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화
“귀신이 나타났다!”
“우리 마을에 큰 재앙이 닥친 거야.”
왜인들은 너무 무서워 덜덜 떨며 호랑이가 사라진 쪽을 향해 계속 절을 하고 있었다.
본래 왜인들은 귀신 섬기기를 좋아한다. 또 신이 유달리 많은 왜는 호랑이를 그들이 모시는 신들이 노해서 사람을 죽인다고 인식했다. 아이를 잡아가는 호랑이를 정확하게 본 사람이 드물기 때문이다. 왜는 의외로 호랑이 출현으로 귀신 소동이 벌어졌다.
“산에 사는 얼룩 귀신이 있어.”
“얼룩덜룩하다며?”
“그건 잘 모르고 항상 초저녁이나 새벽에 나타난다고 하네.”
“겁나서 돌아다니기도 힘들군.”
그 덕분에 제일 신이 난 것은 왜의 수없이 널려 있는 신사에서 종사하는 무녀들이다. 왜인들은 그렇지 않아도 전쟁으로 목숨이 항상 위험하고 거기다 얼룩 귀신까지 나타나자 부적 판매로 많은 재물을 벌었다.
“요즈음 같으면 무녀도 할만 해.”
“궁사가 대부분 가져가잖아.”
“그래도 전보다 벌이가 좋아지니 살만하지.”
호랑이의 경우 왜인들은 어찌 보면 자신이 접하던 조선인과 조금 작고 모습도 약간 달랐다. 더구나 앞머리를 박박 밀어 원숭이와 비슷한 어린아이를 원숭이로 보이기도 하는 것 같았다.
왜에도 곰이 있기는 하지만 호랑이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덩치도 북쪽의 불곰보다 작고 용맹하지도 않은 곰이기 때문에 호랑이를 만나면 급하게 도망치기 바빴다.
조선호랑이들은 점점 뇌수나 인육에 맛이 들어 버렸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며 일본원숭이나 어린아이를 먹잇감의 1순위로 인식하게 됐다. 깊은 산골마을에서는 얼룩 귀신의 출현이 자주 발생했다.
자신의 것이 아닌 남에 물건을 유달리 탐하는 왜인들이다. 그들은 욕심을 채우려고 거액을 들여 사온 조선호랑이 때문에 엄청난 재앙을 만난 것이다. 왜인들은 어두운 밤만 되면 소리 없이 나타난 호랑이 때문에 공포에 떨고 있었다.
‘나라 전체에 귀신이 나타났어.’
아직은 본격적인 재앙은 시작되지 않았다. 왜에서는 천적이 전혀 존재하지 않은 가운데 호랑이들의 개체수가 점점 늘어나는 것을 그들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한편 대마도주의 가신인 사사키는 중국비단과 면포를 판매해 차지한 은과 구리 그리고 유황을 지니고 대마도로 돌아왔다. 조금은 벌충하자 용서를 받은 용기가 조금 생겼다. 큰 죄를 지은 사사키는 주인인 대마도주 앞에 엎드려 머리를 조아리며 애원했다.
“도주님, 소신을 죽여주십시오.”
“사사키! 이번에 큰 실수를 했지만 이번만은 용서하지. 대신 다시 조선으로 가서 거래를 잘해 반드시 호피나 호랑이 새끼를 들여올 수 있도록 해.”
“감사합니다.”
큰 실수를 했지만 그래도 왜관을 하나 더 부산포에 건립해야 하니 함부로 가신을 죽일 수가 없었다. 호랑이와 호피 그리고 무역선 2척을 잃어버려 큰 손해를 봤다.
부산포의 왜관을 통해 무역량을 늘리면 손해는 만회할 길이 보였다. 그러니 조선말도 잘하고 장사 수완도 좋은 사사키를 살려두는 편이 이득이었다.
쥐처럼 약은 대마도주는 실익을 중시하니 부드럽게 말했다.
“신풍의 노여움이라고 판단해 봐주는 거니 그리 알라. 다음에 실수하면 할복해.”
“에이!”
특히 왜에서는 갑자기 불어오는 태풍은 신의 의도에 의해 부는 바람인 신풍(神風) 즉 가미카제라고 한다. 그래서 신 때문에 벌어진 사건으로 평가해 대부분 용서하는 편이다.
