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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트레인-87화 (87/519)

87화

대결을 멈춘 한정문 선전관이 부닥친 팔을 어루만지며 너무 아프다는 듯이 투덜거렸다.

“어이구! 자네 팔은 무쇠도 아니고 왜 이렇게 단단해.”

“죄송합니다.”

최인범이 고개를 숙이며 사죄하자 한정문은 빙그레 웃으며 응수했다.

“죄송하긴. 자네 무술 실력은 소문보다 뛰어나군. 내가 자네를 도저히 이길 수 없어. 우리 앞으로 자주 만나게 되겠어. 자네가 양성할 착호갑사에 대해 주상전하의 기대가 무척 크시네.”

다소 의문점이 많은 말을 토하며 한정문은 무척 마음에 든다는 태도를 보였다.

“이것으로 자네 무술 실력에 대한 취재는 모두 끝났네. 주상 전하의 명을 받들게.”

이렇게 말하자 최인범은 다시 의관을 잘 차려 입고 바닥에서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자 한정문은 국왕이 내린 새로운 교서를 꺼내 읽었다.

교서의 내용은 착호갑사인 최인범 사용은 한 달 이내로 호환이 발생하는 평창군으로 가서 근무하라는 내용이다. 수하인 구종이나 군졸 혹은 사냥꾼은 최인범의 임의대로 정하되 그 수는 50명 이내라고 정했다. 부하들은 준착호갑사로 모두 군역을 면제 받는다고 했다.

최인범은 휘하에 50명이란 준착호갑사인 사병(私兵)을 둘 수 있다는 점이 얼마나 파격적인 주상의 조치인지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했다. 평창군에서 활동해야 하는 기간은 정해지지 않았다. 그리고 착호 활동비로 면포 100필만 하사되었다.

“명을 받들겠나이다.”

교서를 두 손으로 높이 들고 대답이야 또릿하게 했지만 속으로는 무척 쓰렸다. 결국 허접한 벼슬자리를 하나 주더니 개인이 많은 군비를 들여서 호랑이를 잡아 조정에 바치라는 명령이다.

이어서 한정문은 최인범에게 2두 마패를 건네주며 말했다.

“필요하면 역참으로 가서 말을 받아서 타고 다니게.”

“넷!”

최인범은 마패를 만지며 다소 신기하게 생각했다. 마패라고 해서 무슨 암행어사를 하라는 것은 아니다. 그저 역참에서 말만 빌려 탈수 있는 신분 패에 불과했다. 마패를 손에 넣고 나자 암행어사를 해보고 싶은 충동이 생겼다.

한정문은 최인범의 모습을 위아래로 살피더니 매우 만족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먼저 친인척이 주변에 있는지 또는 친구가 있는지 등에 대해 소상하게 물었다.

백두산에서 살다가 내려왔다고 거짓을 말하는 처지라 최인범은 즉시 답했다.

“저는 백두산에서 살다가 내려와 주변에 아는 사람이나 친인척이 전혀 없습니다. 여기로 와서 살게 된지도 얼마 되지 않고요.”

“그렇군. 그럼 혹시 서울에는 연고자가 있나?”

“전혀 없습니다. 갑자기 그건 왜?”

갑작스러운 물음이라 이상했다. 도대체 왜 이런 내용을 굳이 캐묻는지 궁금했다. 뭔가 꼭 필요해서 묻는 표정이라 더욱 이상했다.

‘왜? 내 과거의 행적을 캐려는 거지? 무슨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

궁금한 표정을 지으며 바라보자 한정문은 조금 더 설명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 약간 설명을 해주었다.

“자네 한양에 연고가 없으면 나중에 한양에 올라오면 반드시 우리 집을 들르시게. 뭐 굳이 내 집을 들리지 않더라도 자주 만나게 되겠지만 혹시 모르니 한양에 올라오면 꼭 나를 먼저 찾아오게. 자네를 꼭 만나고 싶어 하는 귀한 분을 내가 소개시켜줄 것이니까.”

누군지 모르지만 자신에 대해 유달리 관심이 있는 높은 분이 한양에 있다는 소리다. 너무 궁금해 그게 누군지 물어보고 싶지만 굳이 밝히려고 하지 않아 보여 가볍게 답해 주었다.

“알겠습니다. 나중에 한양에 올라갈 기회가 생기면 꼭 찾아가죠.”

한정문은 이런 조치를 내리자 떠나려고 풍기 군수에게 인사했다.

“저는 이만 떠날까 합니다.”

“하루라도 여기서 묵으시고 가죠?”

