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화
최인범이 이끄는 착호부대(着虎部隊)가 경상도 북부의 풍기군을 떠나 이곳 강원도 평창군으로 이동한지도 벌써 두 달이 지났다.
착호부대는 이곳에 도착해 평창군 관아를 중심으로 작전을 펼쳤다. 백덕산, 구룡산, 남병산. 청옥산. 가리왕산 일대를 돌아다니며 호랑이 추포 활동에 전념했다. 멀리 치악산 동쪽까지 돌아다니며 호랑이를 잡았다.
착호부대의 활동이 활발해져 근처에서 살던 호랑이가 모조리 사라지자 고을사람들은 수군거렸다.
“아무리 호환이 있어도 그렇지 영물인 호랑이를 저렇게 씨가 마르도록 마구 잡아도 되나?”
“나중에 산신령의 노여움을 어찌 견디려고.”
호환이 연이어 벌어져도 조정에서 방치한다고 원망하는 상소를 올린 고을의 양반들이다. 이제 상황이 호전되자 모여서 전과는 전혀 다른 대화를 나누었다.
“정말 큰일이야. 무당이 신령스런 호랑이를 모조리 잡으면 큰 재앙이 우리 고을로 찾아온다고 매일 같이 관아 앞에서 소동을 피운다고 하던데.”
“그런 일도 있었나? 무당이 관아에서 그런 소동을 피워도 군수가 가만히 있나?”
“워낙 신기가 강한 늙은 무당이라 군수도 함부로 처리하기 어려운 모양이야.”
백성들은 영험하고 무서운 호랑이를 여름에 똥개를 두드려 잡듯이 쉽게 잡아 버리자 놀랐다. 새로운 방식의 복장들을 하고 다니는 착호 부대가 너무 이상해 보였다.
“어찌 저렇게 쉽게 호랑이를 잡는 거야?”
“풍산개들이 호랑이를 찾으면 몰아서 그물로도 잡지만 투장으로 잡는 경우가 많다고 하더군. 최인범 소대장이나 그의 측근들의 투창 솜씨가 일품이라고 해.”
착호부대는 호랑이 추포실적이 너무 좋아 큰 호랑이를 20마리나 사살했다. 아예 강원도에 사는 호랑이의 씨를 말리다 시피 평창군을 중심으로 강원도의 깊은 산속에서 사는 호랑이를 모조리 추살한 것이다.
그리고 착호부대는 풍산개를 앞세워 호랑이가 사는 동굴을 찾아냈다. 그래서 새끼 호랑이를 10마리를 잡아 조정으로 올려 보냈다.
그렇게 되자 강원도에서 극성하던 호랑이들의 움직임은 이제 완전히 사라졌다. 그러나 호랑이가 사라지자 호랑이들의 먹잇감이던 멧돼지 개체수가 대폭 늘어났다.
산골짜기 마다 멧돼지들이 떼를 지어 민가 근처의 밭을 휘젓고 다녀 농작물 피해가 극심했다. 그 때문에 착호부대는 호랑이 대신 멧돼지 사냥에 전력을 기울였다.
이들이 주둔하고 있는 곳은 평창 관아의 서쪽에 위치한 원당계곡이다. 일대의 골짜기에서 활동하는 멧돼지를 소탕하기 위해 근처를 모조리 뒤졌다.
소대장인 최인범은 숙영지에서 궁술을 연습하고 있었다. 이제 궁술도 실력이 제법 많이 늘었다. 한창 편전을 사용하는 수련에 매진하는 중이다.
엄지손가락에 숫깍지를 끼고 통아의 끝에 있는 고리를 팔목에 걸고 힘차게 시위를 당겼다. 80미터 정도 떨어진 골짜기의 반대편에 만들어진 사방 1미터의 과녁을 향해 화살을 날렸다.
핑! 쉭! 퍽!
연달아 날리는 짧은 화살인 편전은 모두 과녁 근처의 땅에만 처박혔다. 과녁에는 10발에 1발 정도만 정확하게 박히고 있었다.
‘오래 연습해야 되겠어.’
어찌 생각하면 궁술 수련이 제일 오래 걸릴 것 같았다. 그래서 최인범은 궁술 수련 때문에 멧돼지 사냥은 모두 배도치 반장의 지휘로 수행하도록 조치했다.
