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화
세자나 왕자의 보호가 호위무사 한 명의 힘으로 어찌 해볼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라면 세자를 외부의 영향을 받지 않고 무사하게 보호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대궐에서 나온 한정문은 우선 조정으로 들어온 호피 20장과 호랑이새끼 40마리를 가지고 동래로 떠나게 되었다. 그곳 왜관에 들려서 왜의 상인들에게 판매하고 그들로부터 황과 은을 들여올 생각이다.
한강의 노들나루에 도착하자 이곳의 나루터지기인 별장으로 있는 윤태길이 호랑이를 보고 매우 놀랐다.
“어이쿠! 호랑이군요.”
“자네는 왜 그렇게 호랑이를 보고 놀라나?”
한정문 선전관의 물음에 윤태길은 겁에 질린 눈빛으로 답했다.
“소인의 집이 본시 죽령 남쪽입니다. 그곳에서 소인의 누이가 호랑이에게 물려갔다가 겨우 살아난 사실이 있사옵니다. 그래서 호랑이를 조금 무서워하는 편입니다.”
이런 대답에 한정문은 즉시 반문했다.
“자네 집이 죽령이라면 혹시 창락골이 아닌가?”
“아, 선전관 나리도 그곳에 대해 잘 아시는 군요. 창락골이 제 고향입니다.”
이런 대답에 한정문은 윤태길이 죽령에 있는 윤 진사의 아들이라는 사실은 정확하게 알았다. 전에 그것에서 머문 적이 있기 때문에 그의 여동생을 최인범이 구해준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윤 진사와 최인범이 긴밀한 교류가 있는지 알아볼 요량으로 슬며시 물었다.
“자네는 최인범을 잘 아나?”
이런 물음에 윤태길은 즉시 답했다.
“소인은 그 사람에 대해 잘 모르옵니다. 그냥 그가 죽죽이 주막에서 머물 때 호랑이에 물려가던 제 누이를 구해준 사실이 있다는 것만 아옵니다. 그래서 제 부친께서 그 고마움으로 면포를 조금 보내줬고요.”
“그런가? 그 후로 서로 만나거나 혼사 이야기가 없었고?”
“전혀 없었습니다. 혼사야 잠시 최 진사와 있었지만 그는 이미 죽어서 끝났고요.”
“그렇군.”
이런 대화를 나누던 중 짐들은 계속해서 나룻배를 이용해 남쪽으로 운반되었다. 나룻배로 나르는 짐 중에서 유달리 부피가 큰 짐들이 있는 것을 보게 된 윤태길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선전관 나리, 저건 어떤 물건인지요?”
“그것을 자네가 알아서 뭐하려고. 조정에서 경상도로 면포를 가지고 가는 것이니 그렇게 알게.”
“아! 면포가 아주 많네요. 어디 재정이 어려운 고을을 지원해 주러 가시는 모양이군요.”
“잘 아는군. 지출이 너무 많아 힘든 고을로 도와주러 가지고 가네.”
한정문은 이렇게 쉽게 대답했지만 가지고 가는 물건은 면포가 아니었다. 그리고 남들 몰래 날라야 하는 물건이다.
한정문이 멀리 남쪽의 동래로 가지고 가는 것은 중국비단과 인삼이다. 개인적으로 사무역을 하기 위해 가지고 가는 것은 아니다.
주상께서 특별히 내탕금을 내서 중국비단과 인삼을 대량으로 사서 가져가고 있었다. 동래의 왜관에서 왜의 상인들에게 넘기고 그곳에서 백은과 구리, 황 그리고 후추 등을 사오기 위해서다.
한정문은 노들 나루터를 떠나며 잠시 주상의 비밀스러운 명령을 생각하고 있었다.
‘전하께서 결국 세자를 보위할 새로운 부대를 만들 생각이신거야.’
주상께서는 나름 세자의 차기 왕권 강화를 위해 일종에 통치 자금을 만들 요량이다. 그래서 비밀리에 왜와 무역량을 대폭 늘리는 것이다.
조정 중신들이 이런 사실을 알게 되면 뭔가 깨려고 하던가? 왕권 강화를 막으려고 경계한다고 판단해 비밀스럽게 거래를 지시한 것이다.
한정문은 최인범이 하필이면 화약의 원료인 황이나 백은과 또는 구리를 대량으로 들여오라고 했는지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있었다.
‘나이도 어린 사람이 큰 상단도 운영하고 이재에도 밝아 보여. 국제 관계의 무역까지도 잘 아니 정말 특이한 청년이야.’
