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타임트레인-90화 (90/519)

90화

사실 조정에서 내려온 즉 교지의 내용은 출발 시점을 한 달 이내라고 정했다. 그런 내용을 최인범은 한 달 이내로 근무지인 강원도 평창군까지 도착해야 되는 것으로 착각했다. 아직 한문으로 된 문서의 해석이나 조선시대의 관습을 정확하게 이해 못해 벌어진 사태다.

그 덕분에 착호부대의 운영비를 조달해야 하는 풍기군수는 많은 면포를 중간에서 착복할 행복한 길이 열렸다. 그래서 풍기군수는 기분이 무척 좋은 것이다.

다각다각.

말에 올라 빠르게 죽령으로 향하는 최인범은 전에 산적을 잡으러 가다가 들린 마을에 도착하자 멈췄다. 계속해서 빠르게 말을 달리다 보면 사람도 지치지만 말도 지치기 때문이다. 이들의 옆에는 이제 중개로 변한 풍산개 4마리가 있었다.

컹! 컹!

부지런히 말을 따라 달려 왔다고 그러는지 풍산개들이 크게 짖어대며 꼬리를 흔들었다. 그러자 최인범은 말 등에 실린 자루에서 육포를 꺼내 개들에게 던져주며 칠복이에게 물었다.

“풍산개가 순종이지?”

“그거야 족보가 별도로 있는 것도 아니니 저야 잘 모르죠. 사냥꾼이 장에서 풍산개 순종이라고 돌쇠 형님이 사왔으니까요. 지금으로 봐서는 말귀도 잘 알아듣고 용감해 보이니 품종이 좋은 개는 확실합니다.”

“알았어! 만약 이번에 가서 호랑이를 만나 꼬랑지 말면 내년 여름에 된장 발라 버리자.”

“넷!”

농장에는 진도견의 순종이라는 개가 10마리나 있었다. 하지만 어째 생김새나 총명하길 순종 같지가 않고 능력이 풍산개 보다 떨어져 보였다. 그래서 순종 풍산개라고 판단되는 개들만 데리고 나왔다.

본시 풍산개는 함경도 풍산의 토종 사냥개로 훈련을 시켜 호랑이 사냥에 주로 동원되는 우수한 품종이다. 3마리만 모이면 호랑이도 충분히 상대한다는 사냥 전문인 개들이다.

풍산개들의 이름은 일둥이, 이둥이, 삼둥이, 사둥이다. 털 색깔이 본시 누렇기는 하지만 조금 하얀 색이라 흰둥이라고 부르다 보니 결국 이렇게 지어졌다. 잠시 풍산개에게 육포인 먹이를 주고 나서 다시 말에 올라 떠났다.

창락골에 도착하니 부대원들이 윤 진사 댁 옆에 있는 죽죽이 주막의 바깥마당에서 천막을 치고 기다리고 있었다. 분명 개울가에 천막을 치라고 했는데 명령을 어겨 배도치에게 다그쳤다.

“반장! 왜 여기로 숙영지를 정했나?”

“소대장님, 개울가에 천막을 치려니 날씨도 꾸물거려 냇물이 불어나게 생겼어요. 개울가라 그런지 물뱀이나 독사들이 많아서 부득이 이곳으로 옮겼사옵니다.”

초장부터 명령을 어기니 내심 불궤했지만 이번은 봐주기로 했다.

“알았어. 다음부터는 이렇게 명령을 어기는 일이 절대로 없도록 해. 함부로 주둔지를 옮기면 준비 없이 적에게 당하게 되니까.”

“알겠습니다.”

최인범은 행정병실로 들어갔다.

행정병실은 6인용 천막으로 조금 높게 쳐서 조립식인 작은 탁자를 놓고 바닥에 앉아서 업무를 볼 수 있었다. 소대본부에는 6인용 천막이 4개와 2인용 천막이 2개가 있다.

2인용은 최인범과 칠복이 형제가 각각 숙소로 사용한다. 6인용 천막은 소대장 집무실인 행정병실, 보급 창고를 겸한 보급병실, 외인 접대실이자 연락병실 그리고 건초 창고를 겸한 구종들의 숙소로 사용된다.

행정병실로 들어가자 행정병인 권영묵이 교지 내용을 살펴보며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의문을 표했다.

“소대장님, 교지 내용에는 조금 늦게 풍기에서 출발해도 되옵니다.”

“뭐? 그게 무슨 소리야?”

“한 달 이내로 강원도 평창군으로 도착이 아니라 한 달 이내로 풍기군을 떠나 작전지역인 평창군으로 가라는 내용입니다.”

