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화
백삼수로부터 최용민의 지금 생활 모습에 대해 자세하게 들었다.
설사 전보다 형편이 좋아졌더라도 최용민이란 노인이 이제 자신의 부친이라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자신도 기본적으로 뭐든지 해줘야 될 것 같았다.
험악하게 생긴 왈짜패들이 완전히 꽁지를 내리고 어제에 이어 새벽부터 찾아와 눈을 치우고 있다.
최인범은 그런 왈짜패들의 모습을 신이 나서 바라보고 있는 월녀에게 넌지시 지시했다.
“월녀야, 네가 음식 좀 챙겨봐라. 노인께서 좋아하실 음식으로.”
“예, 오라버니.”
음식을 준비하라는 지시를 받은 월녀가 빠르게 부엌으로 들어가자 백삼수가 다가와 새로운 내용을 보고했다.
“접장님, 호랑이 뼈로 약도 만들고 일부는 뼈로 팔았사옵니다.”
“뼈를 팔다니?”
너무 쉬운 방법으로 많은 면포가 생긴 백삼수는 신이 나서 자세하게 설명했다.
“접장님, 어디서 소문이 났는지 모르지만 호랑이 뼈를 몸에 지니면 호환을 피한다고 해서 부자들이 어제 늦게 오거나 오늘 새벽에 떼로 몰려들어 아주 비싸게 사갔사옵니다.”
“그래서 면포는 좀 챙겼나?”
“접장님, 호랑이 뼈를 팔아 면포가 240필이나 들어왔어요. 아직도 팔지 않은 호랑이 뼈가 많이 남았고요.”
“뭐야?”
갑자기 많은 면포가 생기자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최인범은 옆으로 찢어져 날카로운 눈이 자신도 모르게 왕방울만큼 커지며 급하게 반문했다.
“호랑이 뼈를 그렇게 많은 면포를 받고 팔아?”
“접장님, 그렇사옵니다. 접장님께서 잡으신 호랑이는 근동에서 제일 나이가 많은 호랑이로 추정되어 그런지 아무튼 작은 이빨 하나도 면포 10필씩 받고 발톱도 그런 정도로 받다가 보니 그렇게 많더군요.”
벼락주막에 머물러서 그런지 모르지만 이상한 사건들이 벌어졌다.
돈벼락이 밤사이에 내린 함박눈과 같이 자신의 머리위에 우수수 떨어진 것은 분명했다. 너무 황당해 도저히 믿어지지 않지만 일단 집사인 백삼수의 보고라 믿기로 했다.
“그렇다면 200필은 자본금으로 넣으면 되겠군. 40필은 내가 따로 쓸 일이 있어.”
“잘 알겠사옵니다.”
대답을 하고나자 백삼수가 손가락으로 뭔가 곱아 보더니 즉시 보고했다.
“접장님, 풍기 장에서 벌어들인 수익도 있고 접장님이 가지고 오신 호피와 뼈로 면포가 600필이나 생겨서 자본금으로 계산하자던 면포 2000필이 모두 채워졌사옵니다.”
“쉽게 채워졌군.”
“그렇사옵니다. 접장님, 이제부터는 백두상단도 정식으로 회계 처리해야 될 것 같사옵니다.”
이제 백두상단의 자본금은 최인범 진사 800필. 최인범 접장이 600필. 백삼수 집사가 400필을 실질적으로 내놓았다.
그러나 최인범 진사는 1000필, 최인범 접장이 600필 백삼수 집사가 400필로 계산하게 된다. 최인범 진사가 투자한 면포 중에 모자라는 200필만 채우면 총자본인 면포 수와 실제로 투자한 면포 수가 똑같게 된다.
최인범은 이득금이 너무 많다고 판단했다.
“벌써 그렇게 이득금이 많다니 이상하군.”
너무 쉽게 많은 면포가 주변에 몰려 다소 이상했다. 이상하다는 표정을 짓는 최인범을 살피며 백삼수는 조심스럽게 자세하게 설명했다.
“접장님, 폭설 때문에 물건 값들이 많이 올라서 그렇사옵니다. 풍기 장에서 면포 가격이 올라서도 이득금이 많았사옵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나는 쉽게 이해가 안 되는군.”
