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화
착호부대의 소속은 아직은 풍기군에 있고 평창에 도착해 신고하면 그때부터는 평창군 소속이 된다.
떠날 때가 되자 먹쇠에게 이것저것 자신이 없는 동안 동물농장에서 수행해야 할 일들에 대해 지시했다. 물론 월녀나 명봉댁 그리고 일순이 자매에게도 단단히 지시했다.
“내가 없는 동안 농장을 잘 관리해.”
“예, 염려 마세요.”
일부 말이 보유하고 있는 부대원이 있으니 그들에게 조금 많은 짐을 싣게 하고 먼저 출발시키기로 했다.
“배 반장, 관아로 가서 출발 신고하고 속히 이동해 죽죽이 주막까지 가서 그곳의 개울가에서 야영해.”
“넷!”
“나는 풍기군수를 만나고 나중에 출발할 것이니 그렇게 알고.”
부대 이동에 대한 서류를 모두 작성했으니 행정병들도 먼저 떠나보내기로 했다. 옆에는 칠복이 형제만 말을 타고 같이 가게 된다.
새로운 형식의 군복과 가죽 모자를 쓰고 단창을 2개씩 들게 된 부대원들은 개인군장 차림으로 열을 지어 풍기관아로 향했다.
“하나! 둘! 하나! 둘!”
분대장인 5명이 교대로 발을 맞추라는 구령을 크게 외쳤다. 아직 제식훈련을 오래하지 못해 행군하는 모습이 엉망이다. 그래도 보병과 기병이 대충 2열종대로 가고 있었다.
‘짧은 기간에 이만하면 잘 구성된 거야.’
사실 더 잘 구성하고 남에게 잘 보이도록 제식훈련을 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왕조시대인 조선에서 남보다 너무 뛰어나고 더구나 빠르게 군대를 양성하면 주목을 받게 된다. 별 이상한 사건도 벌어지는 험한 세상이라 조금은 남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항상 조심할 필요가 있다. 겉으로 표가나지 않지만 실속이 단단한 군대를 만들어 볼 계획이다.
최인범이 계획하는 실속 있는 군대란 자신에게 충성심이 강하고 돈도 잘 버는 부대를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대원 조련도 중요하고 때에 따라서는 속아낼 필요가 있었다.
‘훈련을 하다보면 드러나겠지. 그때 걸러내자고.’
열을 지어 관아로 가서 동헌에 도열했다. 대열의 앞에선 최인범은 풍기군수에게 신고했다.
“군수님, 이제 부대를 평창으로 이동할까 합니다.”
풍기군수는 약간 놀란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어! 벌써 떠나나? 빨리 부대를 만들었군.”
“사또, 그냥 사람 수만 겨우겨우 채웠습니다. 이제 가면서 차츰 훈련해야죠. 그리고 저희야 호랑이를 잡는 것이 주된 임무니 그런 임무만 집중하면 되고요.”
“알았네. 떠나게 된다니 여비로 쓰도록 면포를 줘야겠군.”
풍기군수로는 50명이나 되는 부대원들이 관할 구역에서 빨리 떠나게 되자 상당히 반가워했다. 좋아하는 이유는 부대원들의 생필품은 모두 풍기군수가 조달해 줘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 안으로 들어가서 이야기하세.”
“그러죠.”
최인범은 김시철 군수를 따라 동헌의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한편 동헌 밖에 있는 부대원들은 풍기군수에게 부대 이동 신고가 끝나자 배도치의 인솔 하에 천천히 대로 양쪽을 이용해 출발했다.
죽령으로 향하는 길이 마침 우시장 옆이라 지나게 되었다. 대로 주변에는 많은 풍기 사람들이 나와서 구경했다. 독특한 옷차림을 바라보며 수군거렸다.
“다른 군졸과 옷이 전혀 다르군.”
“정말 그러네. 창도 모양이 전혀 다르고. 저것으로 호랑이를 잡나 봐.”
“이 사람아! 호랑이만 잡나 산적도 저런 창을 던져 꼬치 끼어서 잡았다고 하잖아.”
“이상하지만 강해 보이는군.”
조선군은 투장이란 개념이 조금 약했다. 물론 호랑이 사냥에 투장하기도 하지만 보편적으로 포졸들은 삼지창을 주로 사용했다.
우시장 옆으로 부대가 이동하자 길의 양쪽에는 식혜를 가득 담은 아주 커다란 통들이 양쪽에 놓여 있었다.
