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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트레인-64화 (64/519)

64화

왈자패는 최인범을 보자 허리를 깊숙하게 굽혀 동시에 인사했다.

“접장님, 기침하셨어요?

그러자 최인범은 전에 영화에서 보던 조직폭력배의 졸개들이 인사하는 모습이 떠올라 빙그레 웃으며 가볍게 손을 들어주었다.

“오냐! 일찍 왔군. 백 집사가 시키는 일을 우선하고 있도록 해.”

“예이!”

인사를 마친 배도치와 그의 부하들은 모두 급하게 마당에 쌓인 눈을 치웠다.

왈짜패들의 인사를 받은 최인범 접장은 몸이 개운치 않아 양팔을 벌려 크게 벌려 심호흡을 해봤다. 여전히 신경을 많이 쓰면 두통과 더불어 현기증이 생겼다.

‘되도록 신경을 안 쓰는 편이 좋아.’

마루에 서서 허리를 빙빙 돌려 움직여 보다가 방으로 들어가 누비두루마기를 걸치고 다시 밖으로 나왔다.

추웠다가 다시 따뜻해지는 날씨 변동이 아주 심했다. 고금을 막론하고 기압골 변동이 심하면 허약한 사람은 몸에 무리가 와서 그런지 죽는 경우가 많았다.

아침을 맛나게 먹고 나자 배도치와 그의 부하들은 백삼수와 같이 많은 물건을 지게로 지어서 관아로 날랐다. 그들이 관아로 물건을 나르는 동안. 벼락 주막의 뒷마당에서는 칠복이 형제는 무술을 수련했다.

최인범은 형제의 기마자세를 바로 잡아주며 호통 쳤다.

“정신 똑 바로 차려!”

“넷!”

쌍둥이 형제는 태권도의 기초부터 시작해 본격적으로 수련에 들어갔다. 그러자 월녀도 슬그머니 다가와서 무술 수련에 동참했다.

“앗! 앗!”

“모두 내가 하는 것을 보고 따라해.”

“넷!”

세 명에게 정권지르기나 기본자세를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반복된 수련을 지시하고 자신은 검법수련에 집중했다.

한참 수련하다가 아이들과 쉬면서 그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말했다.

“부지런히 무술을 익히면 나중에 면천될 기회가 생기니 열심히 해.”

“노비에서 풀릴 수 있다고요?”

쌍둥이 형제의 눈빛이 초롱초롱 해지고 있었다. 이런 모습으로 보아 어리지만 기회가 되면 신분 상승을 기대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최인범 접장은 그런 아이들에게 자신에 찬 목소리로 다시 강조했다.

“그래, 나중에 나와 같이 나라에 공을 세우면 반드시 그렇게 될 거야.”

“아! 접장님은 장군이 되실 생각이군요. 우린 접장님 부하로 따라 가고요.”

“그래, 그러면 너희들도 노비에서 풀릴 수 있어.”

최인범은 내성천에서 싸움을 벌일 때 이 녀석들의 독기 어린 눈빛이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장사꾼으로 만들기보다 호위무사나 병사로 양성할 계획이다.

자신이 나중에 무과에 급제해 전선으로 배치된다면 이들과 같이 떠날 계획이다.

‘특공작전을 펼치더라도 혼자는 움직이기가 힘들어. 그러니 이 녀석들을 포함시켜 한 조로 같이 다니자고.’

그러자면 체계적인 기초훈련부터 수련시키는 것이 좋다고 판단했다. 충성심도 확실해야 하니 지금부터 여러모로 신경을 써야 된다.

이런 구상을 하기 때문에 안마당에서 벌어지는 일에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우선 검법 수련 보다는 태권도 기본부터 지도를 시작했다.

그래서 하루 종일 태권도 지도에 매진했다. 뒷마당에서는 커다란 기합소리가 계속해서 들렸다.

“앗! 앗! 아앗!”

한편 벼락주막의 안마당에서는 박 초시와 임 초시가 찾아와 백삼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호환을 면하게 한다는 효험이 좋은 호랑이 뼈를 구하려고 찾아왔다.

