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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트레인-103화 (103/519)

103화

젊은 아낙은 조심스럽게 아이를 넘겨주었다. 그러자 최인범은 어린 아이를 배낭 안으로 넣어 잘 갈무리해서 등에 지고 있었다. 그리고 호주머니에서 곶감을 꺼내 아이의 손에 쥐어 주었다.

최인범의 이런 행동을 바라보던 부하들이 다들 놀랐다.

‘어라? 이상하시네?’

다들 놀라는 이유는 처음으로 취하는 행동이고 돌발 상황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것으로 부족해 여자들이 힘들어 하자 다시 두 아이를 양손에 안고 산을 내려갔다. 그런 모습을 보던 부하들은 또 다시 놀랐다.

‘소대장님에게 저런 인간적인 면이 있었나?’

물론 왈짜 패거리에 불과하던 자신들에게 후하게 대해줘 고마움을 느끼고 그 때문에 충성심은 가득했다. 그러나 때로는 그저 무덤덤하게 행동해 인간미가 덜하던 소대장이다. 그런 규칙적인 행동을 보다가 이런 새로운 모습을 보자 다들 감동을 받았다. 매우 훈훈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역시, 우리가 운이 너무 좋아 저런 소대장님을 잘 만난거야.’

양반 자제인 행정병들도 어느새 다른 모습에 놀라 감복하고 있었다.

‘이거야 말로 진짜 사대부가 가야할 지도자의 참모습이 아닌가?’

흔히 성현들의 말씀에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인간이란 개인적인 원한이나 시대의 어떤 큰 흐름 때문에 과도하게 남을 미워하는 경우가 많았다.

훈구파가 아닌 영남 지역의 사림파에 속하는 양반 자제인 행정병들은 사실 훈구파들을 상당히 미워하는 분위기 속에서 자랐다. 그래서 조정을 장악한 훈구파들의 꼴이 보기 싫어 문과를 보지 않고 일탈 행위로 세상을 떠돌기 위해 착호 부대로 합류했다.

새롭게 배운 것이 많은 착호 부대 생활이었다. 새로 배운 구불구불한 요상한 숫자도 너무 신기했다.

말로만 떠들던 백성들을 위한다는 백 마디의 말보다 소대장인 최인범은 묵묵히 실천했다. 노비나 양반이나 또는 일반 양민 출신이나 아주 공평하게 대했다. 그렇다고 해서 평등사상을 누구에게 말하거나 또는 강조하지도 않았다. 그저 몸에 익숙한 듯이 그저 평범하게 대했다.

‘신분의 차이를 모르는 백두산에서 오래 수련해서 그런가 봐.’

어찌 되었건 좋은 면으로 보였다. 행정병들도 점점 최인범에게 충성하는 마음이 커졌다. 새롭고 긴 인연이나 악연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최인범의 일행은 점점 함박눈으로 굵어지는 눈발을 해치며 드디어 대강주막에 도착했다.

“날씨가 너무 추우니 여자들은 모두 방으로 들어가 묵게 해.”

“넷!”

우선 여자들은 주막의 방으로 들어가 쉬게 명령하고 이어서 배도치에게 지시했다.

“배도치, 너 분대장들과 같이 나가서 빨리 통돼지 사와.”

“통돼지요?”

“숯불로 통돼지를 구워서 먹을 것이니 숯도 구해오고 돼지를 두 마리 사와. 단양군수 일행도 오면 먹어야 되니까.”

“알겠습니다.”

대강주막은 산적들의 아낙들이 잡혀 왔다고 하자 구경하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로 무척 붐볐다.

산적들은 가끔 산골마을로 쳐들어와서 재물만 빼앗은 것이 아니다. 사람을 죽이거나 또는 부녀자를 납치해 갔다. 그 때문에 혹시 자신의 가족인 딸과 아내들이 살아있나 주위사람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살피는 사람들도 있었다.

마을사람들의 일부는 이미 산적의 아내가 된 여자들이라고 해서 맹렬하게 비난했다.

“흉악한 산적의 아내라니 죽어 마땅하군.”

“그냥 죽여 버리지 왜 살려서 데리고 왔어.”

이런 매정한 소리를 토해내면서 마을사람들은 여자들을 향해 욕했다. 대강주막은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웅성거리고 또는 욕하니 무척 소란스러웠다.

그런 군중들의 모습을 넌지시 바라보던 최인범은 행정병에게 다부지게 명령했다.

