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화
오래 방안에만 누워 있다가 보니 전보다 분명 허약해졌다. 그러나 더 깊은 내면에는 어떤 강한 기운이 도사리고 있어 더욱 강해진 느낌이 들었다. 강한 기운은 자꾸 외부로 튀어나오려는 듯이 힘차게 꿈틀거렸다.
강한 기운과 함께 치미는 욕구가 있었다. 그것은 먼저 붉은 피가 철철 흐르는 날고기가 너무 먹고 싶었다. 그런 강한 욕구가 치밀자 눈길은 자연스럽게 마당에 돌아다니는 개와 닭으로 향했다.
“크으윽!”
날고기를 먹고 싶은 충동과 더불어 다른 쪽에서는 자중하라는 경고의 느낌이 떠오르며 또다시 심한 두통이 찾아왔다. 애써 두통을 억누르며 입을 열었다.
“월녀야! 너 나가서 소고기를 사와. 오라버니 지금 육회가 너무 먹고 싶다.”
“알았어요. 금방 다녀오죠.”
월녀는 오라버니가 육회를 먹고 싶다고 하자 번개 같이 주막에서 튀어나갔다.
시간은 점점 흘렀다. 밖으로 튀어 나간 백삼수가 의외로 빨리 돌아오지 않자 칠복이 형제에게 명령했다.
“너희들 나가서 백 집사를 찾아서 불러와! 빨리!”
“넷!”
형제가 밖으로 튀어나가고 얼마 시간이 지나자 백삼수가 칠복이 형제와 같이 헐떡거리며 주막으로 돌아왔다.
최인범은 화가 난 표정으로 크게 소리쳤다.
“백집사, 왜 이렇게 오래 걸려? 어음은 다 있냐?”
“넷! 어음은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모두 2800필의 어음입니다.”
건넌방으로 들어가 백삼수가 넘겨주는 어음을 자세하게 살피다가 중요한 사실을 발견했다. 발행한 날짜가 바로 오늘이고 모두 풍기관아에서 발행한 어음이다.
“백집사, 너 풍기관아에다 이자를 놨냐?”
“헉!”
전에는 이런 것을 전혀 살피지도 않더니 어음의 발행일만 보고 자신의 행적을 금방 알아내자 매우 놀랐다. 벼락을 맞더니 많이 변한 것이 틀림없었다.
최인범은 자신의 물음에 매우 놀라는 백삼수를 바라보며 간단하게 정리했다.
“우선 그간 면포로 장사를 했던 고리대금으로 이자놀이로 벌었던 그건 상관하지 않으마. 내가 주문한 물건을 네가 찾아 왔으니 그것으로 퉁 치면 되겠다.”
“접장님, 퉁을 치다니요?”
“지저분하게 따질 것 없이 백두상단의 자본금은 2000필로 완전히 새로 시작하고 나머지 800필은 내 개인재산으로 한다는 거야.”
본시 자신에게 넘겨준 최 진사의 면포가 1600필이다. 호랑이 가죽이나 뼈를 팔아서 챙긴 돈도 있고 자신이 투자한 금액도 있어 그리되면 자신에게 너무 많은 이득이 생긴다.
물론 후하게 최복동에게 면포 200필이나 선심을 쓴 것을 제하더라도 그동안 벌어들인 면포도 있어 자신에게 많이 남는 정산이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접장님, 나머지 물건들은 백두상단 재산으로 계산을 전혀 안 하고요?”
“그래, 복잡하게 따질 것 없이 그렇게 새로 시작하는 거야. 그 대신 내가 만들어 달라는 신발이나 옷들은 모두 네가 대금을 정산해.”
“알겠사옵니다.”
최인범은 추가로 앞으로 백두상단 운영에 대해 지시했다.
“앞으로 이득금 정산은 영업이익에서 비용을 뺀 금액으로 정리해. 비용은 모두 월녀가 집행하도록 하고.”
“예? 어린 애가 비용정산을 해요?”
“그래, 장부만 정리하면 되는데 어려도 무슨 상관이야.”
“접장님, 그럼 남는 이득금은 어찌 처리하고요?”
최인범은 보다 명확하게 계산한다는 의미로 관포 100필짜리 어음을 넘겨주며 말했다.
