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화
우시장에서 임신한 암소 한 마리를 면포 150필을 주고 암송아지 3마리를 면포 150필을 줘서 구매했다. 우적을 정리하고 나자 돌쇠와 갑중이가 농장으로 소들을 몰고 돌아갔다.
천천히 옆에 있는 상설 대장간으로 찾아가서 대장장이에게 대나무 속에 들어 있는 검과 보다 굵은 대나무를 넘겨주며 주문했다.
“검은 영조척으로 반자 정도 더 길게 하고 무게도 조금 더 무겁게 해주세요. 또 전에 만든 대검처럼 위에는 톱날을 만들어서 검을 만들어 주세요. 검날 폭은 새로 가지고온 대나무 안에 들어가게 약간 넓어도 되고요.”
“다른 검을 만들기 위해 어느 정도 형태를 만든 것이 있으니 한 10일 후에 오시면 됩니다.”
“그때 다른 검들과 같이 찾으러 오죠.”
조선의 장검은 본시 약간 휘어진 모습이다. 하지만 여기서 주문하는 자신의 장검은 완전히 일자형으로 주문했다.
조선 검은 베기를 위주로 한다. 그러나 최인범은 찌르기를 많이 사용하기 위해서 이렇게 만들었다. 또한 검집이 곧은 대나무다 보니 이렇게 만드는 것이다.
대장장이가 길이나 폭을 가늠해 보고 나서 검을 돌려주자 들고 밖으로 나왔다. 종이가게로 가서 종이를 한 아름 사서 들고 농장으로 돌아왔다.
얼마 지나서 예천으로 갔던 배도치가 말을 가지고 농장에 도착했다.
“순순히 말을 내어 주던?”
“예, 아마 선달님의 무예가 높다는 소리를 이미 들었나 봐요. 주기가 아까워서 그런지 매우 찜찜해 하면서도 말을 골라서 가져가라고 하던데요.”
“말은 많고?”
“예, 말이 20필이나 있더라고요.”
“많네. 뭐하는데 말이 많지?”
“본래 농사가 본업인데 콩을 많이 심고 말도 키워서 역참이나 또는 관아에 군마로 파는가 봐요. 시원치 않은 말들은 모두 장사꾼에게 팔고요.”
이제 이곳도 말이 2필에 소가 송아지를 포함해 6마리나 되니 동물농장이라고 부를 만 했다. 앞으로 계속해서 돈이 생기면 소나 말을 사서 계속 늘려볼 계획이다.
‘적어도 이놈들이 모두 말을 한 필씩을 타야지.’
대규모 기마병이야 아직은 꿈꾸지 않았다. 하지만 말을 타고 다니면 멀리까지 이동이 가능하니 이렇게 판단했다. 그러자니 일단 자신이 벼슬을 해야 모든 것이 순조롭다.
이날 이후 최인범은 동물농장에서 승마 연습을 하거나 검술을 수련했다. 또한 부하들에게 장해물을 설치하는 방법도 교육시켰다.
양부인 최용민이 넘겨준 야전 속기에는 의외로 중요한 내용이 많았다. 적진에 몰래 침입해 활동하기 위한 생존술이나 또는 특공 작전을 펼치는 야전 교범이었다.
‘오라, 그래서 특공작전을 펼치다가 포로로 잡혀 고문당하며 결국 다리를 잘렸군.’
이미 자신은 고도의 특공 작전의 능력을 지녔다. 하지만 화약무기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아 현실에서는 써먹기 어려우나 야전 속기에 적힌 내용은 당장 써먹을 수 있었다.
‘내 지식보다 여기 내용이 더 실전적이야.’
이렇게 판단하고 최인범은 야전속기를 교본으로 삼아 부하들을 수련시켰다. 칠복이 형제나 배도치 무리는 비록 목검이지만 검술 연습에 치중했다.
검술에 치중하는 이유는 당장에 써먹으려면 격투기 보다는 우선하기 때문이다.
검술도 오랫동안의 각고에 수련이 필요했다. 하지만 장검을 만들어 가져오면 죽령에서 활동하는 산적을 사냥할 계획이라 자신감을 심어 주기 위해서 검술을 수련시켰다.
기본적인 자세라도 익힌 놈과 마구잡이는 적을 대하는 정신자세부터 많이 다르다. 부하들의 무술 수련을 지도하고 자신도 수련하지만 손자병법도 읽었다.
어려운 한문으로 쓰인 서적이지만 의외로 줄줄 읽어지고 뜻도 쉽게 해석했다. 숨은 능력인 최 진사의 한문 실력이 저절로 드러났다.
‘쓰기는 어려워도 읽는 것은 쉽군.’