“접장님, 본래 장사란 이런 겁니다. 그리고 관아에서 산적 토벌대를 동원할지 몰라서 미곡이 많이 필요해 저희 백두상단에서 미곡은 모두 납품하기로 결정했사옵니다. 물건을 모두 관아로 보내면 되옵니다.”
일단 군포로 계산해 2000필이 채워진다니 복잡한 것이 싫어 최인범은 깔끔하게 정리하고 싶어 지시했다.
“백집사, 일단 회계처리는 더 이상하지 말고 면포 2000필만 자본금으로 깔끔하게 정리해 놓아.”
“접장님, 어떻게 정리를 하옵죠?”
정리하는 방법도 여러 가지다. 면포, 미곡, 어음 등에서 선택해야 한다.
잠시 고심하던 최인범은 가장 믿을 수 있다고 판단하는 관포 어음으로 결정했다.
“백 집사, 보관관리에 힘드니 현물이 아닌 관포 어음으로 준비해서 면포 2000필을 채워 나머지는 현물로 남아 있어도 되고.”
“알겠사옵니다.”
최인범이 전혀 의도하지 않은 일이지만 관포 어음으로 새로 정리하자는 조치는 아주 잘한 결정이었다. 관아에서는 현재 미곡이나 관포는 모두 현물이 필요한 시점이다.
호랑이 추포를 겸한 산적 토벌대를 조직하려면 그에 동원되는 군사나 또는 백성들에게 현물을 줘야한다. 그러니 관포 어음을 발행해주고 현물을 받아들이는 쪽이 관아에서도 유리했다.
백삼수는 그런 점을 잘 알고 있으니 최인범의 진짜 속마음은 전혀 모르고 기가 차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허어! 상단의 우두머리인 접장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군. 아주 절묘한 방법이야. 처리하기 곤란한 많은 물건들의 재고를 정리하기도 쉽고.’
사람이란 쌀이나 보리 등 주곡으로만 밥을 먹고 살 수는 없다. 그러니 잡곡도 모조리 관아로 납품하고 관포 어음으로 정산하면 깔끔하게 정리가 가능한 것이다.
마음이 급한 백삼수는 회원 5명, 왈짜 5명을 향해 지시했다.
“빨리 아침 먹고 관아로 물건을 나르자.”
“예이!”
부산한 가운데 다소 늦은 아침 식사를 마치게 됐다. 최인범 접장은 먹을 것을 들고 가는 칠복이 형제와 월녀를 데리고 이제 아비가 된 최용민이 사는 집으로 가게 됐다.
낮은 야산의 남쪽에 위치한 초가집은 터는 넓었다.
아주 작은 부엌과 아래 윗방이 있는 중앙의 안채와 양쪽에 헛간과 같은 작은 사랑채가 있다. 안채와 사랑채가 디귿자 형태로 된 가옥이다.
마을과 가까우면서도 홀로 서있는 외딴 집이다. 볏짚으로 해일은 지붕도 엉망이라 보기에 낡은 초가는 금방이라도 허물어질 것 같았다.
‘후우! 금방 무너지게 생겼어.’
그러나 가까이에서 살펴보자 양반의 집이라 그런지 굻은 나무로 튼튼하게 지어 놓았다.
이제부터는 아버지로 모셔야 하기 때문에 최인범은 조심스럽게 안방을 향해 외쳤다.
“아버님, 소자 문안인사 드리옵니다.”
외짝인 작은 문을 밀치며 바짝 마른 노인인 최용민이 고개를 내밀고 물끄러미 내려다봤다. 약간 흐릿해 보이는 눈으로 마당에 서있는 최인범의 몸을 위 아래로 살폈다.
최용민은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돌연 명령을 내렸다.
“인범아! 저기 사랑방 앞에 있는 돌절구를 부엌의 문 쪽으로 옮겨.”
“예. 아버님.”
만나자 마자 돌절구를 나르라는 지시에 의아했다. 하지만 그래도 시키는 대로 다소 묵직한 돌절구를 별로 힘들이지 않고 옮겨서 부엌 문 앞에 가져다 놓았다.
절구야 당연히 부엌 옆에 있어야 사용하기가 편리했다.
“아버님, 여기면 됐나요?”
“그래, 아주 잘 했다.”
거의 무의식적으로 하는 행동이다. 하지만 같이 온 세 녀석이나 또는 문을 열고 최인범의 행동을 바라보는 최용민은 놀라고 말았다.
