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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트레인-82화 (82/519)

82화

“어디서 잡았나?”

“며칠간 죽령 근처를 모조리 수색해 모래재 근처에 있는 산적 소굴인 산채를 찾아내서 어렵게 잡았습니다.”

풍기군수는 최인범이나 그의 부하들을 자세하게 살피더니 의문을 표했다.

“그래? 그런데 자네나 부하들은 전혀 다치지 않았군.”

“사또, 산채의 입구에서 보초를 서는 놈들만 잡아 와 그렇사옵니다.”

“뭐라? 보초를 서는 산적만 잡았다고?”

“사또, 그렇사옵니다. 그래야 우군의 피해가 전혀 없이 산적을 잡을 수 있어서요. 며칠 전에 관아로 제가 찾아와서 같이 산적을 잡으러 가자고 보고하니 갈 군졸이나 포졸이 전혀 없다고 하더군요. 결국 저 혼자서 부하들과 3명 이상의 산적을 잡자니 그런 방법 밖에 없었습니다.”

풍기군수는 최인범의 뛰어난 무술 실력이라면 가능한 일이라고 충분히 알 수 있었다.

‘허! 과연 대단한 무술이야. 아무리 보초라고 하지만 쉽게 여러 명을 잡아서 오다니······.’

산적의 목을 단칼에 잘라 죽이고 올가미로 목을 졸라 죽인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다른 놈들의 표정으로 보아 최인범 혼자서 잡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다른 놈들도 같이 산적을 잡았다면 의기양양한 기색이 보일 것인데 다들 최인범에게 잔뜩 겁을 집어먹고 주눅이 들어 있었다.

‘살벌하게 혼자서 산적을 잡자 부하들까지 겁에 질린 거야.’

자주 행인을 습격하고 죽이기까지 하는 산적들 때문에 고심하던 터에 산적 4명의 사살은 아주 큰 전과에 해당된다. 하지만 아직 극성하는 호환을 해결 못해 자리가 매우 위태로운 풍기군수는 조금 더 욕심이 생겼다.

‘흠! 저놈이 굳이 3명 이상을 잡았다고 강조하는 것을 보면 이번에 조정에서 내린다는 별장 벼슬이 욕심나서 산적을 잡은 것이 틀림없어. 이번 기회에 저 놈을 이용해 나도 산적을 추포한 공적 좀 올려 봐야겠어.’

가만히 눈치를 보니 공적만 올려 검교직인 별장을 받으면 더 이상은 움직이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이제 겨우 호패를 받은 녀석이니 더 이상 높은 관직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풍기군수는 사실 이런 눈치하나로 이런 자리까지 올라온 인물이다.

‘흠! 저 어린놈을 어찌 이용한다?’

비록 양자지만 이미 양반이 된 녀석이라 고을의 사또라고 해도 마음대로 부릴 수는 없었다. 더구나 호방을 통해 듣기에는 재력도 만만치 않은 놈이라니 호락호락 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잠시 침묵하며 고심하던 풍기군수는 좋은 묘안을 떠올렸다. 그래서 군수는 최인범을 내려다보며 천천히 조치를 내리고 있었다.

“정황으로 봐서는 자네 공적으로 기록해 조정에 올려야 되겠지만 지방 수령인 나로는 조금 더 명확하게 처리해야 할 필요성이 있지. 이들이 산적이라는 증명이 반드시 필요해. 본관의 판단으로는 가능하면 생포한 산적이 있으면 좋은데. 자네 생각은 어떠한가?”

이렇게 조치를 내리자 호방이 나서며 슬며시 거들었다.

“사또, 그건 산적들이 지니고 있던 호패의 주인의 행적을 찾아보면 확인이 됩니다.”

잘 요리하고 있는 중에 호방이 훼방을 놓자 군수는 급하게 호통 쳤다.

“어허! 호방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나?”

“사또, 호패 주인만 찾아봐도 되옵니다.”

“어허! 또 그 소리를 반복하나? 호패야 남에게서 탈취해도 되고 때로는 위조되는 것을. 일단 산적들이 지니고 있다는 호패에 대해서는 그쪽으로 통인을 보내 연락해 천천히 알아보도록 조치하고 나중에 그 결과가 정확하게 나오면 공적으로 처리하도록 하지.”

