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화
최인범은 형제에게 반합의 사용 방법이나 불을 피우는 방법들을 자세하게 알려주었다. 본격적으로 야지에서의 생존 훈련을 시작하는 것이다.
전투를 나가 야지에서 지내려면 적들의 공격도 무섭지만 우선은 자연환경에 적응해 살아남는 것이 더욱 중요해 강훈련을 시작했다.
“천막을 쳤으면 빨리 토끼라도 잡아!”
“넷!”
멀쩡한 집을 놔두고 어린 아이들을 야지에서 먹이지도 않고 토끼를 잡아먹으라니 먹쇠는 물론 목수들이 다들 혀를 차고 있었다.
‘어린 애들을 왜 저렇게 못살게 험히 굴리지?’
먹쇠가 가만히 보니 전에 모시던 인심 좋았던 최 진사와는 전혀 다른 주인이라 은근히 겁이 났다. 어린 애들을 저렇게 마구 굴리니 성인인 자신들은 더욱 험하게 대할 것 같아 겁이 났다.
결국 먹쇠를 비롯한 세 놈은 겁이나 작은 목소리로 대책 회의를 했다.
“야! 우리 내일 아침부터는 조금 더 일찍 일어나자.”
“알았어. 앞으로 더 부지런해야 험한 꼴 안당하게 생겼어. 나는 내일 당장 송아지를 사러 갈거니 너희들은 나무 많이 해 놔라.”
“그래, 송아지는 제일 좋은 놈으로 잘 사라. 선달님이 믿고 맡긴 면포니 잘 간수하고.”
이런 대화를 나누는 중에 다른 사랑방에서 머무는 자매들도 다들 긴장해 소곤거렸다. 지금까지는 그저 밥만 해먹고 퍼져 놀던 좋은 시절이 끝났다는 것을 느꼈다.
“일순 언니, 언니는 바느질해. 나는 옆에서 도우며 밥을 책임지고 일감을 가져올 것이니까.”
“알았어, 그렇게 하자.”
월녀는 본시 백두상단에서 서기로 일해야 하는데 이곳으로 왔으니 죽으나 사나 산수 공부에 매달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월녀는 밤이 깊도록 구구단을 노래처럼 외웠다.
집에서 100미터 떨어진 야지의 소형천막 안에서 누워 있던 최인범은 이리저리 뒤척였다. 밤이 깊어지자 또다시 잔인한 살심과 함께 생고기를 먹고 싶은 강렬한 욕구가 치밀었다. 아무리 자중하려고 노력해 봐도 소용이 없었다.
‘에이! 나가서 사냥이나 해야 되겠어.’
결국 참지 못하고 슬며시 소형천막에서 나와 야산의 숲속으로 들어갔다.
사라락! 사라락!
수북하게 쌓인 눈길을 걸어가자 작은 소음이 들렸다. 그러나 그런 소리가 신경이 쓰여 더욱 조심했다. 그 때부터는 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묘지가 있는 정상의 북쪽 소나무 숲을 지나서 약간 개활지로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그곳에서 돌아다니는 멧돼지 무리를 발견하자 눈이 반짝 빛났다. 붉어진 눈에서는 강한 살기를 품어냈다.
‘됐어, 저 놈들은 잡으면 되겠어.’
낮과 전혀 다르게 최인범은 여전히 밤에는 괴이한 행동을 보였다. 슬쩍 나뭇잎을 들어 바람의 방향을 가늠하고 천천히 이동해 최대한 가까이 접근했다.
사르륵 사르륵.
아주 미세한 소리를 내며 멧돼지 옆으로 다가가서 공격하기가 좋은 기회를 노렸다.
드디어 멧돼지 암놈이 가깝게 접근하자 높이 도약하며 동시에 검을 뽑아 강하게 내려쳤다.
휘익! 퍽! 쿠에이엑! 쿠에엑!
강하게 내려벴지만 목이 두꺼워서 그런지 검이 목덜미 위에 깊이 박히고 쉽게 빠지지 않았다. 목이 잘려서 그런지 암놈 멧돼지는 숨을 멈춘 상태다.
힘을 주어 검을 빼려고 해도 잘 빠지지 않았다. 한발로 붉은 피를 흘리며 쓰러진 멧돼지의 몸통을 밀며 잡아 빼려고 해도 뼈에 박혀서 그런지 전혀 움직이질 않았다.
