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화
말을 타고 이동하게 되는 경우 배낭에 장착하는 모포나 천막을 말 등의 안장 부분에 붙들어 매도록 지시했다.
칠복이 형제도 떠날 준비를 모조리 끝내자 최인범은 급하게 말을 몰아 동물농장을 떠났다.
두두두두.
먼지를 풀썩이며 급하게 떠나는 최인범을 바라보던 백삼수가 옆에서 손을 흔드는 월녀에게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
“접장님은 어디로 가냐?”
“저는 잘 몰라요. 어쩌면 산적을 잡으러 가는지 모르죠.”
“산적을 잡아?”
“예, 벌써 산적을 4명이나 잡아서 관아로 넘겼어요.”
이러 대답에 백삼수는 자신이 멀리 상행을 떠난 동안에 무슨 큰 일이 벌어졌다고 판단했다.
“나 없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세하게 말해봐.”
그러자 월녀는 그동안 있었던 산적을 잡아서 시체를 관아로 넘긴 사실을 말해 주었다.
백삼수는 접장이 산적들의 소굴로 가서 산적 졸개의 목을 자르거나 목을 졸라 죽여서 끌고 왔다는 새로운 소식에 입을 떡 벌리고 놀라고 말았다.
접장의 무술이 워낙 뛰어나 무섭다는 느낌이 들었다. 산적을 여러 명이나 쉽게 죽여서 잡아 왔다니 느낌 자체가 전혀 달랐다.
‘순간에 4명이나 죽이다니. 진짜로 무섭고 독하군.’
어린 월녀에게 정산하도록 계산서들을 모조리 넘기라는 지시를 받았다. 비용을 더 계산하거나 영업이익금을 조금 줄여서 정산할 계획이던 백삼수는 그런 생각이 이내 사라져 버렸다.
‘전에 목을 잘라 버린다고 했으니 돈을 조금 더 쉽게 벌려다가 내 목이 먼저 위험해.’
두려운 표정으로 백삼수는 서둘러 월녀에게 말했다.
“월녀야, 빨리 계산서 확인해.”
“알았어요.”
정산을 같이 하면서 백삼수는 풍기관아로 최인범에게 고소장이 들어왔다는 이야기도 듣게 되었다. 그 문제도 자신이 개입된 일이다. 그래서 정산서를 작성하고 나자 서둘러 풍기관아로 달려갔다. 콩 장사가 벌인 고소사건을 처리하는 편이 자신의 신상에 이롭다고 판단한 것이다.
백삼수는 풍기에 도착하자마자 정신없이 고소사건의 해결을 위해 동분서주했다.
한편 두산골에 도착한 최인범은 숨을 헐떡이며 땅바닥에서 누워 펴지려는 배도치와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너희들은 여기서 숙영하면서 기다려. 병방은 내일 새벽에 도착하니 모래재로 같이 오고.”
“알겠습니다.”
지시를 내리고 급하게 칠복이 형제와 같이 말을 타고 이동해 모래재에 도착했다. 여기서부터는 더욱 좁아진 산길을 따라 천천히 이동했다. 산적들이 활발하게 활동하는 지역이라 형제에게 단단히 주지시켰다.
“여기서 부터는 조심해.”
“넷!”
조심스럽게 주변을 살피며 천천히 이동해 드디어 전에 숙영하던 곳에 도착했다.
이제는 완연한 봄이라 눈도 거의 녹아 깊은 골짜기의 음지에나 눈과 얼음이 조금씩 남아 있었다. 좁고 긴 골짜기를 흐르는 맑은 물로 목을 축이고 나자 칠복이 형제에게 지시했다.
“전에 묻은 비상식량과 술을 모두 꺼내고 주변에 경고 방울을 설치해.”
“넷!”
칠복이 형제들은 땅을 파서 반합을 꺼내고 안에 들어 있는 비상식량을 확인했다. 변했는지 냄새도 맡아보고 입에 넣어 맛을 보고나서 보고했다.
“접장님, 비상식량이 그대롭니다.”
“말에게 먹여 소모하고 비상식량으로 조금만 남겨.”
“넷!”
최인범은 칙복이 형제에게 필요한 지시를 내리고 서둘러 산채가 있는 쪽으로 향했다. 한번 갔던 지역이라 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
이윽고 산채 입구를 지키는 초소인 움막 근처에 도착해 조심스럽게 살폈다. 그런데 뭔가 변화가 있을 것으로 짐작한 그곳에 여전히 두 녀석이 보초를 서고 있었다.
