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화
<왜로 넘어간 호랑이>
다음날 새벽. 동이 뜨기 전에 부대원들은 모두 완전군장으로 떠날 준비를 마쳤다. 눈이 많이 내린 산행이라 구조대원인 자신들까지 조난당할 위험성도 많아 철저하게 준비하고 떠났다.
최인범은 배도치에게 물었다.
“구조용 밧줄은 충분히 챙겼나?”
“넷! 충분히 챙기고 각자 배낭에도 짧은 밧줄을 모두 지참하고 있습니다.”
일단 말을 타고 도로를 따라 행정병들도 같이 이동했다. 드디어 산채로 가는 길목에 도착하자 말에서 내려 다시 장비를 점검했다.
산채를 향해 한참을 올라가다가 최인범은 부하들에게 지시했다.
“배 반장, 너희들은 계속 그대로 올라가. 그리고 칠복이 형제는 서쪽 능선을 따라 올라가고. 나는 동쪽 능선을 따라 올라가며 수색할 것이니까.”
“넷! 알겠습니다.”
아무래도 정상적인 방향을 벗어나 내려오다 조난당한 것 같았다. 그래서 수색하는 범위를 세 곳으로 정해 넓혔다. 칠복이 형제가 풍산개 두 마리를 데리고 가고 최인범도 두 마리를 앞세우고 수색하며 이동했다.
한참 능선을 따라 올라가다가 갈라지는 곳에서 다른 능선을 따라 이동했다. 산채에서 내려오다 보면 갈라지는 다른 골짜기다.
산등성이에 올라 계곡을 자세하게 살폈다. 멀리 골짜기에 사람들이 보였다.
눈이 바람에 휘날려 좁고 깊은 골짜기는 엄청난 눈이 쌓여 있었다. 그런 위험한 곳에 50여명의 포졸과 장정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커다란 바위 주변에 옹기종기 모여서 오가지도 못하고 누군가 구해주길 기다리고 있었다.
추운 겨울에 산속에서 밤을 꼬박 새워서 그런지 다들 힘이 없어 보였다.
“찾았다!”
크게 외치자 50명의 사람들도 그 소리를 듣고 환호성을 질렀다.
“여기요! 여기!”
“살았다!”
이어서 다른 방향을 통해 수색하던 부하들에게도 소리쳐 알렸다. 부하들은 모두 조난당한 단양군수 일행이 모여 있는 골짜기에 도착했다. 폭이 40미터 정도인 골짜기에는 엄청난 눈이 쌓여 있었다. 구하려면 누군가 밧줄을 가지고 건너편으로 건너가야 된다.
바위틈에 모여 덜덜 떠는 사람들을 보며 문뜩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저 많은 사람들 중에 부싯돌을 가지고 있거나 불을 피우는 재주를 가진 놈이 한 사람도 없어? 정말 관리나 아전이나 할 것 없이 모조리 멍청한 놈들이군.’
여름철에 야유회를 가도 항상 불을 준비해야 된다. 겨울 산행에서 아무런 준비가 없이 자신들 뒤만 졸졸 뒤따라 왔다고 생각하니 너무 한심했다. 참으로 대책 없는 관료고 장정들이다.
최인범은 즉시 준비한 밧줄을 이어서 그 끝을 제일 영민한 풍산개인 일둥이의 목에 걸어주고 명령했다.
“일둥! 저리가!”
컹! 컹!
크게 짖은 풍산개가 빠르게 눈길을 헤치며 뛰어가지만 높이 쌓인 눈 때문에 10미터 정도 가다가 더 이상을 전진하지 못했다. 자칫하면 풍산개가 눈 속으로 빠져 죽게 생겼다.
풍산개는 몇 번을 넘어가려고 시도하다가 결국 포기하고 돌아와 코를 처박았다. 아마도 주인이 시키는 일을 완수 못해서 그게 걸리는 모양이다. 누군가 넘어가고 밧줄도 가져가야 한다.
‘어떻게 밧줄을 저쪽으로 보내지?’
잠시 생각하던 최인범은 다시 단창의 고리에 밧줄을 묵고 투척 자세를 취했다. 일단 달리면서 힘껏 던져 볼 요량이다. 물론 사람들이 없는 숲으로 던져야 한다. 투척할 준비가 끝나자 몇 발을 뛰어가며 힘차게 던졌다.
“이얏!”
쉬이익! 퍽!
