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화
숨기는 것이 많은 백삼수는 속으로 ‘정말 귀신이네.’하며 감탄하면서도 자신이 재산을 차지하려고 서류를 조작해 놓은 사실을 발설하지는 않았다. 자칫하면 그 때문에 당장에 목이 달아날까 너무 두려운 것이다.
‘빨리 그 서류들을 모조리 태워버려야겠어.’
두려운 눈으로 이렇게 복잡하게 생각하자 그의 눈동자가 이리저리 빠르게 움직였다.
최인범은 그런 백삼수를 바라보며 미루어 짐작했다. 사람이란 말에 진실이 담기지지 않으면 생각이 많아져서 거짓을 말하려면 눈동자가 빠르게 이리저리 움직인다.
‘이 놈이 분명 뒤에서 무슨 음모를 꾸민 것이 틀림없어.’
물욕이 너무 많은 놈이라 자신이 죽을 수도 있었으니 아마도 재산을 차지하려고 어떤 시도를 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굳이 그것을 밝히라고 할 필요는 없었다.
‘우선은 더 이상 추궁할 필요가 없어.’
때가 되면 모두 표면으로 드러날 것이다.
사실 자신이 죽은 이후에 특별히 누구에게 재산을 물려줄 사람도 없으니 상관없었다. 다만 그런 행위를 앞으로 그대로 놔둘 경우에는 약간 위험했다. 백삼수가 몰래 자신을 죽이려는 음모를 꾸밀지 모르니 그런 행위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대비해야 된다.
‘이 자식을 항상 조심해야 돼.’
척하면 삼천리라고 어려서 가난한 사당패나 따라다니던 놈이 쉽게 큰돈을 모았으니 분명 정상적으로 재물을 모았을 리가 없었다.
일단 최 진사의 모든 재산을 자신에게 돌려버린 재산의 변동 상황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을 들었다.
백삼수는 다시 호방(戶房)이 부탁하던 척호갑사와 같이 호랑이를 잡고 산적을 소탕하는 건에 대해서도 보고했다. 호랑이나 산적을 잡으면 쉽게 벼슬할 길이 보인다는 내용이다.
최인범은 이런 보고에 즉시 응수했다.
“알았어! 일단 이상한 소문이 났으니 내 거처를 세 아이들과 같이 농장으로 정하지. 착호갑사와 같이 호랑이 사냥을 떠나는 것은 조금 뒤로 미루고.”
“알겠습니다.”
양부지만 아비가 죽었으니 그곳에서 조용히 지내면서 묘소도 돌보는 흉내라도 내야한다.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일을 하면서 앞일을 천천히 구상해볼 생각이다.
밤에는 끓어오르는 살심도 그곳이라면 해소할 길이 있었다. 그곳의 야산에는 사슴이나 고라니 또는 멧돼지가 자주 출몰한다니 사냥감으로 적당했다. 그런데 문제는 밤에는 뜨겁게 끓어오르는 욕정을 어찌 해소할 지가 큰 문제점으로 대두되고 있었다.
‘급하면 기생을 찾아가 볼까?’
그곳 농장에서 무술을 집중해서 수련할 계획이다. 무엇보다도 원거리 공격에 필요한 투창 술이나 또는 궁술을 익히는 것이 중요했다. 더구나 말을 잘 타야하니 배워야할 무술은 너무도 많았다.
‘차분하게 하나씩 배우자고.’
농장의 야산 줄기를 타고 북쪽으로 가면 높은 산과 연결되어 사냥감을 찾으러 가기가 수월했다.
일단 거처를 농장으로 결정하자 준비할 것들이 너무 많았다. 혼자만 무술이 뛰어나다고 힘이 강한 것이 아니다. 그러니 부하들도 강하게 조련해야 된다.
“백 집사, 내 대신 우시장의 대장간으로 가서 장검 10자루와 각궁 10개 그리고 화살 500개를 주문해. 그리고 작은 삽도 10자루를 만들어.”
“삽요?”
야영하기 위해서는 야전삽이 반드시 필요했다. 그대로 만들기는 어렵다고 판단해 작은 삽을 만들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크기나 모양은 그려주어 제작하도록 지시했다. 야전삽보다 휴대하기가 다소 불편하겠지만 없는 것 보다는 나아 보여 이렇게 지시했다.
