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화
“조정에서 호랑이를 한 마리 잡거나 또는 산적 한 명을 잡으면 무조건 무과의 초시합격자 자격을 준다니 서로 좋은 일이 아닌가? 그리고 호랑이나 산적들을 세 마리 이상 잡으면 바로 벼슬을 내린다고 하네.”
조정에서는 워낙 다급하니 다소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었다. 호환과 산적들의 준동을 막을 정책으로 이런 특단의 조치를 내리고 있었다.
돈 많은 사람은 너도 나도 호피 가죽을 사기 위해 혈안이 되었다. 잘하면 호피를 사서 바치고 벼슬을 살 기회가 생겼기 때문이다.
“잘 알겠습니다. 최 선달님이 깨어나시면 그렇게 전하죠.”
백수현은 최인범이 전에 장인마을의 갖바치에게 주문한 물건들을 찾아다 놓았다. 그리고 그가 대장간이나 다른 곳에서 주문한 물건들도 모조리 대금을 지불해 벼락주막으로 가져다 놓았다.
“뭐하려고 이런 이상한 것을 주문했지?”
가죽으로 만든 신발은 용도를 알겠지만 다른 것은 도통 모르게 생긴 것들이다. 그러나 주문한 물건들은 모두 그림이 있어 일부는 어떤 쪽으로 사용하는지 알 수 있었다.
어느새 새해가 시작 된지 며칠이 지났다.
호랑이 때문에 재물 벼락을 연달아 맞았다가 진짜 날벼락을 맞은 벼락주막의 안채 건넌방.
괴이한 사건이 벌어지자 이곳으로 찾아오는 손님들이 대폭 줄었다. 일부에서는 벼락주막은 귀신들의 농간이 심한 곳이라는 뜬소문이 퍼진 것이다.
안채의 건넌방에는 월녀가 바지런히 들락거렸다. 여전히 의식불명인 최인범은 조금씩 의식이 돌아오려는 듯이 심하게 몸을 움직였다.
“오라버니가 깨어날 것 같아!”
꿈속 같이 긴 어둠의 터널을 끝없이 지나던 중········.
최인범의 눈앞에서 갑자기 번쩍하며 밝은 빛이 보였다. 눈이 부시도록 찬란한 빛에 오래 의식을 잃고 누워 있던 최인범은 서서히 깨어났다.
온전하게 정신이 들자 머리가 띵하고 전신은 먹먹했다.
“끄응!”
마치 호랑이가 우는 소리와 같이 괴이한 신음소리를 토하며 눈을 떴다. 옆에 있는 월녀가 화들짝 놀라며 바라보았다.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조심스럽게 물었다.
“오라버니! 정신이 드세요?”
정신이 든 최인범은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자신과 같이 서있던 최 진사와 달려들던 호랑이가 떠올라 슬며시 물었다.
“최 진사는?”
“오라버니, 최 진사님은 돌아가셨어요. 벼락을 맞아서 최 진사님은 그만 까맣게 타서 죽었어요.”
“뭐? 죽어?”
똑 같이 벼락을 맞았는데 자신은 살아남고 최 진사는 죽었다는 말에 큰 충격을 받았다. 본래 괴이한 일로 이곳에서 다시 태어난 입장이지만 또 다시 그런 괴사를 겪게 되자 더욱 혼란스러웠다.
자신에게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도통 알 수가 없으니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그나마 조금 정신을 차려 이곳에서 적응해 살아보려고 했더니 그것도 힘들었다.
‘죽을 팔자인데 살아서 그런가?’
왜 이런 일이 자신에게 벌어지는지 골몰하게 생각했다. 그러니 생각이 조금 깊어지자 머리가 터지는 것과 같은 심한 통증이 생겼다.
“으으윽!”
너무 아파 두 손으로 머리를 강하게 부여잡고 신음을 토했다. 고통은 말로 설명하기 곤란할 정도로 심해 얼굴이나 몸에서는 식은땀이 주르륵 흘렀다.
한참을 고통 속에서 괴로워하다가 드디어 멈추었다. 머릿속이 너무 아프기 때문에 뭔가 생각하던 것을 멈추자 사라진 것이다.
