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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트레인-85화 (85/519)

85화

너무 빨리 이동해 산적 졸개들은 다리의 힘이 모조리 소진되고 특히 여자는 더욱 심하게 지친 상태다.

최인범은 칠복이에게 명령했다.

“뛰지 말고 천천히 걸어가게 해.”

“넷!”

칠복이는 산적졸개들에게 다가가 외쳤다.

“빨리 일어나!”

칠복이가 다시 단창으로 가슴을 가볍게 찌르며 다그치자 산적졸개들은 천천히 일어나 흐느적거리는 걸음으로 이동했다.

최인범은 여전히 칠복이가 보이지 않을 정도까지 산적들이 추적해 오는지 살피다가 따라갔다.

이윽고 날이 완전히 어두워지자 먼저 달려가 배도치에게 연락한 팔복이가 말을 타고 먼저 돌아왔다. 이어서 숨을 헐떡이며 달려오는 배도치와 부하들도 만났다.

배도치는 신이 나서 크게 외쳤다.

“와! 접장님, 빨리도 잡았네요.”

“잡긴 그냥 묶어서 끌고 왔지.”

가볍게 응수해주고 나서 잠시 생각했다. 이제 산적들이 떼로 나타나도 어느 정도 대적할 숫자가 되었다고 판단하자 그제야 명령을 내렸다.

“여기서 조금 쉬다가 가자.”

“넷!”

쉬는 동안 팔복이 녀석은 돌중과 비구니에게 옷을 입도록 배려해주었다. 돌중은 바지만 입히고 비구니는 치마와 저고리를 입었다. 최인범과 부하들은 잠시 쉬고 나자 다시 이동했다.

이윽고 두산골에 도착하자 동네사람들이 횃불을 들고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몇 몇 청년들은 손에 투박한 몽둥이를 들고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마을사람들은 두려운 표정을 지으며 걱정했다.

“산적들이 떼로 몰려오면 어쩌지?”

“정말 큰일이군.”

관군이나 포졸도 전혀 없는 상태에서 산적졸개들을 잡았으니 다른 산적들이 동료를 구하려고 몰려올지 몰라 은근히 걱정했다. 밤이 너무 늦었고 생포된 산적들도 너무 지친 상태라 더 이상 이동은 불가능했다.

최인범은 마을의 촌장이라는 노인에게 말했다.

“우린 저쪽에 있는 상엿집으로 갈거니 그렇게 아세요.”

“그렇게 하세요. 저희는 상관없지요.”

마을과 다소 떨어진 상엿집은 동남쪽에 위치했다. 특이하게 벌판의 뚝 위에 있어 주변에서 접근하는 사람을 발견하기 좋은 위치다. 일단 상엿집으로 들어가자 그제야 생각난 듯이 팔복이가 말했다.

“저, 접장님, 시체를 가지러 가야겠네요.”

“어디에 놨는데?”

“마을의 중앙에 있는 큰 마당에요.”

“빨리 가지고 와!”

“넷!”

조금 시간이 지나자 팔복이가 시체를 말 등에 싣고 돌아왔다.

이제부터는 혹시 나타날지 모르는 산적을 마냥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나타나지 않으면 천만다행이고 그들이 나타나면 치열한 교전을 벌어야 한다.

초조한 기색으로 보초를 서고 있던 배도치가 조심스럽게 의견을 제시했다.

“접장님, 말을 타고 가서 관아로 먼저 알리는 것이 좋지 않나요?”

“그게 좋겠군.”

최인범은 배도치 의견을 받아들여 팔복이에게 지시했다.

“너, 빨리 풍기 관아로 가서 병방에게 알려.”

“넷!”

팔복이를 떠나보내고 나서 초조하게 보초를 서며 날이 새도록 기다려 봐도 다행히 산적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혼자라면 약간 무서워 보이는 상엿집이지만 여러 명이 있어서 그런지 다들 편안하게 교대로 잠을 잤다.