백삼수는 박 초시에게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초시 어르신, 호랑이 뼈를 팔라고요?”

“그렇다네.”

이런 현상에 백삼수는 또다시 얼이 빠지고 말았다.

최인범 진사는 진짜로 앞날을 예측하는 대단한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최 진사가 예측한 그대로 호랑이 뼈를 사기 위해 사람이 직접 찾아 왔다. 다소 이상하지만 비싸게 호랑이 발톱을 최인범에게 팔았다. 그 때문에 그 가격을 기준해 판매하기로 결정했다.

장사의 기본인 흥정이야 너무 잘하는 백삼수은 매우 약았다. 그는 아주 손쉽게 호랑이 뼈를 고가에 판매하는 흥정을 시작했다.

“초시어르신, 호랑이 뼈는 접장님께서 비상약으로 만들라고 해 몰래 팔면 안 되는데요.”

“병의 치료도 중요하지만 당장 죽어갈 사람의 목숨을 구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지.”

“초시어르신들의 말씀을 듣고 보니 그렇기는 하군요. 하지만 접장님께서 뼈는 모두 치료약을 만들라고 워낙 지엄하신 명령을 내려서.”

흥정의 묘미는 밀고 잡아당기기에 있었다.

노련한 백삼수는 이미 우위를 점하고 있으니 전혀 엉뚱한 발상으로 흥정에 임했다. 물건을 사고 싶어 하자 못 판다는 쪽으로 버텼다.

다급한 입장인 박 초시는 더욱 매달렸다.

“이보게, 내가 웃돈을 준다고 하지 않나? 나에게 이빨 하나만 팔게. 그리고 우리 집에서 필요한 물건은 모두 사가지고 가겠네. 그러면 서로 좋지 않겠나?”

호랑이 뼈 이외에 다른 물건도 사간다니 더욱 신나는 일이 벌어졌다. 속으로 좋아 죽으면서도 백삼수는 다시 한발 빼는 소리를 토하며 엄살작전을 펼쳤다.

“글쎄요. 그거야 그렇지만 이러다 접장님께 들키면 저는 맞아 죽사옵니다.”

“이 사람아, 우리가 어디 가서 비밀을 발설할 사람들로 보이나?”

“그야 그렇지만.”

이런 식으로 밀고 잡아당기는 가운데 면포의 수량은 점점 늘어났다.

벼락주막의 주모는 말고기를 호랑이고기로 속여 팔아 많은 면포를 챙겼다. 백삼수는 별로 쓸모가 없어 보이는 호랑이 뼈로 많은 면포를 챙겨 벼락주막의 전설을 새로 만들거나 굳건하게 이어갔다.

신이 나서 벼락주막을 떠나 어디론지 달려가기도 했다. 벼락주막이란 이름이 좋아서 그런지 계속해서 재물이 저절로 굴러들어 왔다. 너무 기분이 좋아 춤이라도 너울너울 추고 싶었다.

‘좋았어! 물들어 올 때 힘차게 배질하는 거야.’

재물이 마구 들어오자 너무 신이 난 백삼수는 정신없이 이리 저리 뛰어다녔다. 면포가 늘어나는 재미로 밥을 먹었는지 굶었는지 느끼지 못할 정도로 바쁘게 돌아다녔다.

재물이 몰리는 벼락주막의 하루는 무척 빠르게 지나갔다.

드디어 밤이 되자 뒷마당에서 하루 종일 토해내던 기합소리도 사라졌다. 바쁘게 움직이던 백삼수도 주막으로 돌아와 바쁜 하루를 정리하며 잠자리에 누웠다.

‘오늘 진짜로 방울에서 소리 나게 돌아 다녔어.’

온화한 방안과는 달리 날씨가 다시 갑자기 추워졌다. 창호지 밖에는 싸늘한 바람이 거세게 불며 앞날이 순탄치 않다는 것을 예고했다.