백은을 많이 들여오면 명나라로 판매해 큰 이득을 볼 수가 있었다. 은이 화폐인 명나라의 경우 백은의 시세가 왜나 조선 보다 상당히 고가다. 그래서 왜에서 백은을 들여와 명나라에 파는 중개 무역을 추진할 계획이다.
‘관직에 있는 내가 계속하기는 곤란하고 이런 일을 하기에 적당한 인물이 없나?’
이런 생각을 떠올리자 바로 최인범이 생각났다.
‘검교직이니 그 사람이 제일 적당하겠어. 호위무사도 충분하고.’
어찌 보면 지금 주상이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인물이 최인범으로 보였다. 나이가 어리면서도 여러 가지를 잘하니 차기 왕위를 이을 세자의 측근으로 적당해 보였다.
‘세자의 외삼촌인 윤임 대감은 너무 탐욕스럽고 부패해 장차 세자의 후견인으로는 적당하지 않다고 주상께서는 판단하신 거야.’
주상께서는 남들 모르게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조선왕조는 왕권과 신권이 항상 대립하는 정치구도다. 그렇기 때문에 군왕이라고 해도 새로운 어떤 정치나 군대를 양성하기 위해서는 많은 비자금이 필요했다.
‘전하께서 굳이 이런 시도를 하시는 것을 보면 앞으로 조정이 많이 변하겠어.’
강한 군주가 되려면 반드시 강력한 군대가 반드시 필요했다. 또한 그런 군대 조직은 군왕이 직접 통솔하는 그런 직할부대야 된다. 이리 저리 파당이 갈려 엮인 군대란 힘을 전혀 쓸 수가 없었다.
전혀 새로운 직할군대를 양성해 세자를 보위께 할 생각이다. 그런 생각이라 주상은 그 핵심인물로 한정문을 지목하고 실질적으로 군사를 움직이는 지휘관으로 최인범을 낙점한 것이다.
한정문은 한강을 넘어 남쪽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가을이라 먼 길을 가기에는 날씨가 매우 적당했다. 그러나 점점 겨울이 다가와 날씨가 차가와 지니 빨리 동래까지 이동해야 된다.
왜와 교역하고 나서 다시 물건을 멀리 명나라의 북경으로 날라야 하니 마음은 무척 급했다.
‘한번 무역에 반년은 족히 걸리겠어.’
마음이 급하지만 가지고 가는 물건도 많고 호랑이 새끼들을 돌보며 가야 하기 때문에 발걸음은 무척 더뎠다. 소달구지에 장착된 대나무 우리에 넣어진 호랑이들이다. 아직 새끼라고 하지만 모두 큰개만해서 맹수의 모습을 완전히 드러내고 있었다.
크르릉! 크르릉!
긴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 거리자 대로 옆으로 나와 구경하던 사람들이 기겁하며 놀랐다.
“이크. 조금만 더 크면 사람도 잡아먹게 생겼어.”
“왜? 남쪽으로 가지고 가지? 제주도에다 풀어 놓으려고 하나?”
“어쩌면 외딴 섬에 풀어놓고 키우려는 것 아냐?”
“그럴 지도 모르지.”
무려 40마리나 되는 호랑이를 운반해야 하니 여간 어려운 업무가 아니다. 호랑이의 건강을 위해 싱싱한 고기를 매번 줘야 하니 그것도 무척 거북스러웠다.
한정문은 부하에게 지시했다.
“앞서가서 빨리 돼지를 잡으라고 해.”
“넷! 네 마리는 잡아야겠네요.”
“인부들도 먹어야 하니 그렇게 해.”
이윽고 수원에 도착해 하루를 묵고 남쪽으로 향하는 중에 백두상단의 백삼수 일행을 만났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동행하게 되었다. 한정문은 주상의 명령으로 최인범의 뒷조사를 몇 번에 걸쳐했기 때문에 백삼수에 대해 잘 알고 합류한 것이다.
백두상단은 면포만 가지고 내려가는 모습이라 슬며시 물었다.
“자네는 왜 면포만 가지고 가나?”
“선전관 나리, 조선은 화폐로 면포를 사용하니 어쩔 수 없죠. 안성으로 가서 면포를 주고 유기그릇을 사서 내려갈 겁니다.”
“그것을 어디에 팔려고?”
호기심이 생긴 한정문은 슬며시 물었다. 그러자 백삼수는 당연한 질문을 왜하느냐는 표정으로 즉시 답했다.
