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화
농장으로 돌아온 최인범은 여전히 소형천막으로 들어가며 칠복이에게 지시했다.
“너 지금 당장에 벼락주막으로 가서 백 집사에게 내가 작은 호랑이 한 마리를 잡았다고 전하고 호피를 비싸게 팔아보라고 전해.”
“알겠사옵니다.”
칠복이는 명령을 듣자 빠르게 내달려 벼락주막으로 향했다. 소형천막으로 들어가 엉덩이를 까고서 팔복이에게 지시했다.
“팔복이 엉덩이에 소주를 붙고 호랑이 약을 발라.”
“예이!”
엉덩이에는 송곳이빨에 찔려 작은 구멍이 하나 생겼다. 그대로 놔두면 상처가 덧나기 때문에 독한 소주로 소독하고 엉덩이에 호랑이 뼈로 만든 약을 발랐다.
상처가 따끔거리고 쓰리게 통증이 오는데 왜 앞에 달린 물건이 벌떡 일어서는지 모르겠다.
높이 치밀던 욕정도 해소하는 방법은 있었다. 싱싱한 붉은 피를 마시던가 아니면 생간이나 심장 등을 많이 먹으면 갈증이 해소되듯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밤이 늦어 다들 잠을 자게 되었다. 멧돼지나 호랑이 고기는 내일 먹게 해줄 생각이다.
다음날 아침 다소 늦게 소형천막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오자 백삼수가 농장으로 찾아와서 호피를 자세하게 살피고 있었다.
오래된 호피는 싸고 새로 잡은 호피가 비쌌다. 결국 지금 활발하게 활동하는 호랑이를 잡아야 비싼 가격에 파는 것이다.
최인범을 백삼수에게 다가가 나무랬다.
“백 집사, 여길 왔으면 나에게 보고해야지. 그래 호피는 얼마 정도 가격에 팔게 생겼냐?”
“접장님, 호피가격이 많이 올랐지만 너무 작은 호피라 면포 300필 정도 준다고 하네요.”
“그럼, 호피를 살 사람이 벌써 여길 다녀갔냐?”
“그건 아니고 얼마든지 호피를 산다는 사람에게 연락은 했어요. 그리고 호랑이 고기의 반은 벼락주막의 주모가 사겠다고 하더군요. 뼈는 잘 발라서 전처럼 따로 팔 것이고요.”
백삼수에게 줄 면포를 쉽게 해결되어 기분이 너무 좋았다. 그래서 더 이상 호피나 고기 그리고 뼈의 가격 흥정은 생각하지 않고 이내 지시를 내렸다.
“알았어. 그럼 호피를 실제로 얼마를 받던 호피로 네가 받을 면포 300필과 깔끔하게 정산해. 나머지는 모두 파는 데로 쌀이나 보리, 밀, 콩으로 바꾸어서 여기로 가져와. 여기 농장에도 앞으로 말과 소가 더 늘게 됐으니 사료로 먹여야 되니까.”
“알겠사옵니다.”
“효과가 별로 없다는 엉덩이 뼈 등은 모두 약으로 만들어서 가져오고.”
“예, 그렇게 하겠사옵니다.”
최인범은 문뜩 그런 고가를 주고 호피를 산다는 사람이 누군지 궁금해서 물었다.
“호피를 산다는 사람이 도대체 누구냐?”
“선달님도 이미 아는 사람입니다. 창락골의 윤 진사께서 산다고 했어요.”
“뭐라? 윤 진사가 호피가 왜 필요해서?”
이렇게 묻자 백삼수는 즉시 답했다.
“자신도 이번 기회에 벼슬을 사고 싶고 또한 포도청에 끌려갔던 아들도 지금 창락골로 내려와 있어 아들의 벼슬도 호피를 사서 해보려는 거죠.”
죽령의 창락골에서 사는 윤일병 진사의 아들인 윤태길은 노름꾼으로 포도청에 끌려갔었다. 최인범 진사의 계책으로 다행히 풀려나 고향으로 내려왔다. 윤태길이 방안에 처박혀 있다는 소리를 이미 알고 있었다.
벼락주막을 찾아오는 과객들이 하는 말을 언뜻 들은 것 같았다. 몸이 많이 아프다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포도청에서 심하게 고문을 당해 허약해졌다고 판단했다.
