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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트레인-108화 (108/519)

108화

한척이 먼저 암초에 부딪쳐 좌초될 위기에 처한 상황에 다른 무역선이 파도에 떠밀려 선미를 들이받았다. 그러자 겨우 버티던 무역선은 그만 크게 부서지고 말았다.

“탈출해!”

무역선이 좌초되자 선원들은 비명을 지르며 바닷물 속으로 뛰어들고 말았다. 배에 남아 있다가는 배와 함께 바닷물 속으로 빨려 들어가기 때문이다. 선원들은 다투듯이 바다에 뛰어들었다.

순간의 선택이 생사를 가르게 되니 선원들의 동작들은 매우 빨랐다.

“빨리 빨리 탈출해!”

“으아악!”

“살려줘!”

침몰하려는 무역선에 남은 선원들은 살려달라며 처절하게 비명을 토했다. 다들 무역선에서 탈출하기 위해 급하게 차가운 바다로 튀어들었다.

이때 무역선은 암초에 부닥쳐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다.

와지직! 와지직!

좌초된 무역선에 실려 있던 호랑이 40마리도 왕대나무 우리가 산산이 부서지자 모조리 밖으로 튀어 나왔다. 차가운 바닷물 속에 뛰어든 호랑이는 물론 많은 무역품들도 파도에 떠밀려 사방으로 흩어지고 말았다.

풍덩 풍덩. 사사삭. 사사삭.

물을 너무 좋아하는 조선호랑이들은 본시 수영을 아주 잘한다. 그래서 바다에 빠진 조선호랑이들은 좁은 해협이라 빠르게 해안으로 올라왔다.

푸드드드. 부르르.

몸에 묻은 차가운 바닷물을 몸을 흔들어 털어낸 호랑이들은 처음에는 전혀 이질적인 장소라 조심스럽게 두리번거렸다. 처음에는 다소 어리둥절한 동작으로 주위를 살피다가 멀리서 사람들이 보이자 재빠르게 움직였다.

바닷가의 우거진 갈대숲으로 들어가 소리도 없이 빠르게 이동했다. 그리고 이내 검은 풀숲을 발견하자 그곳으로 숨어들어갔다.

획! 사사삭! 획! 사사삭!

많은 호랑이들은 극히 일부는 남쪽의 큐슈로 들어가고 대부분 혼슈의 해안으로 올라왔다. 숨어 있던 조선호랑이들은 멀리서 사람들이 보이자 인적이 전혀 없는 깊은 숲속으로 뛰어들어 사라졌다.

그동안 오래 왕대나무로 만든 좁은 우리에 들어 있던 터라 사람들이 겁났다. 그래서 인적이 전혀 없는 깊은 산속을 찾아 멀리 멀리 달아났다.

휘익! 휘익!

한 번의 도약으로 몇 미터씩 뛰니 이내 먼 거리를 이동했다. 말 그대로 비호같은 동작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사라졌다. 몸을 쉽게 숨기는 것도 호랑이 특별한 점이다.

호랑이들이 사라질 무렵에 또 다시 폭우까지 계속 내리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호랑이들의 흔적인 발자국마저 소리 없이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조선호랑이들은 작은 울음소리도 토하지 않고 숨을 곳을 찾아 빠르게 이동했다. 울음소리를 내면 호랑이 사냥꾼들이 떼를 지어 몰려와 자기들을 잡을 것이라는 두려움으로 깊은 숲을 찾아 끝없이 내달렸다.

한편 시모노세키 해안에서 좌초되는 무역선에서 탈출해 사사키는 선원들의 도움으로 겨우 해안에 도착했다. 겨우 목숨을 구한 사사키는 망연자실했다. 성급한 판단과 욕심이 큰 화를 불러왔다.

너무 기가 막혀 말을 못할 정도다. 태풍이 몰려오는지 알면서 왜 이런 무모한 모험을 감행했는지 후회하는 마음만 반복되고 있었다.

“이럴 수가·······. 거의 다 와서 좌초를 당하다니.”

“선장님, 목숨을 구했으니 천만다행이죠.”

“자네는 내가 지금 살아 있는 목숨이라고 보이나? 노하신 도주님의 손에 나는 물론 내 가족들까지 모두 죽었어.”

수많은 무역품은 바닷물에 둥둥 떠서 멀리 서쪽으로 사라졌다. 또한 큰 재물을 벌 것이라고 판단한 호랑이들 역시 천지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 40마리 중에 단 한 마리의 호랑이도 남아 있지 않았다. 단 한 번에 큰돈을 벌려다가 한 번에 망한 꼴이다.

