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화
<<특별한 기인의 탄생>
자신들의 운명에 대해 찬치 앞도 모르는 두 사람은 각자의 주특기를 효과적으로 이용하기위해 나름 골이 아프도록 고심하고 있었다.
최 접장은 최 진사의 의견을 듣자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최 진사께서는 앞으로 어떤 식으로 백두상단을 관리하실 생각인지요?”
“최 선달도 주식회사의 회계방법은 기본적으로 알 것이니 주식회사처럼 운영하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물론 지금은 투자자가 3명이니 합자 회사지만.”
“그렇군요. 사실 저는 회계처리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최 선달이 난감하다는 표정으로 답하자 즉시 그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했다.
“그래요? 그럼 더더구나 최 선달이 직접 재정을 책임지는 백삼수를 다루기가 힘들겠네요. 진짜로 회계방식에 대해 전혀 모르면 그놈이 뒷구멍으로 무슨 짓을 벌이는지 몰라요. 물론 지금이야 안하겠지만 나중에는 반드시하게 됩니다.”
“그래서 백두상단을 만들었지만 내심 고민입니다.”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던 최 진사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복잡하네.’
기왕에 시작한 백두상단을 지금 와서 해체할 수는 없었다. 양반신분인 자신이나 최 선달이 장사를 직접 할 수는 없었다.
이재에 밝고 욕심이 많아 보이는 집사인 백삼수를 최대한 이용해야 한다. 그래서 일단 영업중단이란 극약처방을 해놓고 시간을 두고 연구해 앞으로 행보를 결정하는 것이 좋다고 판단했다.
최 진사는 이렇게 판단하고 자신의 의견을 제시했다.
“죽게 돈 벌어 엉뚱하고 요상한 백삼수의 아가리에 고스란히 처넣을 수는 없소. 그러니 일단 관포 2000필 어음만 챙겨서 최 선달이 직접 가지고 있어요.”
“오라, 그럼 되겠군요. 이미 관포 2000필로 만들어 두라고 했으니 별로 문제는 없겠군요.”
잠시 대화를 멈춘 최 진사는 검게 흐려진 하늘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최 선달, 내가 보기에 눈이 더 내릴 것 같은데 어떻소?”
이런 물음에 최 선달도 하늘을 올려다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하늘이 아주 검고 날씨가 점점 차가워지니 아무래도 또다시 많은 눈이 내리겠군요. 만약 눈이 더 내리면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가 어렵겠군요.”
날씨를 온전하게 예측할 능력을 두 사람이 지니지는 못했다. 그러나 하늘의 구름이 너무 낮게 떠 있고 찬바람이 강하게 부니 아무래도 눈이 올 가능성이 높아 보인 것이다.
날씨에 대해서도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자 최 진사는 다시 말을 이었다.
“무작정 장사를 안 한다면 곤란할 것이오.”
“그렇겠군요. 백삼수는 유독 재물에 대한 욕심이 많으니까요.”
“만약 우리의 예측대로 내일도 이 지역에 눈이 내리면 그걸 핑계 삼으면 되요. 눈이 너무 많이 와 다른 고을로 장사하러 다니기 힘들다고 하세요. 그리고 입적시켜준 불쌍한 양부를 방치할 수 없다고 핑계를 대고 그 돈을 당분간 절대로 굴리지 마세요.”
“그래요? 그렇다면 더 잘 되었군요.”
일단 상단의 재정 문제를 깔끔하게 처리하기 위해서는 처리할 업무들이 많았다. 지금부터 주식회사처럼 운영하는 방법이 제일 좋았다.
이런 대화를 나누던 최 진사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뜬금없는 말을 꺼냈다.
“최 선달, 만약 아주 용한 무당이나 또는 점쟁이가 우릴 보고 나서 우리의 정체를 알면 도대체 뭐라고 칭할까요?”
“무당과 점쟁이요?”
“그렇소, 너무도 괴이한 사건들이 많으니 그럴 가능성이 있지 않겠소? 귀신이라고는 할 것 같고 하늘에서 내려온 천신이라고 하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
최 선달은 지금까지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보지 못했다. 하지만 최 진사에게 이런 소리를 들으니 딴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군. 어쩌면 영적인 세계를 다루는 그들은 우리의 정체를 알 수 있을 지도 모르겠어.’
최 진사는 이런 생각이 떠오르자 갑자기 두려움이 생겼다.
