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화
의무병들은 쉽게 부사용(종9품)으로 오른 점을 참작에 슬며시 물었다.
“소대장님, 혹시 풍기로 돌아가서 또 다시 착호 부대를 만드나요?”
“그건 아니야. 이미 호환이 사라졌으니 그런 일은 없겠지. 내가 구종이 필요한 이유는 당장 풍기에 있는 동물농장에서 병든 동물들을 치료하며 관리할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이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죠. 말이나 노비는 시세대로 면포 200필씩 주세요.”
이렇게 해서 최인범은 의술을 약간 보유하고 있는 두 사노비까지 구입했다. 결국 모집시험을 보며 챙긴 면포 1000필과 부대를 운영하고 호랑이를 잡아 챙긴 재물로 말 5필과 사노비 5구를 차지했다.
풍기의 동물농장에는 가축에 대해 잘 아는 양돌쇠가 있었다. 하지만 그야 사양관리만 하는 중이고 가축들에게 병이 나면 대책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병이 생기면 돌볼 치료사가 절실하게 필요했다.
‘이런 정도 실적이면 충분해.’
일단 검교직이라도 정8품인 사맹으로 올랐으니 만족할 수준의 결과를 얻었다. 지금은 참하관이지만 무과에 급제하면 바로 참상관으로 오를 수도 있으니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풍기로 떠나기 위해 한정문 선전관에게 인사를 했다.
“저는 이만 떠날까 합니다.”
“잠깐, 떠나기 전에 자네에게 한 가지 물어볼 것이 있네. 자네가 조정으로 보낸 호랑이 새끼의 처리 때문에 약간 문제가 있는데 자네는 호랑이 새끼들은 어떻게 처리했으면 좋겠나?”
“아! 그게 문제가 됐나요?”
“그렇다네.”
최인범은 이럼 물음에 잠시 생각하다가 답했다.
“조정에서 사육하기 곤란하다면 새끼 호랑이는 모두 왜의 영주들에게 보내지요. 그러면 서로 다투듯이 사가려고 할 겁니다.”
“왜로 보낸다고?”
“그렇습니다. 왜에는 호랑이가 없어 매년 호피를 고가로 사가니 호랑이 새끼를 그들에게 판매한다면 좋다고 사갈 것입니다. 잡은 호랑이 새끼를 다시 방사할 생각이 없다면 그게 제일 좋습니다.”
“그렇다면 사신을 보내서 누구에게 준단 말인가?”
“제 생각은 굳이 조정에서 왜로 사신을 보내 선물로 보내거나 직접 팔 것이 없습니다. 그저 동래에 있는 왜관을 통해 왜의 상인들에게 팔아 버리는 것이 좋습니다. 그냥 판매하고 왜에서 많이 나는 은이나 질 좋은 황을 많이 들여오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알았네. 조정으로 올라가서 그것을 주상전하께 건의해 보도록 하지.”
사실 조선 시절에도 자국의 특산 동물을 외국으로 함부로 보내는 일은 드물었다.
조선은 비록 호환으로 피해를 보고 있지만 왜에는 없는 호랑이를 반출하려는 움직임은 전혀 없었다.
어쩌다 왜로 호랑이를 보내기는 했지만 환경이 적응되지 않아서 그런지 호랑이는 전혀 번식하지 못했다. 물론 철망으로 만든 우리에 가두어 키우기 때문에 교미에 실패해 번식하지 못한 것이다.
최인범은 조금 편하게 생각해 이런 조언했다. 하지만 이후 이 때문에 어떤 크나 큰 문제가 자신과 왜에서 발생할지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아무튼 최인범은 선전관에게 인사를 마친 뒤에 부하들과 평창을 떠나고 있었다. 관아에서 조금 떨어진 공터에서 모이자 이제 부사용인 권영묵 행정병을 제일선임으로 결정해 그에게 지시했다.
“우리는 영월 쪽으로 이동해 단양으로 가서 죽령을 넘어가지.”
“알겠습니다. 그런데 특별히 그쪽으로 가려는 이유가?”
“가면서 산삼 씨를 최대한 구해 보려고.”
“아하! 그렇군요. 강원도에도 심마니가 많으니 구할 수 있을 겁니다.”
이제 서서히 산삼(인삼: 장뇌삼) 재배를 시작할 계획이라 이렇게 지시하고 있었다. 씨가 많이 필요해 강원도에서도 구해서 돌아갈 생각이다.
잘은 모르지만 산삼을 재배하는 곳도 있다니 권영묵은 쉽게 답했다.
