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화
동헌에서 나온 최인범은 일단 관아를 떠나 죽령 쪽으로 이동해 대강주막으로 거처를 잡게 되었다. 규모가 제법 큰 주막이다.
대강주막은 죽령으로 오르는 길목에 있었다. 그 때문에 죽령으로 넘어가려는 상인이나 행인들이 대부분 모이는 곳이다. 주막은 안채와 행랑채로 나눠져 있었다. 다른 주막들처럼 안마당에는 평상들이 여러 개 놓여 있었다.
충청도에서 경상도로 가려는 행인들은 이곳 대강주막에서 모여 무리를 이루고 죽령을 넘는다. 죽령에서 산적들의 출몰이 사라졌다고 하지만 소규모로 이동하면 숨어 있던 산적들이 나타나 공격할 수 있었다.
행랑채는 방이 대문의 양쪽으로 4개씩이 있고 오른쪽 옆에는 커다란 마구간이 있었다. 그래서 오른 쪽에 있는 방들을 모두 얻어 짐을 풀었다.
방안으로 들어가던 최인범은 뒤로 돌아서서 노비들에게 지시했다.
“우선 말을 마구간에 잘 넣어 놓고 먹이부터 줘.”
“넷!”
이때 행정병인 권영목이 40대인 주모를 만나 조용히 물었다.
“주모. 혹시 풍기에서 왔었던 착호 부대가 지나갔나?”
“예, 여기서 하룻밤 묵고 죽령을 넘기 위해 떠난 지가 며칠 지났어요.”
“알겠소. 멧돼지들은 가지고 가던가?”
“예. 얼마나 멧돼지 새끼들을 애지중지하는지 보기가 이상할 정도더군요. 울기는 어찌 시끄럽게 울던지 그날 밤에 한 숨도 자지 못했어요.”
멧돼지를 가지고 따로 이동한 배도치가 이끄는 부대원은 이미 며칠 전에 죽령을 넘어 풍기로 돌아갔다. 그러니 다시 불러와 산적 소탕작전에 참여시킬 수도 없었다.
‘전에 만났던 무당이나 잘 감시해서 그때 수상한 행적을 보인 산적 같은 놈이 나타나면 잡아보고 아니면 슬며시 죽령으로 넘어가 버려야 되겠어.’
무리하게 움직일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다.
최인범은 칠복이 형제를 방안에 불러 작은 목소리로 지시했다.
“너희들은 군복을 벗고 무명옷으로 갈아입어. 저쪽의 산 너머로 가면 당집이 있으니 그곳으로 가서 산속에 숨어 당집을 교대로 감시해.”
“알겠습니다.”
이렇게 지시하고 다른 부하들도 군복을 벗고 모두 무명옷으로 갈아입고 중요한 거점인 산골마을마다 보냈다.
“두 명씩 조를 짜서 산골마을을 찾아가서 심마니를 찾고 또 심마니가 아니어도 혹시 산삼 씨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나 알아봐. 혹시 수상한 거동을 보이는 사람이 있나 주의 깊게 알아보고.”
“넷!”
쉽게 산적 무리를 찾기 힘드니 막연하게 기다릴 수는 없었다. 본래 구하려던 산삼 씨도 구하며 산적의 흔적을 찾아보기로 했다. 단양은 풍기지역 보다 산삼이 많이 나는 곳이다. 그러니 이곳에서 산삼 씨를 최대한 구해볼 요량이다.
최인범은 부하들에게 정보를 수집하도록 지시를 내리고 나자 주막에서 박보 장기판을 벌였다. 이제 벼슬을 하게 됐으니 전처럼 백성들을 상대로 큰 내기 장기를 두기는 조금 거북했다.
평상에 박보 장기를 늘여놓고 면포 1필을 내기장기를 두어 이기는 사람은 면포 5필을 주겠다는 판을 벌였다.
“이기면 분명 면포 5필을 줍니까?”
“그렇습니다. 그러니 한 번 두어 보세요.”
“좋소! 둡시다. 여기 무명 1필이요.”
이기면 5배를 준다는 누구고 혹할 유혹이다. 그러자 대강주막을 찾아오는 장사꾼이나 또는 행인들이 슬슬 모여들어 박보 장기를 두었다.