잠시 윤태길을 떠올리던 최인범은 고개를 끄덕이며 응수했다.
“오라, 그런 이유가 있었군. 그런데 그런 사실을 조정에서 알아도 벼슬을 받게 되나?”
“조정에서도 알아도 대충 눈을 감는다고 하옵니다.”
“뭐라! 알고도 눈을 감아?”
최인범이 다소 황당하다는 표정을 보이자 백삼수는 그게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설명했다.
“접장님, 조정에서 눈을 감는 이유는 그런 식으로 호피가 비싸게 거래되면 사냥꾼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호랑이를 사냥하니까요. 사실 벼슬을 준다고 했지만 높은 자리야 아니죠. 제일 낮은 자리인 종9품인 별장을 주고 더구나 명예직인 검교직이라고 하옵니다.”
“무슨 내용인지 자세하게 설명해봐.”
그러자 백삼수는 겸교직인 별장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했다.
별장은 조선시대 지방의 작은 산성, 나루(도진별장) 등의 수비를 맡은 종9품의 무관직이다.
검교직이란 정식으로 직책이 없는 명예직인 직급만 있는 제도로 본래는 조선 초기에 있다가 성종시절에 폐기된 제도다.
갑자기 호환과 산적들이 출몰하자 조정은 벼슬자리를 주고 소탕해볼 심산이다. 그러나 실제로 줄 수 있는 벼슬자리는 부족해 검교직을 부활해 명예직인 벼슬을 주기로 결정했다.
이런 검교직은 일정기간 녹봉도 없이 지내다가 실제로 직책이 주어지기도 한다.
이런 설명을 모두 듣게 된 최인범은 눈빛을 반짝 빛냈다. 어차피 자신이 이제 겨우 호패를 받은 어린 몸이라 정식으로 벼슬할 처지가 아니다. 조선은 20세가 되어야 벼슬을 시킨다.
‘좋았어. 우선 그거나 해봐야 되겠어.’
더구나 당분간 여기서 지내야 하니 다른 곳으로 가는 것도 어려운 처지다. 이런 저런 사유로 이번에 검교직을 부활해서 임명한다니 아주 좋은 기회라고 판단했다.
또 다시 호랑이를 잡으면 호피야 팔아서 재물을 모으고 산적 잡아서 벼슬을 올려볼 속셈이다.
물론 호랑이를 잡는 것이 쉬운 일은 절대로 아니다. 언제까지 지금처럼 재수가 좋을 수는 없었다.
‘산적들도 보초는 서게 될 거야. 그러니 배도치를 안내자로 끌고 가서 잡기 쉬운 보초나 잡아 오자고. 그게 아니면 죽죽이 주막 주변에서 매복을 서던지 해야 되겠어.’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배도치가 분명 윤일병 진사가 사는 창락골 사람들 중에는 산적들이 숨어 사는 곳을 알거나 죽죽이 주막의 주모와 연결되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을 떠올리자 이런 계획은 백삼수에게 말하면 곤란하다고 판단했다.
‘이놈도 어떻게 산적과 연결될지 완전히 내통하는지 모르니 철저하게 비밀로 계획해야 해.’
최인범은 지금 특별한 몸이다. 한문학의 수재로 진사인 최인범의 지식, 바둑고수인 최인범의 정신, 무술고수인 최인범의 몸에 호랑이 능력이 합쳐진 귀하신 몸이다.
종합적으로 뒤섞인 성품이나 능력으로 형성되었다.
정신은 스스로 잔머리 대가라는 바둑고수인 최인범에 가깝고 내면에 숨겨진 지식은 진사의 능력을 지녔다. 성품은 최인범에 가깝다.
신체적으로 낮에는 무술고수인 최인범의 능력이 전보다 향상되었다. 밤에는 완전히 호랑이 능력이나 포악한 성질이 나타났다. 본인은 그런 사실을 완전히 인식하지는 못했다. 조금 이상하다는 느낌으로 짐작했다.
배도치 무리가 왔나 보니 보이지 않았다.
‘이것들이 죽으려고 환장했나? 첫날부터 이 지랄이야.’
분명 일찍 올 놈들인데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아 백삼수에게 물었다.
“배도치와 그놈 부하들은 왜 여길 안 오냐? 혹시 네가 무슨 일을 시켰냐?”
