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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트레인-79화 (79/519)

79화

우선 사람들 20명 이상이 모여서 살려면 반드시 식수가 필요하고 그만한 공간이 있어야 한다. 또한 관군이 쳐들어 올 것을 대비하거나 또는 도망칠 구멍이 있는 곳에서 지내기가 쉽다.

또한 산적들은 행인을 습격해야하니 사실 도로에서 그리 멀지 않은 장소에서 살기가 쉬웠다. 관아에서 그들을 쉽게 잡지 못하는 이유는 그들이 사는 곳이 사람들이 전혀 없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최인범은 말을 타고 죽령으로 달려가면서 이런 점을 고려했다. 자신이 이곳에서 오래 산악 훈련을 통해 어느 정도 지리를 잘 안다. 그래서 나름 짐작하는 곳이 있었다.

‘일단 적당한 곳에 도착해서 배도치를 추궁해 보자고.’

빠르게 달려서 가자 앞에 천천히 이동하는 칠복이 형제를 만났다.

“중간에 누구랑 이야기 나누는 것은 봤냐?”

“아뇨. 그런 일 없이 계속 길을 따라 가던데요.”

“알았어. 너희들도 빨리 배도치 계장과 합류해.”

“넷!”

최인범은 칠복이 형제와 헤어져 앞으로 내달렸다. 조금 지나자 길가에서 쉬고 있는 배도치와 부하들을 만나자 물었다.

“왜? 여기서 쉬나?”

“산적을 잡으러 가려면 여기서 산으로 가야죠.”

“뭐라? 산적들이 사는 곳을 알아?”

“예, 직접 가보지는 못했지만 대략 어디 정도인 것은 압니다.”

배도치의 이런 말에 의문이 가서 물었다.

“네가 어떻게 그것을 확신해?”

“그야 저도 산적해볼 생각을 해서 그렇죠. 지금이야 생각이 많이 달라졌지만 그때는 세상을 사는 재미도 없고 그냥 성질대로 살려고······. ”

배도치나 부하들은 벌써 두 달이라는 기간 동안 같이 지내다 보니 전과 많이 달라졌다. 그들은 양민이라 무술을 연마해 그래도 하급 장교라도 해볼 욕심이 생겨 변했다.

배도치는 자신이 산적들이 사는 곳을 짐작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접장님, 전에 제가 대장간에 주문된 검을 두산골까지 날라다 준 일이 있어요. 그래서 어느 정도 짐작하는 겁니다.”

“그럼, 죽령에서 활동하는 애꾸눈이 사는 곳이냐?”

“아뇨. 애꾸눈 형님은 작년에 살인을 저지르고 나서 멀리 떠났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요즈음 벌어지는 살인이나 약탈은 모두 문경 쪽에서 있던 타지 출신의 산적들이 이곳으로 이사 와서 저지르는 사건이옵니다.”

“그래?”

최인범은 배도치의 말을 듣고 그가 아는 산적의 근거지에 대해 물었다.

“어디로 가면 산적들을 만날 수 있어?”

“숨어서 사니 산적을 쉽게 만나기는 어렵죠. 하지만 제 생각에는 두산골 쪽으로 가면 추적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뭐? 두산골?”

“예, 그곳으로 가시면 산적의 향방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최인범은 지금까지 옥녀봉 북쪽의 시메골이 산적의 근거지로 짐작했다. 그러나 두산골이라면 전혀 다른 방향이다. 자신의 예측과는 전혀 다르지만 배도치의 짐작을 일단 믿어주기로 했다.

배도치가 안내하는 길을 따라가다 보니 이곳이 전생에서 옥녀봉 자연휴양림으로 가는 산길임을 알았다.

드디어 최인범 일행은 모래재 골에 도착했다.

“접장님, 여깁니다. 여기서 추적하면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주변을 살피니 야영하기에 적당한 장소다. 그래서 강한 어조로 명령했다.

“여기서 야영한다. 천막부터 쳐.”

“넷!”

최인범의 지시를 받자 부하들은 빠르게 배낭을 내리고 개울 옆의 작은 공터에 소형천막을 쳤다. 모두 5개의 천막이라 사방에 치고 중앙에는 최인범의 천막을 쳤다.