사사키는 겨우 정신을 차려 선원들에게 지시했다.

“빨리 해안가를 돌아다니며 남은 물건이라도 있나 확인해.”

“넷!”

사사키는 선원은 물론 시모노세키의 인부들을 동원해 해안을 철저하게 수색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서 선원들이 돌아와서 급하게 보고 했다.

“선장님, 다행히 중국비단과 면포가 들어 있는 짐들은 건졌습니다.”

“그런가? 나머지는 하나도 찾지 못했고?”

어리석은 물음이지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자 선원은 즉시 답했다.

“넷!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호랑이는 이미 상륙해 사방으로 도망치고 호피는 현해탄 쪽으로 흘러간 것 같습니다. 파도에 떠밀려 멀리 서쪽으로 사라진 것이 분명합니다.”

사사키는 큰 손해를 보게 되어 대마도로 돌아가면 죽은 목숨이다. 하지만 대마도에 사는 가족들을 생각해 도망칠 수도 없었다. 그래서 그나마 건진 중국비단과 무명을 고가에 팔았다.

미리 연락을 받아 호랑이를 사려고 찾아온 영주 휘하의 가신인 상인들은 다들 실망했다.

“근처에서 좌초해 호랑이가 다 도망쳤다고요?”

“그렇습니다. 호랑이가 단 한 마리도 없습니다.”

이런 말에 상인들은 다들 이상하게 생각했다. 오는 도중에 호랑이를 봤다는 소리를 백성들에게 전혀 들어보질 못해서 그렇다.

“이상하군. 그 많은 호랑이가 흔적도 없다니요.”

“아마도 모두 바닷물에 빠져 죽은 모양입니다.”

“그렇다면 죽은 시체라도 있을 것 아닙니까?”

분명 조선에서 거액을 들여 사왔다고 선전하더니 호랑이는 고사하고 호피도 없으니 속이는 것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그러나 그런 속임수는 쓸 위인은 아니다. 영주의 대리인인 상인들은 일단 그 문제는 접어두고 남아 있는 물건이라도 거래하게 되었다.

“무슨 물건이 있소? 좀 봅시다.”

사시키는 찾아온 상인들에게 중국 비단과 면포를 보여 주며 말했다.

“앞으로 당분간은 조선을 통해 중국비단이나 면포를 사기가 어려울 겁니다.”

“좋소. 그대가 제시한 가격에 모두 사겠소.”

전국시대라 목숨이 항상 위험해서 그런지 영주들이나 휘하의 사무라이들은 사치하는 풍조가 유독 강했다. 그들은 중국비단으로 만든 옷을 입길 좋아했다. 어차피 죽으면 입고 있는 옷이 수의가 되기 때문이다.

또한 수시로 영주가 바뀌어 잠자리의 주인이 바뀌는 여자들 역시 그런 성향이 강했다. 그녀들은 난세에 살아남는 방법을 터득해두고 있었다.

조선의 여자들 경우 유교사상 때문에 정조를 지킨다고 자결하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다. 그러나 왜의 여자들은 그런 정조에 대한 개념이 상대적으로 적었다.

‘강한 남자면 다 좋아.’

영지가 적에게 함락되면 자연스럽게 점령군인 승리자에게 몸을 의탁하고 안락한 생활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것이 이곳 왜의 오랜 전통이고 관습이다.

그 때문에 왜는 양자제도도 활성화 되어 있었다. 또한 조선의 여자들 보다 남자에게 더욱 순종하는 풍토다. 그와 더불어 중국비단으로 만든 화려한 기모노를 차려 입길 좋아했다. 언제 또 주인이 바뀔지 모르니 별로 아끼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전쟁이 많은 왜는 군사를 계속 양성해야 하니 군복을 만드는 면포 수요도 많았다. 전쟁이란 끝없이 재물이 소모되기 때문에 산업은 더 활성화 되어 가고 있었다.

“거래는 뭐로?”

“구리나 황 그리고 전처럼 백은입니다.”

“후추는?”

“그것은 다음에 사죠.”

거래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왜는 대마도를 통해서 들어오는 무역품이 제일 귀한 물건들이라 좌초로 물동량이 줄어들자 고가에 거래되었다.

필요한 전쟁 소비 물자를 조선에서 들여와야 하는 왜의 영주들이다.