“예이!”

결국 당장 공적을 기록해 조정으로 알리지 않겠다는 판결이다.

더 명확한 증거인 산적을 생포해 오던가 아니면 호패의 진짜 주인의 행방을 알아내서 그 결과에 따라 공적을 조정으로 올린다는 결정이다.

이런 판결을 내린 풍기군수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며 명령했다.

“밤이 늦었으니 이만 돌아가 보게. 그리고 시체는 적당한 곳에 임시로 놔두고.”

“에이.”

최인범은 부하들과 같이 동헌에서 나오며 이상하게 생각했다.

‘어째 께적지근하네.’

물론 풍기군수의 이런 판결은 타당성 있었다. 또 그래야 군수가 할 일을 정확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군수가 포졸이나 착호갑사를 동원해 산적을 추포하러 간다는 의견은 전혀 말하지 않은 점이다. 더구나 자신에게 보다 더 정확한 산채의 위치를 묻지도 않았다.

‘군수가 지금 제 정신인가? 왜 이렇게만 판결하고 끝내려고 하지? 혹시 나중에 나를 비밀리에 불러서 산채 위치를 물어 보려고 하나?’

산적을 잡아만 오면 쉽게 별장 벼슬을 먹게 생겼다고 판단했으나 그것이 조금 꼬였다. 자칫하면 자신의 원대한 계획이 틀어지게 생겼다.

이렇게 판단하고 최인범은 다소 급하게 동물농장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밤이 되자 또다시 살심과 더불어 불같이 욕정이 치밀어 올라 잡다말고 방사한 멧돼지나 잡기로 했다.

‘지금쯤은 멧돼지들이 다시 돌아와 있을 거야.’

최인범은 농장으로 돌아오자 바로 산속으로 들어가 멧돼지 사냥에 나섰다. 그리고 중 멧돼지 한 마리를 잡아 붉은 피가 철철 흐르는 간과 심장을 파먹었다.

멧돼지를 들고 집으로 돌아와 부엌에 던져놓고 처음으로 안방에서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다소 늦게까지 잠을 자는 중에 밖에서 큰 소리로 자길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최 선달! 집에 있나?”

“누구요?”

작은 방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니 풍기 관아의 아전인 병방이 찾아왔다.

“들어오시죠.”

병방이 안으로 들어와 좁은 방안을 휘 돌아보았다. 방의 크기도 적고 가구도 전혀 없어서 그런지 약간 인상을 찌푸리며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최인범은 묵묵히 침묵하며 바라만 보았다. 무슨 이유로 찾아왔는지 전혀 모르니 그가 입을 열 때까지 기다릴 심산이다.

한참을 침묵하던 병방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사실은 사또께서 자네에게 요구할 것이 있어서 심부름으로 찾아왔네.”

“뭐죠?”

“어제 동헌에서 자네도 들었지만 사또께서는 자네가 반드시 산적 한 두 명을 생포해 주길 바라네. 그리되면 자네의 공적을 바로 조정에 올린다고 하시네.”

이런 요구에 최인범은 잠시 생각했다.

보아하니 병방이 산적 소굴인 산채에 같이 갈 심산으로 보였다. 그러나 최인범으로는 부하들도 다칠까 염려하던 터라 별로 내키지 않았다.

병방은 나이가 50살이 넘고 보아하니 별로 무술이 뛰어난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공연히 같이 가서 소란만 피우면 자신이 위험해질 수 있다고 판단했다.

‘공연히 혹을 달고 갈 필요는 없어.’

그래서 매우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또 그곳으로 산적을 잡으러 간다는 것은 조금 힘듭니다. 산적들도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똑 같은 방법으로 공격하면 분명 대비할 것이니까요. 그러니 산적을 소탕하고 싶으면 그냥 봐두세요.”

“그냥 놔두다니. 도적들의 소굴을 알면서도 그대로 놔둔다는 건가?”

병방의 말에 최인범은 실소를 머금고 답했다.

“그거야 제가 할 일은 아니죠. 사또께서 나서서 직접 하실 업무죠.”

이렇게 응수하자 병방은 매우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최인범은 매우 난처한 표정을 짓는 병방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사또가 심부름을 시켰으면 분명 나를 관아로 불렀을 것인데 너무 이상하군. 병방이 개인적으로 나를 찾아온 것 같아.’

