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화
<산적들의 천적인 살귀>
잠들기 전에 우수한 품종인 사냥개를 키워야겠다는 구상이 떠올랐다. 주인을 지키는 보초로는 사냥개만한 것이 없다고 판단했다. 아무래도 품종이 좋은 진도견이나 풍산개를 구해봐야 할 것 같았다.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자 최인범은 칠복이 형제만 숙영지에 남겨놓았다.
“말하고 천막을 잘 지키고 있어.”
“넷!”
배도치와 다른 부하들과 같이 산속을 이동해 아주 천천히 산적들이 사는 곳으로 향했다. 수북하게 쌓여 있는 눈길을 걸으려니 힘이 들었다. 하지만 골짜기를 따라 올라가니 눈들이 녹아 다소 편하게 이동했다.
이윽고 산적들이 사는 장소의 입구인 좁은 골짜기에 도착했다.
산적들이 모여 사는 곳은 넓은 공터가 있지만 이곳은 아주 좁은 곳이다. 매우 은밀한 장소라 사람의 눈길을 피하기도 좋아 보였다. 산비탈도 심하고 좁은 골짜기라 많은 군사들의 일제 공격을 피하기가 무척 좋은 은신처다.
“여기부터는 산적이 보초를 설지 모르니 여기서 꼼짝 말고 기다려.”
“넷!”
조심스럽게 전진하는 중에 앞에서 작은 인기척이 들렸다.
부스럭 부스럭.
그러자 재빠르게 몸을 낮추고 전방을 주시했다. 불과 50미터 정도 거리에 산발한 머리에 짐승가죽으로 만든 옷을 입은 산적들이 보였다.
살금살금 거의 기어가다시피 이동해 가까이 접근하자 작은 움막들이 보였다.
움막 앞에는 산적 세 놈이 모여 투덜거렸다. 세 놈 모두 긴 창을 들었다. 모두 머리가 산발이고 인상이 아주 험악해 보였다.
“이번에 잡아온 여자들도 두목과 부두목이 차지한다네.”
“썩을······. 우리 같은 놈은 젖퉁이를 한 번도 구경을 못하게 혼자서 모조리 차지하고.”
나누는 대화 내용으로 보아 어디선가 여자들을 여러 명이나 납치해온 것이 분명했다. 그러자 최인범은 불쑥 분노가 치밀어서 속으로 차갑게 중얼거렸다.
‘죽어도 싼 놈들이군.’
투덜거리는 졸개산적들은 두목이나 부두목에 대해 불만들이 아주 많았다. 계속해서 두목과 부두목에 대해 욕하고 있고 대부분 두목이 여자들을 독식한다는 내용이다.
‘멍청한 자식들, 오나가나 여자 타령이야.’
자신이 숨어서 목숨을 노리는 줄 전혀 모르고 여자 타령이나 하는 허접한 산적들이 너무 한심해 보였다.
허접한 산적들에 비해 자신은 너무 우월한 몸을 지녔다. 실체가 누구건 몸이 최인범 선달이건 정신이 최인범 진사거나 또는 호랑이던 남보다 우수한 신체적인 능력을 지녔으니 뭔가 큰 꿈을 꾸어도 된다. 전생이나 과거는 모두 잊어버리고 그저 현실에 충실하기로 마음먹었다.
‘좋았어. 나도 크게 성공해 보자고.’
인간 세상사도 대부분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 약육강식으로 돌아가니 자신은 일단 신체적으로는 최고 강자에 속했다. 그것도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막강한 강자다. 잠시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 졸개산적 한 놈이 다른 두 녀석의 어깨를 두드려 주며 말했다.
“이따 교대하러 올게.”
이윽고 한 녀석은 교대하러 온다고 크게 외치고 움막에서 떠나 더 깊은 골짜기 쪽으로 갔다. 그러자 한 놈은 움막 안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나 먼저 잘거니. 해 떨어지면 깨워.”
“알았어.”
조금 시간이 지나자 조용하던 숲속이 코고는 소리로 요란해졌다. 움막 안으로 기어들어간 산적 놈이 금방 깊은 잠에 빠진 것이다.
드르렁! 드르렁!
