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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트레인-81화 (81/519)

81화

잘 아는 적보다 전혀 모르는 적이 더 무섭다. 산적들에게는 심리적인 압박감이 더욱 심해진다. 조정에서 산적을 퇴치하기 위해 내세운 허접한 별장이란 벼슬 때문에 산적들은 전혀 생각하지 못한 무서운 사태가 벌어졌다.

배도치와 민정만은 급하게 죽은 산적 두 놈을 둘러업고 골짜기를 따라 내려갔다. 이제 날이 점점 어두워지니 서두르는 것이다.

두 녀석이 아래로 내려가자 최인범은 죽은 녀석이 들고 있던 장창을 주어 들고 흔적을 깔끔하게 지웠다. 다시 초소로 와서 놓여 있는 장창 2개도 챙겼다. 오늘의 산적사냥 작전은 이것으로 끝내야 된다.

‘내일 와 봐서 또 보초가 있으면 잡고 풍기로 돌아가야지.’

매우 위험한 계획이지만 산적 두목이 멍청하길 기대하며 이렇게 마음먹었다.

최인범은 이제는 어두워진 산길을 타고 빠르게 이동해 숙영지에 도착했다.

시체의 옷가지를 들추며 우심히 살피는 배도치에게 다가가 슬며시 물었다.

“배도치, 혹시 전에 봐서 아는 놈이 있냐?”

“아뇨. 아는 놈이 하나도 없어요. 두 놈은 호패를 찼는데요.”

“뭐? 산적이 호패를 차다니?”

“접장님, 산적이 본시 태어나서부터 산적인가요? 평소 고을에서 살다가 너무 힘들면 산속으로 숨어 들어가 산적이 되는 거죠.”

딴은 틀린 판단이 아니다. 살다가 보면 인생이 너무나 꼬여 이런 신세로 변하는 수가 있었다. 아무튼 막상 죽이고 보니 기분이야 별로지만 밤이라 그런지 그리 찜찜하지는 않았다. 아무튼 낮과 밤이 다소 성격이 다르게 나타났다.

“호패 이리 줘봐!”

배도치가 들고 있다가 넘겨주는 호패를 받아 읽어 보니 하나는 상주 발행이고 하나는 문경에서 발행한 호패다. 호패가 죽은 놈들 것인지 아니면 행인을 죽이고 탈취한 호패인지는 정확하게 모르겠다. 하지만 배도치 말대로 문경지역에서 활동하던 산적 패거리가 분명했다.

죽은 시체가 4구나 되어서 그런지 모르나 주변에서 늑대나 여우가 우는 소리가 들렸다.

아아아웅. 아아아웅.

다들 모닥불 옆에서 시체를 지키며 산적이 쳐들어올까 염려했다. 그런 부하들을 보며 최인범은 소형천막으로 들어가 잠이 들었다.

표주박에 들어 있는 소주를 마시니 날고기나 붉은 피를 먹고 싶은 갈증이 조금 해소되었다. 아무리 쉬운 사냥이라도 긴장감이 풀리니 몸이 노곤해 쉽게 잠속으로 빠져들었다. 그에게는 사냥이나 살인이나 비슷한 느낌만 있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 다들 일어나 부하들이 전투 준비를 마치고 있었다. 그러나 최인범은 또 다시 산적을 찾아가는 것은 매우 위험한 침투작전이라고 판단했다.

더구나 목표인 산적 3명을 초과해 넘겼으니 무리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철수하자. 천막은 말 등에 싣고 들것을 만들어 산적을 날라.”

“넷!”

명령을 받은 부하들은 빠르게 긴 창과 곧은 나무를 잘라 들것을 만들었다. 짧은 지주목은 커다란 바위 옆에 가지런히 숨겨 놓았다. 다시 이곳으로 오게 되면 사용할 요량이다.

“무거우니 비상식량도 반합에 넣어 모조리 묻어.”

“넷!”

야생 동물이 파먹지 못하게 반함에 넣고 파묻고 작은 바위를 위에 올려놓았다. 9개의 반합을 모두 사용하자 그럭저럭 비상식량은 모두 감출 수 있었다.

각자 차고 있던 2개의 호리병도 하나씩 남기고 소주를 가득 담아 땅에 묻었다. 우선은 이동하기 전에 무게를 줄이려는 것이다.

이런 지시를 하는 이유는 이곳에서 산적들을 몰아내면 아주 좋은 은신처가 되거나 사냥터이기 때문이다.

나중에 산악훈련을 하는 훈련장으로 사용도 가능해 나중에 다시 찾을 생각이다. 멍청한 산적들이 다른 곳으로 가지 않으면 또 이런 방법으로 사냥해볼 계획이다.

