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화
최인범 진사는 평상으로 슬며시 올라앉으며 여기를 찾아 온 목적을 말했다.
“내가 우연히 누군가 귀한 호랑이를 잡았다는 소식을 듣고 호랑이 고기를 너무 먹고 싶어서 들렸네. 와서 보니 자네들이었군. 조금 염치가 없지만 내가 허약한 체질이라 몸에 좋다면 물불을 안 가려서.”
“아하! 그러시군요. 아주 잘 오셨사옵니다. 고기야 아주 많으니 얼마든지 드시죠.”
양반 체모고 뭐고 가릴 이유가 전혀 없었다.
본시 몸에 좋다는 것은 마구 먹던 터라 귀한 호랑이고기를 보자 정신없이 먹었다. 허약한 몸이라 몸에 좋다니 우선 먹고 나서 다음에 할 일을 천천히 챙길 요량이다.
‘개고기도 몸에 좋다고 먹는데 하물며 호랑이고기가 몸에 안 좋을 이유가 없지.’
허약한 몸이라 몸보신이 최우선이다. 그러니 질긴 고기지만 맛있게 먹었다. 다행한 것은 나이가 어려져서 그런지 이빨은 아주 튼튼해 잘 씹어졌다.
‘몸에 좋은 고기라 그런지 맛이 좋군.’
남이 먹을 세라 허겁지겁 고기를 먹었다.
그런 최인범 진사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백삼수가 다소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선비라는 사람이 며칠 굶은 사람처럼 게걸스럽게 고기를 먹고 있으니 기가 찰 노릇이다.
‘허! 아무리 몸에 좋아도 그렇지 양반이 저렇게 손으로 들고 먹나?’
호랑이고기를 급하게 먹고 있다가 슬며시 전혀 엉뚱한 이야기를 했다.
“자네, 혹시 무술이 뛰어난 사람을 아나? 주변에 그런 사람이 있으면 양자로 들어갈 갈 좋은 자리가 있는데.”
“양자요?”
“그렇다네. 노인 혼자서 사는데 최씨 성을 가진 무반인 양반이야. 양자로 들어가면 재물이야 하나도 없지만 신분이 높아지니 그런대로 손해는 아니지.”
백삼수가 왜 이런 말을 자신에게 하는지 잘 모르는 표정을 짓자 다시 강조했다.
“자네, 천자문은 알지?”
“예.”
“그럼 최고라는 글도 알겠군.”
이렇게 서두를 꺼내고 나서 양자를 받아들이려는 최씨라는 양반의 신분이나 또는 왜 양자를 받아들이려는지 자세하게 설명해주었다.
그런 이야기를 모두 마치고 나자 슬며시 일어나며 권했다.
“혹시 생각이 있으면 서두르시게. 풍기관아의 호방을 찾아가면 쉽게 처리될 거야. 그게 어려우면 나를 찾아와도 되고 진사인 내가 보증을 서주면 쉽게 될 것이니까.”
말을 마치고 백삼수에게 다른 말은 없이 슬그머니 일어났다.
밖으로 나가려던 최인범은 지게에 호랑이 뼈가 많다는 것을 보며 잠시 뭔가 생각했다. 잠깐 사이에 아주 좋은 생각이 떠오르자 백삼수에게 넌지시 물었다.
“백 집사, 자네 저 호랑이 뼈는 어떻게 처리할 생각인가?”
“접장님께서 호랑이 뼈로 상처에 바르는 약을 만들라고 했사옵니다.”
“그런가? 하지만 내가 알기로는 호랑이 뼈로 약을 만들기보다 다른 용도가 더 좋아 보이는데.”
뭔가 남다른 모습을 보여 신기해하던 터에 이렇게 말하자 백삼수는 호기심을 표하며 급하게 물었다.
“진사님, 무슨 좋은 생각이라도 있으신지요.”
“자네는 함부로 귀한 뼈를 소모시키지 말고 잘 가지고 있게, 물렁한 엉덩이 뼈 같은 거야 별로 쓸모가 없으니 최 접장이 만들라는 한약의 재료로 쓰게 따로 나두고, 절구에 넣어 찌어도 잘 부서지지 않는 단단한 이빨이나 또는 발톱이나 척추 뼈 등은 따로 잘 분리해 놓게.”
“진사님, 그렇게만 하면 되나요?”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주위를 은근 슬쩍 살피고 아주 낮은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건 중요한 비밀이니 자네만 알게.”
