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화
한편 최인범 진사가 풍기 주막을 중심으로 호랑이 뼈 판매광고에 열을 올리는 동안.
그의 노력 때문에 재물 벼락이 떨어지기 시작한 벼락주막에서는 새로운 일들이 서서히 벌어졌다.
호랑이고기를 게걸스럽게 손으로 집어먹던 최인범 진사가 이상한 말을 하고 떠나고 나자 백삼수는 잠시 얼이 빠진 표정이다.
‘최 진사님은 진짜로 뭘 아시는 분 같네. 어떻게 우리가 필요한 것을 딱 집어서 알려주고 가지? 더구나 호랑이 뼈의 용도도 아주 정확하게 아시고.’
백삼수는 이미 멀리 사라진 최인범 진사를 떠올리며 마치 귀신에게 홀려버린 멍한 표정을 지었다.
백두산에서 무술 수련을 끝내고 내려왔다고 주장하는 최인범 접장은 지금 최씨 성을 가진 양반을 찾아 양자로 입적하려고 적당한 대상을 찾던 중이다.
백삼수는 마침 관아를 찾아가 호방을 만나 호피를 비싸게 팔아먹을 궁리를 추진하던 중이다.
‘좋았어, 관아로 가서 호방을 만나 봐야지.’
이렇게 생각한 백삼수는 먼저 무반인 양반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주모를 불렀다.
“주모!”
“예, 집사님 무슨 일이지요?”
“근처에 다리 한쪽이 없는 양반이 어디 사는지 아시오?”
“아! 그분은 저쪽에 멀리보이는 초가집이 있죠. 제일 허름한 집요. 절제도위께서는 거기서 살아요.”
“알았소.”
백삼수는 서둘러 발길을 재촉해 주모가 알려준 초가집로 향했다. 그리 멀지 않은 거리다. 백삼수는 바쁘게 초가집에 들려 노인의 상태를 알아봤다.
사실 알아보고 말 것이 전혀 없었다. 거의 집에만 있는 다리가 한 짝 없는 노인이다.
재물이야 없으니 그건 관심에도 없었다. 입적은 노인이 승낙해야 된다.
하지만 최인범 접장에게 왈짜패들이 내성천 모래밭에서 박살났다는 소문은 이미 들어서 알고 있었다. 무술 실력이 뛰어나니 순순히 양자로 받아들인다고 승낙했다.
백삼수는 노인이 양자로 받아들인다고 승낙하자 급하게 관아로 찾아가 호방을 만나 여러 가지를 놓고 협상하게 됐다.
한편 최인범 진사가 자기를 위해 천지사방으로 부지런히 뛰어다니는 것을 전혀 모른 채 최인범 접장은 빠르게 우시장으로 향했다.
풍기에는 장인마을에 대장간이 있고 우시장 쪽에 상설 대장간이 있었다. 대장간을 찾아가 자신이 필요한 대검의 제작이 끝났는지 가보려는 것이다.
천천히 걸음을 우시장 쪽으로 옮기고 있는 중.
“야! 그놈 나오라고 해.”
“도치 형님, 너무 취했어요. 이제 집으로 가서 주무셔야죠.”
앞에서 술에 만취해 주사를 심하게 부리는 사내들의 소리가 크게 들렸다. 최인범 접장은 아는 목소리라 귀를 기울였다. 구부러진 골목길이라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잠시 뒤에 우시장으로 가는 길목의 앞에 만취해 비틀거리는 녀석들이 보였다. 왈짜패의 두목인 배도치와 그의 부하들이다. 횡설수설하며 보아하니 자길 욕했다.
‘저 놈들이!’
술에 만취한 배도치 일행 옆으로 다가가 눈을 부릅뜨며 크게 호통 쳤다.
“네 이놈! 배도치!”
천둥 같은 큰 목소리에 놀란 배도치나 그의 부하들이 정신이 번쩍 들었다.
바로 앞에 염라대왕 같은 최인범 접장이 서서 호통을 치자 화들짝 놀랬다. 더구나 한창 최인범에 대해 욕을 배터지게 하면서 오던 중이다.
비틀거리는 자세를 차렷하며 똑바로 했다.
덜덜덜. 다다닥.