더구나 손자병법이야 군인이라면 한번 쯤 탐독한 서적이라 쉽게 이해했다. 하지만 전투나 전장에서 이것을 유효적절하게 써먹으려면 반드시 몸으로 익혀야 된다. 정신을 집중해 서책을 읽어 문구 하나하나를 머릿속으로 완전히 집어넣었다.
‘어차피 과거를 보려면 이런 정도는 배워야 해.’
시간이 흘러 벌써 따뜻해지는 봄기운이 찾아왔다.
들에서는 부푼 가슴을 담고 있는 봄 처녀들이 작은 바구니를 들고 추운 겨울을 견디고 수즙은 듯이 고개를 살며시 쳐드는 봄나물들을 찾아다닌다.
드디어 장검들이나 주문한 군복이나 개인 장구들이 완성되자 동물농장으로 가져왔다.
활과 화살, 가죽신발인 군화, 군복들을 부하들에게 지급했다. 새로운 방식의 옷이라 처음에는 무척 어색하다는 표정들이나 최인범의 설명을 듣자 쉽게 이해했다.
“이것은 북쪽의 백두산 근처에서 사냥꾼들이 입는 옷이고 신발이야.”
“그렇군요.”
어찌 사실 그대로 말할 수 있으랴. 대충 이렇게 얼버무리는 수밖에 없었다.
부하들에게 개인 장비를 지급하고 보니 완벽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군인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무기를 들고 함부로 움직이기는 곤란했다. 풍기관아의 허락을 받아야 움직이기가 수월했다.
산적을 사냥할 준비가 모두 끝나자 최인범은 고심해 작전을 구상하고 나서 백삼수를 농장으로 불렀다.
“백집사, 이번에는 조금 멀리로 장사를 떠나지.”
갑자기 멀리 장사를 떠나라고 지시하자 백삼수는 놀란 표정을 지으며 급하게 반문했다.
“접장님, 어디로 가라고요?”
“전에 나에게 예천으로 장사를 떠난다고 하지 않았나? 그러니 이번에는 예천과 안동까지 천천히 여유를 가지고 다녀와. 가는 길에 내가 이사 갈 적당한 집이 있는 지도 알아보고. 안동포와 소금에 절인 간고등어가 유명한 곳이니 그것도 대량으로 거래가 가능한지 알아보고.”
안동이 간고등어가 유명한 이유는 동해의 어항에서 내륙으로 나를 경우 그쯤에서 변질되기 때문이다.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 고등어를 안동에서 소금으로 절여 운반하기 시작했다.
이런 명령을 받자 백삼수는 잠시 생각하더니 그게 좋겠다고 판단해 답했다.
“잘 알겠습니다. 이번에 안동으로 가서 안동포나 간고등어에 대해 철저하게 조사하고 돌아오겠습니다.”
“급한 일이 아니니 천천히 다녀 와.”
“넷!”
풍기를 중심으로 오래 장사하다 보니 이득금도 적고 이제는 팔만한 물건도 별로 없었다. 그러니 멀리 안동으로 가서 장사할 물건을 잘 골라서 가져오라는 지시다.
백삼수는 떠나기 전에 정산한다며 호랑이 뼈와 살코기 판 대금으로 면포 100필을 내놓았다. 살코기야 별로 많이 받지는 못했다. 하지만 유별나게 호랑이 뼈의 효험이 좋다고 널리 알려져 뼈는 고가에 팔렸다.
최인범은 백삼수로부터 면포 100필 짜리 어음을 받아 들고 나서 즉시 사용처에 대해 말했다.
“마침 잘됐군. 송아지를 사려는 참인데.”
“접장님, 소를 그렇게 많이 키워서 뭐하려고요?”
“뭐하긴 키워서 농우로 사용하던가 아니면 송아지를 팔아서 돈을 벌어야지.”
결국 백삼수는 최인범의 지시에 의해 예천을 지나 멀리 안동까지 장사 길을 떠나게 되었다.
최인범은 백삼수가 죽령의 산적들과 어떤 식으로라도 연관되었다고 판단했다. 그 때문에 그를 멀리 장사를 보냈다. 이유는 자신들의 움직임을 산적들에게 알려줄 염려가 많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자칫 허접한 부하들을 끌고 산적을 잡으러 갔다가 협공이라도 당하면 몰살당하기 때문이다. 혼자 가서 전투를 벌일 경우 세가 불리하면 얼마든지 도망칠 수 있다. 하지만 허접한 부하들의 안전을 보장해야 하니 매사 신중하게 생각하고 조심하는 것이다.
‘세상이 점점 살기가 힘들어졌나?’
