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화
왜인들은 신이 나서 거래한 물건을 싣고 대마도로 떠나고 있었다.
통상 대마도주가 인수해 다시 이득을 보며 열도에 있는 영주들과 거래한다. 하지만 생물인 호랑이 새끼라 대마도주에게는 거래 내역만 정확하게 알리고 무역선들은 본토로 향했다. 새끼 호랑이라고 하지만 이미 스스로 사냥할 정도로 덩치가 커진 호랑이들이다.
부산포를 떠나며 왜의 상인들은 오랜 소원을 풀게 되었다고 좋아했다. 드디어 왜에도 많은 호랑이가 생겼으니 다들 기분이 좋았다. 더구나 영주들이 서로 사려고 할 것이라 이번 무역으로 큰돈을 벌게 되자 신이 나서 마음이 급했다.
“이번에 진짜 큰돈을 벌게 됐어.”
“아마 영주들이 서로 사려고 경쟁할 거야. 빨리 영주들에게 팔고 돌아와 왜관을 지어야 해.”
“그럽시다. 다시 올 때는 건축 기술자들을 데리고 옵시다.”
많은 중국비단과 인삼 그리고 호랑이 새끼를 사게 되어 신이 났다. 급하게 떠나는 왜의 상인들을 보며 한정문은 혼자서 중얼거렸다.
“왜는 겨울이라 태풍이 안 오나?”
중요한 비자금이 너무 급하게 필요해 고가에 호랑이 새끼를 판매하고 보니 마음이 개운치 않았다. 조금은 ‘잘 못한 것이 아닌가?’하고 생각되었다. 태풍이라도 불어 호랑이를 싣고 가는 왜의 무역선들이 중간에 침몰해 버리기를 은근히 고대했다.
최인범이 권해서 하게 된 호랑이 거래지만 주면 안 될 진귀한 동물을 왜로 보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이런 거래를 권한 거지? 혹시 내가 모르는 무슨 깊은 생각이 있나?’
무술 실력도 뛰어나지만 뭔가 새로운 시도를 계속하는 최인범의 행동 때문에 그를 아주 특별한 사람으로 인식했다. 최인범은 남들이 전혀 생각하지 못한 발상으로 움직였다.
왜의 상인들과 무역거래가 무사히 성사되었다. 한정문은 의약품 제조용으로 사용할 황의 일부와 귀중품을 만들기 위한 백은을 조선의 상인들에게 넘겼다. 그래서 바꾼 면포를 경상좌수사와 우수사에게 비밀리에 전달하며 당부했다.
“장군들께서는 제가 드린 면포와 황으로 화약이나 화포 제조에 힘써 주기 바랍니다. 주상전하께서 부산포에 왜관을 설치하며 전과 같은 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철저히 대비하라는 명령이십니다.”
“주신 자금이 너무 많은데요.”
한정문은 주위를 돌아보며 조용히 다시 말했다.
“여유자금은 보유하고 있는 맹선의 수리비용에 사용하시면 됩니다. 부산포에도 다시 왜관이 설치되었으니 그에 따라 해상 방어도 준비를 단단히 하시라는 전하의 특별한 하명이십니다.”
“잘 알겠습니다.”
“그렇다고 너무 표면으로 내세우면 왜를 자극하니 반드시 비밀은 유지하시고요.”
“당연히 그래야죠.”
동래부에 속한 부산포(富山浦)서 많은 물품을 왜와 거래하고 그 자금의 일부를 경상도 방어 비용인 군선 건조비로 지출한 한정문은 부산포를 떠나게 됐다. 그는 한양으로 올라가기 위해 낙동강을 오가는 소금 장사들의 배를 타고 거슬러 올라가기로 결정했다.
많은 백은과 유황을 가지고 육로로 가려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수로를 이용하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을 수행하고 있는 부하들에게 지시했다.
“소금 배를 최대한 많이 수배해. 그래서 소금도 사서 실어.”
“알겠습니다.”
소금도 관아에서 필요한 아주 중요한 물품이다. 많은 소금과 함께 중요한 물품들을 나르게 되었다. 그 때문에 여러 척의 소금 운반선들이 동원되었다.
한양으로 올라가는 길에 상주목사인 경상도 관찰사를 만나 소금을 넘겨줄 생각이다. 산적과 호랑이 소탕 때문에 경상 북부 지역에 있는 고을들의 재정을 특별히 지원해 주기 위해서다.
