화가 아니라고 하자 다시 윤 진사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집에 며느님이 있다고 들었는데. 제가 여러 번이나 이곳을 오갔으나 어째 한 번도 보지 못하네요.”
“아하, 그게 조금 궁금하신 모양이군요. 사실 며느리는 오래 전부터 병이 들었어요. 늦게 마마가 생겨 얼굴이 이상하게 변해 외부 출입을 잘 안합니다. 어쩌다 밖으로 나오죠.”
이런 대답에 최인범은 속으로 ‘후유! 천만다행이네.’하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분명 얼굴이 아주 정상적으로 매끄러웠으니 이집 며느리는 절대로 아니었다.
하룻밤의 풋사랑이고 아무도 모르는 비밀이라고 해도 혹시 남들이 알게 되면 그야 말로 자신의 인생에서 폭탄이다.
여자들에 대해 묻는 것이 뭐해 슬며시 아들의 안부를 물었다.
“아드님이 한강의 노들나루에서 근무한다고 하던데. 잘 있습니까?”
“예, 아주 잘 있습니다. 나중에 한양으로 올라가시면 그 놈을 잘 부탁드립니다.”
“제가 해줄 일이 별도로 있나요. 저야 아직 정식으로 관료도 아닌데요.”
이렇게 답하자 윤 진사는 이내 정색하며 응수했다.
“최 사정께서는 이제 무과만 보시면 실직인 참상관으로 쉽게 오를 것이고 그러면 한양에서 계시게 될 것이니 꼭 부탁드립니다. 아들이 조금 무술이 시원치 않아도 성실하게 근무할 것이니 적당한 자리를 꼭 부탁합니다.”
“알겠습니다. 기회가 생긴다면 반드시 그렇게 해 드리죠.”
어찌 되었건 윤 진사는 자신과 이래저래 인연이 깊은 사람이다. 물욕이 많은 사람이지만 전에 잔치에 쓰라고 면포도 보내준 일이 있으니 좋은 쪽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악연도 좋게 대하다 보면 좋은 인연으로 변하는 거야.’
일단 두 가지 궁금증을 확인하고 나자 윤 진사를 만나서 하고 싶었던 말을 했다.
“진사 어르신, 제가 몇 가지 부탁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는 전에 저에게 매매하신 칠복이 형제가 이제 벼슬하게 되었으니 그들의 아비를 저에게 넘겨주기 바랍니다.”
“무슨 말씀인지 잘 알겠네요. 외거노비로 지내게 해 형제들의 부담을 덜어 주려고 했더니 최 사정께서 데리고 가겠다고 하면 그렇게 하죠.”
“면포는 200필 드리겠습니다. 그래야 서로 편하니까요.”
“알겠습니다.”
집사를 불러 노비매매 서류를 작성하자 칠복이 형제 아비는 이제부터 최인범의 사노비로 변하게 되었다.
이어서 최인범은 다시 부탁했다.
“진사 어르신 제가 말이 필요합니다. 그러니 꼭 필요하지 않다면 말을 팔아주세요. 여기서 가져간 말의 품종이 좋더군요. 그래서 사가고 싶습니다.”
재력이 많은 윤 진사는 아들이 무과를 본다고 하자 좋은 말을 여러 필이나 사서 놓았다. 하지만 무과는 포기한 상태라 이제 그런 말들이 꼴도 보기 싫었다. 그래서 잘 됐다 싶어 쉽게 답했다.
“필요하면 모두 가져가세요. 나도 늙어서 말을 타지 못하니 가져가세요. 1필당 면포 300필은 줘야합니다. 모두 5필이고요.”
“좋습니다. 그럼 약속어음을 써드리죠. 나중에 동물농장으로 어음을 보내시면 백두상단 어음이나 관포어음으로 바꾸어 드리죠.”
윤 진사에게 약속어음을 써주었다. 그리고 전에 있었던 내기바둑이 생각나 슬며시 물었다.