방안에 누워 있는 것이 답답해 슬며시 일어났다. 오래 누워 있어서 그런지 다리가 휘청거렸다. 그러자 월녀가 급하게 옆으로 다가와 부축해주며 다정스럽게 말했다.
“오라버니, 한 달을 넘게 방에서 누워만 있었어요. 그러니 조심하세요.”
“뭐? 그렇게 오래?”
한 달이나 어둠 속에서 헤맸다니 최인범 자신이 죽다가 겨우 살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밖으로 나갈 요량으로 주섬주섬 옷을 입었다.
월녀의 부축을 받고 밖으로 나오자 칠복이 형제가 놀란 표정으로 허리를 깊숙하게 숙여 인사했다.
“접장님! 깨어나셨군요.”
“오냐! 너희들 그동안 무술 연습은 잘 하고 있었냐?”
“넷!”
지금은 아침으로 느낌이지만 오전 10시쯤 되어 보였다. 밖은 싸늘한 찬바람이 불었다. 시원하다는 느낌으로 조금 답답함이 가셨다.
앞마당에는 많은 눈이 군데군데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최인범은 마루에 걸터앉아 전에 갖바치에게 주문해 가져온 가죽신발을 천천히 신었다. 만드는 삯을 너무 많이 받았다고 판단한 것인지 갖바치는 가죽신발을 여러 켤레를 만들어 넘겨주었다.
“이거 누가 찾아왔지?”
“집사님이 찾아 왔어요.”
최인범은 등산화와 비슷한 가죽신을 신고 앞마당을 천천히 걸었다. 주문한 신발을 처음으로 신어보지만 아주 잘 만들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자 문뜩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칠복이 형제와 월녀도 신으라고 만들어 줘야겠어.’
이어지는 생각으로 배낭이 떠올라 월녀에게 물었다.
“가죽자루는 어디 있냐?”
“집사님이 찾아와 모두 건넌방에 있어요. 왜요? 가지고 나올까요?”
“그래 내가 새로 만든 물건들을 모조리 가지고 나와.”
“예, 오라버니.”
연달아 너무 괴이한 일을 겪고 있어 정신이 매우 혼란스럽다. 하지만 그래도 살기는 살아야 하니 전에 시작하던 사업들을 하나하나 챙겨볼 생각이다.
최인범은 마루에 걸터앉아 월녀가 가지고온 물건들을 천천히 살폈다.
군용 대검처럼 만든 칼이 20자루가 있었다. 그리고 배낭도 10개나 되었다. 가죽허리띠도 10개가 있고 어깨에 걸치는 가죽멜빵도 10개가 있었다. 반합도 10개를 주문해 만들어 두었다.
아직 배낭에 달린 고리들을 연결하지 않았다. 최인범은 천천히 고리들을 배낭에 걸고 이어서 가죽혁대도 고리들을 조립했다. 뒤숭숭하고 아프던 머리가 조금 맑아졌다.
‘뭐라도 부지런히 하다 보니 머리가 아프지 않군.’
가죽으로 만든 배낭은 군용배낭과는 다르게 뼈대가 있는 등산용 배낭처럼 생겼다. 뼈대는 대나무 뿌리를 불로 구워 구부려서 만들었다.
무명천으로 만든 2인용 군용 소형천막이 6장이 있고 엷게 누빈 천으로 만든 담요가 20장이다. 모두 10명을 기준해서 개인이 휴대하는 군용장비를 주문해 만들어 놓았다.
최인범은 배낭의 위와 아래에 소형천막 조각 둘을 묶었다. 그 위에 누빈 천인 담요 2장을 둘둘 말아 고정시켰다. 철제인 반합도 배낭에 달린 끈으로 고정시켰다.
옆에서 월녀와 칠복이 형제가 호기심어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생전 처음 보는 이상한 형태의 봇짐을 싸니 너무 신기해 보였다. 만들어 놓은 숫자로 보아 자신들도 사용할 것을 짐작했다, 그래서 최인범이 묵묵히 짐을 꾸리는 모습을 유심히 살폈다.
‘아하! 고리와 끈을 저렇게 해서 고정시키는 구나.’