주상전하께서 하명하신 업무를 보고 풍기군으로 가서 최인범을 만나 황이 대량으로 필요한 이유를 보다 자세하게 물어볼 심산이다.
‘도대체 뭐를 만들려고 황이 필요하다는 거지?’
분명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니 화약무기 개발을 염두에 두지는 않는 것 같았다. 그런 신무기 개발은 절대로 개인이 해서는 안 되기 때문에 다소 이상했다.
그러나 나이가 어리다고 해서 반역을 획책하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 최인범을 다시 만나 다른 관점으로 잘 살펴볼 생각이다.
부산포에서 배에 올라 떠나는 중·······.
황포 돛이 바람에 심하게 펄럭였다. 중요한 물건을 날라야 하는 임무를 수행중이다. 그런데 너무 심하게 돛이 펄럭이자 너무 걱정되어 뱃사공에게 물었다.
“사공! 왜 이런가? 배가 너무 흔들리지 않나?”
뱃사공은 이런 물음에 이내 답했다.
“선전관님, 남쪽 바람이 너무 거세게 부니 그렇죠. 여기 부산포에 이런 정도로 바람이 세차게 불면 왜에는 태풍이 몰려오는 것입니다.”
“태풍이라니?”
“바람의 세기나 하늘의 구름을 보아 태풍이 왜로 상륙하는 시기는 대략 하루 뒤가 되겠군요.”
“그래? 지금 왜에 겨울 태풍이 온다는 건가?”
“그렇습니다. 아주 강한 태풍이 불어와 왜의 서쪽 지역을 도착하면 영향을 받아 부산포에도 이런 세찬 바람이 불게 되죠.”
배로 중요한 물건을 날라야 하는 입장에서는 걱정이 안 될 수 없었다. 그래서 급하게 뱃사공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진짜 큰일이 아니요? 우리도 배로 이동해야 하는데.”
“선전관님, 빨리 부산포를 떠나 김해평야를 지나 낙동강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그런 태풍의 영향권에서 벗어나니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사실 이런 세찬 바람이 남쪽에서 불면 낙동강을 거슬러 올라가기가 아주 편하죠. 우리에게는 좋은 바람입니다.”
“그렇다면 빨리 떠납시다.”
이미 추운 겨울이 시작되었지만 아직 낙동강은 얼지 않았다. 그러니 하루라도 빨리 낙동강의 수로를 이용해 북쪽으로 가야한다. 뱃사공을 독촉해 배에 많은 물건을 싣고 북쪽으로 떠났다.
솨아악! 솨아악!
뱃사공의 말대로 남쪽에서 거센 바람이 불자 배는 낙동강 강줄기를 가르며 빠르게 거슬러 올라갔다. 이런 속도면 분명 며칠의 일정은 충분히 단축될 것 같았다.
한정문은 부하인 젊은 선전관에게 말했다.
“이번에 풍기로 가서 최 사맹과 자네가 한번 겨루어 보게.”
“제가요?”
“자네도 격투기라면 조선 팔도에서 상대할 사람이 없다고 자부하지 않나? 그러니 젊은 자네가 진짜로 한번 겨루어 봐서 최 사맹의 실력을 확인하게.”
“알겠습니다. 그렇게 준비하겠습니다.”
20대 중반인 젊은 선전관은 갑사를 하다가 뛰어난 격투기 실력으로 정7품 선전관으로 발탁된 인물이다. 그는 함경도의 갑사 출신이다. 건주여진족들과 벌인 수많은 소규모 전투에서 단련된 다부진 몸이다. 그래서 투지력도 있고 승부욕도 무척 강했다.
“자네, 최 사맹이 나이가 어리다고 허수로 보면 절대로 안 되네.”
“넷! 명심하겠습니다.”
한중문은 최인범의 진짜 무술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최종적으로 확인해 보고 싶었다. 그래서 자신의 판단이 확실하면 주상전하께 건의해서 중책을 맡게 할 생각이다.
낙동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배는 남쪽에서 거센 바람이 불자 빠르게 상류로 이동했다.
아직도 바람이 거센 것으로 보아 왜에는 큰 태풍이 도착한 것이 분명했다. 한정문은 문뜩 왜로 보낸 호랑이가 무사히 도착할지 궁금했다.