타고 온 말은 조금 떨어진 커다란 소나무에 붙들어 맸다. 말을 돌보는 임무는 칠복이 형제가 담당했다. 앞으로 자신이 벼슬을 하게 되면 형제는 심복인 종자로 항상 데리고 다닐 요량이다.

부하들은 근처에서 곧은 나무를 찾아 대검의 칼등에 있는 톱날을 이용해 잘랐다.

쓱! 쓱!

그동안 수없이 연습한 보람이 있어서 그런지 지주목을 만든 부하들은 빠르게 2인용인 소형천막을 쳤다. 이어서 모닥불도 피우고 개인장구들을 천막 안에 넣고 정리했다.

최인범도 나무를 잘라 지주목을 만들며 문뜩 생각했다. 단창을 만들어 평소에는 휴대하며 창으로 사용하고 야영할 경우에는 지주목으로 쓰면 어떨까 싶었다.

‘돌아가면 한번 단창을 만들어 봐야겠어.’

이윽고 숙영 준비를 모두 끝나자 제일 먼저 칠복이 형제에게 명령했다.

“근처를 우선 정찰하고 접근이 가능한 곳에 경고 방울을 달아.”

“넷!”

산적을 잡는 일보다 더욱 급한 것이 산적에게 기습적으로 공격을 당하지 않아야 된다. 그래서 산적이 접근하면 경고음이 울리도록 작은 방울을 가져 왔다. 가는 실로 연결하는 작은방울이라 산적이 접근하다가 실을 건들면 소리가 나게 된다. 작은 방울은 흔히 무당들이 손에 들고 흔드는 것이다.

칠복이 형제들이 경고용 방울을 달기 위해 숙영지 주변의 숲을 돌아다니는 동안.

최인범은 장딴지와 허리춤에 대검을 각각 2자루씩 찼다. 활을 가지고 왔지만 아직은 궁술 솜씨가 미천해 실전에서 사용하기는 조금 불안했다. 어깨에는 긴 밧줄을 가지런히 감아 가로로 멨다.

전보다 무겁고 칼등에 톱날이 달린 장검이 들어 있는 대나무 지팡이를 들고 배도치에게 명령했다.

“배 계장, 멀리 가지 말고 근처에서 올무로 산토끼를 잡거나 개울에서 피라미나 개구리라도 잡아 봐. 그리고 혹시 누가 와서 물으면 사냥꾼이라고 해.”

“넷! 잘 알겠습니다.”

비상식량으로는 미숫가루와 육포를 가지고 왔다. 물론 쌀도 가지고 오고 소금이나 된장도 각자 휴대했다. 하지만 작전이 길어질지 몰라 최대한 현지에서 식량을 조달하도록 지시했다.

‘이것은 실전을 겸한 생존 훈련이야.’

이번 산적들 사냥 작전은 그저 시작에 불과했다. 미래를 생각해서 부하들을 철저하게 특전 대원으로 훈련시킬 계획이다. 최소한 10명의 부하들로 단단한 팀조직을 만들 생각이다.

아직 무술도 약하고 산악행군도 잘 하지 못하는 부하들과 같이 움직이기는 곤란했다. 그래서 혼자서 산속으로 들어가 산적을 찾아봐야 한다. 그렇게 독자적으로 움직이는 수색작전이 자신의 안전에도 좋았다.

‘혼자가 오히려 빨라.’

더구나 이곳 산악 지형은 잘 아는 곳이라 산속에서 헤매는 경우는 없다는 자신감도 팽배했다. 숲을 돌아다니던 칠복이 형제가 돌아와 보고했다.

“접장님, 모두 8곳에 경고 방울을 설치해 두었습니다.”

이렇게 보고하고 팔복이는 자신들이 방울을 설치한 곳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했다.

“알았어. 너희들은 수시로 경고 방울이 있는 주변을 살펴.”

“넷!”

“혹시 내가 늦더라도 찾으러 다니지 말고. 말에게 먹이를 주고.”

이렇게 지시한 최인범은 대나무 지팡이를 들고 빠르게 북쪽 산등성이를 타고 깊은 산속으로 들어갔다. 놀라운 속도로 산속을 이동해 주변이 환하게 보이는 산등성이에 올랐다.

전망이 좋아 사방을 살피기 좋지만 산적들도 자신을 발견할 위험성이 높았다. 그래서 작은 소나무에 몸을 은신해 주변을 계속 살폈다.

