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화
심마니들은 자신들을 돕는 최인범 일행에게 무척 감사하게 생각했다. 서로 상부상조하는 터라 가볍게 응수해주고 있었다.
“그동안 저희들의 말을 정성스럽게 돌봤지 않습니까. 우리가 더 고맙죠.”
최인범은 훈련기간 내내 말들은 모두 심마니 마을에 맡겨 두었다. 그래서 말을 찾자 대원들은 짐들을 말에 올려놓고 걸어가고 있었다.
소대장인 최인범이 걸어서 가기 때문에 말을 타고 갈 수 없었다. 목표지점이 그리 멀지도 않고 조금 여유롭게 걸어가는 눈길이라 걸을 만했다.
어제 잡아 놓은 사슴고기는 각자의 배낭에 가득 담겨 있었다. 모두 집으로 가져가 가족들에게 줄 선물이다. 또한 배낭 위에는 사슴가죽이나 곰 가죽들이 한 장 씩 있었다.
“가다가 사슴 한 마리 잡았으면 좋겠네.”
“나는 멧돼지.”
각자 좋아하는 고기를 선택하고 있었다. 이들은 죽죽이 주막에서 먹은 소주 안주로 쓸 고기를 염두에 두고 각자의 의견을 말하는 것이다.
“소대장님, 가다가 멧돼지나 사슴이 없으면 어쩌죠?”
“없으면 동네로 들어가 개를 잡으면 되지.”
“아하, 그러네요.”
가볍게 이런 대화를 나누며 최인범 일행은 발길을 돌려 죽죽이 주막으로 향했다. 죽죽이 주막으로 향하다 보니 훈련기간 내내 기억조차 못하던 지난 일이 저절로 떠올랐다.
하룻밤 뜨거운 열정으로 잠자리를 하고 사라진 여자의 얼굴이나 몸매가 흐릿하게 떠올랐다. 몸매는 만져서 대충 알아도 얼굴은 정확하게 알지도 못하는 여자다.
‘그 여자가 누구지? 설마 그 집의 별당에 산다는 며느리는 아닐 것이고.’
아무리 세상사가 혼탁해 막나가더라도 그건 아닐 것 같았다. 그래서 더욱 애매모호 했다. 다소 여유로운 걸음으로 길을 걷자 새삼 발에 밟히는 눈에서 작은 소리가 들렸다.
사각! 사각!
최인범은 무심히 발을 내려다보다가 화들짝 놀랐다.
“어라! 신발에 구멍이 났어.”
이런 소리에 대원들이 다들 구멍 난 신발을 신은 발을 하나씩 들어 보이며 투덜거렸다.
“저희들은 신발 등이나 밑에 구멍이 난지가 벌써 오래 됐어요. 저는 옆까지 손가락이 푹푹 들어간다고요.”
다들 그동안 얼마나 고된 훈련을 한지 잘 알 수 있었다. 고생을 너무 했으니 뭔가 해줘야 한다고 판단한 최인범은 즉시 부하들에게 말했다.
“그렇군. 그동안 고된 훈련을 받느라 고생 많았다. 내려가면 신발부터 하나씩 만들어 주마.”
“에이, 소대장님 신발뿐입니까. 보세요. 옷도 다 헤어져 3벌 중에 단 한 벌도 성한 것이 없는데요. 소대장님, 사주시려면 몽땅 사주 세요.”
“알았어, 그건 배 반장이 알아서 만들어서 나누어줘.”
“넷!”
배도치는 이미 산적을 토벌하며 몰래 챙겨 놓은 재물이 있으니 쉽게 답했다. 그것을 알길 없는 대원들은 다소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배도치를 바라보았다.
이윽고 부대원들은 죽죽이 주막에 들어가 바깥채로 들어가 방으로 들어갔다. 안마당에 들어선 최인범은 주모를 보자 슬며시 물었다.
“골방이 비었나?”
“아뇨! 먼저 온 손님이 있어요. 면포 장사를 하시는 손님이죠.”
“알았어, 나도 대원들과 같이 바깥채에서 묵으면 되겠군.”
부대원들은 들어갔던 방에서 얼른 튀어나와 재빨리 방을 하나 비웠다. 제일 구석진 방으로 들어간 최인범은 배도치에게 지시했다.