박보 장기는 한 가지만 펼쳐 놓고 두는 것이 아니라 몇 가지를 펼치고 두었다. 매번 이기는 것은 아니고 면포가 10필이 모이면 한번은 져서 사람들을 꼬였다.
결국 박보 장기 10판을 두면 면포 5필이 생기는 소소한 용돈 벌이를 했다. 물론 재력이 좋은 최인범은 푼돈에 해당 되지만 백성들의 입장에서는 면포 1필은 큰 재물이다.
주막을 찾아오는 행인들만 박보장기를 두자고 덤비는 것이 아니다. 근동에서 장기를 잘 둔다는 사람은 일부러 면포를 가지고 주막으로 찾아와 박보 장기에 도전했다.
하루 종일 박보 장기를 두고 그것이 지루해지자 바둑판을 구해 와서 때로는 내기바둑도 두었다. 재물을 따기 위해서보다는 하루 종일 기다리기 지루해서다. 또한 개들의 먹이나 부하들의 여비나 조금 벌어보기 위해 벌이는 내기 장기와 바둑이다.
바둑이야 그저 승패는 7할로 기준해 두었다. 바둑을 두면서 최인범은 흘리듯이 사람들에게 슬그머니 질문해서 필요한 정보를 수집했다.
“근동에서 갑자기 부자가 된 사람이 있소?”
“그런 사람은 왜 찾소?”
“그야 찾아가서 크게 내기 장기나 바둑을 한판 벌여 보려고 그런 거지요.”
“그런 사람은 없는데.”
“그래도 씀씀이가 커진 사람이 있을 것 아닙니까?”
당집으로 가서 매복한 칠복이 형제나 산골마을로 들어가서 정보를 수집하는 다른 부하들은 가끔 산삼 씨만 조금씩 구해오고 별다른 소득이 없었다.
대강주막에 거점으로 잡고 정보를 수집한지 무려 10일이 지났다. 오늘도 평상에서 어김없이 바둑과 박보장기를 두고 있었다.
“소대장님!”
주막으로 배도치와 그의 부하인 5명의 분대장들이 모두 들어왔다. 그들을 보자 최인범은 약간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어? 너희들이 여긴 웬일이야?”
“동물농장에서 지내다가 소대장님이 여기서 내기 장기만 두시며 지낸다고 해서 찾아 온 거죠. 도대체 무슨 일인데 여기서 이러고 계세요?”
“산삼 씨나 구해 보려는 거지.”
배도치는 여전히 군복 차림이라 최인범이 그에 대해 주지시켰다.
“배 계장, 이제 군복은 벗어라. 착호 부대가 해산되었으니 그 옷을 입고 다니면 안 돼.”
“예? 그래야 하나요?”
“당연하지. 앞으로 새로 조정에서 소집하라는 명령이 내려오기 전에는 군복을 입으면 안 되니 앞으로는 입지 마.”
“알겠습니다.”
최인범은 풍기의 동물농장의 운영상태가 매우 궁금해 자세하게 물으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제는 늦은 가을이 되고 더 이상 여기서 시간을 보낼 수가 없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철수할까 생각하는 중에 마을을 돌아다니며 정보를 수집하던 최산필이 급하게 주막으로 달려왔다.
“뭐냐?”
“소대장님, 드디어 찾았습니다.”
다른 사람이 들을 염려가 있어 최인범은 급하게 방안으로 들어가 최산필의 보고를 들었다.
“소대장님, 저쪽 아랫마을에 김 초시라고 부르는 큰 부자가 있습니다. 아무래도 그 사람이 장물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뭐? 그게 정말이야?”
“넷! 분명히 장물을 취급하고 있는 것이 확실합니다.”
최산필이 조사한 정보에 의하면 김 초시는 실제로는 초시도 못했다. 하지만 부자라 그저 초시라고 부르는 양민이다. 그의 집에는 상인들이 들어가 물건을 가져오고 거래하는데 고급스러운 물건이 오간다는 것이다.
이런 보고에 최인범은 잠시 생각하다가 결론을 내렸다.