“이것 받아가게.”
우시장에서 시래기 국밥 장사하는 주모는 감격에 겨운 표정이다. 그녀는 행군하는 병사들에게 사과를 두 개씩 나누어 주고 식혜를 정신없이 퍼 먹였다.
허둥지둥.
그녀의 옆에서는 몇 명의 아낙네들이 같이 거들었다. 아낙네들은 준착호부대원이 된 병사들의 가족들도 있고 일부는 옆집에 사는 아낙네들도 있었다.
아미의 이런 후원에 나름 신이 난 배도치가 말에서 크게 외쳤다.
“부대 정지! 1각 동안 제자리서 휴식!”
병사들이 길 옆에서 선 자세로 휴식을 취하자 주모의 손길은 더욱 빨라졌다. 보아하니 자신의 아들이 제일 높은 것 같아 더욱 신났다.
자칫하면 산적이 될 큰 위기에 놓였던 아들이 이제 군졸들의 우두머리가 되어 멀리 떠나게 되니 아까울 것이 없었다. 그래서 그동안 모은 재물을 헐어 병사들에게 가면서 먹으라고 부지런히 나누어 주었다.
배도치는 어미가 넘겨주는 사과는 주머니에 넣고 작은 바가지에 담긴 식혜를 마시며 말했다.
“어머니, 저 조심해서 다녀올게요.”
“그래 이놈아. 소대장님 말씀 잘 듣고 몸 성해서 돌아와.”
“예!”
전에는 불상놈이던 아들 녀석이 이제는 천하의 효자로 변했다. 상단에서 보내주는 월급인 면포를 모조리 어미에게 보내니 그런 효자는 세상에 둘도 없어 보였다. 그래서 주모는 그 돈으로 작은 주막을 열어 돈을 더 벌어 아들에게 물려줄 심산이다.
이제 아들이 사람 구실을 너무 잘하니 참한 며느리를 볼 욕심도 생겼다.
“너 다녀오면 장가가라.”
“알았어요. 그러죠.”
전에는 아들의 욕을 배터지게 하고 다니던 수다스러운 방물장사들이 시도 때도 없이 국밥집으로 찾아왔다. 그 여자들은 전과는 전혀 다르게 자신의 아들과 양가집의 규수와 혼인을 시키자고 성화다. 아들이 잘되니 어미는 이제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었다.
병사들은 각자 나름 깊은 사연들도 있고 기회에 출세를 해보겠다는 야심찬 부류들도 많았다. 20대 초반인 젊은 사람을 선발한다고 했지만 개중에 30대 중반들도 많았다.
배도치 무리처럼 전에는 왈짜패로 살다가 개과천선한 병사들도 있었다. 학문보다는 무예 수련을 더욱 좋아서 무술 솜씨가 뛰어난 사람들도 많이 합류했다.
배도치는 어미와 작별하고 말에 올라 크게 외쳤다.
“휴식 끝! 출발!”
잠시 쉬면서 식혜를 얻어먹은 부대원은 다시 배도치의 명령에 발걸음을 옮겼다. 멀리 사라지는 병사들을 바라보며 주모는 끝내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이놈아, 몸조심 해. 커억! 커억!”
벼슬도 좋고 며느리나 부귀영화도 좋지만 그래도 제일 중요한 것은 아들의 무탈한 안전이다. 그러니 무서운 호랑이를 잡으러 험한 강원도로 가니 어느새 걱정되는 것이다.
이동하는 부대의 뒤에는 마차나 등짐을 진 장사꾼들이 줄지어 이동했다. 그들은 백삼수가 이끄는 백두상단으로 이번 기회에 부대와 같이 가면서 장사를 해볼 계획이다.
이제에 밝은 백삼수는 장사꾼들만 데리고 가는 것이 조금 서운했다.
‘에이! 들병이도 서너명 데리고 왔으면 쉽게 돈 버는데.’
젊은 청년들로 구성된 부대원이니 반드시 욕정을 해소하고 싶다는 부류가 있을 수 있다. 그러니 이런 발상을 하고 있었다. 세상에서 제일 오래된 직업이 본시 고리대금업이고 매춘업이다.
그러나 자신을 지배하고 있는 최인범 성품을 아직도 잘 몰라 들병이를 데리고 오지는 못했다. 접장의 매서운 눈길이 겁이 났다.