두리번두리번.

전에 비해 상당히 좋아진 눈으로 자세하게 살펴도 산적들이 사는 마을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이쪽 골짜기에는 산적들이 없는 것 같았다. 그래도 혹시 몰라 더 자세하게 보이는 높은 곳으로 이동해 살폈다.

보이는 것은 여전히 하얀 눈이 수북하게 쌓인 나무들이나 바위들이다. 이른 봄이 왔다고 하지만 깊은 골짜기는 여전히 추운 겨울의 모습을 한없이 품어내고 있었다.

휘리릭 휘리릭.

좀고 깊은 골짜기를 따라 부는 찬바람은 차갑기 그지없었다. 찬바람이 얼굴을 차갑게 때리자 문뜩 두건이 떠올랐다.

‘털실로 두건을 만들어 써야 되겠어. 가죽으로 차양이 넓은 모자도 만들고.’

혹한기 야영훈련이나 특공 작전을 위해 나름 준비를 철저하게 했다고 판단했으나 아직도 부족한 전투장비들이 너무 많았다.

필요한 장비들에 대해 생각하며 계속해서 주변을 살폈다. 하지만 산적의 흔적은 어디고 보이지 않았다.

‘여긴 없군.’

아직 산에는 하얀 눈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눈 위에 생긴 산짐승들의 작은 발자국만 발견했다. 빠르게 이동하며 숙영지 주변의 산골짜기를 모조리 살피고 나니 어느새 어둠이 깔렸다.

최인범은 결국 산적의 흔적을 전혀 찾지 못하고 숙영지로 돌아왔다.

말에게 콩을 먹이고 있는 칠복이 형제에게 물었다.

“뭐 잡은 것 있냐?”

“예, 산토끼 두 마리를 올무로 잡았어요.”

첫날은 이렇게 별 소득 없이 산토끼 두 마리 잡고 수색작업을 모두 끝났다. 이틀간을 소모하며 주변을 정밀하게 수색해도 산적들의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가 수색작전을 혼자서 수행하는 동안 부하들은 궁술 연습을 겸해 산토끼를 사냥했다. 솜씨가 별로라 사냥 실적은 형편없었다. 그저 개울에서 물고기나 잡고 이제 막 땅속에서 기어 나오려는 개구리만 잡았다.

최인범 일행은 더욱 깊은 숲속으로 숙영지를 옮겼다. 첫날과 똑 같이 주변에 경고용 방울을 달고 본격적으로 수색에 나섰다. 느낌으로 보아 분명 찾을 것 같았다.

높은 산자락의 바위에 올라 산골짜기를 살폈다. 멀리서 아주 흐리게 작은 연기가 보였다. 자세하게 살피니 좁은 골짜기에는 움집과 같은 작은 집들이 보이고 사람들이 보였다. 자세히 바라보니 산적들이 창이나 검을 들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됐어! 드디어 찾았어.’

숙영지와는 1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이다. 그런 정도 거리면 굳이 숙영지를 옮기지 않고도 산적 사냥 작전을 펼치기에 적당한 거리라고 판단했다.

산적들이 사는 골짜기의 지형을 자세하게 살피고 나자 어느새 날이 어두워졌다. 최인범은 지나왔던 산길을 따라 빠르게 이동해 숙영지로 돌아왔다.

“산적을 찾았다.”

“접장님, 산적들이 많나요?”

“움집들의 규모로 보아 50명은 되는 것 같더라. 여자들도 있으니 산적들은 40명 정도 같고.”

배도치나 부하들은 다들 두려운 눈빛으로 눈치를 슬슬 보았다. 많은 산적을 어떻게 공격할지 걱정하는 것이다.

그러자 최인범은 쉽게 설명했다.

“우린 산적을 찾아서 외곽에서 보초를 서는 놈만 잡고 돌아간다.”

“아! 그래서 산적 사냥이라고 하셨군요.”

“이제야 알았냐? 다들 내일은 일찍부터 움직여야 하니 푹 자고 보초는 교대로 잘 서.”

“넷!”

최인범은 보초를 서는 놈들 보다 사실 말을 더 믿었다. 말도 주변에서 기척이 들리면 예민하게 반응을 보이기 때문에 중요한 보초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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