멀리 던져진 단창은 정확하게 계곡 건너편의 커다란 소나무에 깊이 박혔다. 그저 멀리 던지려고 했지만 사람들은 목표를 정해 던진 것으로 오해해 다들 감탄사를 토했다.
“와아! 저렇게 멀리서 목표에 정확하게 박히네.”
“그러니 풍기 악귀라고 하지.”
“무슨 소리야. 그건 산적들이나 하는 소리지. 우리는 투신이라고 부르잖아.”
“그런가?”
경상도와 강원도 지역에서는 격투기도 잘하고 투창 실력이 좋은 최인범을 투신(鬪神)이라고 불렀다. 여담이지만 50미터를 던져 소나무에 단창을 깊이 박은 이번 일은 사람들의 입을 통해 조선팔도로 소문이 퍼졌다. 1년이 지난 나중에는 무려 200미터를 던져 호랑이를 잡은 전설로 변하게 된다.
계곡을 가로 질러 연결된 밧줄을 이용해 칠복이가 계곡 건너편으로 넘어 갔다.
“조심해!”
“넷!”
밧줄을 정확하게 매듭지어서 큰 나무에 묶어야 밧줄을 쉽게 회수할 수 있다. 또한 넘어오는 방법을 사람들이 잘 몰라 도와주러 갔다. 그렇게 해서 양쪽 계곡의 커다란 소나무에 비스듬히 붙들어 매고 미끄럼을 타는 형식으로 밧줄에 안전 고리를 걸고 한 사람씩 넘어오기로 했다.
“조심해서 한사람씩 넘겨!”
“염려 마세요.”
다소 무질서하게 넘어 오려는 사람들을 향해 단양군수가 호통을 쳤다.
“질서를 유지해. 지금 무슨 짓이야? 돌아가서 혼나고 싶은가?”
“죄송합니다.”
이런 모습을 보며 단양군수가 먼저 넘어 오려고 하나 예측했다. 그러나 단양군수는 의외로 뒤에 서서 부하들이 넘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느긋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자 최인범은 속으로 생각했다.
‘아주 싸가지 없는 사또는 아니군.’
50명이나 되는 사람이 이동하게 되자 높이 쌓인 눈은 점점 미끄럼틀처럼 변했다. 처음 보다 나중에 넘어오는 사람이 미끄러워 조금 쉽게 넘어왔다.
“와! 눈 설매 타는 기분이네.”
“야호!”
마지막 사람을 넘긴 칠복이는 그저 눈썰매를 타듯이 맨몸으로 미끄러져 넘어왔다. 그러나 그런 객기는 최인범에게 콩알 주먹만 얻어맞았다. 험악한 표정으로 심하게 나무랬다.
“너! 왜 시키지 않는 위험을 자초하는 거야? 그러다 눈 속에 빠지면 어쩌려고.”
“죄송합니다.”
“앞으로 두 번 다시 그런 돌출 행동을 절대로 하지 마.”
“넷!”
설산에서의 구조 활동은 항상 위험이 따르기 때문에 매우 조심해야 된다. 구조작전에는 항상 안전한 이동이 제일 중요했다.
계곡을 넘어온 사람들은 바쁘게 최인범의 안내로 산에서 내려왔다. 산 속에서 불을 피울 상황이 아니라 최대한 빨리 이동했다.
“다들 힘내요. 도로까지 가면 불을 피워놓고 있을 거요.”
거의 탈진 상태에 이른 사람도 있었지만 부대원들이 부축해서 빠르게 산에서 내려왔다.
이윽고 행정병들이 말을 가지고 기다리는 도로까지 무사히 도착했다. 도로에서 말을 가지고 기다리던 행정병들은 크게 모닥불을 여러 곳에 피워놓고 있었다. 모닥불에는 반함에 뜨거운 물을 끓이고 있었다.
불을 보자 사람들이 모닥불 옆에 둘러서서 몸을 녹이며 뜨거운 물에 타준 미숫가루를 마시며 고생한 이야기를 했다. 죽다 살아난 기분들이라 장정들은 다들 한마디씩 토했다.
“아이고, 이제야 겨우 살았네. 미숫가루를 먹으니 몸이 완전히 풀리네.”
미숫가루를 마시던 사람들은 안에 딱딱한 것을 씹으며 감탄했다.
“와! 여기에 갱엿도 들었어. 나도 착호 부대나 들어가면 좋겠어.”
“웃기네. 누가 너 같은 허접한 놈을 받아나 준다냐? 거기도 어려운 무술시험을 봐야 해. 약골인 너는 1차 시험에서도 떨어져.”