‘잘 못 보여서 까고 엎어지라면 나는 죽어.’
벼락을 맞은 뒤로 생고기를 마구 먹던 접장은 이제 체구도 전보다 더욱 커졌다. 더구나 아래에 달린 물건도 점점 자기 것과 비슷해졌다.
그런 큰놈으로 만약 뒤치기라도 당하면 아마 자신은 며칠은 누워서 지내는 처참한 신세가 될 것이다.
‘접장님은 왜 여자들을 전혀 건들지 않지? 여염집 여자야 결혼해야 되니 부담이 된다지만 좋다고 매달리려는 기생들도 많은데.’
성생활에 관해서는 괴이하고 이상한 경험들이 너무도 많았다. 그런 백삼수로는 최인범의 고매하게 여자를 접하지 않는 행동들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동물농장에 있는 ‘비구니 출신인 명봉댁이라도 취하려나?’ 생각했더니 그것도 아니다.
이제 막 꽃봉오리에 물이 차오르는 네 명의 처녀들도 그냥 놔두니 납득할 수 없었다.
‘어휴! 나 같으면 사그리 꽉꽉 눌러 버리는데. 접장님은 아직도 백두산에서 수련했다던 동자공을 수련 중이신가?’
아무래도 접장인 최인범은 뭔가 큰 문제가 있는 것 같았다.
‘여자란 너무 아끼면 다른 놈을 찾아서 쉽게 멀리 달아나는 법인데. 먹기 좋은 곶감도 너무 오래 아끼고 놔두다 보면 썩어서 똥으로 변하는 법이야.’
백삼수는 이렇게 생각하면서 죽죽이 주막으로 가면 사노비인 점순이를 이번 기회에 어찌 해볼 심산이다.
‘고년이 과부가 되더니 젖퉁이나 엉덩이가 더욱 튼실해졌어.’
사실 백삼수가 판단하기에는 자신의 물건만 들이대면 아프다고 고래고래 소리치는 숫처녀보다는 경험이 많은 여자가 더욱 찰싹 감기고 달콤해서 흥취가 더욱 좋았다.
잘생긴 젊은 남자만 보면 엉덩이를 묘하게 뒤트는 과부인 점순이라면 자기와 궁합이 찰떡일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발걸음이 빨라졌다.
한편 최인범은 동헌 안에서 풍기군수와 50명인 병사들에 지급할 군량미를 계산하고 있었다.
조선의 백성들은 식사량이 많았다. 그래서 군량미는 하루 두 끼를 기준해 두당 1되다. 한 끼에 5홉씩 계산하는 것이다. 사실 이보다 더 많이 먹어 한 끼에 7홉을 먹는 것이 보편적이다.
재물을 무척 아끼는 풍기군수는 아녀자들의 식사량을 기준해 5홉으로 계산했다. 두당 1일 한 되로 부대원들이 모두 50명이라 하루면 총 5말이 소모된다. 밥만 먹지는 못하니 부식비도 포함해 하루에 10말씩 계산했다.
이곳에서 주둔하고 이동하는 동안도 책임져야 하니 20일을 계산해 총 200말(斗)이란 숫치가 나왔다. 그러자 풍기군수는 100필짜리 관포 어음을 넘겨주었다.
“최 사용, 요즈음 관포 시세가 1필당 미곡이 2말씩이니 이것으로 부대 소요경비의 정산을 끝내세.”
“알겠습니다. 하지만 착호부대에는 군마도 많으니 콩이나 건초 구입비도 줘야 합니다.”
대충 넘어가려니 콩콩이 따지고 있었다.
서류를 들먹이며 정확하게 따져봐야 자신이 손해라는 판단으로 풍기군수는 급하게 정산 방법을 말했다.
“그렇군. 그렇다면 복잡하게 계산할 것 없이 모두 면포 200필로 계산해 자네 부대로 넘겨주면 되겠군. 그 대신 앞으로 더 이상 비용을 요구하는 일이 없도록 하세.”
“좋습니다. 그렇게 하죠.”
최인범은 결국 풍기군수에게 면포 200필을 받고 동헌을 나오게 되었다. 밖에서 기다리던 칠복이 형제에게 명령했다.
“빨리 떠나!”
“넷!”
말에 올라 빠르게 사라지는 최인범을 바라보며 풍기군수는 빙그레 웃으며 중얼거렸다.
“다행이군. 빨리 관할 구역을 떠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