“배 반장, 우선 대원들에게 줄 면포부터 구해 보지. 안채 골방에 면포 장사가 있다니 어서 가봐. 이제 새해 명절인데 가족들에게 선물로 가져다주게. 한 사람이 5필씩.”
“넷!”
이때 잡아먹을 개를 사기 위해 밖으로 나갔던 칠복이 형제가 불에 그슬린 개고기를 들고 급하게 뛰어 들어왔다. 두 녀석은 환한 얼굴로 신이 나서 크게 외쳤다.
“소대장님, 큰 경사가 났습니다.”
“뭐? 무슨 경사.”
“헤헤, 저희들의 면천허가서도 도착하고 동시에 검교직인 부사용이 됐어요. 다른 사람들도 사용이나 부사용이 되고 소대장님은 정7품인 사정(司正)까지 올랐고요.”
“누가 그래?”
“이미 이 마을까지 소문이 파다하게 퍼져 다들 알더라고요.”
그저 소문이라는 응수에 최인범은 다시 물었다.
“확실하냐?”
“넷! 주상전하의 명을 받은 선전관께서 한양에서 내려왔는데 우릴 만나려고 희방사까지 찾으러 왔다가 결국 포기하고 풍기군수에게 교지를 전달하고 올라갔다고요.”
그런 정도의 구체적인 소식이라면 믿을 수 있다고 판단해 축하해 주었다.
“면천을 축하해. 그동안 고생 많았어.”
“정말 감사합니다. 이 은혜 평생 간직하겠습니다.”
문뜩 자식들이 팔려가는 모습을 보면서 서럽게 울던 칠복이 형제의 아비가 떠올라 물었다.
“너희들은 아버지를 빨리 만나야지?”
“이미 만났어요. 정말 좋아하시더라고요. 다른 사람들도 좋아하더니 개를 공짜로 주고요.”
“그랬냐?”
칠복이 형제의 아비는 여전히 윤 진사 댁 사노비로 있었다. 그래서 두 형제는 아비를 최인범의 노비로 만들어볼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게 되면 아비가 동물농장에서 지내기 때문에 자신들이 가끔은 직접 돌볼 수 있다.
아직은 때가 아니지만 앞으로 그렇게 하기 위해 두 형제가 합심해서 면포를 모으는 중이다. 아비까지 면천이야 못하니 지금으로는 그런 방법이 최선이다.
칠복이 형제는 이제 내년이면 16세가 되니 호패도 받게 된다. 또한 이번 조정의 조치로 검교직인 부사용(종9품)으로 임명되었다. 호랑이 추포와 산적토벌 작전에 여러 차례 참여해 뛰어난 무공으로 세운 공로가 많았다. 조정에서 드디어 두 가지를 동시에 해결해준 것이다.
최인범은 칠복이 형제가 전해주는 정보를 듣고 느낄 수 있었다.
‘조정에서 뭔가 큰 변화를 시도하는 중이야.’
그의 예상대로 주상전하께서는 장차 보위를 이을 왕세자를 도울 준비를 철저하게 준비하고 있었다. 자신이 즉위한 이후 항상 골치 아픈 분쟁을 일으킨 북쪽의 건주여진과 남쪽의 왜를 상대로 동시에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노력중이다.
주상은 그런 국방정책을 달성시켜줄 최인범이 이끄는 착호부대의 발전을 위해 고심했다. 계속 장계로 공을 올려 보내는 사노비인 칠복이 형제에 대해 나름 큰 결단을 내린 것이다. 그래서 반장으로 활동한 배도치는 처음 벼슬에서 검교직이지만 사용(司勇)(정9품)이 되고 다른 분대장들은 부사용(副司勇)(종9품)을 받았다.
“다른 교지는 별도로 없고?”
“무슨 교지요?”
“착호부대를 다시 소집하라는 그런 내용의 교지.”
“그건 없다고 하던데요.”
기대에는 못 미치지만 자신도 동물농장에서 벌인 사업이 있다. 잠시 착호부대 발전보다는 그 사업에 전념할 시간이라고 판단했다. 아무래도 기반이 튼튼해야 유사시 움직이기가 편했다.
