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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트레인-106화 (106/519)

106화

희방사는 소백산 남쪽에 위치한 사찰로 규모가 그리 크지는 않았다. 살생을 금하는 불교라 사슴이나 멧돼지를 잡겠다고 절에 나타나자 노스님은 호통 쳤다.

“절에서 지내며 사냥하겠다니. 그게 무슨 막말이요. 우리는 죽어도 협조할 수 없으니 빨리 떠나시오.”

스님으로는 사실 질색할 소리를 했다. 그러나 최인범은 다시 자신의 주장을 말했다.

“제가 알기로는 멧돼지들 때문에 스님들이 심어놓은 인삼이나 약초밭이 엉망이라니 사슴이나 멧돼지는 조금 개체수를 줄여야 합니다. 살생이라고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닙니다.”

“어허! 그게 무슨 소리야. 더구나 불자인 나에게 그런 말을 하다니. 부처님께서는 ‘만물은 다 살아 있어야 하는 이유가 있는 존귀한 존재.’라고 하셨는데 인간이라고 함부로 동물을 살생하면 안 되지 않나?”

절의 주지인 노스님은 그야말로 21세기의 환경운동가인 어떤 여스님의 똥고집은 저리가라 할 정도로 완강하게 반대했다.

그래서 결국 최인범은 부하들에게 지시했다.

“우리 다른 곳으로 가서 천막치고 사냥할 수밖에 없겠다.”

“알겠습니다. 주변을 정찰해 적당한 숙영지를 찾아보죠.”

결국 한겨울이 된 산속에서 최인범은 동계훈련 하듯이 천막치고 사냥하게 되었다. 사실 지금 같이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최측근이라 이들을 더욱 강하게 조련할 욕심에 사냥을 고집했다.

‘이번 기회에 다른 녀석들과 전혀 다르게 조련해야 돼.’

장차 자신의 사병으로 부리던 아니면 정식으로 부대가 결성되어 부대원이 되던 약한 상대를 심복으로 삼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시간이 흐를수록 훈련과정의 강도는 높아졌다.

훈련 기간이 길어져 식량이 완전히 떨어지자 보급병이 조심스럽게 건의했다.

“소대장님, 식량이 전혀 없는데요. 이제 그만 산에서 내려가시죠?”

“그게 무슨 소리야? 식량이야 널려 있잖아.”

“그럼, 아예 야생동물만 잡아먹고 지내자고요?”

“당연하지.”

이런 다부진 명령에 부하들은 다들 기겁했다. 말하는 것으로 보아 겨울동안 내내 산에서 내려갈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이제 우린 죽었어.’

아니나 다를까 훈련 강도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높아졌다. 완전군장으로 멧돼지를 쫓으라고 했다. 그래서 입에서 단내 나고 거품이 품어 나오는 산악 구보는 기본적인 훈련이다. 더구나 희방 폭포에서 어설픈 장비로 빙벽등반까지 시키니 부하들은 내심으로 불평하고 있지만 점점 강한 군인으로 변했다.

특히 행정병이라 다소 허약한 모습을 보이던 양반자제들은 완전히 인간 자체가 개조되었다. 나라에 충성하는 것이 최고라고 생각하던 그들은 이제 나라가 아닌 최인범 개인에게 충성하는 다소 과장된 마음으로 가득했다.

“나중에 역모를 모의해도 나는 소대장님을 따를 거야.”

“당연하지. 이런 분이야 말로 군왕이 되어야 한다고.”

“나도 마찬 가지야.”

실제로 역모를 모의하면 그때 조정으로 고변하게 될지는 모른다. 그러나 지금의 마음자세는 전과 너무 달라졌다. 부하들 사이에 이런 큰 야망까지 생기자 다들 훈련에 집중했다.

한편 눈이 쌓인 죽령에서 최인범 일행이 멧돼지 사냥에 집중하며 산삼 씨 확보 그리고 군사훈령에 주력하는 동안. 멀리 동래까지 가게 된 한정문은 동래부사에게 주상이 보낸 교지를 전달했다.

조선은 삼포왜란(부산포, 내이포, 염포) 이후에 왜관은 내이포(진해)에만 두고 있었다. 그러나 다시 부산포도 왜관을 두라는 지시다.

“왜관을 만들려면 자금이 많이 필요한데.”

“그런 자금은 제가 드리고 가겠습니다.”

삼포왜란 이후에 대마도주는 수없이 왜관을 늘려 달라고 조선의 조정으로 문서를 보내 건의했다. 그러나 과거의 잘못 때문에 묵살하다가 이제야 하나 더 늘리기로 결정한 것이다.