“아닙니다. 가다가 죽령 근처의 죽죽이 주막에서 머물면 됩니다. 속히 돌아가 주상 전하께 오늘 취재 결과를 상세하게 보고해야 돼서 조금 급합니다.”

선전관들은 말에 올라 풍기군 관아를 떠났다. 그러자 최인범도 자리를 뜨려고 풍기군수에게 인사했다.

“저도 준비가 바빠서 바로 가봐야 되겠네요. 영전과 승진을 축하드립니다.”

최인범이 떠나려고 인사하자 풍기군수는 화들짝 놀라며 응수했다.

“어허! 이 사람 좀 보게. 최 사용! 가긴 어딜 가나? 이제 헤어지면 언제 만날지도 모르는데. 우리 술 한 잔은 나누고 헤어져야지.”

뭔가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 보이는 태도로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이미 관아를 빨리 떠날 생각으로 가득한 최인범은 이내 답했다.

“저는 꽃뱀에게 독하게 물려 아직도 독 기운이 많이 남아 있어 술을 전혀 못합니다. 그래서 아직 몸도 정상이 아니라 강원도로 가려면 지금부터 부지런히 한약을 달여 먹어야 되요. 정말 죄송합니다.”

“허! 그래도 같이 이야기는 나눌 수 있지 않나?”

“응교님, 주상전하께서 한 달 이내에 평창으로 가라고 하셨는데 기한을 맞추어 도착하려면 준비할 것이 너무 많습니다. 같이 호랑이 잡을 준착호갑사들도 모집해야 하고요.”

이렇게 말하고 최인범은 급하게 관아에서 나왔다. 그가 급하게 나오는 이유는 사실 돈 때문이다. 조선시대에서 벼슬을 하면 엄청난 비용을 들여 주변 사람들에게 턱을 해야 한다. 재물을 전혀 쓸 줄 모르는 소인배라 그런 것이 아니다.

별로 도움도 되지 않는 허접한 지방의 양반들에게 거액을 들여 기생들과 노는 잔치를 벌여주고 싶지는 않았다. 차라리 그런 곳에 쓸 제물이 있다면 주변의 부하들이나 풍족하게 해주고 싶었다.

‘나중에 지역의 양반들에게 씹혀도 하는 수 없어.’

자신은 다른 벼슬아치처럼 부정하게 백성들의 고혈을 짜내서 재물을 모을 생각은 없으니 술을 마시며 재물을 날리고 싶지 않았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돈이 너무 들어가.’

동물농장으로 돌아오자 배도치를 불러 지시했다.

“배 계장, 혹시 강원도로 호랑이 사냥을 같이 떠날만한 청년들을 준착호갑사로 모을 수 있나? 앞으로 계속 자네 부하로 쓸 수도 있으니 그런 청년들로 구해봐.”

“사용님, 몇 명이나요? 여기 풍기 출신이 아니어도 되죠?”

“그렇지. 급하게 모아야 하니 일단은 풍기 근처에서 사는 쓸 만한 청년들로 30명 정도로 모아봐.”

“잘 알겠습니다. 무술실력이 좋고 담력이 좋은 녀석으로 골라보죠.”

“담력이야 좋아야 되지만 굳이 무술 실력에 비중을 두지 마.”

최인범의 이런 말에 배도치는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이내 반문했다.

“사용님, 무술 실력이 없는 애들로 어떻게 호랑이를 잡으려고요?”

“호랑이를 꼭 무술 실력으로 잡나? 함정을 파거나 그물을 설치해서도 잡지.”

“그건 그렇군요.”

“새로 모이게 되는 청년들도 너희들이 배우는 무술이나 전투 기술을 배워야 하니까 무술실력은 조금은 무시해도 돼. 더구나 앞으로 부하로 부릴 녀석들인데 자네보다 무술이 뛰어나면 불편하지 않겠나? 그러니 나이가 조금 어린 청년으로 구해. 신분은 양민이어야 하고.”

“잘 알겠습니다.”

자신을 포함해 50명의 인원이니 일단 여기에서 30명 정도를 선발해서 평창으로 갈 생각이다. 그리고 평창에서 지리를 잘 아는 사람을 5명 정도 구해서 안내자로 쓸 계획이다.

준비할 것이 많아지자 서둘러 칠복이 형제를 불러 여러 가지로 지시를 내렸다. 군화와 군복도 만들고 전에 생각했던 챙이 넓은 가죽 모자도 만들도록 지시했다.

개인군장을 모두 만들려고 보니 면포 100필로는 턱도 없었다. 기본적으로 군복도 3벌씩을 만들어야 되니 재물은 수없이 필요했다.