‘나중에 또 와야 해.’

뛰어난 무력을 지닌 최인범에게는 이런 허접한 산적들의 무리란 그저 조금 넓은 우리에 가두어 놓고 방사하는 멧돼지 정도에 불과했다.

철수 준비를 모두 끝내자 최인범은 말을 탈 줄 아는 팔복이에게 명령했다.

“팔복아, 너는 말을 타고 먼저 마을로 가서 달구지를 두 대만 준비해서 올수 있는 곳까지 와!”

“넷!”

팔복이가 말에 올라 조금 속보로 북쪽 산길을 따라 떠났다. 칠복이도 승마를 배우기는 했지만 동생인 팔복이가 조금 나아 그 녀석에게 심부름을 보낸 것이다.

말이 똥을 싸고 떠나고 나자 팔복이가 말똥을 치워 땅에 묻으며 투덜거렸다.

“에이, 나는 똥이나 치우고.”

자신들이 머물던 흔적을 최대한 지우고 있었다. 그런 작업이 모두 끝나자 시체가 담긴 들것을 들고 산길을 이동했다. 어느 정도 이동하고 지나온 발자국을 솔가지로 지우는 작업을 병행했다.

최인범 일행이 산적 4명을 소리 없이 잡고 조용히 떠나는 가운데 산적들이 사는 산채에서는 난리가 났다. 그들은 자신들의 천적인 무서운 살귀가 나타났는지 전혀 모르고 달리 판단했다.

산채 입구를 지키라고 보초를 서던 놈들이 ‘밤 사이에 안녕.’이라고 4명이나 소리 없이 사라졌다. 무리의 1할이나 감촉 같이 사라졌다. 이 때문에 산적들이 삼삼오오 모여 술렁였다.

웅성웅성.

산채의 우두머리인 왕눈이는 이번 사태로 부두목인 사팔이와 약간 의견의 다툼이 생겼다. 두목인 왕눈이가 툭 튀어나온 눈에 힘을 잔뜩 주며 위압적으로 말했다.

“사라진 그 놈들은 모두 평소에도 나에게 불만이 많았는데 도망쳐서 관아에 밀고하려고 간 것 아냐?”

부두목인 사팔이가 눈길은 다른 곳으로 돌리고 얼굴이 벌게져서 항의했다.

“두목, 그건 절대로 아닐 겁니다. 불만이 아무리 많아도 그 놈들은 모두 살인을 저지른 놈들이라 절대로 관아로 가서 밀고를 못합니다. 내 생각에는 아마 딴 살림을 차리려고 떠난 것 같습니다. 두목이 그 녀석들이 잡아온 여자들까지 차지해 불만을 터트린 것입니다.”

“뭐야? 지금 반항해?”

“그건 아니죠. 세상의 이치가 그렇다는 겁니다.”

산적 주제에 세상의 이치나 도리를 따지니 왕눈이는 어이가 없었다.

밤사이 사라진 부하들 때문에 의견이 엇갈리고 있지만 일단은 기다려 보기로 결정했다. 혹시 여자를 또 잡으러 갔는지 모른다는 의견들도 있었다.

그러나 관군이 떼로 몰려올 수도 있었다. 그래서 멀리까지 나가서 정찰하고 급하게 떠날 수 있도록 이삿짐들은 싸두기로 결정했다.

두목인 왕눈이는 부두목인 사팔이에게 명령했다.

“너희들은 모래재까지 나가서 혹시 군관이나 수상한 놈들이 있는지 잘 살펴 봐!”

“넷!”

“수시로 아무 이상이 없는지 산채로 알리고.”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돌아와 보고해야 하니 산채 식구들의 거의 반이나 되는 16명이 모래재로 떠났다.

산채의 산적은 모두 40명이고 여자는 15명이다. 그러나 이제 4명이 사라져 36명으로 줄었다. 여자들은 2명만 본시 산적의 아내들이고 나머지는 산적 질을 하며 활동하던 근처의 마을에서 납치해왔다.

같이 살게 된지 오래된 여자도 있고 며칠 지나지 않은 여자들도 있었다. 출신성분도 달라 농부의 아내나 딸도 있고 기생출신과 노비출신도 있었다. 특이한 여자는 저수령 고갯길 근처에 있는 명봉사에서 잡아온 비구니다.

문경 새재 근처에서 활동하다가 조정에서 군사들을 동원해 추포하려고 움직이자 재빨리 이곳으로 이동했다. 이들은 약탈한 재물로 모래재를 통해 필요한 물자를 공급받았다.

산적들은 문경의 새재를 떠나 저수령에서 잠시 지내다가 다시 이곳으로 이동했다. 저수령 고개는 문경에서 예천으로 넘어가는 길로 아주 험했다.