다음날 새벽이 되자 병방이 포졸 10명과 같이 상엿집으로 급하게 찾아왔다. 팔복이에게 이미 자세하게 설명을 들은 듯이 병방은 호기심어린 눈빛으로 슬며시 물었다.

“생포한 산적 중에 비구니도 있다고?”

오나가나 여자인 비구니에게 왜 이렇게 관심들이 많은지 모르겠다. 기분이 미묘해진 최인범은 다소 퉁명스럽고 거칠게 응수했다.

“산적 패거리에게 강제로 납치된 것인지 아니면 패거린지 모르지만 급해서 그냥 데리고 왔어요.”

“잘했소. 관아로 데리고 가서 조사해 보면 알겠지.”

병방에게 생포된 산적졸개 3명과 비구니 1명 그리고 사체 1구를 인계했다. 그러자 병방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자네는 같이 안가나?”

“아뇨. 우린 천천히 가겠습니다. 그러니 병방께서 알아서 처리해 주세요.”

“알았네, 사또께 말씀을 드려 그렇게 처리하지.”

병방이 포졸들과 같이 산적의 시체를 소달구지에 싣고 생포된 산적들은 새로 오라를 묶어 풍기로 향했다.

그들이 멀리 떠나고 나자 최인범은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우린 천천히 가다가 하룻밤 야영하며 물고기나 잡자.”

최인범은 겉으로 표시를 내지는 않았지만 젊은 비구니의 알몸을 보고나자 욕정이 불쑥 치밀었다. 그런 욕정을 해소하는 다른 길인 야생동물을 사냥해서 생간을 먹어볼 요량이다.

‘이거야 원, 흡혈귀도 아니고.’

처음 보다 생간을 좋아하는 증상이 다소 약화되었다. 그러나 치미는 욕정의 농도는 전보다 오히려 높아졌다. 아무래도 야생동물을 잡아먹는 정도로 욕정을 완전히 해소되기 어려울 지경이다.

낮에는 냇가에서 단창으로 물고기를 잡으며 이동했다. 저녁이 되자 개울가에 작은 천막을 치고 야영하게 된 부하들은 밤이 깊어지자 숲속에서 괴상한 울음소리를 들었다.

“키야악!”

접장이 산속으로 가서 사냥하며 토하는 환호성이 분명했다. 그러나 환호성이 전과 조금 달랐다.

“이게 무슨 소리지? 야밤에 돌아다니다가 산삼이라도 발견했나?”

“설마.”

접장이 산속으로 사냥을 하기위해 들어가 아침이 되도 돌아오지 않았다. 칠복이 형제는 은근히 걱정되어 산속으로 올라가 찾았다.

근처의 산속에는 최인범이 얼굴이 퍼래져서 쓰러져 있었다. 오른쪽 손이 퉁퉁 부었다. 놀란 칠복이가 크게 외치며 옆으로 다가갔다.

“접장님!”

보아하니 땅 속에 겨울잠을 자다가 밖으로 기어 나와 돌아다니는 독사에게 물린 것이 틀림없었다.

“접장님, 저희들이 너무 믿고 찾지 않아서 죄송합니다.”

“아니야. 나를 물은 독사는 내가 잡아먹었다.”

“예? 독사가 물고 도망치지 않았어요?”

사실 최인범은 독사를 보자 손으로 합부로 잡다가 물린 것이다. 그래도 독기하나로 팔을 칭칭 감던 커다란 독사를 씹어 먹어 버렸다. 자신의 무력을 너무 과신하다 큰 부상을 당한 것이다.

‘내가 아무리 강해도 천적은 있어.’

세상사란 이렇게 돌발 변수도 있고 매사 순탄하고 쉬운 일들은 거의 없었다. 그나마 천만다행인 것은 독사의 독이 그렇게 강하지 않아 생명이 위험하지는 않았다.