“혹시 요즈음도 내기 바둑을 자주 두세요?”
“내기 바둑을 가끔 두기는 하는데. 최 사정도 바둑을 둘 줄 아시오?”
“예, 아주 조금 둘 줄 압니다. 언제 풍기로 나오셔서 바둑을 둬보죠.”
“그렇게 합시다. 설은 지내고 나서 바둑 두는 몇 사람과 한번 찾아가죠.”
일단 윤 진사에게 내기 바둑을 주선하도록 슬며시 밑밥을 던져 놓고 말을 인수해서 나오게 되었다.
기다리고 있던 칠복이 형제와 아비인 마순돌이 땅 바닥에 넙죽 엎어져 절했다. 그런 모습을 내려다보며 마순돌에게 말했다.
“앞으로 솔거노비로 동물농장의 행랑아범으로 지내시오.”
“무슨 일이고 열심히 하겠습니다.”
“너무 애쓰지는 말고 그곳 농장에는 어른이 없으니 그냥 어른 노릇만 하시면 됩니다. 가축을 잘 아신다니 축사 관리도 조금 돕고요.”
“잘 알겠습니다.”
농장에는 젊은 사람들만 많았다. 그 때문에 그래도 세상을 오래 산 사람도 필요하던 참이라 잘 되었다. 아들이 벼슬을 하고 있으니 같은 노비는 물론 양민 출신이라도 마순돌을 함부로 대하지 못하니 질서는 확실하게 잡힐 것 같았다.
최인범은 말을 타고 능숙하게 가는 마순돌을 보며 최인범은 혼자서 생각했다.
‘말 타는 솜씨가 제법이니 농장에서 승마 교관을 시켜도 되겠어.’
일행은 빠르게 이동해 풍기 고을에 도착하게 되었다. 그러자 소문을 들은 사람들이 나와서 기웃기웃하며 구경했다.
천하의 망나니라고 소문난 배도치와 그의 패거리가 벼슬까지 했다니 세상이 뒤집어지는 느낌인 것 같았다.
“세상 참 살다보면 별일이 다 있어. 배도치가 저렇게 변하다니.”
“그러니 세상이 살만 한 거지.”
양민들이야 이렇게 생각하지만 양반들은 구경을 나와서 끼리끼리 모여 수군거렸다.
“저런 놈도 벼슬을 주며 왜 우린 안주는 거야. 세상 참 이상하게 돌아가네.”
“이번에 사정으로 올랐다는 최인범도 그래, 출신도 정확하지 않은 타지 사람으로 겨우 양자로 들어와 양반이 되었는데 전하께서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리 처결하시는지 모르겠어.”
“그러니 나라가 어수선하지.”
신분 차별이 엄격한 조선에서 최인범이나 그의 수하들이 벼슬하게 된 것은 양반들 사이에는 불만이 많은 큰 사건이었다. 물론 이런 경우가 전에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작은 지역에서 양민으로 벼슬길로 오른 사람이 무더기로 생기자 논란거리로 변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일부 양반들은 상소를 올린다고 수군거렸다.
“상소라도 올려 바로 잡아야 해.”
“자네가 상소를 올린다면 내가 연서를 쓰지.”
“좋아, 그렇게 하세. 그리고 향교로 가서 뜻을 모아 보세.”
지방의 고을에서도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중이다. 한양의 조정에서는 연일 최인범의 빠른 진급이나 노비의 면천과 벼슬의 하사로 소란스러움은 더해가고 있었다.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최인범 일행은 풍기관아로 가서 동헌에 모였다. 그러자 풍기군수가 반갑게 맞이하며 인사를 했다.
“어서 오시게. 기다리고 있었네.”
“귀향하다가 소백산으로 들어가 동절기 훈련을 하느라 조금 늦었네요.”
“그 소식을 모두 들었네. 어서 교지부터 받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