사실 개인적으로 군사를 양성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재물이 소요된다. 그래서 반역의 무리를 조사할 경우는 대부분 돈 줄만 찾으면 쉽게 정체를 알아낼 수 있는 것이다.

‘이거야 원, 허접한 벼슬한다고 살림이 금방 거덜 나겠어.’

정규군인 갑사의 경우 군마나 기타 장비도 모조리 개인들이 구입해야 된다. 그래서 갑사는 재정이 넉넉한 양민이나 또는 부유한 양반 자제가 아니면 수행하기가 힘든 직책이다.

한편 풍기 관아에서는 새로 군수로 온 김시철이 지역의 양반들과 상견례를 하고 있었다. 전임 군수와 인수인계를 끝내고 이제 정식으로 고을의 수령으로 업무를 시작했다.

거하게 잔치 상을 차려놓고 덕담을 나누는 중에 권 진사가 나서며 군수에게 슬며시 물었다.

“사또. 고을이 소란스러운 정도로 준착호갑사를 공개적으로 모집해도 되나요?”

“그야 우수한 청년을 공개적으로 모집하려고 하다 보니 그런 가 봅니다. 한양에서 떠나기 전에 주상전하께서 본관에게 최 사용의 준착호갑사 모집을 적극적으로 도와주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어! 그런 말씀을 주상전하께서 직접 하셨어요?”

군수는 보다 자세하게 설명했다.

“그렇습니다. 그러니 권 진사께서는 조금 풍기고을이 떠들썩하고 약간 소란하더라도 이해하세요. 조금 지나면 잠잠해 질 것이니까요. 모집이 끝나면 바로 강원도 평창으로 떠나게 됩니다.”

“그렇군요. 금방 떠나겠군요.”

“근무를 시작하는 기간이 한 달 이내라 평창까지 이동하는 시간도 걸리니 바로 떠나야죠.”

이런 대화를 나누는 중에 사용이 된 최인범이 잔치 마당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좌석의 구석에 앉으며 풍기군수에게 인사를 했다.

“부임을 축하드립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고맙네. 그런데 준착호갑사의 모집은 다 끝나가나?”

“아닙니다. 아직 시작도 못했습니다. 공개로 모집하다가 보니 이외로 너무 많은 사람이 몰려와 아무래도 1차와 2차 3차로 시험을 봐야 할 것 같습니다.”

“허어! 얼마나 모여서 세 차례나 시험을 본단 말인가?”

“벼락주막에서 접수하는데 그 수가 벌써 500명이 넘었습니다. 그러니 세 번은 시험을 봐야죠.”

“과거 시험장 같겠군.”

“그럴 리가 있나요. 그냥 간단한 시험입니다. 시간이 나시면 와서 구경하세요.”

풍기의 양반들은 거의 모인 자리고 자신이 제일 나이가 어리다는 생각에 술병을 들고 있어나 돌아다녔다.

“제가 술은 마시지 못하지만 돌아가면서 잔을 채워드리죠.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허! 이런 새로운 주법은 어디서 배웠나?”

“그냥 전에 최 진사에게서 들었습니다. 한양의 한다하는 당상관들은 기생집에서는 이렇게 술잔을 따라 주는 정도로 신고식을 간단하게 한다고요.”

“그런 가?”

한양에서 내려온 풍기군수지만 처음 대하는 주법이다. 전혀 새로운 신고식인 인사 방법이라 조금 이상했다. 하지만 자신이 모르는 새로운 풍습이 고관대작들 사이에 유행한다는 정도로 이해했다.

본시 한직에 있다가 많은 뇌물을 바치고 윤임의 추천으로 겨우 겨우 풍기군수자리를 차지해 오게 된 처지다. 그러니 세도가인 당상관들 사이의 유행은 잘 모르고 있었다.

최인범은 신분상으로 양반이고 그래도 정9품인 벼슬아치지만 말석에 앉았다. 그리고 술을 따라주는 정도로 자신의 처음 벼슬길에 대한 신고식을 끝냈다.

간단하게 신고식을 마치고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서둘러 동물농장으로 돌아갔다. 준착호갑사 모집의 시험 볼 준비를 하기 위해서다.

‘사람이 너무 몰려와 머리가 아프군.’

한편 백두상단의 중요한 거점인 벼락주막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떼를 지어 몰려왔다. 모인 사람의 복장도 가지가지고 심지어 머리를 박박 밀은 돌중들도 보였다. 또는 수염이 아주 긴 도사 같은 사람도 간간히 보였다. 물론 사냥꾼 차림인 청년들도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와글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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