“그것만으로 장물이라는 확실한 증거가 못되는데. 우리가 관아의 관리도 아니고. 무작정 민가로 쳐들어가서 집안을 함부로 뒤질 수도 없으니 그런 정도의 정보로는 움직이기 곤란해.”
“그건 그렇군요.”
사법권이 전혀 없는 처지로 양민의 집을 함부로 수색할 수 없었다. 그래서 또 다른 확실한 증거가 나오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최인범은 아쉬운 생각이 들었지만 포기하기로 결정하고 권영묵에게 지시했다.
“자네 당집으로 매복 간 칠복이 형제를 불러, 이제 포기하고 떠나자.”
“넷!”
이때 하늘에서 하얀 눈이 소록소록 내리고 있었다. 날씨가 점점 흐려지더니 드디어 첫눈이 내리는 것이다.
‘첫눈?’
첫눈은 많은 의미가 담겨 있었다. 뭔가 서로 연락을 주고받아야 하는 은밀한 사이에는 첫눈에 만나자는 약속하는 경우가 많았다. 전생에서도 그렇지만 조선시대에도 그런 약속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흔히 양반들 사이에는 첫눈이 오면 친구에게 수담을 즐기자고 약속하는 경우가 흔했다.
‘첫눈이 오면 만나자고 약속하는 경우가 많아.’
잠시 이런 생각을 하던 최인범은 혹시 당집의 무당과 산적으로 보이는 놈도 ‘첫눈이 오면 당집에서 만나자고 약속한 것이 아닌가?’하며 추측했다.
‘가능성이 높아.’
자신이 당집에서 수상한 행동을 보인 산적 놈을 만났을 때도 첫눈이 올 무렵이다. 그래서 칠복이 형제를 부르려고 나가려는 권영묵을 급하게 불렀다.
“권 사용, 아직 데리러 가지마. 하룻밤만 더 기다려 보자.”
“알겠습니다.”
다음날 아침밥을 먹고 나자 최인범은 평소와 같이 넓은 평상에서 앉아 배도치와 장기를 두고 있었다.
이때 당집으로 매복하러 갔던 칠복이 형제가 급하게 주막으로 돌아왔다. 빠르게 달려와서 그런지 다들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소대장님, 말씀대로 당집에 수상한 놈들이 떼로 나타나서 많은 짐을 당집에 내려놓고 쌀자루를 가지고 산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전에 자신이 봤을 때는 한 놈이더니 이제는 산적들이 떼로 당집으로 몰려 왔다니 시간이 흐르자 젊은 무당의 간덩이도 크게 불어났다.
“그래서?”
“그 짐들은 노비로 보이는 사람들이 당집으로 찾아와 김 초시 댁이라는 기와집으로 가져가더군요.”
드디어 기다리던 확실한 정보가 수집되었다.
자신에게 꼭 필요한 정보가 수집되자 최인범은 즉시 부하들에게 지시했다.
“알았어! 최산필은 지금 즉시 단양군수에게 이런 사실을 알리고 포졸을 데리고 오라고 해. 우리는 말을 타고 가서 당집부터 덮치도록 하자.”
“넷!”
배도치를 비롯한 부하들을 이끌고 서둘러 당집으로 향했다. 1년 전에 비하면 많이 변한 상태로 당집으로 다시 가는 것이다. 그때는 살아남기 위해 도적질을 하며 몰래 숨어서 다니던 처량한 신세였다.
‘나도 참 많이 변했군.’
이런 생각을 하며 급하게 최인범은 부하들과 같이 급하게 말을 몰아 달려갔다. 마을을 통하는 길을 빠르게 말을 몰아 달려가자 마을 사람들이 다들 눈이 동그래서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지? 호랑이라도 나타났나? 착호부대가 출동하고.”
“호랑이가 나타날 리가 있나? 호랑이 울음소리가 이 지역에서 사라진지가 오래 되는데.”
말을 타고 당집에 도착하자 짐들이 많아서 그런지 마침 노비로 보이는 짐꾼들이 바리바리 짐들을 지고 당집을 나서고 있었다.
최인범은 톱날이 달린 장검을 뽑아들고 크게 외쳤다.
“모두 꼼짝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