다음날 최인범은 방문을 열면서 날씨가 어제보다 더욱 싸늘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 느낌과 함께 밤사이 안녕이라고 병든 노인이 은근히 걱정됐다.

‘빨리 가봐야겠어.’

사람이 살아 있을 때와 죽었을 때와의 양자 입적이 조금 다르기 때문에 해보는 생각이다. 정착하기 좋은 기회가 영영 사라질 수 있다는 생각으로 조금은 마음이 급해졌다.

최인범 접장은 한쪽에서 서서 눈을 치우는 작업을 감독하고 있는 백삼수에게 지시했다.

“백 집사, 최용민 어르신 댁으로 빨리 가자.”

백삼수는 최인범의 지시에 빙그레 웃으며 쉽게 답했다.

“아! 접장님, 소인이 이미 어제 그 집에는 다녀왔사옵니다. 그러니 너무 서두를 필요가 없사옵니다. 이미 접장님의 입양에 필요한 서류절차는 모두 정리가 끝났사옵니다.”

“벌써?”

백삼수는 여유롭게 답했다.

“예, 노인의 목숨이야 언제 어찌 될지 몰라서 제가 어제에 가서 노인의 족보에도 올리고 수결을 받아 관아까지 가서 모두 끝냈사옵니다.”

“벌써 모두 끝났다고?”

“그렇사옵니다.”

동작 빠르게 모든 것을 처리했다니 어이가 없었다. 자신도 없는 가운데 그런 조치를 취할 수 있다니 허무맹랑했다.

‘뭐 이런 호적제도가 다 있나?’

하긴 관아의 호방이 글자 몇 자를 적으면 끝나니 시간이 오래 걸릴 업무는 아니다.

양자로 받아들이는 최용민도 주변에 친인척이 있으면 그들과 상의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지도 않아 그가 가진 족보에 이름과 생년월일만 간단히 적어 넣으면 끝난다. 더구나 다른 형제들도 없으니 무슨 재산권을 명시하는 그런 상속에 관한 서류 작성도 필요 없었다.

최인범은 생년월일을 자신이 원하는 그대로 했는지 궁금해서 물었다.

“출생신고는 정확하게 했고?”

“아! 생일을 말씀하시는 군요. 전에 접장님께서 소인에게 말씀하신 그대로 계미(癸未)년 정월 초하루로 결정해 족보에 기록했사옵니다.”

“백 집사, 수고 많았군.”

“당연히 그런 정도는 집사인 소인이 처리해야죠.”

이제부터는 아버지가 되는 분인데 은근히 그것이 마음에 걸려 물었다.

“그분은 살기가 힘들다고 하던데 먹을 것이나 입을 것은 어떻게 하고?”

“그건 이미 다른 사람이 다 마련해줬사옵니다. 그리고 집에 여자들도 있사옵니다.”

“뭐야! 여자들이라니?”

갑자기 여자들이 있다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최인범의 놀란 표정을 바라보던 백삼수가 자세하게 설명했다.

“접장님, 절제도위 어르신 댁에는 어제 어린 여자 애들 세 명이 와서 교대로 절제도위 어르신의 병수발을 들고 있더라고요.”

“정말?”

“네, 절제도위 어르신의 병수발에 필요한 생활용품도 모조리 가져다 놓은 것을 일일이 확인했사옵니다. 소인이 보기에 필요한 것은 다 있었사옵니다.”

이야기 속에 나오는 우렁 각시가 현실에도 있는 것도 아니고 하룻밤 사이에 불쌍한 노인의 처지가 그렇게 변했다니 너무 이상했다.

사실 내용은 아주 간단명료했다. 전 재산을 잃어 살길이 막막해 워낙 다급해진 콩 장사가 딸들을 데리고 와서 최인범에게 사정했다.

내기장기로 딴 콩장사의 재물을 돌려주는 대신 그의 딸 3명을 최용민의 집으로 보냈다. 조건은 기본적인 생필품을 조달해 주고 노인이 죽을 때까지 모시고 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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