“비밀요?”
누가 들을 세라 주변을 조심스럽게 살피는 동작을 해보였다.
그러자 백삼수 역시 자신도 모르게 주위를 살피며 자세를 낮추고 있었다. 이미 백삼수가 자신의 말에 뿍 빠져 들어버렸다는 것을 알자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됐어! 이놈은 죽을 때까지 지금 내가 한말을 진실로 알겠어.’
목적의 반은 이루었다는 느낌이 들자 더욱 낮은 목소리로 설명했다.
“백 집사, 이건 아주 중요한 비밀일세. 내가 알기로 이제 가죽만 남긴 늙은 호랑이는 근처에서 제일 나이가 많은 호랑이야. 그러니 요즈음에 호환을 일으키고 날뛰는 모든 호랑이의 아비나 고조할아버지 정도가 되는 셈이지.”
“그건 그렇겠군요.”
“그래서 저 늙은 호랑이 뼈를 지니면 호랑이들이 자신의 아비의 냄새를 인식해 호환을 피할 수 있다네.”
“아하! 그런 엄청난 비밀이 있었군요.”
조선시대에는 성리학이 널리 분포되어 나라의 정신세계를 지배했다. 하지만 또한 토속신앙인 주술적인 내용들도 백성들 사이에서 널리 알려져 정신세계를 지배한다.
그래서 불교에서도 그런 오랜 토속신앙과 접목하기 위해 산신각을 사찰 내에 건립해 두고 있는 것이다. 산신각은 산신을 포함해 백수의 왕인 호랑이를 신의 대리자로 인정하는 일종에 사당인 셈이다.
인류의 오랜 종교의식인 강한 것을 신격화하는 정신세계의 단편적인 모습이다. 그래서 백성들 사이에서는 호랑이를 산신령의 분신이라고 널리 알려져 있었다. 그런 사람들의 호랑이에 대한 두려움으로 생긴 경외심을 교묘하게 이용하려는 것이다.
적을 속이려면 나를 먼저 속이라는 병법도 있듯이 우선 백삼수를 완벽하게 속였다. 그것을 입증하듯이 조심스럽게 제안했다.
“자네, 내가 내일 면포 10필을 보내줄 것이니 호랑이 발톱을 두 개만 나에게 팔게. 그리고 덤으로 호랑이의 엉덩이와 꼬리뼈도 나에게 팔고. 발톱은 부적처럼 몸에 지니고 다닐 생각이고 엉덩이와 꼬리뼈는 몸이 허약한 나를 위해서 고아먹어 볼 생각일세.”
“진사님께서 필요하다면 당연히 드려야죠.”
호랑이 뼈가 그런 효용이 있다면 큰 재물을 벌게 생겼다고 판단됐다. 백삼수는 두말도 안하고 호랑이 뼈를 최인범 진사가 원하는 그대로 넘겨주었다.
벼락주막에서 나와 풍기주막을 잠깐 들려 부피가 큰 호랑이 뼈는 따로 보관했다. 호랑이발톱은 작은 향낭에 넣어 품에 간직했다.
‘됐어! 이제 가볼까?’
풍기주막을 나와 만만한 사람으로 머리는 별로 영민하지 못한 졸부들을 방문했다. 물론 자신의 주특기인 바둑이나 장기를 둘 줄 아는 사람부터 접근했다.
아주 커다란 기와집에 도착하자 대문 앞에서 외쳤다.
“이리 오너라!”
“예이! 누구 시온지?”
“박 초시 어르신께 봉화에 사는 최 진사가 찾아왔다고 전해.”
밤에 찾아온 손님이라 다소 의아하게 생각했다. 진사라니 문전박대하기는 곤란했다.
“안으로 드시지요. 소인이 초시 어르신께 말씀드립죠.”
잠시 시간이 지나 하인의 안내를 받아 일단 사랑방으로 가서 주인인 박 초시를 만났다. 작은 체구에 척보아도 이재에는 밝으나 겁은 많아 보였다. 박 초시는 생긴 것이 쥐의 상을 많이 닮았고 수염은 턱밑만 조금 송송 난 염소수염이다.
서로 수인사를 하고 나서 용건을 말했다.
“바둑을 잘 두신다고 해서.”
“아, 심심하던 차에 잘 됐네.”