계급이 이등병으로 강등된 배도치나 민정만은 이곳에 도착하자 절치부심했다. 그들은 호랑이 사냥에 누구보다도 용감히 적극적으로 나서 결국 본래 계급과 직책으로 복귀했다.
와글와글.
조용하던 좁은 골짜기가 소란스러워졌다. 멧돼지 사냥을 나갔던 병사들이 숙영지로 돌아온 것이다. 그들은 모두 이마에 땀을 흘리고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이들은 사냥이 끝나면 어김없이 달려서 숙영지로 돌아오는 산악구보를 했다. 도착 순위에 따라 이날 숙영지에서 하는 업무가 정해진다.
졸지에 산악구보를 해 선착순으로 줄서기를 했다.
“일!······ 삼십!”
“일등에서 10등까지는 열외! 나머지는 각자 주어진 업무를 수행하고. 해산!”
“넷!”
여전히 거칠게 숨을 토하며 한 병사가 기쁜 표정으로 동료에게 말했다.
“헉! 헉! 오늘은 8등이라 식사 당번 면하고 자유시간이야.”
“나는 20등이라 제일 서기 싫은 자정 보초네.”
이런 대화를 나누며 병사들은 사냥하기 위해 가져갔던 장비들을 정리했다. 오늘도 사냥 실적이 좋아 멧돼지 고기를 푸짐하게 먹게 생겼다.
“멧돼지 고기로 떡을 치겠어.”
“고기가 흔하다고 너무 먹지마라. 그러다 전에처럼 배탈 나지 말고.”
“그야 당연하지. 여전히 맛은 있지만 전처럼 미련하게 먹을 정도로 맛은 없어.”
“하긴 맛좋은 고기도 너무 오래 먹으면 질리는 법이지.”
멧돼지를 투창으로 잡은 병사들은 다소 느긋하게 멧돼지를 운반해 숙영지에 도착했다. 그들의 인솔은 칠복이 형제들이 하고 있었다.
숙영지에 도착하자 팔복이가 다부지게 명령했다.
“멧돼지를 해체해서 간과 심장은 행정반으로 가져 와.”
“넷!”
“오늘은 여러 마리를 잡았으니 두 마리 분만 행정반으로 가져오고 나머지는 분대장들에게 골고루 분배해.”
“잘 알겠습니다.”
부대원을 인솔해 멧돼지 사냥을 나갔던 배도치가 부대원들을 해산시키고 나자 행정반으로 찾아와서 최인범에게 보고했다.
“소대장님, 큰 멧돼지 2마리와 중멧돼지 5마리 그리고 새끼 멧돼지 20마리를 잡았습니다. 부대원들 중에 부상자는 한 명도 없사옵니다.”
“수고했군. 그럼 원당 계곡에는 더 이상 멧돼지가 없는 건가?”
“소대장님, 그건 확실하지 많지만 대략 여기 원당 골짜기나 근처의 골짜기에는 더 이상 멧돼지가 보이지 않습니다. 물론 다른 골짜기로 도망친 놈은 몇 마리 남아 있겠죠.”
“그렇다면 여기서도 이동할 때가 되었어.”
은근히 걱정하는 눈빛으로 이곳을 떠나야 한다는 말에 배도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소대장님, 새끼 멧돼지는 전처럼 대나무 우리에 가두나요?”
“그래야지.”
너무 많은 멧돼지 새끼를 모아두고 있어 그 이유가 너무 궁금해 조심스럽게 물었다.
“소대장님, 새끼 멧돼지는 앞으로 어찌 처리하죠?”
“그야 풍기의 동물농장으로 가져가 키워야지.”
풍기의 동물농장으로 보내 흑돼지와 교접시켜 교잡종을 만들 계획이다. 사실 멧돼지도 그저 성질 사나운 돼지 정도로 인식하니 키워보려는 것이다.
최인범의 응수에 배도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소대장님, 새끼 멧돼지가 벌써 150마리나 됩니다. 너무 많아서 처치하기가 매우 곤란입니다.”
“알았어. 더 이상은 새끼 멧돼지를 가지고 이동하기 어려우니 앞으로 새끼 멧돼지를 잡으면 근처에 사는 백성들에게 싸게 팔도록 해.”
“알겠습니다.”
이런 대화를 나누던 최인범은 속으로 걱정했다.
‘도대체 앞으로 우리에게 뭐를 시키려고 지침을 아직도 내려 보내지 않는 거야? 추운 겨울도 다가오는데.’