“당연히 경상도의 풍기로 가져가야죠. 유기그릇이야 안성이 제일 제품이 좋고 싸니까요.”
한정문은 백삼수와 같이 이동하며 그와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최인범에 대해서 알아보기 위해 이것저것 물어 봐도 백삼수에게서 별로 알아낸 것은 별로 없었다.
아무튼 백삼수에게서 알아낸 것은 최인범이 인삼을 재배하려고 한다는 것과 과수밭이나 축산을 매우 중시하고 있다는 것만 알았다. 많은 군사를 빠르게 양성하니 그에 대해 더 알아 볼 요량으로 물었다.
“자네 혹시 최 사맹이 무기를 새로 만든다는 소리는 들어보지 못했나?”
“무슨 무기요? 소인이 알기로는 조금 특이하게 생긴 장검이나 대검 그리고 단창을 만들어 착호 부대에 병사들에게 보급했지만 다른 무기는 전혀 모릅니다.”
“혹시 대포나 화약 무기를 만든다는 소리는 안하던가?”
개인이 임의대로 위력적인 무기를 만든다면 자칫 반역 혐의로 누명을 쓸 염려가 농후해 묻는 것이다. 그러자 백삼수는 별 생각이 없이 답했다.
“아! 그런 이야기요? 접장님께서 언젠가 그런 비슷한 소리를 하던 것은 소인이 분명히 들었습니다. 소총이 있어야 쉽게 군대를 양성하는데 조선에서는 활만 중시하고 소총 개발을 너무 소홀하게 한다고요.”
“그런가? 다른 말은 없고?”
“예, 지금 소총을 개발해 두면 아주 유리한 점이 많다고는 하던데. 뭐에 유리한지는 자세하게 설명은 안하시더군요. 제가 물으니 그런 것이 있다고만 하고요.”
“또 다른 특별한 점은?”
“장사를 하다 보니 화폐가 없어서 매우 불편하게 생각해서 조선에도 화폐가 있었으면 좋다고 하더군요. 그러자면 조정에서 화폐를 많이 만들어야 하는데 그런 재정이 조정에 있나 모르겠다고 했고요.”
“화폐 주조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단 말이지?”
“그렇습니다. 장사하다 보면 장사꾼들의 입에서야 늘 나오는 이야기죠.”
한정문은 최인범이 소총과 화폐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고 듣게 되자 전에 한 말의 의미를 이해했다. 그런 이유로 화약의 연료인 황이나 화폐주조에 필요한 구리를 왜에서 대량으로 들여와야 된다고 건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화약 무기나 화폐에 대해서 잘 아나? 아니지, 그러기에는 너무 나이가 어리고 백두산에서 살던 사람이 그것을 소상하게 알 리가 없지.’
조선에도 화약무기인 소총이 전혀 없던 것은 아니다. 다만 사용하기가 너무 불편하고 나중에 포르투갈을 통해 도입해 왜에서 보유하게 되는 조총과는 성능 면에서 전혀 달랐다.
조선은 방어위주인 군사체제라 명나라와 같이 대형 화포를 중시했다.
명나라의 경우 포르트갈의 무역 상인들이 가져온 소총을 이미 보유하고 있었다. 또한 서양인들이 사용하는 대포도 보유했다. 명나라에서는 그 대포를 홍이포라는 이름으로 개량이나 복재하는 사업을 착수하고 있었다.
한정문은 백삼수와 안성까지 동행하면서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래서 최인범이 이미 대규모의 축산을 시작하고 말 사육에 집중한다는 것도 알았다.
‘너무 뛰어나서 혹시 반역할 생각으로 지금부터 준비를 하나?’
사실 최인범의 행보는 자칫하면 오해의 소지가 너무 많았다. 아직 나이가 어려서 보통 흘려버리고 있지만 그는 사병 양성에 힘을 기울이고 있으니 문제점이 많았다.
왕권 국가에서 개인의 사병 양성은 바로 반역 행위에 해당될 수 있었다. 그래서 한정문은 진실이야 어떠하던 자칫해서 그렇게 될까 은근히 걱정이다.
‘잘 못하면 역적모의로 엮일 수 있어.’
안성에서 동행하던 한정문과 해어진 백삼수는 남쪽으로 내려 갈수록 걱정이 태산이다. 앞으로 풍기로 돌아가 최인범을 만날 일이 은근히 걱정되었다.
‘나를 만나면 죽죽이 주막에서 벌어진 일로 매섭게 추궁할 것인데 뭐라고 답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