‘진짜 멍텅구리군. 여전히 똑 같다니.’
시간은 빠르게 흘러 어느새 해가 서산으로 넘어가려고 했다. 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오래 기다려 봐도 한 놈이 잠을 자지 않는다는 것이다. 두 녀석이 두런두런 잡담을 나누기만 하고 여전히 여자 이야기가 주된 대화다.
“비구니가 맛은 좋아.”
“당연하지. 어떻게 남자를 저렇게 좋아하는 여자가 비구니가 됐나 몰라.”
나누는 대화로 보아 비구니를 끌고 와서 산적들이 돌려가면서 욕정을 마구 발산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속으로 ‘밧줄로 교수형에 처해 죽일 놈들.’이라고 욕했다.
최인범은 조심스럽게 움막에서 후퇴해 안전하다고 보는 곳에서 밧줄을 꺼내 여러 개의 올가미를 만들었다.
포박하기 쉽도록 올가미를 만들고 이어서 준비해온 무명천도 허리춤에 찼다. 무명천으로는 사로잡은 산적 놈들이 소리를 지르지 못하게 재갈을 단단히 물릴 계획이다.
적을 생포할 준비가 모조리 끝나자 아주 조심스럽게 두 녀석에게 다가갔다.
사삭 사삭.
긴장한 상태로 소리 없이 접근해 공격하기에 적당한 기회를 노리다가 번개 같이 달려들었다. 한 녀석의 목덜미를 후려쳐 기절시켰다. 바로 옆에 있는 졸개 놈의 입을 손으로 틀어막으며 목에 대검을 들이대고 나지막하고 싸늘한 목소리로 외쳤다.
“소리 지르면 목 딴다.”
여유롭게 미리 준비한 밧줄로 두 녀석의 손과 몸을 포박하고 입에 재갈도 물렸다. 혹시 해서 움막의 저적을 와다닥 들추고 안을 들여다보다가 화들짝 놀랐다.
“헉!”
움막 안에는 머리를 완전히 깍은 젊은 여자와 역시 머리를 박박 밀은 우람한 체구인 산적이 서로 껴안고 깊이 잠들어 있었다.
돌중과 비구니로 보였다. 모두 벌거벗은 알몸으로 깊이 잠든 것으로 보아 정사를 심하게 벌이고 너무 피곤해 뻗어 있는 것 같았다.
최인범은 재빨리 먼저 돌중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익숙하게 손을 뒤로 돌려 포박했다. 그제야 잠에서 깨어난 돌중이 몸부림치며 반항하려고 뒤척이자 목덜미에 대검을 들이대고 음산하게 외쳤다.
“쉿! 조용!”
돌중은 눈이 왕방울처럼 커지더니 겁에 질려 덜덜 떨면서 잠잠해졌다.
이어서 여전히 깊이 잠든 젊은 여자도 포박하고 재갈을 물렸다. 그제야 깨어나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랐다. 젊은 여자도 놀라 소리 지르려고 했으나 이미 재갈을 물려 소리가 터져 나오지 않았다.
“죽기 싫으면 조용해!”
써늘한 목소리로 위협하며 목에 대검을 드밀자 젊은 여자도 이내 얌전해졌다.
어찌되었건 손쉽게 산적 졸개와 여자를 포함해 4명이나 생포해 포박했다. 돌중과 비구니의 벗은 몸이 보기가 좋지 않았지만 급한 마당에 옷을 입혀 데리고 갈 상황은 아니다.
그래서 벌거벗은 그대로 빠르게 놈들을 앞세우고 좁은 계곡을 내려갔다. 굴비 엮듯이 꽁꽁 묶은 상태지만 아직 안심하기는 이르다.
앞서가는 산적들은 끌려가지 않으려고 자꾸만 머뭇거렸다. 그러자 최인범은 들고 있던 대검은 허리춤에 차고 무섭게 생긴 톱날이 달린 장검을 뽑아 들고 돌중의 목에 대고 위협을 가했다.
“조용히 따라가지 않으면 당장 목을 잘라주마.”
이런 무서운 협박 때문에 산적 졸개들은 순순히 계곡 아래로 빠르게 내려갔다. 이윽고 칠복이 형제가 기다리는 곳으로 가깝게 다가가게 되었다.