“그게 정확한가?”

“그렇습니다. 아무튼 아직 10일 정도 여유가 있사옵니다.”

“알았어. 참고하도록 하지.”

많은 부하들을 데리고 떠난 형편이니 다시 풍기의 동물농장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시간의 여유가 있으니 이동하면서 훈련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최인범은 행정병에게 200필 짜리의 면포 어음을 넘겨주며 지시했다.

“이건 보급병과는 별도로 나중에 상벌에 필요한 자금이니 네가 보관하고 처리해.”

“넷!”

최인범은 잠시 행정병 3명과 배도치와 같이 부대 운영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다. 먼저 도착해 숙영지를 만든 그들에게 당장 뭐가 가장 필요하고 불편한지 물었다.

보급병인 임무영이 나서서 말했다.

“소대장님, 주먹밥도 좋지만 대나무 속에 밥과 반찬을 따로 넣어 배낭 옆에 달고 다니는 것은 어떤지요. 그리고 가죽신발 대신에 짚신을 신게 하는 것이·····.”

“신발은 왜? 걷는데 불편하다고 하던가?”

“사실 개인들이 구입한 비싼 군화라 너무 아깝기도 하고 지금은 여름철인데 발에서 땀이 너무 많이 나 미끈거려 걷기에 약간 불편하다고 하옵니다.”

겨울철에도 바람이 송송 들어오는 짚신을 신고 살던 사람들이다. 그런데 바람이 안 통하는 군화를 맨발로 신고 있어 조금은 적응하기 힘들어하는 것 같았다. 귀한 가죽 신발인 군화를 아끼는 마음도 있어서 이런 건의를 하고 있었다.

“알았어. 마침 천천히 이동해도 된다니 여기서 짚신도 개인장비로 포함시켜 몇 켤레 씩 준비하고 왕대나무로 도시락을 만들기로 하지. 일단 짚신을 만들 줄 아는 병사는 짚신을 만들고 나머지는 왕대나무를 잘라!”

“알겠습니다.”

이렇게 지시하자 배도치가 슬며시 나서며 건의했다.

“소대장님, 소대 본부에 의원도 있어야 되겠사옵니다.”

“지금 와서 그런 사람을 갑자기 어떻게 구해?”

“소대장님, 제가 데리고 있는 분대원과 구종이 침도 놓고 약초도 잘 알고 자격은 없지만 상처나 병의 치료에 솜씨가 있다니 그들을 쓰시면 됩니다.”

“그래? 그런 실력을 지닌 분대원과 구종이면 나이가 많은가?”

“별로 많지는 않고 모두 30살이 조금 넘었습니다.”

배도치는 우수한 부대원이라고 판단해 부하로 삼았으나 실수가 벌어졌다. 알고 보니 부하 두 명은 겁도 많고 의술에 솜씨가 조금 있었다. 그래서 슬며시 휘하에서 버릴 생각으로 이렇게 건의했다.

최인범은 가만히 생각해 보니 반장이 지휘하는 분대원 수가 너무 많았다. 그래서 분대별로 공정한 평가나 지급하는 식량 배급에도 문제가 있었다. 이번 기회에 두 분대원 즉 구종을 포함해 4명을 소대본부의 의무병으로 쓰는 것이 좋다고 판단했다.

“알았어. 그들은 소대본부의 의무병으로 정하지.”

“감사합니다.”

배도치가 두 사람을 데리고 오자 물었다.

“부상병이나 환자가 발생하면 당장 필요한 것이 뭔가?”

“그야 약이죠. 틈나면 약초를 사서 약을 제조해 놔야 하옵니다. 가끔 배탈도 나니 그런 약은 환약으로 만들어 놔야 하고요. 물약도 필요해 작은 물통이나 호리병도 많아야 합니다. 부상자를 이동하거나 눕혀 놓으려면 당연히 들것도 필요하고요.”

이런 건의를 듣자 결국 죽죽이 주막 옆에 있는 왕대나무를 베어서 제작하는 수밖에 없었다. 다행이 그런 정도 장비를 만들 시간은 충분히 있었다.

부대원이 50명이나 되다 보니 대나무로 물건을 만드는 기술을 지닌 병사도 있었다. 마을에는 죽세공품을 만드는 사람도 있으니 빠르게 제작이 가능해 보였다.

“연락병, 윤 진사 댁으로 가서 우리가 필요해서 그러니 왕대나무를 벤다고 허락을 받아.”

연락병은 양반의 자제라 이런 식의 교섭을 하기에 적당했다.

“넷!”