사랑방에서 거주하던 세 여자애들은 얼이 빠져 입을 떡 벌렸다. 그와 동시에 여자애들은 다들 자신들도 모르게 감탄사를 토했다.
“와아!”
자신들이 움직여 보려고 했으나 꼼짝도 안했다. 돌절구는 너무 크고 무거웠다. 어제 여기로 자신들을 데리고 왔던 건장한 사내 둘이 나르지를 못했다.
그 사내들 말에는 힘이 아주 장사라고 고을에서 알려진 두 사람이 대들어야 겨우 겨우 옮길 정도라고 했다. 그런데 최인범은 너무도 쉽게 날랐기 때문에 놀라고 있었다.
‘허! 녀석.’
속으로 감탄하던 최용민의 눈에서는 어느새 뜨거운 눈물이 고였다.
최용민은 짧은 순간에 만감이 교차됐다.
포로로 잡힌 자신의 다리를 잘라버린 여진족에 대한 철천지한. 재산도 하나 없이 족보만 달랑 남은 처지로 고집스럽게 양자를 거부했던 지난날들······.
‘조상님들 정말 감사합니다.’
그저 조상의 은덕으로 죽을 무렵에 마음에 쏙 드는 아들이 생겼다. 힘을 쓰는 것이나 행동거지가 바라던 녀석이라 너무 좋았다. 마치 자신이 젊어서 모습을 그대로 닮은 녀석이다. 이제야 자신의 한을 풀어 줄 아들이 생겼다.
더구나 이제는 눈도 흐려지고 죽을 날만 기다리는 비참한 처지로 받아들인 생의 끝자락에서 만나 아들이다. 딱 보아 체구도 그렇고 힘이 장사다.
본시 무예란 꼭 힘으로 되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하지만 우선 체격조건이 좋고 힘이 좋으면 노력하면 훌륭한 장수가 될 여건은 충분했다.
최용민은 흥분된 마음을 다소 진정시키고 지시했다.
“네가 제일 잘하는 무예가 있으면 해 봐.”
“예, 아버님.”
최인범은 노인이 원하는 대로 자신이 제일 잘하는 격투기인 특공무술을 펼쳐 보였다. 아주 간단한 형식인 무술로 필살기인 동작들이다. 법상하지 않은 무술 실력이다.
모두 펼치고 나자 마음이 급해서인지 최용민은 급하게 재촉했다.
“됐어. 어서 들어와. 내가 너에게 전해 줄 것이 있어.”
“예, 아버님.”
최인범은 허리를 숙여야 들어가는 쪽문과 같은 문을 통해 안방에 들어갔다. 안방이라고 해야 사람 서너 명이 앉으면 꽉 차게 되는 작은 방이다. 그래도 정갈하게 정리되었고 벽에는 활이 걸려 있었다.
방안으로 들어서자 천장이 머리를 거의 스칠 정도로 낮았다. 외다리기 때문에 모든 물건들은 방바닥에 앉아서 집을 수 있도록 놓여 있었다.
본시 키가 큰 최용민이다. 젊어서야 기골이 장대하고 힘으로 누구에게 져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바짝 마르고 오그라들어 볼품없이 늙었다.
최용민은 허름하고 커다란 나무 궤짝을 열고 그 안에 물건들을 주섬주섬 꺼냈다.
꺼내면서 마주 앉은 최인범에게 하나씩 밀쳐주며 설명했다.
“이건 우리 최씨 집안의 족보, 이건 아비가 함경도에서 활동할 때 전투를 벌이던 상황을 기억해 틈틈이 정리한 야전속기. 이건 손무가 쓴 손자병법.”
먼저 문서들을 넘겨주고 나서 군인이 사용하는 물건들을 보여주었다.
“이건 내가 젊어서 쓰던 환도, 이건 함경도에서 입었던 가죽갑옷, 이건 군마로 사용할 말의 족보인 마적 2장이다. 마적을 가지고 예천의 최진웅라는 양민을 찾아가면 말 5필을 넘겨 줄 거야. 그동안 새끼들을 낳았으니까. 마지막으로 저기 벽에 결린 정량궁과 각궁에 딸린 물건들이 네가 가지고 갈 것이다.”
이런 최용민의 자세한 설명에 최인범은 너무 기가 막혔다.
‘지독한 분이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