그들은 조선에서 들여온 무역품을 거래하기 위해 은광산과 구리광산 개발에 총력을 기울이는 중이다. 그런 광산을 차지하려고 주변에서 전투를 벌이니 왜는 전국이 전쟁으로 심한 열병을 앓고 있었다.

상인들은 물건을 사서 돌아가 영주에게 사실 그대로 보고했다.

“뭐라? 호랑이가 40마리나 풀려?”

“넷! 영주님, 아무래도 옆에 영주와 전쟁을 잠시 중단하고 우선 달아난 조선호랑이를 잡으러 군사들을 동원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알았어. 군사들을 동원해 한번 찾아보지.”

왜에서는 때 아닌 호랑이 사냥을 위해 일부 지역에서는 전쟁을 중단했다. 호랑이 사냥에 대부분의 군사들이 동원되었다. 그러나 호랑이의 흔적은 발견하지만 그들은 호랑이를 전혀 만나지 못했다.

“이상하군. 이렇게 빨리 이동하기 어려울 것인데.”

“너무 늦었나 봅니다.”

대부분의 왜인들은 이야기로나 호랑이에 대해 들었지 직접 접하지 못해 호랑이의 모습도 정확하게 모른다. 그러니 화공들이 그린 괴이한 모습의 호랑이만 찾으니 찾지 못했다. 더구나 호랑이의 습성도 왜인들은 전혀 모르니 발견하기가 매우 힘들었다.

“이상하군. 호랑이는 신출귀몰하고 둔갑술도 부린다더니 사람으로 변했나? 전혀 보이질 않아.”

처음에는 권위의 상징이라고 해 호랑이를 잡아 보려고 했었다. 하지만 주변의 영주들과 항상 세력 다툼으로 바쁘기 때문에 쉽게 포기했다. 잠시 휴전 상태이던 왜는 또다시 치열하게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하루도 쉬지 않고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어설픈 호랑이 추포 작전으로 왜에 들어온 호랑이들은 포위망을 벗어났다. 오히려 더 넓은 지역의 아주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숨어버렸다.

처음에는 조선에서처럼 민가 가까이에 접근하던 호랑이들이다. 그러나 깊은 숲으로 들어가도 먹잇감이 많아 굳이 사람과 접근할 이유가 없었다.

특히 왜에는 아주 쉽게 잡는 원숭이들이 너무 많아 먹잇감 사냥은 더욱 쉬웠다. 호기심이 많은 원숭이는 자신들을 잡아먹으려고 접근하는 호랑이를 보자 전혀 놀라지도 않았다. 그저 처음본 동물이라 호기심으로 오히려 호랑이에게 가까이 접근해 오는 경우가 많았다.

획! 퍽! 찍!

작은 덩치인 원숭이는 이제 막 성숙한 호랑이들의 앞발 후려치기 한 대로 머리통이 터져 뇌수를 철철 흘리며 죽었다. 조선호랑이들은 고소한 일본원숭이의 뇌수를 혀로 맛있게 할타먹었다. 조선호랑이의 한 끼 식사거리로는 아주 적당한 원숭이들이다.

집단이 모여 사는 원숭이들이라 굳이 사냥감을 찾으려 멀리 이동할 필요도 없었다. 그리고 호랑이 역시 고양이과에 속해 호기심도 많아 처음 보는 원숭이가 신기하게 보이기도 했다.

때로는 원숭이들이 호랑이 등에 올라타도 가만히 있었다. 그렇게 돌아다니다가 배가 고프면 그때서야 죽여서 맛있게 먹고 있었다.

아드득. 아드륵.

별로 단단하지 않은 뼈라 완전히 씹어 먹었다. 나중에 일본원숭이라고 부르는 작고 엉덩이가 빨간 원숭이들은 조선호랑이의 좋은 먹잇감으로 수없이 죽어갔다.

아주 깊은 산속에서 벌어지니 왜인들은 전혀 몰랐다. 먹잇감이 풍부하자 호랑이들은 빠르게 성장하고 또한 큰 놈들은 어느새 짝짓기를 시작했다.

일부 호랑이들은 아주 은밀하게 깊은 산골에 사는 화전민 마을로 접근했다. 그리고 밭에서 벌거벗은 상태로 땅바닥에서 기어 다니는 어린아이들을 물고 사라졌다.

“으앙!”

“으아악! 저게 뭐야?”

깊은 산속에 살아 가짜 호랑이 그림도 보지 못한 산골마을의 왜인들은 얼룩덜룩한 귀신이 나타나 아이를 잡아간 것으로 인식했다. 사람들은 놀라 도망치며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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