“이제 네가 투자한 금액은 면포 500필로 정해. 그러니까 네 투자금은 2할 5리야. 무슨 말인지 아냐?”
“알겠사옵니다. 그럼 이득금의 배분은 어떻게 하죠?”
“그야 이득금의 절반은 무조건 재투자하고 네 지분은 앞으로는 2할 5리만 차지하는 것이지. 나머지는 모두 내가 투자했으니 차지하는 것이고. 그 대신 너도 매달 과장의 직급에 해당하는 월급을 받도록 하면 되니 그렇게 손해는 아닐 거다.”
이렇게 되자 회원들이나 배도치 부하들은 모두 사원으로 변하고 월녀도 사원으로 정했다. 배도치는 계장으로 한 계급 높게 책정했다. 칠복이 형제는 같이 다닐 경우는 숙식을 제공하지만 최인범의 사노비로 변했으니 월급은 없었다. 그에 대해서도 결정했다.
“백 집사, 이놈들의 몸값은 나중에 면포 300필을 내가 너에게 넘겨주는 것으로 정해.”
“알겠사옵니다.”
사원은 매월 면포 5필, 계장은 10필, 과장은 20필이 월급으로 주기로 책정했다. 접장은 면포 40필을 월급으로 받도록 정해졌다. 면포 1필에 보통 쌀 2말씩이니 월급이 1가마라 사실 이 시절은 고액 연봉이다. 숙박비용은 일단 사원의 월급을 넘지 않도록 정해졌다.
최인범은 마지막으로 다부지게 명령했다.
“만약 내가 월급을 타지 못할 정도로 영업을 못하면 사그리 목을 잘라 버릴 것이니 그렇게 알아.”
최인범의 엄포에 백삼수가 화들짝 놀라며 응수했다.
“예? 목을 잘라요?”
“그럼, 무능력한 놈의 목을 그냥 놔 두냐? 싹둑 잘라서 치워버려야지. 그러니 알아서 영업은 알아서 잘해.”
“넷!”
최인범은 해고를 예고했지만 백삼수나 다른 녀석들은 모두 실제로 목을 잘라버린다고 알아들었다. 그러니 다들 속으로 놀라며 겁을 집어 먹었다.
‘영업을 잘 못하다가는 목이 달아나게 생겼어.’
이런 지시를 내리고 건넌방으로 들어와 자리에 누었다. 이유는 조금 신경을 쓰니 머리에서 두통이 밀려왔기 때문이다.
너무도 괴이한 사건을 두 번이나 경험한 최인범은 전보다 복잡한 성격으로 변했다. 전에도 그랬지만 너무 골몰하게 생각하면 심한 두통이 생긴다. 그런 두통은 생각이 깊어지면 더욱 심해졌다.
그래서 잠시 눈을 감고 누워 있었다.
이때 방문 밖에서 월녀가 크게 외쳤다.
“오라버니, 바느질하는 아주머니들이 오셨어요.”
“알았어!”
이윽고 바느질하는 여자들이 찾아오자 최인범은 건넌방에서 자신이 입을 옷에 대해 설명했다. 면으로 제작하는 옷과 안에 입는 누비 속옷을 말해 주었다.
“허리띠는 이렇게 고리를 만들어 주면 됩니다.”
“아! 그렇군요. 그런데 아래에 댓님을 차지 않는다니 이상하군요.”
“그건 신발 안에 넣어서 묶으면 되니 너무 걱정 안 해도 돼요.”
상의나 하의 모두 주머니가 많이 달린 형태로 만들도록 했다. 이런 지시를 하던 최인범은 방에서 나와 마루로 나가 배도치를 불렀다.
“도치, 이리 와!”
“넷!”
“다른 놈은 필요 없고 네가 제일 믿을 수 있는 한 놈만 정해. 호위무사를 시키게.”
“접장님, 한 명만 골라요? 제가 보기에는 다들 비슷한데요?”
배도치가 이렇게 쉽게 응수하자 다소 음침한 목소리로 강조했다.
“나중에 그놈들 중에 배신자라도 나오면 네 목을 즉시 잘라버릴 것이니 잘 판단해.”