최인범은 조심스럽게 움막 주변을 살폈다. 혹시 가까운 곳에 다른 산적들이 있나 살피는 것이다. 하지만 주변에는 산적들이 없고 20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산적들이 사는 10여개의 움막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보초들의 모습으로 보아 이곳은 산적들이 초소로 사용하는 움막이 분명했다.
잠시 공격할 방법을 떠올리던 최인범은 은밀하지만 빠르게 부하들이 기다리는 곳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급하게 낮은 목소리로 지시했다.
“나를 따라서 와! 절대로 소리 내지 말고.”
부하들을 데리고 초소인 움막에서 50미터 정도까지 접근했다. 손짓으로 조용히 앉으라고 신호를 보내며 아주 작은 목소리로 명령했다.
“여기서 기다려.”
“저희들은 여기서 활을 쏠 준비를 할까요?”
“쉿! 그럴 필요 없어. 내가 짱돌을 던지면 너희들도 초소로 와!”
부하들을 뒤에 배치하고 매우 빠르고 은밀하게 초소인 움막으로 접근했다. 점점 가까워지자 허리춤에 찬 대검을 오른손에 강하게 거머쥐었다.
핏발선 붉은 눈이나 몸에서는 어느새 진한 살기가 풀풀 풍겼다.
초소에서 10여 미터 정도까지 은밀하게 접근해 낮은 자세로 귀를 기울였다. 그러자 여전히 움막 안에서 코고는 소리가 들렸다. 기습공격한 절호의 찬스라고 판단되자 빠르게 보초를 서는 산적에게 접근했다.
창을 들고 서서 보초를 서는 녀석도 나무에 기대로 끄덕이며 졸았다.
사사삭 사사삭.
뒤로 빠르게 접근해 왼손으로 산적의 입을 강하게 틀어막으며 대검으로 목덜미를 과감하게 그었다.
사각!
“큭!”
순간 산적의 목에서는 붉은 피가 확 품어졌다. 피비린내가 강하게 풍겼다.
기습적으로 공격당한 산적은 들고 있던 창을 떨어트리며 그대로 스르르 쓰러졌다. 이어서 움막으로 달려가 빠르게 거적을 와다닥 들추고 몸을 비호같이 날려 덮쳤다.
자고 있던 산적의 입을 왼손으로 틀어막으며 역시 목덜미에 대검을 깊이 박았다. 동시에 목에 박힌 대검을 강하게 옆으로 비틀었다.
휙! 팍!
“크르륵!”
움막에서 잠자던 산적은 작은 신음을 토해내며 버둥거리다가 축 늘어졌다. 보초를 서는 두 산적을 처지하자 빠르게 녀석들을 움막에서 끌어내 풀숲으로 옮겼다.
돌연 강한 피비린내와 무서운 살기 때문인지 주변에서 울던 작은 새들이나 벌레들의 울음소리도 멈추었다. 붉은 피가 잔뜩 튀긴 얼굴이라 살귀와 같았다.
초소인 작은 움막 주변은 무서운 살기가 강하게 풍기고 음산한 기운이 멀리 퍼졌다.
빠르게 두 녀석을 풀숲으로 옮기고 나자 뒤에서 대기하고 있는 부하들을 향해 작은 돌멩이를 힘차게 던졌다.
획!
“악!”
‘이런!’
분명 부하들이 숨어 있는 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으로 돌멩이를 던졌는데 비명소리가 났다. 다행이 별로 큰 비명소리는 아니었다. 자신의 명령을 어기고 자리를 옮겼는지 모른다.
‘저 자식들이.’
조금 시간이 지나자 배도치와 부하들이 빠르게 다가왔다. 이마가 터진 민정만이 보였다. 녀석은 이마에서 흐르는 붉은 피를 손으로 막아 멈추려고 애쓰고 있었다.
“너는 왜 그쪽으로?”
작은 목소리로 이렇게 묻자 배도치가 역시 작은 목소리로 설명했다.
“저 등신이 갑자기 오줌을 싼다고 무리에서 떨어지더니 저리 됐어요.”
참으로 한심한 놈이고 재수가 옴 붙은 녀석이다. 군대 조직에는 꼭 저렇게 중요한 순간에 덜떨어진 행동을 보이는 고문관 같은 놈들이 한 놈씩 끼는 경우가 많았다.