‘왜로 넘겨진 호랑이가 잘 번식할까? 번식이 너무 잘되면 자칫 우리 조전이 전과 반대로 호피를 왜로부터 사와야 되지 않나?’
왜와의 교역품목 중에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호피다. 이번에 호랑이 자체를 보낸 것이 아무래도 큰 실수라는 생각이 들어 은근히 미래를 걱정했다.
한편 대마도주의 가신인 사사키는 무역선 한척을 대마도의 도주에게 보내 연락했다. 부산포를 떠난 무역선 3척은 현해탄(玄海灘)을 지나 간몬해협(關門海峽)에 들어섰다. 하늘은 검은 구름이 가득하고 바다에는 바람이 무척 거셌다.
휘리릭! 휘리릭!
좁은 해협은 평소에도 물살이 아주 빨랐다. 또한 오가는 배들도 많아 자칫 방심하거나 안개가 끼면 충돌의 위험성이 높은 좁은 수로다. 이곳을 지나야 영주들이 교역하길 원하는 부두에 도착할 수 있었다.
솨아악! 솨아악!
폭풍과 더불어 많은 폭우가 내리고 있었다.
‘큰일이군. 폭우까지 오다니.’
사사키는 태풍이 다가 온다는 사실을 알고도 무리하게 현해탄을 항해를 목적지에 거의 도착했다. 태풍이 몰려와 너무 당황한 선원들은 허둥지둥했다. 더구나 해안가에는 안개까지 자욱하게 끼고 있었다. 최악의 환경에서 항해하려니 무척 힘들다.
좁은 간몬 해협에 들어서자 무역선은 너무 심하게 전후좌우로 마구 흔들렸다. 그러자 상단 우두머리이자 선장인 사사키는 선원들을 다독였다.
“침착해, 조금만 더 힘을 내.”
점점 높아진 파도로 무역선의 키나 돛을 조정하는 선원들이 긴장해서 크게 외쳤다.
“선장님, 이미 태풍이 도착했습니다. 이러다 부두에 도착하기 힘들 것 같습니다. 큰일 났습니다. 파도가 높아 무역선을 조정하기가 힘듭니다.”
“조금만 더 가면 항구에 도착하게 되니 서두르라고.”
“넷!”
큐슈와 혼슈 사이에 있는 간몬해협은 해협의 사이가 불과 1킬로미터도 못되는 좁은 수로다. 이곳은 평소에도 물살이 거센 곳이다. 폭우는 이내 잠시 멈추었지만 안개까지 끼자 시야가 가려 부두가 또릿하게 보이지 않았다.
사사키는 이제 목적지인 시모노세키에 도착하면 큰돈을 벌게 되니 서둘렀다. 더구나 거센 바람인 큰 태풍이 불어오니 빨리 안전한 부두에 정박해야 한다.
“다 왔다! 부두가 보인다.”
“와! 이제 살았다.”
선원들은 부두가 보이자 환호성을 토했다. 그러나 아직은 안심하기 이르다.
간몬해협의 좁은 수로를 완전히 통과해야 목적지인 부두까지 갈수 있었다. 사사키는 목이 터져라 크게 선원들에게 외쳤다. 그의 명령에 따라 3척의 배들은 빠르게 부두로 향했다.
“배를 항구 쪽으로 돌려!”
“넷!”
급하게 항구 쪽으로 돌리던 무역선들은 점점 거칠어지는 파도 때문에 부두에 정확하게 접근하지 못했다. 무역선들은 거칠어진 파도에 밀렸다. 자꾸 암초가 많은 엉뚱한 지역으로 쓸려갔다. 커다란 바위인 암초가 보이자 사사키는 화들짝 놀라 크게 외쳤다.
“암초다!”
평소에는 보이지 않지만 파고가 높다보니 바닷물에 잠겨 있던 암초가 또릿하게 보였다. 사사키는 너무 당황해서 크게 외쳤다.
“조심해!”
그 순간 ‘쿵! 과광!’하며 굉음이 들렸다.
“으아악!”
사사키가 경고했지만 조정하기 어려워진 무역선은 요란한 소리와 함께 커다란 암초에 부딪치고 말았다. 파도에 떠밀려 그대로 처박혀 버렸다. 암초에 부딪친 무역선의 선체는 옆으로 비스듬히 기울어졌다. 부서진 선측으로 차가운 바닷물이 거세게 밀려들어 왔다.
우지직! 쿵!
“사람 살려!”
“으아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