“권 상병, 사람들을 주막 근처로 절대 접근하지 못하게 통제선을 쳐.”

“알겠습니다. 새끼줄로 금줄처럼 치면 되죠.”

이어서 다시 행정병에게 추가로 지시했다.

“혹시 딸을 찾으러 온 사람이 있으면 나를 먼저 만나게 해주고.”

“넷! 그런 사람이 있나 조사해 보고 하겠습니다.”

이제 죄인의 몸인 여자들은 방에 쪼그리고 앉아 매우 두려운 표정이다. 산적의 아내들이라고 험악하게 다루지 않는 것에 조금 안심되어 순순히 따라왔다.

그러나 대강주막으로 마을사람들이 떼를 지어 몰려와 욕을 퍼부으며 웅성거리자 행여 돌멩이를 던질까 두려웠다.

덜덜덜.

어린 아이들을 품에 안고 두려워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그러자 최인범이 여자들에게 지시했다.

“모두 방안으로 들어가 밖으로 나오지 마시오.”

“예.”

금줄처럼 주막 주변에서 10여미터 떨어진 곳에 통제선을 치고 사람들의 접근을 막자 마을사람들은 투덜거리며 주막을 떠났다.

“혼자인 여자는 없습니다. 모두 아이들이 있어요.”

“정말요?”

“그래도 만나겠습니까? 원하면 신분을 정확하게 밝히세요. 그러면 제가 찾아 봐서 있다면 만나게 해드리죠.”

“아니요. 이미 남의 아내가 됐다면 포기하죠.”

행여나 하고 찾아온 사람들은 이미 산적들의 아내가 되었다는 말에 다들 매정스럽게 발길을 돌렸다. 가끔 여동생이나 누나를 찾는 경우는 애절하게 만나고 싶다고 사정했다.

그러나 산적의 아내가 된 여자들이 가족을 만나고 싶지 않다고 해서 면회는 성사되지 않았다.

유교 사회인 조선은 이때 이미 여자의 정절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회분위기다. 그 때문에 여자들은 자신들의 본래 신분을 남에게 알려지길 완강하게 거부했다. 집안이나 형제들에게 피해를 주기 싫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양반이나 양민이나 모두 마찬가지다. 혹시 자신들에게 피해가 있을까 기겁하며 도망치는 정말 치사한 부류들도 있었다.

이런 광경을 지켜보던 최인범은 행정병들에게 지시했다.

“행정병들이 개별적으로 여자들을 모두 면담해. 그래서 본래 신분과 산적에게 끌려간 정황 등은 기록해 둬. 여기서 정확하게 자백하지 않으면 관아에서 고문을 당한 이후에 실토하게 되니 여기서 자백하고 조사가 끝날 수 있도록.”

“알겠습니다.”

여자들도 분위기는 알기 때문에 행정병들의 물음에 모두 답해주었다.

20명이나 되는 여자다 보니 출신 성분은 각양각색이다. 양반의 딸이나 아내도 있고 평민, 무당, 비구니, 기생, 그리고 여종 등 다양했다. 출신 지역도 다양해 경상도나 충청도 멀리 전라도까지 있었다. 전라도의 경우는 끌려온 지 아주 오래되었다.

납치 과정을 심문하다 보니 본시 산적의 뿌리는 전라도 출신인 농민들이다. 그 후에 관군을 피해 추풍령을 지나 문경에서 활동하다가 결국 죽령까지 이동했다. 그런 과정 중에 산적들 내부에도 권력과 세력 다툼이 있었다. 지금은 경상도 출신 두목이 무리를 장악한 것도 알게 되었다.

경상도 출신이지만 모두 추풍령 남쪽 출신들이 대부분이었다. 이것으로 보아 산적들은 죽령으로 와서는 산적 패거리를 더 이상 늘리지 못하고 점차 감소하는 추세다.

“소대장님, 전에는 거의 60명이나 됐으나 점차 분산되거나 혹은 병으로 죽고 일부는 산적 무리에서 떨어져 다시 고향으로 돌아갔답니다.”

“알았어. 기록을 잘 해놓도록 해. 단양군수가 오면 넘겨줘야 하니까.”

한편 대강주막의 주모는 수양딸과 같이 바쁘게 새로 커다란 가마솥에 밥을 짓고 있었다. 부대원도 먹어야하고 또 군수일행과 포로로 잡힌 여자나 아이들도 먹게 준비를 시켰기 때문이다.