그런 사태가 벌어지면 정말 큰일이다. 하지만 그렇게 될 리는 절대로 없다고 판단되지만 그래도 듣고 보니 쉽게 생각할 일은 아니다. 어디고 복병이나 혹은 천적은 있을 수 있는 것이 세상의 이치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 선달은 한참 생각하다가 다소 싱겁게 답했다.
“아마 꼬리 아홉 개 달린 불여우가 사람으로 둔갑했다고 하지 않겠어요?”
이런 대답에 최 진사는 빙그레 웃으며 맞장구를 쳤다.
“맞아요. 아주 적당한 표현이요. 아마 무당이나 점쟁이는 그렇게 우릴 칭하게 될 거요. 불여우라는 소리가 제일 적당하겠군요.”
“그렇지요. 그런 식이 이 시대에는 제일 적당한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두 사람 모두 처지가 똑 같다가 보니 같은 염려를 했다. 제일 큰 걱정은 세상 사람들이 자신들의 진짜 정체를 알아볼까 두려운 것이다. 사람들 틈에 스며들어 어느 정도 적응했지만 여전히 허점을 무수하게 나타났다.
남의 몸으로 들어온 최 진사는 몸의 전 주인은 학식 높은 진사지만 정신은 아쉽게도 천자문도 겨우 아는 정도다. 그리고 과거에 자신이 살았던 기억이 잘 떠오르지 않았다.
그냥 몸이 떨어져 버린 최 선달은 부득이 호적을 양자 형식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백두산에서 무술을 닦고 살았다는 허무맹랑한 사실로 위장해 안심할 처지가 아니다.
그러니 두 사람 모두 자신들을 보호할 어떤 대비책을 마련해둬야 한다.
최 진사는 불여우라는 단어가 계속해서 머리에 감돌다가 번뜩 떠오르는 좋은 생각이 있었다. 그래서 자신의 생각을 슬며시 말했다.
“최 선달, 우리가 불여우라면 앞 구멍 하나에 뒷구멍은 적어도 둘은 뚫어놔야 안전하지 않겠어요?”
“그렇군요. 그런 뒷구멍의 하나가 백두상단이라는 말이군요.”
“그렇지요. 그러니 그 백여우 같은 백삼수를 잘 활용해서 안전한 뒷구멍을 만들게 유도해야 된다고 봅니다. 그놈도 우리와 같이 정체가 그대로 드러나면 안 되는 약점이 많은 놈이니까 여우 굴은 아주 잘 팔 거요.”
이렇게 말을 하고 나서 두 사람은 백삼수를 통제할 방법을 고심했다. 그리고 각자 독립적인 방법으로 백삼수를 견제하기로 했다.
최 진사는 자신의 잘 돌아가는 잔머리와 진사라는 지위를 이용해 백삼수를 다루기로 했다. 최 선달은 강한 무력으로 백삼수를 적절하게 요리하기로 결정했다.
이런 합의가 이루어지자 최 선달은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
“앞 구멍은 뭐죠?”
“그거야 나는 문(文)으로 최 선달은 무(武)로 각자 주특기를 이용해 열심히 파보는 수밖에 없지요. 그리고 나는 이곳에 뒷구멍인 여우 굴을 파볼 생각이요.”
여기에 여우 굴을 판다는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최 선달은 이상하게 생각해 반문했다.
“여기에 여우 굴을 파다니요? 그건 무슨 소리죠?”
“여기에 상단과는 별도로 재력을 비축해 볼 생각입니다. 혼자서 파게 되면 오래 걸리고 최 선달이 협조하면 조금 수월하게 파게 될 겁니다. 물론 적당한 시기에 비축된 자금으로 각자의 여우 굴을 따로 떨어져서 만들어야 더 안전할 것이고요.”
“무슨 말인지 충분히 알겠네요. 그렇다면 저도 여기에서 여우 굴을 파는 작업을 적극적으로 협조해야죠. 저도 써먹어야 하는 굴이니까요.”
최 진사는 최 선달이 적극적으로 돕겠다고 하자 즉시 자신의 의중을 내비쳤다.
“아까 말한 밭과 집터의 소유권을 나에게 넘겨주시오. 그 대신 내가 가지고 있는 말 1필을 넘겨주겠소. 아마 시세로도 적당할 거요. 그렇게 해야 내가 여기서 하고자하는 사업을 시작할 수 있소.”
“좋습니다. 그렇게 하죠. 제가 도와줄 일은 따로 없나요?”
이런 응수에 최 진사는 진지한 표정으로 설명했다.