“알았어. 일단 나중에 교지를 직접 봐야 되지만 조정에서 그런 교지도 내렸다니 새로 계급을 정해야 되겠다.”
“계급을 새로 정해요?”
“일단 모두 모이라고 해. 축하하게 술상도 빨리 보고.”
“넷!”
잠시 뒤에 방안으로 부대원들이 모두 모였다. 바깥채의 방들은 미닫이로 되어 있다. 미닫이문만 열면 두 개의 방이 합쳐질 수 있는 형태라 모두 모일 수 있었다.
부대원들은 다들 칠복이 형제에게 들어서 그런지 입이 크게 벌어지며 좋아하고 있었다. 겉으로 표시 내지를 않지만 양반들만 벼슬을 하자 그동안 심기가 매우 불편했었다. 하지만 이제 자신들도 벼슬을 하게 되자 너무 기뻤다.
부대원들이 모두 모이고 술상이 차려지고 나자 모두에게 술을 따라주고 나서 말했다.
“다들 축하한다.”
“감사합니다.”
“이번에 면천이나 또는 벼슬을 못하거나 또 승차를 못한 사람도 앞으로 더욱 잘해서 그런 좋은 기회를 만들도록 해.”
“넷!”
먼저 이렇게 말하고 나서 술잔이 오가는 부드러운 분위기에서 앞으로 착호부대의 조직에 대해 말했다.
“사용인 배도치는 내무반장인 병장으로 칭하고 부사용에 임명된 칠복이 형제나 분대장들은 모두 상병으로 칭해. 그리고 다른 부대원들은 모두 일병으로 정하고.”
“넷!”
이렇게 지시하자 배도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앞으로 소대장님은 뭐라 부르죠?”
“그냥 전과 같이 불러. 새로 구성해도 부대원이 50명을 넘기는 어려우니 소대장이 제일 적당해.”
“알겠습니다.”
엄청나게 빠른 진급이지만 아직도 조정에서 조회에 참여하지 못하는 참하관인 정7품인 사정(司正)이다. 더구나 그것도 명예직인 검교직이라 벼슬이 올랐다고 보기도 어렵다. 그러나 실직을 받아 한 단계만 더 오르면 작은 고을 수령으로 종6품인 현감(縣監)은 해볼 수 있게 되었다.
최인범은 방에 모든 부하들을 불러 자신의 계획을 설명했다.
“앞으로 우리는 50명을 부대 단위로 구성할 거다. 물론 조정에서 더 많은 부대원으로 조직하라면 그때는 전과 같이 시험을 똑 같이 봐서 합류시키는 것이고.”
“새로 들어오는 병사는 모두 이등병이죠?”
“당연하지. 그들은 모두 분대원으로 분산해서 포함시키면 돼.”
“잘 알겠습니다.”
최인범은 전과 비슷하게 소대를 편성했다. 소대 본부에는 행정병 권영묵, 연락병 최산필. 보급병 임무영, 사노비 2명은 일병인 의무병으로 칭하게 되었다.
물론 정과 부를 두어 모두가 사노비인 의무병을 제외한 3개과는 사노비를 한 명씩 배치했다. 그리고 상병이자 부사용인 칠복이와 팔복이는 척후병이란 직책을 주었다.
그렇게 해서 자신을 포함해 11명으로 소대본부를 만들기로 정했다. 모두 말을 가지고 있는 기마병이다.
배도치는 병장으로 내무반장이고 5명의 분대장들은 상병이다. 배도치 휘하에는 이제 분대원인 부하가 없다.
“앞으로 분대원은 분대장을 포함해 7명으로 정해. 그러면 내무반장을 포함해 총 36명이니 소대본부까지 모두 47명이라 전에 내려온 교지 범위로 그게 제일 적당해. 만약 조정에서 인원을 늘리라는 지시가 내려오면 분대원수를 적당하게 늘리면 되고.”
“알겠습니다. 소대장님, 그렇다면 분대원들인 이등병을 새로 선발해야 되겠네요.”
“아직 그건 소집하라는 명령이 없어 법령에 저촉되어 안 되니까. 나중에 내가 농장에서 일할 인부를 모집하면 기존 회원들을 포함해 신병을 모으면 돼.”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