“어머니, 한 솥을 해서는 부족하겠어요.”

“더 해야지. 빨리 시래기 국도 끓여.”

“예.”

주모가 인심이 후해서 이렇게 하는 것은 아니다. 모두 최인범이 여자들의 식대나 숙박비를 지불해 준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최인법의 지시를 받은 배도치는 급하게 통돼지를 사와서 숯불로 구웠다. 이윽고 밥과 국이 다 지어지자 제일 먼저 방안에 있는 여자들에게 밥과 고기가 담긴 밥상을 넘겨주며 말했다.

“고기는 얼마든지 있으니 천천히 꼭꼭 씹어 먹어요. 그래야 젖도 많이 나와 아이들도 건강하니까요.”

“감사합니다.”

이제 자신이 여자들에게 해줄 수 있는 배려는 거의 끝났다. 앞으로 어떤 험난한 길이 여자들에게 닥칠지 모르지만 자신이 데리고 있는 동안은 잘 대해줄 생각이다.

‘여자들이 무슨 죄가 있다고 가족들에게도 버림을 받나? 참으로 못할 짓이야.’

여자들의 처지가 너무 불쌍해 보여 최인범은 자신이 데리고 있는 동안 최대한 잘 대해줄 생각이다.

남에게 넉넉하게 베푼다는 것은 무척 즐거운 일이다. 최인범은 실로 오랜 만에 마음 편히 부하들과 같이 가볍게 소주를 마셨다.

한 참 소주를 마시던 중에 은근히 걱정이 생겼다. 쉽게 뒤를 따라 오려나 했던 단양군수나 그의 부하들은 밤이 깊어도 돌아오지 않았다.

‘어라? 내려오다가 길을 잃었나?’

뭔가 큰일이 터졌다는 느낌이 문뜩 들었다. 그러나 밤이 너무 깊어 부대원을 이끌고 산으로 가볼 수 없었다. 그래서 급하게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모두 술을 그만 마시고 일찍 자. 내일 동이 뜨기 전에 완전군장을 꾸려서 산으로 올라가야겠다. 아무래도 단양군수에게 무슨 사단이 생긴 것 같아.”

“그러네요. 바로 뒤 따라 왔으면 벌써 도착할 시간이 지났는데요. 혹시 산적들의 공격을 받았나? 너무 이상하군요.”

배도치가 이렇게 말하자 칠복이가 나서며 답했다.

“에이, 배 반장님은 알지도 못하고 그렇게 말해요. 산적들은 너무 멀리 도망쳐 다시 뒤돌아 와서 공격할 상황이 아닙니다. 제가 보기에는 눈 때문에 길을 잃은 것 같아요.”

최인범은 다시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구조하러 가야 될 상황 같으니 빨리 자도록 해. 공연히 내일 산에 오르며 비실거리지 말고.”

신나게 술판을 벌이려던 부하들은 이런 지시에 빠르게 술자리를 치웠다.

내일 새벽에 일찍 일어나 떠나려면 푹 쉬는 것이 신상에 이롭다. 최인범은 산에 오르면 매섭게 몰아세우는 경우가 많아 힘들 것이 예상되었다.

부하들이 모두 자는 가운데 최인범은 계속해서 함박눈이 내리자 걱정이다.

“큰일이야. 산적들의 습격이 아니더라도 이런 눈이면 분명 군수 일행이 눈 때문에 실종될 것 같은데.”

이런 말을 듣던 임무영 상병이 응수했다.

“소대장님, 눈이 많이 내린 산길을 올라가서 구하려면 준비할 장비가 많아 보이는데요. 당장 대나무 지팡이와 설피가 필요합니다.”

“아! 그렇지. 그럼 보초를 서면서 우리 그거나 만들자.”

“넷! 그런데 설피는 몇 벌이나 만들죠?”

보급병의 물음에 최인범은 즉시 답했다.

“부대원들이 모조리 갈 필요는 없고 칠복이 형제와 배도치 반장과 분대장만 가야지. 나머지는 여기서 여자들을 지켜야 하고.”

“알겠습니다. 저희 행정병들은 말을 타고 교대로 중간의 도로에서 불을 펴놓고 대기하고 있겠습니다.”

“그것이 좋겠군.”

모두 9명이 구조를 위해 떠나기로 결정해 조잡하지만 설피를 만들게 되었다. 솜씨 좋은 사노비들을 깨워 같이 작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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