당분간 거동하기가 불편해 방에 틀어박혀 있어야 할 지경이다.

소달구지에 몸을 누이고 풍기로 돌아가는 최인범은 이번 일로 백반이나 또는 담배를 구해야 된다고 판단했다. 두 가지 모두 독사를 퇴치하는 물품이다.

이제부터는 야영하려면 뱀을 항상 조심해야 할 계절이다. 환경오염이 전혀 안 되어 야지에는 독사들이 아주 많았다.

‘좋은 경험을 했어.’

사람이란 나쁜 일들이 벌어져도 이렇게 앞으로 생활에서 도움 되는 좋은 경험을 얻게 되는 것이다.

풍기의 동물농장으로 돌아오자 백삼수가 의원과 같이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의원은 독사의 생김새를 자세하게 물어 보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록달록한 색이면 꽃뱀이군요. 꽃뱀을 흔히 독이 없다고 알지만 독이 있으니 항상 조심해야합니다.”

“알았어요.”

독성을 해소해 준다며 의원은 아주 독한 약을 지어주었다. 무려 30첩이나 지어줘 재탕까지 해서 하루에 두 번씩 한 달간 먹으라고 했다.

꽃뱀에 물리는 사건도 있어 최인범은 이날 이후 주로 방에서 지냈다. 월녀에게 회계방법을 알려주거나 구두로 부하들에게 무술이나 야전에서 살아남는 교육을 시키며 시간을 보냈다.

병방은 약속한 그대로 면포 200필 짜리 어음 2장을 최인범에게 가지고 왔다.

“생포된 산적들은 어찌 처리 됐나요?”

“생포된 산적들이 증언해 줘서 전에 사체로 가져온 놈들도 산적으로 밝혀졌네. 호패는 모두 다른 사람 것이고 모두 산적에게 살해된 사람들이야. 비구니는 명봉사에서 납치되었고 그래서 무죄로 방면해 주기로 결정했네.”

“그렇다면 다행이군요.”

“그런데 문제가 조금 있기는 해. 그 비구니가 절로 다시 들어가기는 곤란하다며 환속해 앞으로 자네 집에 몸을 의탁한다고 부탁하더군. 불쌍한 여자니 데려다가 부리도록 하게.”

“알았어요. 그렇게 하죠.”

생포된 산적들이 증언하니 공적서류는 쉽게 정리됐다.

전에 죽여서 가져온 산적들 중에 3명은 병방이 잡은 것으로 처리했다. 생포된 3명과 죽은 놈 1명은 최인범의 공적에 오르고 단창에 꼬치가 되어 죽은 놈은 칠복이와 팔복이가 죽인 것으로 정리했다. 무죄로 풀린 비구니는 당연히 최인범이 구한 것으로 기록됐다.

살다보면 의외로 기분 좋은 일도 있었다. 문경에서 사는 양반이 아비를 살해한 원수인 산적을 죽여 철천지한을 대신 갚아 줬다고 면포를 300필이나 보내주었다.

새로 생긴 면포 700필의 어음을 돌쇠에게 모두 넘겨주며 지시했다.

“이 면포로 망아지를 사와.”

“말을 많이 사겠네요.”

“말은 10필로 늘리고 나머지는 네가 알아서 처리해.”

“알겠습니다.”

이렇게 되어 말이 10필에 소가 10마리로 늘었다. 소가 늘어난 것은 새로 사기도하고 암소가 새끼를 낳았기 때문이다. 대가축이 20마리나 되고 돼지도 많이 키우니 제법 규모가 큰 동물농장으로 변했다.

최인범은 돌쇠를 따로 불러 지시했다.

“앞으로 너는 산으로 가서 일하지 말고 축사의 가축만 돌봐.”

“넷!”

관아에서 지내던 비구니가 동물농장으로 찾아오게 되자 기거하던 거처가 조금씩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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