“부사께서는 내이포의 왜관에 있는 왜의 상인들에게 이런 사실을 빨리 알리도록 하세요.”

동래부사는 한정문이 전하는 주상의 전언에 사안이 급하다는 것을 느끼고 이내 답했다.

“즉시 내이포로 연락해 왜인들을 오도록 하죠. 그러나 왜관을 늘린다면 부산(富山)포에서 사는 백성들이 반대할지 모르겠군요. 삼포왜란 때 부산포 지역이 난동을 부린 왜인들에게 너무 큰 피해를 봐서요.”

“그런 문제는 부사께서 백성들을 잘 다독여 해결하셔야죠. 지역의 양반도 만나고 백성들과 만나서 설명을 잘하시면 이해하게 될 겁니다.”

“알겠습니다.”

삼포왜란은 주상이 즉위해서 5년이 되던 해 (1510년) 왜관이 있던 삼포에서 일어난 일본거류민들의 폭동 사건으로 경오년에 일어났으므로 흔히 경오왜변(庚午倭變)이라고도 한다.

많은 조선인들이 죽었던 사건이라 주상께서는 왜인들을 상당히 경계했다. 그래서 왜관을 하나 더 늘리지만 그들의 폭력성을 잊지 않고 나름 철저히 대비할 생각이다.

동래부사의 걱정에 한정문은 주상전하께서 하교하신 내용을 말해 주었다.

“부사님, 주상전하께서는 그런 일이 없도록 대마도주에게 단단히 약조를 받으라고 하십니다. 물론 그런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왜관에 머무는 왜인들 수는 철저하게 통제할 겁니다.”

“알겠습니다.”

한정문은 동래부사에게 몇 가지 대비책에 대해 설명했다.

“우리 해군의 주력선인 맹선을 강력한 화포로 무장하면 왜인들의 난동을 사전에 분쇄할 수 있어요. 만약 또 다시 전처럼 난동을 피우면 바로 대마도를 정벌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앞으로 해군력은 강화되고 울산성이나 동래성도 더욱 보강될 것이고요.”

“그렇군요.”

조선은 왜와 무역을 통해 많은 백은을 들여와 명나라에 팔아 큰 이득을 보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강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왜와의 무역을 확대할 필요성이 있었다.

명나라의 경우 왜와 직접 교역하길 상당히 꺼렸다. 왜인들은 조금만 틈을 주면 해안에 침투해 약탈행위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조선 조정도 왜인들의 그런 점을 잘 알기 때문에 왜관을 두고 철저하게 통제하고 있지만 항상 조심해야 할 왜인들이다.

‘왜인들은 절대로 방심하면 안 되는 족속들이야.’

사실 왜인뿐만 아니라 어느 나라도 자국의 이익이 있으면 침략을 서슴없이 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북쪽에 있는 여진 족들도 특별히 경계할 대상이다.

두 사람은 왜인들에 대한 통제 방법에 대해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조선은 우선 왜와 교역을 늘려 벌어들인 자금으로 해군력을 강화하고 북쪽의 건주여진을 견제하는 국방정책을 펼칠 계획이다.

한정문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아직은 왜가 전국시대라 우리를 넘보지는 못하지만 삼포 왜란과 같은 사건이 또 벌어질 염려가 있으니 해군력은 지금보다 강화되어야 할 겁니다.”

“잘 알겠소. 특별히 좌우수사들과 만나 그 문제를 잘 협의해 보겠습니다.”

이런 일이 있고 나서 며칠이 지났다.

내이포(진해)의 왜관에 있던 왜의 상인들이 부산포로 왔다. 그들은 신이 나서 부산포에 자신들이 스스로 왜관을 지어서 운영하겠다고 했다.

한정문은 왜인들에게 조선 조정의 뜻을 확실하게 밝혔다.

“왜관에 지어지는 모든 건물 공사는 우리 조선에서 감독해야 합니다. 규모가 너무 커도 안 되고 작아도 안 되니까요. 추후의 보수 공사나 증축도 조선의 허가를 받아야 하고요.”

“잘 알겠습니다. 거래 품목을 말씀해 주세요.”

“여기 목록이 있으니 보시고. 다른 서류는 그대들이 우리에게 넘겨줄 품목이요. 이번만 특별히 거래량이 많고 다음에는 기준을 새로 정하게 될 거요.”

왜의 상인들은 한정문이 내미는 교역 물품 내역을 보고 매우 놀랐다. 놀라는 이유는 자신들이 그토록 원하는 조선인삼과 중국비단 그리고 새끼 호랑이와 호피가 생각보다 많았기 때문이다.