다른 장정들은 고생을 너무 심하게 해서 그런지 아직도 진저리를 쳤다.
“나는 앞으로 절대 겨울철에는 산에 안 올라 올 거야.”
“나는 이제 항상 부싯돌을 가지고 다닐 거야.”
모닥불을 쪼이고 뜨거운 물을 마셔 우선 얼어버린 몸을 녹인 단양군수가 최인범에게 슬며시 다가와 다부진 목소리로 말했다.
“고맙소. 나 민천복을 두 번이나 그대가 살렸군. 내 평생 이 은혜를 잊지 않으리다.”
한 번은 산적을 토벌해 자신의 관직을 유지하게 해주고 이번에 눈 속에서 조난당한 자기를 구해 줬다는 뜻이다. 이런 단양군수의 거창한 말에 최인범은 가볍게 응수했다.
“그야 은혜라고 할 것이 있나요. 그보다 왜 엉뚱한 곳으로 가신 겁니까?”
“말도 말게. 이방이 그쪽으로 내려가면 빠르다고 주장해 그 말을 따르다가 그만 길을 잃었네. 고을 수령이라는 자가 시건방진 이방의 말을 듣다가 모두 몰살당할 수 있었소. 산적은 하나도 잡지 못하고 부하들만 떼로 죽이는 만고의 역적이 될 뻔했었소. 정말 고맙소.”
그러자 최인범은 빙그레 웃으며 응수했다.
“본래 산행은 조금 멀어도 평소에 잘 아는 길로 다녀야 합니다. 특히 눈이 많이 내린 겨울의 산길은 더욱 그렇고요.”
“잘 알았네. 내 이번에 돌다리도 두드리며 조심해서 다니라는 성현들의 말씀이 절실하게 생각나더군.”
단순한 속담에 불과하지만 성현의 말씀이라고 하는 것으로 보아 이 사람은 골수까지 성리학에 잔뜩 찌든 사람이 분명했다. 그래도 어딘가 속이 깊고 너그러운 사람으로 보였다. 계곡에서의 행동이나 큰 실수를 저지른 이방을 심하게 나무라지는 않고 있어 이렇게 생각했다.
몸을 녹인 사람들은 다시 대강주막으로 향했다. 말을 나란히 타고 가며 민천복 군수는 자신의 이름 풀이를 했다.
“내 이름이 천복이라 그런 가? 하늘에서 복을 내려서 죽지 않고 또 살았어.”
“그렇군요. 군수님은 좋은 이름 때문에 복이 아주 많겠군요.”
“그렇다고 어디 하늘에서 그냥 복이 그냥 내리나 다 자네처럼 옆에서 도와줘야 천복을 받는 거지.”
이런 대화를 나누며 가던 최인범은 조심스럽게 중요한 이야기를 했다.
“군수님, 제가 먼저 데리고 간 여자들과 아이들을 선처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알아보니 다들 강제로 납치되어 산적의 아내들이 되어버린 여자들이니 정상을 참작해 조정에 잘 품신해 주세요.”
“알았네. 나도 이번에 죽다가 겨우 살았으니 느끼는 점이 너무 많았다네. 그런 점을 참고해서 조정에 잘 써서 보내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고개를 숙이며 정중하게 인사하자 민천복은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허! 자네가 왜 그런 일로 나에게 인사를 하나? 자네의 가족이나 친지들도 아닌 전혀 남들인데.”
“그래도 여자들의 사정들을 일일이 들어보니 너무도 딱해 보여서요. 특히 어린아이들의 장래가 너무 걱정됩니다.”
“충분히 알았으니 그런 복잡한 이야기는 그만 하지.”
이렇게 말을 끊은 민천복 군수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했다. 뭔가 호기심이 강한 표정으로 슬며시 물었다.
“자네 혹시 정혼한 여자가 있나? 없으면 내가 아주 좋은 혼처를 주선해 주고 싶은데.”
“아! 그 문제요. 아직 혼인은 생각이 없습니다. 제가 검교직으로 벼슬을 하지만 아직 무과에 급제하지 못해서요. 돌아가신 아버님과 굳게 약속했거든요. 무과에 급제한 후에 혼인하겠다고요.”
이런 답변을 듣던 민천복은 가볍게 웃으며 응수했다.
“허허! 자네는 내가 별로 마음이 안 드나 보군. 나중에 한양으로 올라가서 반드시 만나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