살벌한 지시에 배도치는 몸을 움찔했다. 도대체 무슨 일을 시키려고 이런 험한 말을 하는지 은근히 겁이 났다. 그러나 이미 한 달간이나 같이 생활한 처지라 다른 길이 없다고 판단해 답했다.
“접장님, 잘 알겠사옵니다. 그런 배신자가 나오면 제 목을 잘라도 좋사옵니다.”
“앞으로 혹독하게 훈련할 것이니 잘 생각해.”
“알겠사옵니다. 부하들을 만나서 다시 확인하죠.”
자신들을 사지로 끌고 갈지는 모르지만 녀석들도 새롭게 충성맹세를 지시했다. 어차피 산적이 되려던 녀석들이라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볼 생각이다.
다시 충성 맹세를 하자 최인범은 그제야 녀석들의 이름과 나이를 물었다.
다들 나이는 비슷했다. 배도치는 25살, 민정만은 23살, 신하철은 23살, 정인복은 22살, 김이생은 22살 박치만이 21살인 막내다.
다른 영업사원들이야 백삼수가 관리하니 신경 쓸 필요도 없었다.
생각보다는 배도치 일당들의 나이가 젊어 다소 이상했다. 그러나 사실 조선에서는 상투를 틀고 수염을 기르다 보니 실제 나이보다 더 들어 보이는 경우가 많았다.
최인범은 배도치와 그의 부하들에게도 배낭과 기타 개인 장구와 단검을 넘겨주었다. 그리고 위압적인 목소리로 명령했다.
“너희들은 앞으로 상단의 호위무사로 활동할 것이니 지금 당장 배낭을 꾸리는 것을 칠복이 형제에게 배워. 그리고 그 애들이 배우는 무술도 같이 배우도록 하고.”
“알겠습니다.”
“내일 아침에 점검해 봐서 배낭을 꾸리지 못하면 혼날 줄 알고.”
“넷!”
최인범이 이들은 호위무사로 양성하려는 이유는 본시 건달기가 많아 차분하게 장사하기는 틀렸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6명을 모두 호위무사로 만든다고 하자 백삼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접장님, 짐은 누가 나르죠?”
“그거야. 비용으로 정산하고 인부를 쓰던 아니면 월급을 주는 고정된 인부를 따로 고용하면 되지. 그것까지 내가 일일이 알려줘야 하냐?”
“알겠사옵니다.”
호위무사들이나 자신이 필요해 급하게 새 옷을 만들 필요가 있었다. 또한 새로운 방식의 옷이라 잘 만드는지 수시로 확인하기 위해 아낙네들은 윗방에서 바느질을 했다.
최인범은 월녀가 사온 소고기를 육회로 만들어 맛있게 먹었다. 생고기가 너무 당겨 많이 먹고 나자 심한 갈증이 어느 정도 해소되었다. 그런데 전에는 전혀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욕구가 치밀어 올랐다.
‘아고야! 내가 왜 이래.’
바느질하는 아낙네들의 풍덩한 엉덩이를 보니 자꾸만 아래가 요란하게 꿈틀거렸다. 옆에 다른 사람만 없으면 당장이라도 아낙네를 강제로 덮칠 정도로 강한 욕망이 치밀어 올랐다. 아래의 물건이 커지면서 심한 성욕이 치밀어 오른 것이다.
이런 형상들은 해가 떨어지기 전에는 별로 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점차 밤으로 변하자 그런 충동은 더욱 높아졌다. 참으로 알 수 없는 이런 신체 변화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자꾸만 산으로 가고 싶은 충동이 강해졌다. 뭔지는 모르지만 내부에서 전혀 새로운 기운이 꿈틀거렸다, 주체하기 어려운 힘이 치밀자 고민이다.
‘허! 이 노릇을 어쩌지?’
더구나 옆에서 자고 있는 어린 월녀도 탐하고 싶은 충동이 갑자기 생겼다. 사태가 이런 지경에 이르자 다른 방법으로 해소하는 수밖에 없었다.
견디다 못한 최인범은 슬며시 뒷마당으로 나가 힘이 모조리 소진될 때까지 무술 수련에 박차를 가했다. 그리고 몸이 완전히 나른해진 후에 슬며시 건넌방으로 들어와 잠이 들었다.
다시 깨어난 첫날은 이렇게 그럭저럭 잘 버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