왜는 영주들이 세력 다툼이 심해 전국시대다. 그래서 군량미 확보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왜의 상인들이 아쉬운 점은 왜에서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군량미인 미곡이 포함되지 않은 점이다.

“미곡이 가장 필요한데 그것은 없군요.”

“그건 우리 조선도 흉년이라 갑자기 거래량을 늘리기가 조금 힘이 듭니다.”

사실 올해는 작황이 좋아 풍년이다. 하지만 흉년이라고 말하며 미곡의 거래량은 늘리지 않겠다고 했다. 왜인들은 조선 조정의 관리가 하는 말이라 그대로 믿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군요. 그러나 다음은 미곡도 포함시켜 주세요.”

“올해 눈도 많이 내려 내년 가을에 미곡 생산량이 늘어 풍년이 들게 된다면 그때는 미곡 거래량도 대폭 늘릴 겁니다.”

이렇게 적당히 말하자 왜인들은 손은 모아 굽실거리며 응수했다.

“감사합니다. 즉시 거래 물품을 마련해서 인수해 가겠습니다.”

“너무 오래 걸리면 안 되니 서두르시오.”

“잘 알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교환할 물건을 구해오죠.”

이 당시 왜와의 교역은 모두 물물교환 형식이다. 한정문은 가져온 물건을 왜인들에게 넘겨주고 왜로부터 백은, 후추, 구리, 황을 주문했다. 조선에서 요구하는 품목 중에 유달리 화약의 원료인 황이 많다는 것을 본 왜의 상인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번 거래 품목 중에 황이 무척 많군요.”

“조선에 전염병이 발생할 위험성이 너무 많아 치료약을 만들기 위해서요. 그리고 몸에 좋다는 유황오리를 길러 보려는 사람도 늘어 황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북쪽에 사는 건주여진족이 극성해 자꾸만 두만강이나 압록강이 얼면 국경을 넘보아 화약을 더 많이 만들 생각이요.”

왜에서 생산되는 황은 그 품질이 아주 좋아 우수한 화약을 만들 수 있었다. 그래서 일단 일부는 대량으로 치료약을 만들기 위해 필요하다고해 조금은 그들을 안심시키는 것이다.

왜의 상인들도 교역량을 늘리는 점에 혹해서 더 이상 깊이 생각하지 않고 거래를 약조했다.

“잘 알겠습니다.”

왜도 조선에서 화약의 연료인 황을 특별히 많이 주문할 경우 대마도에 거점을 둔 왜의 상인들은 은근히 신경을 쓰고 있었다. 이유는 과거 노략질하는 왜구를 토벌하기 위해 대마도를 정벌할 때 조선에서는 강력한 화약무기인 화포를 동원했기 때문이다.

명나라와 조공무역을 하는 조선에서는 명나라에서 필요한 황을 판매해서도 이득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명에서는 조선에서 화약을 사가기를 원하기도 했다. 그들은 만주지역이나 몽골지역의 호전적인 유목민들을 상당히 경계했다. 물론 조선도 마찬가지다.

한정문은 슬며시 북쪽 지역의 국방에 치중한다고 설명했다.

“우린 건주여진의 침범을 자주 받아 금명간 그쪽을 공략하게 될 겁니다.”

“그렇군요. 그렇다면 제일 좋은 황으로 골라 가져오겠습니다.”

“꼭 그렇게 해주시오.”

왜의 상인들이 제일 좋아하는 호피가 20장이나 된다. 더구나 살아있는 호랑이 새끼를 무려 40마리나 사갈 수 있다는 점이다. 왜에는 없는 진귀한 동물이라 특별히 호랑이를 원하는 영주(다이묘)들이 많았다.

상인들은 계속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그중에 특히 좋아하는 상인은 사사키다. 그가 상인들의 우두머리로 이번 거래로 큰돈을 벌게 되어 대마도주의 신임을 독차지 하게 생겨 좋아했다.

‘이번 거래로 내 위치는 확고해졌어.’

조선호랑이의 가죽인 호피만 소장해도 권위를 나타내는데 살아 있는 호랑이를 보유한다는 것은 그들로는 대단한 부와 권위의 상징이었다. 그러니 이번 거래로 큰돈을 버는 것은 너무 쉬운 일이다.

한정문은 그런 점을 잘 알기 때문에 강조했다.

“데리고 가서 잘 번식을 시켜 보세요. 매번 우리에게 호피를 팔리고 사정하지 말고.”

“감사합니다. 귀한 호랑이를 보내 주셔서.”

왜의 상인들은 정신없이 대마도로 가서 그곳에 있는 유황, 구리, 백은을 몽땅 가지고 왔다. 그래서도 모자라 본토까지 가서 교환할 물품을 운반해 거래는 무사히 성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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