“에이! 쌍! 끙!”
검을 잡고 힘으로 주어 앞으로 잡아 빼려는 순간.
퍽!
엉덩이에서 불이 번쩍 났다.
암놈이 공격당하자 커다란 수놈 멧돼지가 날카로운 송곳이빨로 엉덩이를 강하게 들이 받은 것이다. 엉덩이에서 불이라도 난 것처럼 화끈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보다는 수놈 멧돼지의 2차 공격을 피해야 하는 위기다.
쿠에엑! 쿠에엑!
1차로 엉덩이를 공격한 멧돼지가 2차 공격을 하기 위해 뒤로 돌아서 번개같이 달려들었다. 그러자 최인범은 재빨리 장단지에 차고 있던 대검을 뽑아 들고 기합소리를 토하며 높이 튀어 올랐다.
“탓!”
획! 팍!
내려오며 앞으로 빠르게 달려드는 멧돼지의 목덜미를 향해 대검을 깊이 박으며 옆으로 강하게 비틀었다.
쿠에에엑! 쿠에에엑!
목덜미에 날의 길이가 30센티미터나 되는 대검을 깊이 박고 강하게 옆으로 비틀었다. 멧돼지는 요동치며 붉은 피를 사방으로 튀겼다. 그리고 단 한 번의 공격에 절명하지 않은 멧돼지는 땅 위에 뒹굴며 마구 요동쳤다.
멧돼지의 몸통에 올라타 껴안고 있던 최인범은 같이 땅바닥에서 나뒹구는 수밖에 없었다. 10여 차례 땅에서 마구 구르던 멧돼지가 드디어 숨을 거두며 움직임을 멈추었다.
최인범을 몸을 일으키다가 비명을 토했다.
“아이고, 사방이 다 쑤시네.”
제일 아픈 곳은 멧돼지의 송곳이빨에 받힌 엉덩이다. 슬며시 손으로 만져보자 붉은 피가 흘러나왔다. 두 번의 쉬운 사냥으로 오만방자해 함부로 멧돼지 떼를 사냥하다가 크게 부상을 당하자 화가 치밀었다.
‘다 죽었어.’
남은 멧돼지까지 모조리 잡아 죽이려고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작은 새끼 멧돼지들이나 중간 크기의 멧돼지들은 이미 멀리 달아나 보이지 않았다. 화가 치밀었지만 따라가서 잡기는 곤란해 애써 위안했다.
‘방사해서 사육한다고 생각하지.’
일단 잡아 놓은 멧돼지 두 마리를 옮기는 것이 급했다. 아니 그보다는 멧돼지의 간이나 심장을 먹는 것이 더욱 급했다. 그래서 대검으로 아주 커다란 멧돼지의 배를 쩍 갈라 간과 심장을 마구 먹었다.
“쩝쩝! 맛있네.”
흡혈귀처럼 피로 범벅된 멧돼지의 간이나 심장을 먹는 모습은 아주 흉측했다. 들고 있는 대검도 날의 반대쪽은 톱날처럼 생겨 매섭게 보였다.
두 마리의 멧돼지는 모두 작은 송아지만은 했다. 그러니 혼자서 도저히 들고 갈 수는 없었다. 그래서 빠르게 농장으로 내달렸다.
후다다닥!
올 때는 무척 조심해서 왔지만 지금은 요란하게 소리 내며 뛰어가고 있었다.
농장에 도착하자 사랑방을 향해 큰 소리로 외쳤다.
“먹쇠야!”
녀석들은 깊이 잠이 들어서 그런지 대답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사랑방 문을 힘차게 걷어차며 외쳤다.
쾅!
“이 자식들아! 다 일어나!”
워낙 큰 소리로 외치자 곤하게 자던 세 녀석이 벌떡 일어나 빠르게 마당으로 튀어나왔다. 엉겁결에 마주한 주인이 온몸이 피투성이라 다들 놀랐다.
“선달님! 어찌?”
“멧돼지 잡다가 다쳤다. 지게 들고 빨리 멧돼지 잡은 곳으로 가자.”
너무 커서 세 녀석이 나르기 곤란하다고 판단해 문을 열고 내다보는 네 명의 소녀들에게도 명령했다.