최인범은 너무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빠르게 죽은 산적의 무명바지를 잘라 만든 긴 천을 넘겨주며 지시했다.
“이거로 상처를 묶어.”
우선 이렇게 지시하고 나자 이어서 배도치를 보며 명령했다.
“시체를 빨리 숙영지로 날라. 숙영지로 가면 나무를 잘라 모포를 걸쳐서 들것을 만들고. 시체를 풍기관아로 가져가야 산적을 죽인 증거가 되니까. 둘이 한 놈씩 교대로 업어서 나르고 둘은 남아.”
“알겠습니다.”
4명의 부하들이 숙영지 쪽으로 시체를 운반하자 그제야 빠르게 움막이나 주변에 있는 붉은 피나 발자국을 깨끗하게 지웠다.
사사삭! 사사삭!
아주 빠르고 익숙하게 흔적들을 지우고 나자 산적들이 사는 쪽에서 초소로 올라오는 길목을 살폈다. 최인범은 보초 교대를 하러 오는 졸개도 잡을 계획이다.
‘기왕에 잡는 것 세 놈은 채워야지.’
산적 세 놈을 잡으면 검교직인 별장을 준다니 그것을 해볼 욕심이 가득했다.
별장이란 종9품으로 최하위직으로 너무 하잘 것 없는 벼슬이다. 그래도 그런 명예직인 벼슬이라도 하면 앞으로 마음 놓고 검을 휴대할 수 있다. 또한 부하들도 데리고 다니며 그들 역시 무장이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너희들은 움막에서 보초처럼 서있어.”
이제 날이 어두워지니 대략 보초로 위장이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두 녀석을 보초로 위장해 서있게 하고 빠르게 이동해 초소인 움막으로 오는 길목에 은신했다.
점점 날이 어두워질 무렵 움막들이 모여 있는 산채에서 의외로 두 녀석이 장창을 들고 초소를 향해 왔다. 한 녀석이 올 줄 알았다가 둘이자 약간 당황했다.
‘어쩌지? 내가 너무 무리했나?’
잠시 갈등하다 재빨리 어깨에 걸치고 있는 밧줄을 풀었다. 그리고 빠르게 두 개의 둥그런 올가미를 만들었다. 좁은 산길을 통해 바로 앞에 산적 두 놈이 지나가도 숨을 멈추고 기다렸다.
두 놈은 고소한 냄새가 풍기는 누룽지를 씹어 먹으며 다가오고 있었다. 앞을 지나쳐 초소 쪽으로 향하던 두 녀석이 보초가 보이자 크게 소리쳤다.
“야! 이상 없냐?”
“응!”
달리 말하면 들킬지 몰라서 그런지 배도치가 그저 콧소리를 약간 크게 토해내 응수했다. 아무 이상이 없다는 보초의 응수에 두 녀석을 가던 발걸음을 멈추었다.
이때 조심스럽게 두 산적의 뒤를 따라오던 최인범이 빠르게 접근했다. 접근함과 동시에 두 녀석의 목에 밧줄을 걸고 힘차게 잡아 당겼다. 그리고 빠르게 초소 쪽으로 달렸다.
다다다닥
“크어억!”
“커거걱!”
갑자기 목에 밧줄이 감기고 바짝 조여지자 두 산적은 크게 소리치지도 못하며 질질 끌려갔다. 갑자기 목이 바짝 졸리자 두 손으로 밧줄 잡고 풀어보려고 애를 써보지만 소용없었다.
두 녀석이 힘을 쓰지만 최인범 혼자의 힘을 당해 내지 못했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던 배도치와 민정만이 빠르게 다가와 밧줄을 잡고 같이 힘껏 잡아 당겼다.
바들바들. 버부적버부적.
땅으로 질질 끌려오던 두 산적은 결국 바동거리다가 축 늘어져 버렸다. 목이 졸려 죽은 두 산적을 보며 배도치가 가볍게 혀를 차며 입을 열었다.
“허! 사람 죽이기 참 쉽네요.”
“쉿! 조용해. 빨리 아래로 옮겨.”
허접한 산적들에게 호랑이보다 더욱 무서운 천적이 나타난 것이다. 이런 은밀한 각개 격파와 같은 공격 방법은 산적들에게는 치명적인 타격을 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