한편 사팔이는 모래재에 도착해 숲속에 일단 거적으로 움막을 지었다. 긴 나뭇가지를 두 개의 나무에 걸치고 거적을 덮으면 끝이다. 물론 안에는 나뭇잎을 주어다 넣어 보온했다. 몇 개의 움막을 만들고 나자 사팔이는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아무 이상이 없다고 보고해.”

“넷!”

이들은 모래재를 중심으로 북쪽과 남쪽으로 정찰을 나가서 혹시 관군들이 몰려오는지 살폈다. 그리고 이상이 없으면 두 놈을 짝을 지어 산채로 돌려보냈다.

사팔이는 자신의 직속부하들인 사라진 놈들의 행방이 묘연하자 매우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혹시 호랑이에게 물려갔나?’

사팔이가 이런 판단하는 이유는 모래재에서 호랑이 털을 많이 발견했기 때문이다. 진한 피 냄새를 맡고 잠시 호랑이들이 이곳에 떼로 출몰했다.

한편 모래재 근처에서 산적을 4명이나 사냥한 최인범은 두산마을에 도착했다. 팔복이가 주선한 소달구지 하나에 시체를 싣고 풍기로 돌아갔다. 눈이 녹아 질척거리는 길을 가는 황소가 힘들어 하지만 빠르게 몰아 풍기에 초저녁이 되어 도착했다.

해가 떨어질 무렵이라 석양은 핏빛과 같이 붉게 물들고 있었다. 그늘이 길게 생겨 다소 어두침침했다. 그런 묘한 분위기 때문인지 시체 4구를 동헌으로 가져가자 동헌에 있던 포졸들이 기겁하고 놀랬다.

“이게 뭐요?”

“산적을 잡아 왔소. 호방을 불러 주시오.”

잠시 뒤에 호방이 나타나 시체들을 자세하게 살피더니 물었다.

“어디서 잡았소?”

“모래재 근처에서 잡았습니다.”

이런 대답에 호방은 다소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의문을 표했다.

“이 시체들이 산적인 것을 어찌 증명한단 말이오?”

호방의 이런 물음에 최인범은 버럭 화를 냈다.

“뭐요? 그런 막말이 어디 있소? 산적이 아니면 내가 양민을 죽여서 여기로 데리고 온 살인자라는 거요? 말을 너무 가볍게 하는군.”

호방은 금방이라도 잡아먹게 생긴 표정인 최인범을 바라보자 겁이 덜컥 났다. 낮에 보았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살벌한 분위기를 풀풀 풍기니 매우 놀랐다.

최인범은 산적이 가지고 있던 호패를 호방에게 풀쩍 넘겨주며 말했다.

“이 호패의 주인을 찾아보면 잘 알 것이오. 산적의 본래 신분이던 아니면 죽이고 빼앗은 것인지 알 것이오.”

듣고 보니 타당성이 있는 의견이다. 그래서 호방은 급하게 퇴청한 군수를 만나러 동헌 뒤로 달려갔다.

“사또, 절제도위의 양자인 최인범이 산적이라며 시체 4구를 가지고 왔사옵니다. 사또 어서 동헌으로 나와서 직접 살펴보셔야 되겠습니다.”

“험! 조금만 기다려.”

마침 퇴청해서 젊은 기생을 끼고 푸짐한 저녁상을 먹던 중이다. 풍기군수는 젊은 기생의 치마폭 속으로 밀어 넣었던 손을 빼며 응수했다. 아무리 젊은 기생이 좋아도 산적을 잡아 왔다니 그 일의 처리가 우선이다.

커다란 상에 놓인 닭다리를 입에 가득 물고 먹으며 곱게 분칠한 젊은 기생에게 당부했다.

“춘심아! 너는 상을 물리지 말고 잠깐 기다려!”

“에이.”

풍기군수는 춘심이란 젊은 기생의 도움으로 의관을 갖추고 급하게 방에서 나와 동헌으로 갔다.

동헌의 넓은 마당에는 달구지에서 내려놓은 시체가 4구나 있었다. 위에 너덜너덜한 거적을 덮어 놓은 상태로 군수가 옆으로 다가가자 형방이 거적을 슬쩍 들추며 말했다.

“사또, 둘은 밧줄에 목이 졸려 죽었고 둘은 칼에 의해 목이 잘려서 죽었사옵니다.”

“흠! 그렇군.”

사체에서 고약한 냄새가 풍기자 눈살을 찌푸린 풍기군수는 발길을 돌려 동헌의 마루로 올라섰다. 중앙에 놓인 의자에 앉은 상태로 최인범을 내려다보며 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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