이어서 다른 배낭에 소형천막 조각 하나와 담요 둘을 고정시키고 나서 칠복이 형제에게 넘겨주며 지시했다.
“이런 식으로 짐을 꾸려 봐! 배낭 안에는 우선은 누빈 천으로 채우고 나중에는 항상 가지고 다녀야하는 옷과 버선을 넣어서 채워서 꾸려.”
“넷!”
배낭을 꾸리는 것도 숙달해야 하니 우선 그 방법부터 알려주었다. 그리고 월녀에게는 담요 2장만 달리는 배낭을 꾸리도록 지시했다.
조몰락조몰락.
10여 차례 배낭을 꾸리고 풀기를 반복하자 칠복이 형제나 월녀는 어느 정도 익숙하게 배낭을 꾸렸다. 이어서 가죽으로 만든 허리띠와 대검을 차는 방법과 멜빵을 착용하는 방법도 알려주었다.
“앞으로 대검은 너희들이 휴대하니 그렇게 알고. 보이게 차면 남들이 이상하게 보니 우선은 배낭 안에 넣어 두던지 또는 허벅지나 장단지에 차던지 해.”
“알았어요.”
최인범은 시범을 보이듯이 대검을 양쪽 장단지에 찼다. 장단지에 차고 풍덩한 누빈 바지를 내리자 표가나지 않았다.
‘우선은 이렇게 하고 나중에는 군복을 만들어 입어야 되겠군.’
현재 지퍼를 만들 수는 없으니 우선 단추를 사용하면 충분히 만들 것 같았다. 모양만 잘 그려서 솜씨 좋은 아낙네에게 넘겨주면 충분히 제작이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소가죽이나 동물 가죽으로 야전잠바로 만들면 되겠어.’
점심을 먹고 나서도 한창 배낭을 꾸리거나 대검을 휴대하는 연습을 하던 중······.
백삼수가 백두상단의 회원 5명 그리고 배도치와 그의 부하 5명과 지게에 짐을 가득 싣고 주막 안으로 들어왔다. 손에는 마른 생선인 동태와 오징어들이 들려 있었다.
백삼수는 오래 방안에 누어있던 최인범이 깨어나서 마루에 앉아서 뭔가 만지고 있자 환한 얼굴로 반겼다.
“접장님! 깨어나셨군요.”
최인범은 다소 낮은 저음으로 조용히 물었다.
“백 집사, 애들만 놔두고 어딜 다녀 오냐?”
“영천 장에서 장사하고 왔습니다.”
최인범은 즉시 지시했다.
“여기 신발을 만든 갖바치를 찾아가서 신발을 더 만들어 달라고 해.”
“접장님, 누굴 주려고요?”
“너희들도 신고 애들도 신어야 하니 10켤레 정도를 만들어 와. 발의 크기보다 조금만 크게 해서.”
“넷!”
현대식과 같은 군복을 만들어 입을 생각이라 다시 지시했다.
“바느질 잘하는 여자를 4명만 불러오고. 새로 옷을 여러 벌 만들 것이니까.”
“알았어요.”
깨어나자마자 여러 가지로 지시를 내리자 백삼수는 놀라면서도 정신없이 밖으로 튀어 나갔다. 바느질 장이도 데리고 와야 하지만 관포 어음으로 정리해 놓으라는 지시가 떠올라 빨리 호방을 만나 어음을 받아 올 생각이다.
‘자칫 모자랐다가는 맞아 죽을 수 있어.’
병간호는 안하고 돈벌이에만 정신없었으니 그것이 들통 날까 너무 두려웠다.
뛰어서 사라지는 백삼수를 보며 최인범은 문뜩 많은 면포가 떠올랐다. 자신이 정신을 잃고 있는 동안 백삼수가 도망치지 않은 것이 너무 신기했다.
‘저 자식이 말로는 충성해도 딴 생각이 많은 놈인데 안 도망가다니 너무 신기하군.’
이런 생각을 하며 천천히 앞마당을 이리저리 걸어 다녔다. 괴이한 사건이 벌어진 것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이 아니고 그저 자신의 몸 상태를 가늠하는 것이다.
‘힘들어도 추슬러서 악착 같이 살기는 살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