“일단 이렇게 만들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이런 방식으로 구부렸다 펴게 만드는 것이 가능하면 만들어 달라고 해.”
“알았어요.”
대답은 하지만 백삼수는 너무 많은 물건을 만들라고 명령하자 약간 불만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 눈치를 채고 최인범은 즉시 추가해서 지시했다.
“백 집사가 그동안 이것저것 경비도 많이 사용한 것 같고 새로 가죽신발, 검이나 활도 만들어야 하니 면포를 200필을 줄거니 그것으로 깔끔하게 계산해.”
“넷! 잘 알겠사옵니다.”
면포를 준다는 소리에 백삼수는 또릿하게 답했다.
최인범이 주막에서 세 아이들과 떠나게 되자 배도치가 나서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접장님, 저희들은 앞으로 어쩌죠?”
“너희들은 상단의 호위무사니 여기서 같이 지내야지. 당분간 낮에는 무술을 수련해야 하니 아침밥을 먹으면 배낭을 메고 달려서 농장으로 와!”
“알겠사옵니다.”
사람들의 눈이 있으니 모든 무기는 농장으로 몰래 보내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거리가 불과 1킬로미터 정도 떨어졌으니 백삼수는 밤에 농장으로 찾아와 사용한 경비나 기타 업무에 대해 보고하기로 정했다.
“백 집사, 예천으로 사람을 보내서 최진웅을 찾아가서 말을 1필 달라고 해서 가져오고.”
“아! 최용민 어르신이 남긴 유산을 돌려 달라고요?”
“그래, 내 호적을 호방에게서 확인 받아서 가져가.”
“알겠습니다. 바로 말을 가져오도록 하겠습니다.”
“좋은 말로 가져와.”
“넷! 잘 골라서 가져오죠.”
이런 조치를 내리고 최인범은 세 아이들과 같이 벼락주막에서 떠났다. 모두 등에는 커다란 배낭을 짊어지고 있었다. 다소 무거워 보이지만 차츰 익숙해진다고 판단했다.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주막에서 떠나는 최인범을 바라보던 백삼수는 또 생각이 바뀌었다.
‘산적이나 호랑이를 잡으러 갔다가 죽을 수도 있으니 상속서류는 그대로 둬야겠어.’
물욕이 너무 많다가 보니 많은 재산을 차지할 기회를 쉽게 포기가 안 된다. 백삼수는 태워버리려던 서류를 건넌방에 잘 보관해 두었다.
사원으로 변한 회원들을 향해 다부지게 명령했다.
“뭐해? 빨리 장사하러 갈 준비를 안 하고.”
“알았어요.”
내일은 영천 장이라 그곳으로 가서 면포 장사를 해볼 계획이다. 이제 새롭게 정산하게 되니 부지런히 벌어야 월급도 타고 접장의 월급도 줘야 살아남게 생겼다.
‘하는 행동으로 보나 월급을 못 타게 돈을 벌면 내 목을 자를 거야.’
자신은 최인범이 죽었으면 좋을 상태다. 그와 반대로 자신이 죽으면 백두상단은 모두 최인범의 차지가 되니 그가 자기를 죽일 가능성도 있다고 판단했다.
무력이 뛰어난 그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자신을 죽일 수 있다. 다만 상단을 차지하려면 주변 인물들이 납득할 만한 핑계거리가 필요할 것 같았다.
이런 생각을 하자 목을 잘라버린 다는 뜻은 자신의 목을 노리고 하는 말 같았다. 일단 재물을 많이 모아야 되니 백삼수는 부하들을 다그쳐 장사 준비에 바빴다.
높은 산에서 낮은 언덕이 길게 이어지다 멈춘 곳.
전에는 선산이라고 칭하던 이곳은 이제는 농장이라고 불렀다. 여전히 건축 공사는 진행되고 있어 많은 목수나 인부들이 부지런히 일했다.
최인범 일행이 농장에 도착하자 먹쇠가 허리를 깊숙하게 숙이며 반갑게 인사했다.
“선달님, 오셨어요.”
이미 백삼수로부터 최인범의 노비로 변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공손하게 대했다. 더구나 무서운 무력을 지녔으니 감히 왜 주인이 바뀐 것인지 묻지도 못했다.