“알겠습니다. 돌아가면서 틈틈이 심마니들에 대해 수소문을 해보도록 하죠.”
“급하게 갈 필요 없으니 사냥감들이 있는지도 알아보고.”
“넷!”
최인범은 배도치 일행이 가는 방향과 전혀 다르게 영월을 지나 풍기로 향하게 되었다. 풍기로 돌아가면서 심마니에 대한 소식을 물어 최대한 산삼 씨를 구하기로 했다.
이곳 평창에 와서도 계속 심마니들을 만나 산삼 씨는 구하고 있었다. 대량으로 재배를 고려하기 때문에 계속해서 씨앗을 구해볼 생각이다.
이제 가을이라 산에는 단풍이 빨갛게 물들고 있었다.
사노비가 7명에 행정병이 3명이 포함되어 모두 10명이다. 최인범은 이제 해산된 조직이지만 행정병들은 상병으로 칭하도록 조치했다.
칠복이 형제도 상병이라 이제는 표면적으로는 소대에서 상병이 6명으로 늘어난 것이다.
“어떤가? 그런 정도면 불만이 없지?”
“없습니다. 저희들이야 서류만 만지다 벼슬까지 했으니 불만을 토할 처지도 아니죠.”
“그렇게 좋게 생각하니 다행이군.”
그저 소대의 비공식적인 기록에만 남게 되는 계급이지만 조직이란 상하가 확실해야 하니 이런 결정을 내리고 있었다.
‘앞으로도 계속 이런 식으로 조직을 강화해 나가야 해.’
최인범 일행은 모두 말을 타고 이동했다. 그는 천천히 이동하며 영월지역을 천천히 돌아보고 있었다. 그가 이번에 가보고 싶은 곳은 한반도 지형을 닮은 곳이다. 그곳을 통해 제천을 지나 단양을 통해 죽령을 넘어 가기로 진로를 잡았다.
문뜩 죽령을 넘는다는 생각이 떠오르자 죽죽이 주막에서 있었던 뜨거웠던 밤이 떠올랐다.
‘도대체 누구지? 분명히 백삼수 녀석이 벌인 일이 분명한데.’
백삼수는 멀리 원주까지 따라오다가 고향인 수원으로 상행을 떠났다. 한양까지 올라가 장사를 하고 다시 물건을 사서 내려온다고 했다.
최인범은 그를 만나서 자세한 내막을 물어볼 심산이다.
‘쉽게 입을 열지는 않을 거야.’
하룻밤의 풋 사랑이지만 어찌되었건 여자의 정체가 무척 궁금했다.
급하게 돌아가야 할 이유가 전혀 없어 최인범 일행은 한가롭기 그지없었다. 영월로 향하며 가끔 심마니도 만나 산삼 씨도 구하고 며칠씩 한곳에 머물며 사냥도 했다. 그는 아주 천천히 이동하고 있었다.
한편 한양의 대궐에서는 평창을 다녀온 한정문 선전관이 주상전하께 최인범이 이끄는 착호부대에 대해 보고했다.
“전하, 착호부대는 해산하고 모두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혹시 벼슬을 못한 양민들의 반발은 없었나?”
한정문은 주상의 이런 하문에 정색해 답했다.
“전하, 반발이라뇨? 전혀 그런 사실이 없었사옵니다. 부사용으로 임명된 양반 자제들은 한양으로 대부분 올라왔습니다. 그들은 모두 오위도총부 소속의 갑사로 채용되어 별도로 착호부대를 구성해 두었사옵니다.”
“그들이 사용하는 무기가 전혀 다르다고?”
“그렇사옵니다. 무기는 물론 개인장비도 모두 특이하옵니다. 그런 장비에 대해서도 조금 더 연구해 봐서 실용성이 높으면 교체할까 고려중입니다.”
“그렇게 시행하도록 해.”
이렇게 지시한 주상은 약간 궁금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과인이 최 사맹에게 물어 보라는 내용은 물어 봤나?”
“전하, 하교하신 그대로 최 사맹에게 물어보니 그의 의견은 생포되어 한양으로 보내진 호랑이 새끼를 왜로 보내는 것이 좋다고 하옵니다.”
“뭐라? 왜로 보내?”
“그렇사옵니다. 왜로 보내는 것이 제일 적당하다고 하옵니다.”
“과인 생각에는 멀리 함경도의 백두산으로 가져가 놔주라고 할 줄 알았더니 너무 특이한 발상이군. 왜로 호랑이를 보내면 그들이 좋아 할까?”
“그는 왜인들의 영주들이 다투어 사갈 것이라고 하옵니다. 그 대금으로 백은과 황을 대량으로 들여오는 것을 권했습니다.”