병방은 비록 지방의 아전이라지만 그래도 무시할 수는 없었다. 자신은 양자로 들어와 양반이 되었으니 아직 온전한 양반 행세를 하기는 곤란했다. 지방의 토박이로 대대로 물려가면서 아전 노릇을 하는 이들에게 밉보여야 앞으로 좋은 일을 기대하기 힘들다.

‘들어줄 수 있으면 요구 사항을 들어주는 것이 좋아.’

이렇게 판단하고 슬며시 입을 열었다.

“사또께서 그래야 제 공적을 조정에 올린다면 어쩔 수 없군요. 제가 기회를 봐서 산적을 한 명이나 두 명을 생포해 오도록 노력해 보죠. 지금 많은 포졸이나 착호갑사가 움직이면 산적들에게 알려질 위험성이 높습니다. 그리되면 산채로 가봐야 산적은 없을 것이니 생포해서 잡기가 어렵죠.”

“그렇다면 나 혼자만 자네를 따라가면 안 되나?”

이런 병방의 요구에 최인범은 즉시 답했다.

“그건 또 생각해 볼 다른 문제군요. 며칠만이라도 저에게 말미를 주세요. 저도 여기서 우선 당장 해야 할 일들이 있으니까요.”

“알았네. 그럼 혹시 산적을 잡으러 떠나게 되면 반드시 나에게 먼저 연락해 주게.”

“그렇게 하죠.”

이런 대화를 나누던 병방은 품속에서 슬며시 면포 200필짜리 어음을 내놓으며 다시 부탁했다.

“이것 내가 주는 작은 성의니 앞으로 잘 부탁하네.”

“예? 무슨 뜻이죠?”

병방은 다소 멋쩍은 미소를 머금고 입을 열었다.

“자네가 앞으로 잡아오는 산적은 내가 잡은 것으로 하자는 걸세. 나도 병방을 벗어나 별장이라도 해보고 싶어 하는 부탁일세. 자네가 앞으로 산적을 잡으면 두당 면포 200필로 정하는 것이고.”

이렇게 말하자 사또가 보내서 찾아왔다는 것은 거짓이 분명했다. 병방은 자신의 개인적인 영달을 위해서 돈을 주고 벼슬을 살 생각이다. 이미 4명을 잡았으니 결국 한 명은 남으니 그것은 자신의 공적으로 포함하자는 의미로 면포를 주는 것이다.

지금은 조선의 중기라 중인이라는 신분적인 구분이 명확하지 않았다. 조선 후기가 신분 제도가 더욱 명확해 지면서 또한 더욱 문란해졌다.

물론 신분 구분이야 지금도 하고 있지만 중인도 얼마든지 공적을 세우면 양반인 무관이나 문관도 될 수 있었다. 다만 제도적으로 문관은 하기가 조금 힘들고 양인이나 중인들도 무관 벼슬은 얼마든지 할 길이 있었다.

‘서로 좋은 것이 좋은 거야.’

이미 가능하면 고을의 토박이인 병방의 요구조건을 들어주기로 결심하던 터라 고개를 끄덕이며 승낙했다.

“좋습니다. 다만 산적을 잡으러 갈 때는 반드시 내 지시에 따라야 합니다.”

“알았네. 그렇게 한다고 약속하지.”

이런 약속을 굳게 하고 나자 병방이 돌아갔다. 그가 떠나자 최인범은 우선 어젯밤에 잡은 멧돼지를 먹을 생각으로 먹쇠를 불렀다.

“먹쇠! 있냐?”

“에이!”

“너 어제 내가 잡아온 멧돼지를 해체해서 불에 구워먹을 준비를 해.”

“예이!”

맛있는 멧돼지 고기를 먹게 생겨 신이 난 먹쇠는 재빨리 움직였다. 농장에서 지내는 사람들이 모두 안마당에 모여 숯불을 피우고 석쇠를 올려놓고 멧돼지 고기를 구워 먹었다.

농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먹쇠와 다른 두 녀석도 있고 여자들이 4명이나 있고 배도치나 부하들도 있다. 칠복이 형제도 있으며 또한 집을 짓는 목수나 인부들도 있으니 멧돼지 고기는 빠르게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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