최인범은 안채의 방문 앞에 배낭을 내려놓고 먹쇠에게 물었다.
“그동안 소나무는 많이 베었냐?”
“예, 그럭저럭 많이 베었사옵니다. 그래서 땔감도 많이 쌓아 놨고요. 잔 소나무는 풍기 장에서 팔아 볏짚도 많이 쌓아 놨고요.”
건축이 시작된 지 한 달이란 기간이 지나서 축사인 큰 헛간은 준공되었다.
축사에는 말 1필과 농우 2마리가 사육되고 있었다. 축사 옆에는 많은 볏짚이 높이 쌓여있었다. 농우가 2마리라 가끔은 소달구지로 짐도 대신 날라다 주고 쌀이나 보리등도 장만해 비축해 놓았다.
최인범은 목수를 만나 면포 200필짜리 어음을 넘겨주며 말했다.
“축사를 이어서 한 동 더 짓고 안채 뒤쪽에 새로 안채를 지으세요.”
“알겠습니다.”
이어서 돌쇠를 불러 남아 있는 면포 300필짜리 어음을 넘겨주고 지시했다.
“돌쇠는 근처에 파는 송아지를 잘 골라서 사도록 해.”
“모두 송아지로 사나요?”
“네가 사고 싶은 소를 사.”
“알겠습니다. 소인의 생각으로는 암소 한 마리를 사고 나머지는 송아지로 사보겠습니다.”
최인범은 지니고 있던 면포 어음을 이렇게 해서 모조리 소모했다. 그러고 보니 백삼수에게 면포 300필을 넘겨줘야 된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요즈음 호랑이 가죽 시세가 좋다는데 호랑이를 한 마리는 잡아야 빚을 청산하게 생겼군.’
그러나 호랑이가 나잡아 가라고 전처럼 앞에서 죽어 줄 리는 없으니 그건 포기했다. 호랑이 보다 잡기 쉬워 보이는 산적을 잡아볼 계획이다.
‘기회를 봐서 창락골에서 매복을 서는 것도 좋은 방법이야.’
분명 창락골의 윤 진사가 운영하는 죽죽이 주막이 문제가 많았다. 잘하면 쉽게 산적을 생포하거나 죽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전에는 산적들도 사람이라 그들을 잡아 죽이는 것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이제 성격이 변해 산적들은 자신의 좋은 사냥감이라는 느낌이 강해졌다.
‘허접한 산적 놈들 세 놈만 잡으면 무관 벼슬을 한다니 어렵게 과거를 보지 않아도 되겠어.’
무과인 과거도 어느 정도 문장 실력이 있어야 된다. 시험 보는 과목도 여러 가지라 현재로는 쉽게 통과하기가 어려워 보이니 해보는 판단이다.
최인범은 앞으로 이곳에서 당분간 지낼 생각이라 안채를 숙소로 정했다. 어디가 자신이 지낼 곳인지 몰라 두리번거리는 월녀를 보며 지시했다.
“월녀는 부엌 일순이 자매들과 옆방에서 같이 지내.”
“예. 오라버니.”
안채의 작은 윗방도 있지만 밤에 치미는 욕정이 큰 문제다. 그 때문에 무슨 사단이 벌어질지 몰라 월녀와 따로 지내기로 했다. 칠복이 형제를 보며 그들에게도 숙소를 정해주었다.
“칠복이 형제는 앞으로 안채의 윗방을 숙소로 정한다. 당분간 밖에서 소형천막을 치고 야영하면서 지내게 되니 그렇게 알아. 동절기의 야영 훈련을 하는 수련이니 그렇게 알아. 물론 나도 같이 야영할 것이고.”
다소 황당한 지시지만 훈련이라니 칠복이 형제는 이내 답했다.
“알겠사옵니다.”
최인범은 이런 지시를 내리고 칠복이 형제와 같이 야산의 공터에 소형천막을 두 동을 쳤다. 직접 소형천막을 치면서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겨울에는 소형천막 안에 낙엽을 두툼하게 깔고 자도록 알려주었다.
“아래에 담요를 두 장 깔고 두 장을 덮고 붙어서 같이 자면 돼.”
“아하! 그렇군요.”
칠복이 형제는 소형천막의 조각을 왜 하나씩만 배낭에 꾸리게 했는지 확실하게 이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