“알았네. 그렇다면 한양에 모아둔 새끼 호랑이를 모두 왜관이 있는 동래로 보내도록 해. 다른 사람을 시킬 것 없이 자네가 다녀오게.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풍기를 돌아보고.”
“명을 따르겠나이다.”
왜는 한창 영주들이 세력을 다투는 전국시대로 접어들어 매일 같이 치열하게 세력다툼이나 전쟁 중이다. 그래서 영주들은 서로 자신이 더 위대하다고 선전하기 바빴다. 그렇기 때문에 왜에는 없는 호랑이 새끼를 가져와 기른다면 그것이 하나의 권위의 상징으로 나타낸다고 볼 수 있었다.
착호 부대들이 잡아서 보낸 새끼 호랑이는 무려 40마리나 되었다. 아주 어린 호랑이도 있고 중정도로 자란 호랑이도 있었다. 일단 호랑이 새끼 처리를 결정한 주상은 다른 문제를 물었다.
“선전관, 최 사맹의 과거 행적 대해 조사를 정확하게 해 봤나?”
“전하, 최 사맹은 실제로 백두산 부근에서 살다가 내려온 것이 확실해 보입니다.”
“풍기에서 가깝게 지내는 양반은 없나?”
“전하, 최 사맹은 풍기에도 특별히 가깝게 지내는 양반이 전혀 없고 한양에도 전혀 없사옵니다.”
“정말로 아무도 주변에 없나?”
주상은 신중한 표정을 지으며 계속 묻고 있었다. 그러자 한정문도 사안이 너무 중대하다고 판단해 긴장된 표정을 지으며 조심스럽게 답했다.
“전혀 없사옵니다. 뛰어난 무술 실력으로 죽은 최용민 절제도위의 양자로 입적해 풍기에서 차츰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중이옵니다. 처음 풍기로 와서 어느 정도 교류가 있었던 최인범 진사는 벼락을 맞아 이미 죽었고요. 주변에는 그저 부리는 종들이나 착호부대에 속한 부하들이 전부입니다.”
“지금은 가까운 사람이 생길 수 있지 않나?”
“전하!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그는 지역의 양반들과 별로 교류하지 않고 무술만 수련하고 있었사옵니다. 그리고 바로 평창으로 떠나 착호 활동만 했고요.”
이런 보고를 듣고 나자 주상은 잠시 생각하더니 드디어 자신의 결심을 말했다.
“선전관, 최 사맹을 세자익위사로 불러오는 방법을 고려해 보게.”
약간 병약한 세자를 보호하기 위해 주상은 고심하고 있었다. 그래서 조정의 어떤 패거리에도 전혀 속하지 않은 최인범 사맹을 대궐로 끌어 들이기로 결정했다.
문정왕후 소생인 둘째 아들도 중하다. 하지만 어찌 되었건 장자인 세자가 순탄하게 왕위를 이어주길 원했다.
자신은 반정을 통해 연산군을 폐위하고 왕위를 이어서 계속해서 정통성 시비가 있었다. 반정에 참여한 훈구대신들의 압박감에 계속 시달리던 처라 세자만은 그런 식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세자를 호위하는 무관 조직인 세자익위사 관료로 임명해 최인범을 대궐로 부른다고 하자 한정문은 걱정하는 표정으로 답했다.
“전하, 최 사맹을 세자익위사로 부르시려면 반드시 무과에 급제해야만 가능하옵니다. 지금 당장은 최 사맹을 조정으로 부르기는 곤란하옵니다. 조정 대신들의 반대가 너무 심하고 자칫하면 성장하기 전에 모함을 당할 수 있사옵니다. 통촉해 주옵소서.”
신임하고 있는 선전관이 이렇게 반대하자 주상은 잠시 생각하더니 하교했다.
“일단 내년에 최 사맹을 대궐로 불러서 과인이 직접 취재해 갑사로 임관시키는 것으로 정하지. 혹시 나이가 너무 어리다고 조정 대신들의 반대가 심하면 오위도총부 소속인 검교직인 갑사로 만들어 세자익위사로 잠시 파견을 오게 하는 정도로 조치하고.”
“알겠사옵니다.”
조정은 왕자들의 외척인 윤임과 윤원형이 차기 왕권을 놓고 알게 모르게 다투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니 주상은 그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최인범을 세자의 측근으로 불러 보호할 생각이다.
‘파당이 없고 연고자가 전혀 없는 최 사맹이라면 두 왕자를 동시에 보호할 수 있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