최인범은 이미 조정으로 착호부대의 활동사항을 상세하게 보고했다. 하지만 그에 대한 답변이 아직 내려오지 않았다.
이제 추운 겨울이 다가오니 부대의 거취를 빨리 정해야 된다. 그래서 최인범은 약간 초조했다. 여름에 풍기를 떠나왔기 때문에 병사들의 월동 장비는 턱없이 부족했다.
사냥물을 살피던 최인범은 행정실인 천막으로 들어와 권영묵 행정병에게 물었다.
“평창 군수로부터 아직도 연락이 없나?”
“넷! 최산필 연락병이 관아로 같으니 조정에서 소식이 내려오면 바로 연락할 것입니다.”
“의무병의 구종을 평창 관아로 보내 봐.”
“넷!”
조정에서 50명 단위의 착호부대를 최인범에게만 조직하도록 조치한 것은 아니었다. 강원도 북부 지역에는 별도의 착호부대가 있었다. 또한 경기도를 비롯해 전국에 분포되어 있었다.
다른 지역의 착호부대는 월급을 받는 정식 착호갑사들로 조직되었다. 조선은 본시 관료의 경우 연봉제도다. 그리고 임시로 그때그때 동원되어 받은 월급제인 관료가 있었다.
그러나 최인범이 이끄는 착호부대는 월급제도 되지 못했다. 아직 명예직인 검교도 못되는 준착호갑사들로 구성되었다. 그저 호랑이 사냥꾼들에 불과했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그저 군역만 면제 받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부대와는 달리 호랑이를 사냥해 보상금인 면포 200필을 받아야 부대는 유지된다.
“행정병, 평창군수의 새로운 전언은 없지?”
“넷! 전에 군수께서 관아에서 말한 그대로 저희부대가 호랑이를 잡아도 앞으로는 평창군 관아에서 보상금을 줄 수 없다고 하옵니다.”
“그렇다면 빨리 풍기로 떠나야 되겠어.”
호랑이를 무려 20마리나 잡고 새끼 호랑이를 10마리를 생포해 조정으로 올려 보냈다. 그러다 보니 보상비인 면포 4500필과 부대 유지비인 면포 400필을 감당하게 된 강원도와 평창군의 재정은 완전히 고갈되어 버린 것이다.
‘평창군은 이제 알거지라 빨리 떠나야 돼.’
보상으로 받은 면포의 6할 정도인 3000필은 부대원들에게 분배되었다. 50명의 대원들이라 개인별로 평균 면포 60필씩을 챙겼다. 약간은 차이가 나지만 어찌 되었건 가을 한철을 부대원으로 합류해 면포를 50필 정도는 모두 챙겼으니 사기는 충천해 있었다.
멧돼지 고기를 구워 먹으며 부대원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저축된 면포는 부대가 풍기로 돌아가면 개인별로 나누어 준다고 하더군.”
“그게 좋지. 개인들이 가지고 있어야 분실할 위험성도 많고. 몰래 숨어서 금지된 노름도 하잖아.”
“하긴, 그래야 딴 생각을 안 하지.”
이런 대화를 나누자 백삼수에게 고리의 빚을 얻어 개인장비를 산 병사는 한숨을 토했다.
“나는 원금은 갚지만 이자는 아직 남았어.”
“소대장님께서 풍기로 돌아가서 뭔가 일거리를 주시겠지. 상단의 호위무사로 쓸 수도 있고.”
“그렇게 해주시려나?”
착호부대의 병사들도 이곳을 떠날 때가 됐다는 것을 모두 알았다.
이곳 평창군에서 착호 활동을 더 해봐야 평창군 관아에서 보상금을 받아내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그 때문에 최인범은 겨울이 오기 전에 빨리 풍기군으로 돌아가 착호 부대를 해산할 생각이다. 물론 한양의 조정에서 부대를 앞으로 어찌 처리하라는 명령이 내려와야 그에 따라 움직이게 된다.
보상금을 기대하기 어렵게 되자 그나마 멧돼지를 잡거나 사슴과 고라니 등 사냥감을 잡아서 부대원들의 수익을 챙겨주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것도 지속하기 힘들게 되었다. 이유는 사냥감들이 거의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때 평창 관아로 가서 기다리던 최산필 연락병이 급하게 달려와 보고했다.
“소대장님, 조정에서 교서가 내려 왔어요. 빨리 관아로 가셔야 되겠사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