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화
잠시 이런 생각으로 월녀를 바라보며 걱정했다.
“왈짜들이 너희들을 만나 해코지하면 어쩌려고?”
이런 물음에 월녀는 빙그레 웃으며 답했다.
“오라버니, 그 왈패들은 다들 겁이 나서 우시장의 선술집에 꽁꽁 숨어 있어요.”
“선술집에서 숨다니?”
“사람들의 말에는 장인 마을로 가는 산 속에 숨어있던 호랑이와 만났다고 다들 겁에 질려서·····. 그런데 혹시 오라버니가 잡은 호랑이는 왈짜들이 만난다는 호랑이예요?”
월녀의 당돌한 물음에 조금 당황했지만 즉시 답했다.
“맞아, 오라비가 가죽신발을 주문하려고 장인 마을로 갔다가 호랑이를 우연히 만나 잡았어.”
“오라버니, 거기서 왈짜들도 만났고요?”
“그놈들은 나를 노리고 칼을 들고 접근하다가 호랑이가 울자 다들 놀라서 꽁지가 빠지라 도망쳤고.”
“어머나. 그랬군요. 그 왈짜들 진짜 겁쟁이들이네요.”
이때 호리호리한 체구를 지닌 40대인 주모가 부엌에서 화로에 숯불을 가져왔다.
주모는 누가 봐도 아주 약아빠지게 생긴 얼굴을 지녔다. 가느다란 눈매는 다소 요사한 눈빛을 강하게 품어냈다.
주모는 화로에 석쇠를 올려놓고 호랑이고기를 구웠다. 호랑이고기를 먹고 싶은 주모는 시키지 않아도 고기를 썰어 정성들여 굽고 있었다.
주모는 호랑이고기를 잘게 썰어 석쇠에 올려놓아 구우면서 입맛을 당기더니 중얼거렸다.
“호랑이 고기를 먹으면 시원치 않은 허리가 좋아진다던데. 나도 이제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허리가 전처럼 잘 돌아가지 않아.”
주모의 이런 의미삼삼한 말에 백두상단의 회원 한명이 슬며시 나서며 반박이라도 하듯이 응수했다.
“주모, 허리를 다쳤으면 허리가 아주 부드러운 고양이를 잡아먹어야 좋아지는 거지.”
회원의 이런 응수에 옆에 있던 다른 회원이 말을 이었다.
“거 잘 모르는 소리하는군, 조그만 고양이보다는 힘이 좋은 호랑이가 허리 치료에는 특효약이야. 그러니 허리가 부실하면 호랑이고기를 많이 먹으라고.”
그러자 주모가 회원들의 말에 다른 의견으로 응수했다.
“손님들, 고양이나 호랑이고기 보다야 휘청휘청 잘 흔들이는 버들가지를 삶아 먹어야 허리는 좋아지는 법이죠.”
“에이!”
“허리가 부실하면 호랑이고기 먹지 말고 내성천으로 가서 버들가지나 많이 꺾어 와! 내가 오늘 밤에 푹 삶아서 진득하게 다려 줄 태니까.”
이런 은근짜인 대화를 나누는 중. 벌겋게 달구어진 석쇠에서는 호랑이고기가 ‘지글지글’ 고소한 냄새를 풍기며 맛있게 구워졌다.
고기가 한창 구워지고 있는 가운데 최인범 접장은 백삼수에게 지시했다.
“백 집사, 호피를 팔아 면포로 바꿔서 자본금으로 넣어 둬.”
“알겠사옵니다.”
자신이 지게로 지어온 많은 호랑이 뼈를 바라보며 추가로 지시했다.
“백 집사, 먹을 사람도 많으니 호랑이고기는 오늘 다 구워 먹지. 그리고 호랑이 뼈는 근처 약초 상에게 가져다 줘서 상처에 바르는 약으로 만들어 달라고 하고.”
“예, 그렇게 하겠사옵니다.”
힘차게 대답한 백삼수는 골몰하게 뭔가 생각했다.
‘참으로 이상해. 어떻게 무서운 호랑이를 이렇게 쉽게 잡는 거야? 이런 식이면 접장님은 앞으로 호랑이만 잡아도 큰 재물을 벌어들이겠어.’
호피가 생기자 이를 이용해 돈을 벌 궁리가 저절로 떠올랐다. 이재에 밝은 백삼수는 잘하면 시세보다 더 높은 가격으로 호피를 팔아먹을 좋은 구상이 떠오른 것이다.