“도와줄 일이라기보다는 개발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돼요. 그 방법은 추후에 내가 설명하죠. 이곳에 비축된 자금으로 나중에 최선달의 여우 굴 파는 비자금은 충분히 대어 드리죠.”
“알겠습니다. 최 진사님께서 주선하신 양자 자리니 제가 협조해야 당연하죠.”
“나를 믿어 주니 안심이 됩니다.”
표현이야 숨기위한 여우굴이라고 했다. 하지만 자신들의 미래를 위해 준비된 어떤 거점을 만들자는 이야기다. 두 사람 모두 나름 미래에 희망적인 꿈들은 가졌다.
각자 성품이 다르고 주특기도 다르다.
꾸고 있는 꿈이 서로 다를 수도 있고 또는 같을 수도 있었다. 백두상단을 통해 서로 은밀하게 협조하자는 정도로 대화를 끝내고 내려왔다.
최 진사의 입장에서 최 선달을 부하로는 만들지 못했다. 하지만 일단 우위는 점하는 형식이라 만족했다. 어찌되었건 모든 조건으로 보아 최 진사가 유리하게 전개됐다.
‘나야 이미 여우 굴을 여기에 파기 시작했으니 그럼 된 거야.’
그러나 자신은 봉화현으로 가서 적응해야 하니 넘어야 할 고비가 너무 많았다. 최 선달은 양자로 들어 왔으니 과거의 신분이라는 문제로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그러니 운신에 폭이 넓은 그가 유리할 수도 있었다.
초가집은 많은 사람이 모여들어 작업하고 있어 부산했다. 수리하거나 새로 건축하러 온 목수나 인부들은 바빴다.
먹쇠와 다른 두 녀석이 말과 소달구지로 운반해온 목재를 가지고 빠르게 바깥채에 해당하는 마구간을 짓고 있었다. 이미 허물어진 집터에서 날아온 주춧돌은 모두 이동되었다. 그 위에 굵은 기둥들이 세워졌다.
상당히 빨리 집을 지을 수 있던 이유는 그저 조립만 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곳에서 집을 지으려고 만들어 놓은 목재를 그대로 사왔다.
힘이 좋은 먹쇠나 조갑중이 목수들을 도와주니 더욱 빨랐다. 물론 여러 명의 아이들도 흙과 돌을 나르거나 볏짚을 가져와 도왔다.
손재주가 많은 돌쇠는 어느새 다른 기술자와 같이 사랑방의 부서진 구들을 고치고 있었다.
쾅! 쾅! 탁! 탁!
요란하게 커다란 나무에 망치질도 하고 땅을 다지는 소리가 들렸다.
최 진사는 마구간인 바깥채가 오히려 새집이고 크기도 더 커서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에이, 차라리 터도 넓은데 옆에 새로 지어 버릴 걸.’
하지만 이런 잡생각이야 잠시 스치는 정도에 불과했다. 이제부터 풍기군에서 벌인 사업을 빠르게 정리하고 봉화로 가야 되니 마음이 급했다.
최 진사는 공사현장을 휘휘 돌아보고 안방으로 들어가 최용민을 만났다. 조심스럽게 눈치를 보며 살며시 입을 열었다.
“어르신, 제가 마적을 넘겨 드릴 것이니 여기 집터와 밭의 소유권을 넘겨주세요.”
“아들놈과 이야기를 잘했나?”
“예, 이야기를 잘 끝냈사옵니다.”
최용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승낙했다.
“자네가 제안한 대로 땅과 집을 넘기도록 하지.”
“어르신, 정말 감사하옵니다.”
“아들에게 필요한 말이 당장 생기는 일인데. 내가 오히려 고맙지.”
결국 전(田)으로 되어있는 1정보의 토지문서를 받고 마적을 넘겨주었다. 나중에 처리해도 되지만 보다 깔끔하게 정리하는 편이 서로 좋다고 판단한 것이다.
토지를 인수한다고 해서 당장 최용민을 초가집에서 내보내는 것은 아니다. 죽을 때까지 여기서 살게 되니 남들이야 내용을 잘 모를 수 있었다.
밖으로 나온 최 진사는 즉시 최 선달에게 다가가 넌지시 권했다.
“최 선달은 먼저 숙소인 벼락주막으로 가요. 나는 여기서 목수들과 이야기를 하고 저녁에 찾아 갈 것이니까요. 그때 면포 어음을 넘겨주며 백삼수와 상단 운영에 대해 결정할 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