“너희들도 모조리 대바구니 들고 따라와!”
“예.”
당연히 소형천막에서 자던 녀석들도 깨어나 같이 산으로 올라갔다. 빠르게 달려 산을 넘어 멧돼지를 잡은 곳으로 가니 뭔가 검은 그림자가 보였다.
“헉! 호랑이다!”
짧은 순간이지만 근처에 숨어 있던 호랑이가 피 냄새를 맡고 찾아온 것이다. 호랑이는 크기가 작은 호랑이로 급하게 멧돼지의 내장을 파먹고 있었다.
호랑이를 보자 최인범은 겁나기보다 돈 덩어리로 보였다.
‘너 잘 걸렸어.’
다다다다.
뛰어가는 동작은 마치 호랑이가 달려가는 모습과 약간 비슷했다. 그러나 호랑이는 별로 감응이 없다는 듯이 여전히 멧돼지의 내장만 파먹었다.
최인범이 빠르게 달려가자 호랑이는 공격하거나 또는 도망치는 행동을 하지 않고 황당한 동작을 보였다. 벌러덩 누워 네 다리를 바동거렸다.
빠르게 달려들던 최인범은 다소 황당한 사태로 당황했지만 대검을 들고 호랑이 품속으로 뛰어들었다. 껴안으며 목에 대검을 깊이 박았다.
팍! 크아앙!
목덜미에 대검이 깊숙하게 박히자 호랑이는 그제야 크게 울음을 터트렸다. 껴안고 있는 최인범을 이빨이나 발톱으로 공격해 보려고 했다. 그러나 정확하게 목덜미를 찔린 호랑이는 몇 번 바동거리다가 숨을 거두었다.
참으로 쉽게 호랑이를 잡았다. 호랑이가 이상한 행동을 보인 이유야 알 수 없지만 아무튼 쉽게 큰돈을 벌었다.
‘좋았어! 삼수 자식의 돈을 갚고도 남겠어.’
비록 중간 크기의 호랑이인 암놈지만 너무 쉽게 잡자 같이 왔던 녀석들이 다들 멍청하니 바라만 보았다. 최 선달님이 ‘진짜 사람이 맞는가?’ 하는 의문들이 생겼다.
‘진짜 무서운 분이야.’
이들의 눈에는 호랑이보다 피범벅인 최인범이 더욱 무섭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다들 와서 고기를 나누어 가져가!”
“예!”
동시에 대답했지만 다들 너무 무서워 주춤거렸다. 그러나 제일 겁이 많다고 알던 먹쇠가 빠르게 다가왔다. 이어서 돌쇠가 다가와 최인범이 들고 있는 대검을 받아 들고 호랑이를 해체했다.
전에 만난 백정처럼 익숙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가죽을 버릴 정도의 솜씨는 아니다. 호랑이 가죽은 벗기고 사지를 잘라 분리했다.
먹쇠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선달님, 그냥 농장으로 가지고 가면 되나요?”
“왜? 다른 생각이 있어?”
“아뇨. 선달님께서 생간과 싱싱한 심장을 너무 좋아하시는 것 같아서요.”
“아! 그거. 가지고 가서 얼음과 같이 넣어 둬!”
“알겠습니다.”
돌쇠가 이런 사실을 아는 것은 칠복이 형제가 말해서다. 호랑이를 해체하고 나자 바로 두 마리의 멧돼지도 해체했다. 고기를 조각내서 각자 가지고 온 대광주리나 지게에 지고 농장으로 돌아갔다.
돌아오면서 최인범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자신이 사용하는 검이 너무 가볍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길이도 너무 짧았다. 또 하나는 호랑이가 자길 만나자 왜 그런 이상한 동작을 보였느냐는 것이다.
호랑이야 왜 그런지 알 수 없는 노릇이고 검은 새로 만들어야 된다. 다소 험하게 보이는 언월도가 적당해 보이지만 그것은 평소 들고 다니기에는 곤란했다.
대나무도 조금 더 굵은 것으로 구해 검집으로 사용하고 다소 길게 검을 만들 요량이다. 위에 톱날이 있는 대검처럼 만들면 무섭게 보일 것 같았다, 적을 상대할 때 검이 무섭게 보이는 것도 시각적으로 상대방을 위축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판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