잠시 뒤에 연락병이 윤 진사를 만나고 돌아와서 보고했다.

“소대장님, 윤 진사께서 너무 한곳에서 대나무를 베어내지 말고 간벌 하듯이 베어서 얼마든지 사용하시랍니다. 그렇지 않아도 대나무가 너무 무성해 그쪽으로 호랑이가 출몰해 베어날 생각도 있었다고 하옵니다.”

최인범은 등산용 보온밥통을 떠올렸다. 굵은 왕대나무를 이용해 밥과 반찬을 넣는 도시락을 그림으로 그렸다. 몸통에 끈을 두 곳에 돌려 배낭에 고정하는 방식이다. 그림을 그리고 나서 보급병에게 넘겨주며 자세하게 설명하고 지시했다.

“이렇게 만들어서 병사마다 두 개씩 지급해. 의무병도 약이나 약초를 넣기에 좋아 보이면 필요한 숫자를 말하고.”

“넷!”

착호부대원들은 죽령을 넘기도 전에 왕대나무 밭으로 들어가 제일 굵은 대나무를 찾기 위해 부지런히 돌아다녔다.

“굵어야 밥이 많이 들어가.”

“당연하지.”

이동 중에 야지에서 먹는 점심도 많이 먹을 욕심으로 병사들은 굵은 대나무 찾기에 여념이 없었다.

활이 주된 무기인 일부 병사들은 근처의 시나대 밭에서는 화살에 쓰일 시나대를 많이 베어냈다. 급하게 떠나느라 활은 준비했지만 화살은 많이 준비하지 못했다.

“여기서 화살 재료를 준비해 가자고.”

“그게 좋겠어. 언제 호랑이 사냥을 하게 될지 몰라.”

죽죽이 주막 부근이 많은 병사들로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집을 떠나면 고생이라고 막상 급하게 떠나니 이것저것 부족한 것들이 속속 나타났다.

그런 가운데 어느새 해가 떨어지는 초저녁이 되었다.

빨갛게 물드는 석양을 바라보며 죽죽이 주막의 주모는 한숨을 토했다. 50명이나 되는 병사들이 주막의 앞마당에 천막을 치고 지내자 속으로 투덜거렸다.

‘아니? 넓은 마당을 몽땅 차지해 장사만 방해하고 진짜 너무들 하네. 방으로 들어와 자면 어때서 저렇게 궁상맞은 짓거리야. 숙박비가 얼마나 된다고.’

더구나 부대장인 소대장도 천막에서 지낸다고 하니 기가 막혔다. 부대장이란 놈의 하는 꼬락서니로 봐서는 병사들에게 술도 팔아먹기 힘들어 보였다.

이때 주모 옆으로 슬며시 다가 온 백삼수가 엉덩이를 슬쩍 어우만지며 넌지시 유혹했다.

“주모, 점순이를 불러올 수 있어? 주막에서 일하더니 안보이네?”

“손님이 전혀 없으니 그렇지.”

“손님이 없다니? 조금만 기다려봐. 반드시 부대원들 중에 술을 마시고 여자들을 만나러 오는 놈들이 있을 것이니까.”

백삼수의 말에 주모의 얼굴이 환해지며 응수했다.

“그건 그러네. 하지만 함부로 주막을 출입하지 못한다고 왈짜패 출신인 반장이 명령하던데?”

“무슨 소리야 그것도 방법이 있지.”

사실 방법이야 얼마든지 있었다.

병사들은 물이 필요해 죽죽이 주막을 들락거려야 한다. 의무병들은 상처가 나면 소독하기 위해 제일 독한 소주를 구입하려고 주막으로 들어왔다.

저녁밥을 지을 우물물이 필요하다고 죽죽이 주막으로 들어간 병사들은 물을 넣으라는 호리병에 독한 소주를 사서 담기도 했다.

최인범은 지침이야 술을 금한다고 했다. 하지만 병사들의 이런 일탈행위를 약간은 묵인했다. 병사들의 작은 일탈 행위에 신경 쓰기보다 호랑이를 잡기 위한 방법을 연구하느라 고심했다.

‘착호부대라 호랑이를 잡은 실적이 있어야 하는데 벌써부터 머리가 아프군.’

이때 죽죽이 주막의 왕대나무 밭쪽에서 풍산개들이 일제히 요란하게 짖었다.

왈왈! 왈왈! 크어엉! 컹컹!

최인범은 순간 호랑이를 풍산개들이 발견했다고 느꼈다. 그래서 급하게 부하들을 향해 소리쳤다.

“비상! 전투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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