많은 백은과 황 그리고 구리를 가지고 사사키는 급하게 부산포로 왔다. 같이 온 목수들과 같이 왜관 건축에 심열을 기울였다.
“다들 서둘러.”
“예, 조선에서 보낸 건물 배치도대로 지으면 되죠?”
“한 치도 틀리지 않게 정확하게 지어. 규격에 조금만 어긋나도 부수고 다시 지어야 하니까.”
“알겠습니다.”
이때 공사현장으로 동래부사가 시찰을 겸해 찾아왔다. 얼른 동래부사에게 다가간 사시키는 무역선 좌초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했다.
“부사님, 태풍으로 배들이 좌초되어 호랑이나 호피를 잃어버렸습니다. 사정이 이러하니 제발 다시 호피라도 팔아 주세요.”
사사키의 설명을 들은 동래부사는 속으로 고소하게 생각하지만 겉으로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응수했다.
“허! 딱한 사정은 아나 우리나라도 호랑이가 대부분 사라져 전과 같이 호피를 사기가 어렵네. 내가 조정으로 장계를 올려 조정에 혹시 남아 있는 호피가 있는지 알아보겠소.”
“정말 감사합니다. 꼭 살 수 있도록 해주세요.”
동래부사는 한양의 조정으로부터 정식으로 문서를 받았다. 이제부터 동래부사 책임 하에 관무역 형태로 부산포 왜관으로 들어오는 물건에 대해 거래를 시작해야 한다. 그래서 동래부사는 사시키에게 물었다.
“가지고온 물건은?”
“황과 백은 그리고 구리입니다.”
“좋아. 모두 사겠으니 일단 관아로 보내시오.”
“넷!”
왜관을 지르려면 많은 목재가 필요했다. 또한 왜관에서 지낼 왜인들이 먹을 식량도 사야한다. 그 때문에 왜인들은 많은 재물이 필요했다.
전과 달리 왜관에서 벼농사를 지을 수 없었다. 왜관에서는 한정된 사람이 거주하며 일정 수량의 무역품만 거래하게 된다. 조선에서는 부산포의 왜관 거래 품목으로 왜에서는 백은, 후추, 구리, 황을 가져오고 조선에서는 중국비단. 면포, 인삼, 도자기로 정했다.
왜에서 원하는 미곡은 아직 거래하지 않기로 방침이 정해졌다. 또한 호피나 수달피 같은 야생동물 가죽은 일시적으로 착호부대 활동을 중단해 재고량이 얼마 없었다.
최인범이 이끄는 착호부대의 활동으로 개체수가 대폭 줄어들어 이제는 호랑이를 만나기 어렵게 됐다. 왜와는 다른 형태지만 일시적으로 호랑이가 사라진 것이다.
“호랑이 가죽을 구하기는 너무 힘들게 됐소.”
“다른 방법은 없나요?”
“가격을 더 올려주면 민간인인 사냥꾼들이 잡을지도 모르지.”
동래부사는 왜관으로 필요한 물자를 공급해 주고 생기는 이득금을 챙겼다. 이득금인 백은과 황을 사용해 경상좌우수사가 필요로 하는 군비를 조달했다. 부산포에도 왜관 근처에 진을 건설해 군대를 주둔시키기로 했다.
한편 부산포를 떠나 낙동강을 거슬러 올라 상주를 거쳐 예천에 도착한 한정문 선전관은 그곳에서 대규모로 면포와 유기그릇을 판매하는 백삼수를 만났다.
최인범의 소식이 궁금해 급하게 물었다.
“자네, 여기서 또 만나는군. 최 사맹은 지금 풍기에 있나? 내가 지나가는 길에 한번 만나고 싶은데.”
“풍기에 있기는 하지만 가셔야 만나기는 힘듭니다.”
“뭐? 풍기에 있는데 왜 만나기 힘들다는 건가?”
“죽령에서 가까운 희방사 근처의 깊은 산속에서 사냥하며 다니는 중이라 찾기가 힘듭니다. 아마 겨울 동안은 그곳에서 지낼 것 같습니다.”
“흠! 그렇다면 다음에 만나야 되겠군.”
이런 대화를 나누고 나서 한정문은 슬며시 백삼수에게 물었다.
“자네 혹시 인삼도 취급하나?”