‘좋았어, 그런 방법을 쓰면 되겠어.’
지금 착호갑사들이 동원되고 고을의 포졸들과 많은 사람들이 나서서 호랑이 사냥에 나섰다. 하지만 들리는 이야기로는 모두 호랑이 사냥에 실패했다.
이곳 풍기군에서만 벌써 무서운 호랑이에게 5명이나 죽었다.
군수, 현령, 현감인 인근고을 수령들은 지금 인육에 맛 들어 버린 호랑이 포획에 혈안이 됐다. 이런 때 호피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아주 좋은 기회다.
‘좋았어, 아주 적절한 시기에 호피가 생긴 거야.’
백삼수는 풍기군의 아전인 호방을 만나 흥정해볼 계획이다. 이번 기회에 고을의 재정을 담당하는 호방을 단단히 포섭해 두는 것도 좋다고 판단했다.
벼락주막은 백두상단이 통째로 사용하고 있다.
상단일행이 10명이나 되고 풍기의 5일 장도 완전히 파한 상황이라 단독으로 사용했다. 이유는 면포와 바꾼 잡다한 물품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아직도 대청마루에는 면포가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재고 관리를 위해서도 단독으로 사용하는 것이 편해 백삼수가 그렇게 결정한 것이다.
벼락주막에서 호랑이고기를 구워먹은 다는 소문은 아주 빠르게 퍼졌다.
와글와글.
기력이 전혀 없어 보이는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주막의 문 앞에서 침을 삼키며 기웃거렸다. 호랑이 고기를 구워먹으면 병들어 허약해진 몸이 튼튼해진다는 속설 때문이다.
‘한 첨만 먹어도 병을 치료 한다는데.’
주모는 그런 사람들을 힐끗 쳐다보며 나름 아주 기발한 묘안을 짜냈다.
‘호호호! 호랑이고기로 위장해 말고기를 팔아야지.’
집에서 기르던 늙은 말이 돌연 죽어 버렸다.
말고기가 너무 질겨서 그냥 버리자니 너무 아깝다. 소고기로 위장해 팔자니 그건 꺼림칙했다. 주모는 사람들이 말고기는 물론 호랑이 고기를 먹어본 경험이 거의 없으니 고기 맛을 잘 모른다는 점에 착안했다.
‘알 만한 사람은 없어.’
호랑이고기를 구워 주면서 한 조각을 날름 얻어먹어 보니 숯불에 타서 그런지 잘 모르지만 그 맛이 그 맛 같았다. 맛에 관해 조금은 자신하는 자신도 잘 모르는 판국인데 남들이 알 턱이 없다고 판단했다.
주모는 재빨리 백삼수에게 다가와 양해를 구했다.
“백집사, 나도 벌어먹고 살아야 하니 술손님은 저쪽에서 받으면 안 될까?”
“그렇게 하시오. 대신 이쪽의 상단 물건이 있는 쪽으로는 못 오게 하고.”
“당연하죠. 고마워요.”
주모는 바깥채의 한쪽 구석진 자리의 평상에 술상을 봤다.
가짜 호랑이고기 안주와 소주를 파는 식으로 주막의 일부를 외부인에게 개방했다. 농주보다 소주가 판매금액이 높고 이득금이 많으니 그렇게 준비했다. 물론 전부를 말고기로 파는 것은 조금 양심에 가책을 느꼈다.
‘날로 먹기는 곤란해.’
약간 고심하던 주모는 접장인 최인범에게 굽실거려 호랑이고기를 서너 근은 얻었다. 그것을 부엌으로 가져가 말고기 여덟 조각에 호랑이고기 두 조각을 넣어 푸짐한 양념이 섞인 고기안주를 만들었다.
결국 가짜 호랑이고기 안주 한 접시에 소주 10병을 기본으로 하는 한정 기본 판매를 시작했다. 외부인에게 술을 팔기위한 자리가 마련됐다.
그러자 눈치를 보던 사람들이 슬며시 안으로 들어와 주문했다.
“주모, 여기 소주!”
“호랑이고기 안주 하나에 소주 10병입니다.”