“헉!”
인적이 드문 이곳에 칠복이 형제와 무명옷을 입은 농부차림의 청년 3명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이때 청년들을 발견한 돌중이 몸을 심하게 뒤척이며 뭐라고 소리치려고 했다.
“음! 으음!”
순간 최인범은 농부차림인 청년들이 아무래도 산적 졸개들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산적들이 자주 출몰하는 이런 외진 곳에 너무 늦은 시간에 길을 가는 행인은 없었다. 그래서 심하게 몸부림치며 움직이는 돌중의 목덜미를 후려쳐 기절시키고 생포해서 끌고 가던 무리를 커다란 소나무에 붙들어 맸다.
꽁꽁 붙들어 매고 나서 조심스럽게 수상해 보이는 청년들을 자세하게 살폈다. 보아하니 수중에 무기는 들지 않은 것 같았다. 무기를 들지 않았다면 3명 정도는 혼자서 충분히 격퇴가 가능해 천천히 숲속에서 나왔다.
숲속에서 개활지로 걸어 나와 칠복이 형제들에게 자연스럽게 다가가며 말을 걸었다.
“산토끼는 잡았냐?”
“아뇨!”
무섭게 생긴 특이한 장검을 들고 나타난 최인범을 보자 청년들은 매우 놀라며 급하게 산속으로 달아났다. 지은 죄가 있으니 겁이 나서 도망치는 것이다.
후다닥!
“잡아!”
최인범의 외침에 그제야 칠복이 형제는 자신들과 대화를 나누던 청년들이 산적들이라고 인식했다. 재빨리 들고 있던 단창으로 멀리 달아나는 청년들을 등을 향해 힘차게 던졌다.
획! 획! 퍽! 퍽!
“크아악!”
두 개의 단창이 공교롭게 제일 뒤에서 도망치던 산적 졸개의 등에 모두 깊이 꽂혀 버렸다. 졸지에 단창에 꼬치가 되어 땅바닥에 쓰러졌다. 그러나 앞장선 다른 두 녀석은 빠르게 검은 숲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늦게 그들을 따라가 잡기는 약간 어려워보였다.
“에이, 잡기 틀렸군.”
산적이 도망쳤으니 패거리를 몰고 올 염려가 많았다. 빠르게 산적들을 묶어 놓은 곳으로 가서 끌고 내려왔다. 완전히 벌거벗은 비구니를 보자 칠복이 형제는 눈이 동그래지면서 매우 놀랐다.
그런 칠복이의 머리를 콩알 주먹으로 살짝 쥐어박으며 외쳤다.
“빨리 철수해.”
“넷!”
등에 단창을 둘이나 박힌 산적은 많은 피를 흘리고 이미 숨을 거둔 상태다. 그래서 사체를 팔복이의 말위에 엎어지게 해서 올려놓았다. 칠복이 형제는 사람을 직접 처참하게 죽이고도 정신적으로 전혀 충격이 없어 보였다.
‘이놈들은 타고난 독종들이야.’
생포한 4명의 목에 밧줄로 올가미를 채우고 칠복이 형제에게 밧줄 끝을 넘겨주며 명령했다.
“칠복이는 산적들을 끌고서 빨리 먼저 이동해. 팔복이는 두산골로 먼저 달려가서 배 계장과 부하들을 이리 오라고 전해. 돌아오며 허름한 옷 두벌만 가져와.”
“넷!”
팔복이는 빠르게 말을 몰아 두산골로 향하고 그 뒤를 칠복이가 생포된 산적들을 끌고 갔다. 최인범은 말을 탄 상태로 계속해서 산채가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이놈들이 안 오네.’
혹시 산적들이 나타나면 접전을 벌여 칠복이 형제가 멀리 이동할 시간을 벌어줄 심산인 철수 계획이다. 그러나 칠복이 형제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기다려도 산적들은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그제야 최인범은 빠르게 칠복이 형제 뒤를 따라서 내달렸다.
한참을 달리자 길가에서 4명의 산적졸개들이 땅에 털퍼덕 주저앉아 있었다. 칠복이가 단창으로 산적 졸개들의 가슴을 꾹꾹 지르며 험악하게 소리쳤다.
“빨리 안 일어나! 여기서 죽여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