주인인 박 초시의 바둑 실력은 윤 진사보다 하수다. 그래도 처음이라 맞바둑을 두며 슬슬 호랑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호랑이가 출몰해 걱정입니다.”
“그런데 최 진사는 이렇게 밤에 돌아다니다니 젊어서 그런지 배짱도 좋으시네.”
“제가 다 믿는 것이 있어서 그렇지요.”
대화가 진행되자 최인범은 약간 푼수기가 있는 것처럼 배터지게 자랑했다. 호랑이 뼈를 부적으로 지니고 다니면 호환을 면한다고 호언장담했다. 호랑이 뼈를 지녔다고 향낭의 발톱을 보여주면서 자신은 이제 호환은 하나도 겁나지 않는다고 자랑했다.
“이게 호랑이 발톱입니다. 제가 면포 10필을 주고 구했습니다.”
“허어! 정말 면포를 그렇게 많이 주고 구한 건가?”
“요즈음 호랑이가 너무 잡히지 않아서 값이 비싼 거죠.”
최인범은 어린 나이에 진사시를 합격해 주변의 고을에서는 뛰어나고 영민한 천재로 널리 알려졌다. 더구나 부석사에서 독학으로 공부해서 이룬 결과다. 그의 뛰어난 학문실력은 산신령이 옆에서 도와 줬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호랑이가 민가로 들어와 사람을 잡아 가거나 혹은 물어 죽이니 사람들은 너무 두려웠다. 가지고 있는 재물이 많은 사람은 상대적으로 지키고 싶은 것이 많으니 어떻게 해서라도 무서운 호환을 피하고 싶었다.
박 초시는 드디어 안전을 보장해 주는 호랑이 뼈를 사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넌지시 물었다.
“자네, 그 호랑이 뼈는 어디서 구했나?”
“벼락주막으로 가면 구할 수 있습니다. 대신 남에게 말씀하시면 절대로 안 됩니다. 백 집사라는 녀석이 몰래 빼돌려 파니까요.”
“알았네. 비밀은 지켜주지.”
밤에 시작된 바둑이나 장기를 이용한 여론 몰이는 다음날까지 계속됐다.
밤이 깊도록 박 초시 집에서 바둑을 두다가 잠을 자고 다음날 아침이 되어서야 풍기주막으로 돌아왔다. 풍기주막에서 하는 일 없이 또다시 빈둥거리는 먹쇠와 돌쇠를 향해 호통 쳤다.
“이놈들이! 또 여기서 놀고 있군.”
“진사님, 할일이 없는데요?”
“뭐라? 심심하면 동네 사랑방으로 가서 장기를 두라고 안했어? 별도로 내가 내린 명령이 없으면 계속해야지.”
시간이 남으면 항상 동네 사랑방으로 가서 소문이나 또는 남의 집 내막들을 알아보라고 했었다. 정보란 되도록 많이 수집해야 된다. 물론 그것들을 잘 분리해서 옥석을 가리는 일이야 자신의 몫이다.
이때 전에는 밤에만 울던 호랑이가 낮에도 크게 울었다. 아무래도 호랑이들이 근처에서 떼를 지어 몰려다니는 것이 분명했다.
어흐응! 어흐응!
사람들은 한낮에도 우렁차게 우는 호랑이 때문에 이제 낮에도 함부로 돌아다니기가 겁이 났다. 그렇기 때문에 먹쇠와 돌쇠가 주춤거리자 눈을 부라리며 호통 쳤다.
“이놈들아, 호랑이 이빨만 지니고 다니면 호환은 안 당한다니까 그러네.”
“정말요?”
“사랑방에서 장기 두기 싫으면 산으로 가서 나무를 하던가.”
최인범의 지시에 녀석들은 기겁해서 밖으로 달려 나갔다.
호랑이가 요란하게 우는 상황에서 누가 산으로 나무를 가고 싶겠는가?
결국 먹쇠와 돌쇠 그리고 조갑중은 최인범의 명령으로 동네사랑방으로 가서 장기를 두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뭐하는지 정확한 이유도 모르고 호랑이 뼈 선전에 동참하는 수밖에 없었다.
“호랑이 뼈를 품고 있으면 호랑이가 접근을 안 한다니.”
“그러니까 우리에게 산으로 나무를 하러 보낸다고 하시지.”
셋이서 각자 해어져 분산되어 사방으로 돌아다녔다. 가난한 노비라고 내기를 안두는 것은 아니다. 그들도 내기를 좋아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