“예, 어제 저녁에 예천으로 심부름을 보냈어요. 아무래도 최진웅이 쉽게 말을 내줄 것 같지 않아서요. 아마 오늘 오후에는 말을 가지고 올 겁니다. 말을 탈줄 아이가 있으니까요.”
이런 대답에 최인범은 버럭 소리쳤다.
“이년이 진짜로 미쳤나? 그 놈들이 그런 잔심부름이나 하는 꼬맹이들이야? 너 이년 한번 엎어져서 나에게 진짜 몽둥이로 치도곤하게 떡을 쳐서 죽어볼래?”
‘헉!’
최인범의 이런 요상한 다그침에 백삼수는 자신도 모르게 무릎을 바짝 모으고 양손이 엉덩이로 갔다. 이미 오래전 일이지만 어려서 당한 치욕스러운 장면이 저절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당시 매섭게 혼나고 나면 반드시 엉덩이를 까고 업어져 호되게 당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했다. 그러니 갑자기 뒤가 근질거리고 항문 주위가 움찔거렸다.
마치 똥마려운 아낙네의 모습처럼 엉거주춤해 서있었다. 더구나 얼굴은 이내 벌게졌다.
최인범은 그저 엉덩이를 까고 몽둥이찜질을 한다는 소리다. 하지만 백삼수야 자신의 과거의 쓰라린 경험이 있으니 이렇게 알아들을 수밖에 없었다.
최인범은 다시 매섭게 호통 쳤다.
“백 집사, 너 또 네 임의대로 그 놈들을 멀리 심부름 보내면 엉덩이 까고 엎어지는 줄 알아.”
“넷, 앞으로 조심하겠사옵니다.”
“정신이 아직도 안 들었으면 지금 엎어져서 한번 해보던가.”
‘이크!’
자칫 고통스러운 마교 자세로 뒤치기 당할 위험성이 높아졌다.
백삼수는 겁에 질려 꽁지가 빠지라하며 도망쳤다. 그러나 얼마 달려가지 않아 다시 농장으로 되돌아와 급하게 먹쇠에게 말했다.
“먹쇠야. 호랑이 고기와 뼈를 벼락주막으로 가져와. 내가 호피는 가져간다.”
이렇게 크게 외치고 호피를 들고 정신없이 달아났다.
정신없이 내달려 도망치는 백삼수를 보며 최인범이 크게 웃었다.
“하! 하! 저놈 꼬라지하고는.”
처음에는 왜 그렇게 놀라는지 몰랐다. 그러니 도망치면서도 엉덩이를 손으로 가리자 그제야 확실하게 알았다. 놀이패에서 아마도 많이 당한 쓰라린 기억 때문이리라. 하는 행동으로 보아 백삼수의 약점이라고 판단되었다.
이제 백삼수를 요리할 좋은 재료 하나가 확실하게 마련되었다.
‘나중에 적절하게 써먹으면 되겠어.’
최인범은 마당에서 기다리는 칠복이 형제들에게 각종 무술을 알려 주었다. 검술과 태권도를 알려주고 나서 단단히 다짐을 받았다.
“오늘 배운 것은 반드시 오늘 중으로 익혀. 저녁에 내가 확인할 것이니까.”
“넷!”
빨리 회계를 배워야 하는 월녀에게도 다시 강조했다.
“월녀는 구구단을 모래까지 모조리 외우고.”
“예. 오라버니. 저 조금만 외우면 다 외워요.”
“그러냐? 그럼 같이 지내는 애들도 네가 아는 산수와 구구단을 먼저 알려줘.”
“알았어요.”
이런 지시를 내리고 뭔가 할 말이 있어 보이는 돌쇠를 보며 물었다.
“왜? 나에게 볼일이 있냐?”
“선달님, 소인이 우시장으로 가서 흥정하려니 소 주인이 저를 믿지 못한다고 하네요. 아무래도 선달님이 우시장으로 같이 가 주셔야 되겠습니다.”
“알았어. 우시장으로 같이 가자.”
비록 장날은 아니지만 소를 거래하기 위해 송아지나 농우인 암소를 끌어다 놓았다고 하니 그곳을 가보고 대장간에 들릴 생각이다.
최인범은 튼튼해 보이는 약간 굵은 대나무를 챙겨들고 우시장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