겁에 질린 왈짜패들은 이빨을 마주치며 다들 몸을 마구 떨었다.
두목인 배도치를 따라 죽령의 애꾸눈 산채로 가려다가 포기했다. 근처 산에 출몰하는 호랑이들도 너무 무섭고 더구나 소문에는 조정에서 죽령지역으로 토벌대를 보낸다니 입산하기가 겁난 것이다.
지은 죄가 있으니‘이제는 죽었구나.’ 하는 기분인 배도치는 급하게 사정했다.
“접장님! 살려주세요.”
낮에 검을 들고 산에서 뒤치기로 공격하려고 했다.
그러니 최인범 접장에게 잡혀 관아로 끌려가면 보나마나 산적이란 판결을 받게 된다. 그러면 관아의 옥으로 꼼짝없이 들어갈 판국이다.
그 후에는 보나마나 한양으로 끌려가 저잣거리서 목이 잘릴 것이다. 그전에 상상하기 싫은 고문이야 기본에 속한다. 배도치나 부하들 머릿속에는 장대에 꽂혀 있는 자신들의 머리가 떠올랐다.
“살려주세요.”
“접장님, 시키시는 일은 뭐든 할 태니 살려주세요.”
배도치와 부하들은 애걸복걸하며 사정했다.
풍기군수는 호환을 여러 차례 당해 조정에서 문책할까 노심초사하는 중이다. 거기에 더해 풍기군 관할에서 애꾸눈 산적이 행인 2명까지 죽이는 살인사건까지 터졌다. 다급한 입장인 풍기군수는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왈짜패들을 산적이라 할 것이다. 또는 크게 봐주더라도 산적 무리와 내통한 사람이라고 죄를 뒤집어 쉬울 가능성이 높았다.
최인범도 그런 점을 잘 아니 다시 호통 쳤다.
“배도치, 산적이 무슨 뜻인지는 잘 아는군. 네놈은 나를 산에서 공격하려 했으니 영락없는 산적이야. 앞으로 조심하라고 했더니 겁도 없이 나를 노려!”
“접장님, 한번만 용서해 주세요. 제발 목숨만은.”
두목인 배도치가 얼른 땅바닥에서 엎어져 사정했다. 다른 부하들도 모두 따라하는 수밖에 없었다. 지은 죄가 있으니 목숨을 구걸해야 할 판국이다.
살려달라고 사정하는 왈짜패를 보며 다부지게 명령했다.
“내일 아침에 일찍 벼락주점으로 찾아와! 심부름 시킬 일이 있으니까.”
“에이!”
“모두 지게를 각자 하나씩 가지고 오고. 내일 너희들이 하는 것을 봐서 산에서 있던 일은 없었던 사건으로 처리하지.”
“잘 알겠나이다.”
이미 전의를 상실한 배도치나 그의 부하들은 이제 최인범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따라하는 수밖에 없었다. 최인범이 이들을 벼락주막으로 오라는 이유는 그곳에 미곡이 많으니 일꾼이 필요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설설 기는 배도치 일당과 해어진 최인범은 우시장 옆의 대장간에 들러 대장장이를 만났다. 그러나 대검은 아직 만들어 지지 않아 서둘러 달라고 독촉했다.
그리고 장롱에 사용하는 장식을 만드는 장인도 만났다. 자신이 필요한 것을 주문하고 밤이 되어서야 벼락주막으로 돌아가게 됐다.
벼락주막 안으로 들어서자 기다리고 있던 백삼수가 반갑게 맞이했다.
“접장님, 아무리 접장님을 찾아보아도 없던데 도대체 어딜 가셨어요?”
“왜 찾았는데?”
“풍월이라는 기생이 찾아와 접장님을 꼭 만나보고 싶다고 하며 노루 같이 긴 목이 빠지라 기다렸다가 조금 전에 돌아갔사옵니다.”
“풍월이?”
“접장님, 한 번 만나시는 것이 어떠한지요? 미색이 근동에서는 제일인 기생이옵니다.”
백삼수의 이런 보고에 울꺽하며 화가 치밀어 버렸다. 자신의 하초 상태를 잘 알면서 기생을 만나라니 마치 놀리는 기분이 들었다. 울컥하는 기분에 목소리를 저음으로 깔며 다소 거칠게 소리쳤다.