“예, 아직 판매는 안하고 인삼을 사서 모아만 두고 있습니다. 강원도 남쪽, 충청도 동쪽 그리고 경상도 북쪽에서 활동하는 심마니들이 캔 인삼은 대부분 저희상단으로 가져와 팔거든요. 지금은 겨울이라 뜸하고 가을에는 인삼을 많이 사두었지요.”
“그런가? 그 인삼은 뭐하려고 그렇게 모아두나?”
이런 물음에 백삼수는 약간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답을 아는 물음을 뭐 하러 하나 싶어서 이상했으나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판단해 쉽게 응수했다.
“그야 한양으로 가서 팔던가 아니면 조정에서 산다면 팔아야죠.”
“잘 됐군. 명나라로 보낼 인삼이 대량으로 필요했는데. 자네가 가진 인삼을 모두 팔게.”
“알겠습니다. 가격만 맞으면 팔아야죠.”
한정문은 최인범과 만나 무술 대결도 지켜보고 또 황의 사용처에 대해 자세하게 물어보려던 뜻을 포기했다. 그 대신 백삼수를 만나 그가 보유한 인삼(산삼과 장뇌삼)을 대량으로 사들이게 되었다.
한정문이 풍기에서 인삼만 구입해 죽령을 넘어 완전히 떠날 무렵.
희방사에서 지내는 최인범은 부하들과 같이 혹독하게 수련하던 산악훈련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멀리 동쪽에서 붉은 해가 높이 떠올랐다. 실로 장엄한 모습이다.
발아래로 보이는 크고 작은 산들을 바라보니 뭔가 이룬 성취감이 충만해졌다. 대원들은 감격에 겨워 서로 얼싸안고 덩실 덩실 춤을 추었다.
숙영지에서 새벽에 일어나 소백산 정상까지 오르는 것으로 산악훈련을 마무리했다. 정상에서 해맞이를 한 부대원들은 바위에 올라서서 크게 함성을 질렀다.
“아아아아!”
“야아아아!”
목이 터져라 고함을 치는 부대원들은 이제 모두 강한 모습으로 다시 태어났다. 그동안 남모르게 도망치고 싶어 보따리를 꾸린 적도 여러 번이다. 하지만 그래도 동료들의 만류나 중간에서 포기하기 싫은 의지 하나로 이 자리까지 왔다.
최인범은 전과 많이 달라진 대원들을 보며 매우 만족한 미소를 짓고 가볍게 명령했다.
“부대 하산! 하산과 동시에 죽죽이 주막으로 이동!”
“넷!”
하산 길은 다들 화기애애한 모습이다. 조금 전에는 느끼지 못하던 소백산의 아름다운 골짜기와 완만한 산등성이에 쌓인 눈길을 걷고 있었다.
부하들도 강해졌지만 자신도 더욱 강해졌다.
‘이제 몸과 정신이 완전히 합쳐진 것 같군.’
내일 모래면 새해가 되니 다들 집에서 보내게 해줄 생각이다. 새해 첫날은 자신의 생일이라 동물농장의 식구들도 많은 음식을 준비하고 기다릴 것이다.
동계 산악훈련이 모두 끝나자 배도치가 조심스럽게 제안했다.
“소대장님, 죽죽이 주막으로 가면 소주를 마시나요?”
“먹어야지. 그동안 고생했으니 마음껏 마셔.”
이런 말에 대원들은 더욱 빠른 발걸음으로 하산했다. 이들은 드디어 희방사를 지나 희방 폭포에 다다르자 한 마디씩 토했다.
“내가 저런 빙벽을 어찌 기어서 올랐는지 몰라.”
“올라가다 미끄러져 여러 번 죽을 뻔 했어.”
이제 이들은 양반과 양민 그리고 노비란 허울은 벗고 동료로 다시 태어났다. 그래서 전과는 전혀 다르게 흉허물 없이 지내고 있었다. 이들은 함께 고생한 전우애로 똘똘 뭉쳐졌다.
드디어 심마니들이 사는 마을에 도착하자 그동안 자신들이 잡은 멧돼지나 사슴 고라니를 받고 대신 산삼 씨를 모아준 심마니가 작은 주머니를 넘겨주었다.
“지금은 이것뿐입니다. 내년 가을에 또 구해서 보내 드리겠습니다.”
“고맙소. 다음에 씨를 가져오면 필요한 면포나 쌀을 줄거니 많이만 구해 오시오.”
“감사합니다. 이번에 사냥한 고기도 많이 주셨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