죽령에서 활동하는 산적의 무리는 전보다 더욱 늘었다. 전에는 한곳에서 나타나던 산적이 여러 곳에서 출몰해 사람을 죽이거나 약탈했다. 그래서 여전히 민심은 아주 뒤숭숭했다.
백삼수가 5명의 사원 그리고 고용인부 10명과 같이 예천을 향해 떠났다. 그가 떠나고 나자 최인범은 우선 사려던 송아지를 사서 축사에 넣어 놓았다. 그제야 배도치와 부하들을 데리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배 계장, 나는 말을 타고 뒤에서 따라 갈 것이니 너희들은 먼저 천천히 죽령 쪽으로 가.”
“접장님, 죽령은 왜요?”
“그곳으로 가서 산적을 잡아야지.”
최인법의 이런 응수에 배도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오라! 접장님도 산적 잡아서 벼슬하려고요?”
“그렇지, 그게 제일 쉬워 보이니 그렇게 할 계획이다. 너무 걱정하지 마. 산적들이 너희들과 전투를 벌이는 일은 없을 것이니.”
산적을 잡는다고 하면서 전투가 없을 것이라니 조금 이상했다.
“접장님, 전투를 벌이지 않고 어떻게 산적을 잡아요?”
“그야 내가 생각해 둔 방법이 있어.”
최인법의 명령을 받은 배도치와 부하들이 배낭을 메고 죽령을 향해 떠났다. 그제야 칠복이 형제에게 은밀하게 지시했다.
“칠복아, 너희들은 조금 뒤에서 따라 가도록 해. 한 놈이라도 중간에 옆으로 새는지 잘 살피고. 누구와 길게 이야기를 하는지도 잘 살펴.”
이런 지시에 칠복이는 쉽게 이해하고 답했다.
“접장님, 배도치 계장님을 뒤에서 따라가며 감시하라는 것이군요.”
“그래. 저 놈들은 전에 죽령으로 들어가 산적이 되려던 녀석들이니 산적 놈들과 잘 알거야. 그러니 조심해서 뒤를 따라가.”
“넷!”
이런 지시를 내리고 다소 급하게 말을 몰아 풍기관아로 갔다.
풍기관아에서 호방을 만나 자신이 산적을 잡으러 가니 같이 갈 포졸이 있나 물었다. 그러자 호방은 너무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지금 당장 관아 근처에 나타나는 호랑이도 잡기 어려운 판국인데. 산속에 깊이 숨어 있는 산적을 어찌 잡나? 그런 소리 말고 착호갑사들과 같이 호랑이나 잡지.”
겨울이 지나고 이른 봄이 왔지만 한번 깊은 산속에서 내려온 호랑이들은 마을 근처에 있는 야산이나 들판의 갈대가 우거진 곳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다.
또한 산적들은 더욱 흉악해지고 규모도 대략 50명 이상으로 늘었다. 규모가 풍기관아의 포졸이나 착호갑사 정도로는 소탕하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지방의 수령들은 민가 근처에서 활동하는 호랑이 소탕작전에 전력을 기울이는 실정이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호랑이들은 전보다 잡기가 어려워졌다.
전과 달리 떼를 지어 다니니 적은 사람들을 동원해 포위해 잡기도 힘들고 그물을 사용하려고 해도 호랑이들은 잘도 피해 다녔다.
“포졸이 없으면 곤란한데.”
“그러니 호랑이 사냥이나 하시게.”
최인범이 실제로는 같이 갈 포졸이 필요해서가 아니다. 자신이 산적을 직접 잡으러 간다는 신고를 이런 방식으로 했다. 신고하는 이유는 부하들과 같이 장검을 들고 가기 때문이다. 무기를 들고 떼로 이동하면서 관아에 신고하지 않으면 무슨 누명을 쓸 지 모르니 사전에 미리 보고하고 있었다.
“같이 갈 포졸이 없으면 하는 수 없죠. 제가 잡아오면 딴 소리는 하지 마세요.”
“알았네, 얼마든지 산적을 잡아만 오시게. 내가 공적이야 확실하게 올리도록 사또께 잘 말씀드릴 것이니까. 자네는 이미 착호갑사와 같이 호랑이나 산적을 잡는 장정으로 등록됐으니 염려 마시게.”
“저희들이 무기를 들고 산적이 출몰하는 죽령 쪽으로 가니 그렇게 아세요.”
“알았네.”
죽령의 남쪽 지역에서 숨어서 사는 것으로 추측되는 산적이 숨을 만한 곳은 별로 없었다. 산이 아무리 넓다고 해도 사람들이 적어도 수십명이 지낼 장소는 그리 많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