“백 집사, 기생이라니? 너 지금 나에게 기생이 필요하다고 생각 되냐? 앞으로 말조심해.”
매섭게 노려보는 눈에서 금방이라도 한 대 치려는 표정을 보자 백삼수는 기겁하고 말았다. 체구나 뭐로 봐서는 성인이지만 하초가 약간 부실하니 자신이 큰 실수를 저질렀다.
‘아고야, 내가 겁도 없이 접장님의 약점을 공연히 거론했어.’
일이 터지면 빨리 수습해야 후환이 없게 된다. 그래서 순발력 좋은 백삼수는 얼른 말머리를 돌렸다.
“접장님, 호피를 판매하게 되었사옵니다.”
“벌써 호피를 팔아?”
백삼수는 의기양양한 자세로 설명했다.
“넷! 풍기관아의 호방을 만나 협상한 결과 관포 400필과 교환하기로 했사옵니다. 시세에 비해 면포 100필은 더 받은 겁니다.”
호방(戶房)이란 관아에서 근무하는 하급관리로 속칭 아전이라고 부르는 향리(鄕吏)다. 주로 하는 임무가 관아의 재정을 담당했다. 그런 자와 협상해서 면포를 비싸게 팔았다니 궁금해서 물었다.
“어떻게?”
“접장님, 안으로 들어가서 조용히 보고 드립죠.”
백삼수의 제안에 최인범은 안채 건넌방으로 들어갔다. 방에는 월녀만 있고 다른 녀석들은 보이지 않았다. 단독으로 주막을 모두 사용하니 딴 방으로 간 것 같았다.
바느질하고 있던 월녀가 벌떡 일어나 삿갓과 대나무지팡이를 받아들어 문 옆에 가지런히 놓았다. 이유는 항상 그렇게 놓고 지내기 때문이다.
방에는 이미 두툼한 무명솜이불이 펴져 있었다. 최인범은 슬며시 앉아 이불 속으로 발을 넣었다. 약간 얼었던 발이 녹자 노곤해졌다.
옆에 조심스럽게 앉아 있는 백삼수에게 넌지시 물었다.
“백 집사, 호방과 어떻게 협상했다고?”
“접장님, 풍기군수가 조정의 문책이 두려워할 것이라 호방에게 술수를 쓰도록 묘책을 말해준 것입니다.”
묘책이라는 말에 즉시 무슨 뜻인지 알아듣고 응수했다.
“묘책이라면 풍기군의 포졸이나 또는 착호갑사가 호랑이를 잡은 것으로 보고하도록 내가 잡은 호피를 팔았다는 이야기군.”
“그렇사옵니다.”
이내 허점을 발견하고 그에 대해 추궁했다.
“나중에 사실이 모조리 드러나면 조정이나 또는 군왕을 기만했다고 풍기군수는 크게 문제될 것인데?”
최인범의 이런 응수에 백삼수는 태연하게 다시 설명했다.
“접장님, 그렇게 단순하게 처리하면 하책이죠. 제가 호방에게 알려준 것은 최소한 중책은 되는 계책이옵니다.”
“중책?”
“예, 중책은 써야죠. 제가 호방에게 제안한 방법은 접장님을 호랑이 추포대의 일원으로 인건비 정산의 장부를 별도로 만들라고 했어요. 최인범이란 이름으로요.”
호랑이 추포대에는 무보수인 마을사람들을 동원한다. 그러나 착호갑사를 따라다니며 같이 사냥하는 유급인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 사람들은 관아에서 인건비를 줘야 한다. 그런 인부들의 명단에 최인범의 이름을 써넣으면 나중에 문제가 전혀 안 된다는 것이다.
이유는 최인범이 혼자 잡았더라도 결국 추포대 소속인 인부이기 때문에 문제가 사라진다.
“오라, 그런 기발한 방법이 있었군.”
이야기를 듣던 최인범이 감탄했다.
신이 난 백삼수는 슬며시 월녀에게 눈짓했다. 그러자 월녀가 자리에서 슬그머니 일어나며 말했다.
“오라버니, 저는 뒷마당으로 가서 칠복이형제가 무술 수련하는 것 구경하고 올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