술손님들은 구석에서 소주 한 병을 큰 대접에 따라서 단숨에 마셨다. 질긴 호랑이고기 안주 한 조각을 우물거리며 먹고 있었다. 호랑이고기나 말고기나 모두 너무 질겨서 먹기가 힘이 들었다. 하지만 아까운 면포를 주고 사먹는 터라 잘근잘근 오래 씹어 먹었다.
주모는 손님을 새로 받을 욕심으로 고기를 씹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 표독스럽게 나무랬다.
“무슨 고기를 그리 오래먹어. 먹었으면 자리 비워줘야지.”
“에이! 이거 너무하는 것 야뇨?”
“먹었으면 가야지 뭉그적거리면 되나요?”
먼저 온 손님을 등 떠밀어 내보내고 다음 손님을 받았다. 주모는 이렇게 해서 전설처럼 내려오던 벼락주점의 명성을 이을 수 있었다. 자칫하면 날벼락의 명성도 이어갈 여지가 많았다.
평상에 앉아 호랑이고기를 구워먹던 최인범은 먹기를 멈추었다. 멈춘 이유는 갑자기 호랑이의 위에 사람 뼈도 같이 있었다는 생각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질긴 고기를 맛있게 먹고 있는 백삼수에게 부드럽게 물었다.
“백집사, 앞으로 상단의 일정은 어찌 되나?”
“접장님, 당분간은 외부로 나가서 5일 장을 돌지는 않사옵니다. 여기 주막에서 있으며 소상인들을 상대로 중간도매를 해볼 생각이옵니다.”
“중간도매?”
“예! 가지고 있는 물건도 너무 잡다하고 빨리 처리해야 하니 그런 중간도매 방법이 좋사옵니다. 아직도 호랑이가 너무 많이 돌아다니니 그렇게 하는 것이 좋사옵니다.”
현재 보유하고 있는 물건들의 부피가 너무 커서 이동이 어려워 보였다. 그래서 백삼수의 의견은 한곳에서 중간도매로 면포나 기타 물품을 처리한다는 것이다.
모든 상거래는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물물교환 방식이다. 그러니 면포를 많이 팔면 팔수록 다른 물건들이 들어오니 계속해서 부피가 늘어났다.
간편하게 화폐를 사용하던 최인범은 도무지 어떤 식으로 수익금이 생기는지 애매모호할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물물교환을 해버리면 뭐로 기준해서 이득이 남고 안 남고를 계산한다는 것인지 알 도리가 없군.’
이렇게 생각하는 중에 백삼수가 장부를 들추고 그 안에서 어음들을 꺼냈다. 그런데 어음들은 모두 주변 고을에서 발행한 것이다.
힐끗 쳐다보니 관인이 찍힌 어음은 모두 군포 10필, 20필, 50필 등으로 수량들이 적혀 있었다. 이것을 보고 나자 그제야 어떤 것을 기본가치로 삼는지 정확하게 알 수 있었다.
‘오라, 군역을 대신해 내는 군포인 5승포 1필을 기본적으로 정해 수익을 산정하는군.’
물가가 올랐다거나 내렸다거나 또는 쌀 값 등 곡물의 시세도 기준은 있었다. 모두 군포인 5승포 1필을 기준해 평하거나 또는 전체 경제 상황의 호경기나 불경기를 판단하는 것이다.
물론 이런 방법에도 문제점은 많았다. 그러나 기준이 뭔지는 정확하게 알았으니 이제 부터는 각종 물품에 대한 시세를 조금 쉽게 터득하게 생겼다.
‘후! 그동안 너무 어지러워 머리가 터지는 줄 알았네.’
군포로 납부할 면포는 5승포, 길이 30척으로 일정한 기준치가 있었다. 그것을 기준하고 또한 군포 1필을 미곡 2말로 산정하는 보조 수단도 있었다.
기준이 되는 도량형은 척관법으로 그중에 영조척(營造尺)을 기준했다.
영조척은 목수들이 사용하는 자로써 1자의 길이가 약 30센티미터 정도인 자다. 정확한 길이는 시대마다 아주 조금씩 차이 났다.
백두상단은 미곡보다는 상대적으로 가볍고 부피가 작은 면포를 기준으로 회계 장부를 작성하는 것이다.
‘오라, 백삼수가 가지고 있는 관인 어음은 결국 자기앞수표와 같군.’
화폐가치도 변동이 있듯이 면포의 가치도 유동성이 많았다. 하지만 그래도 기준은 정해져 사용하고 있으니 어지럽던 머리가 다소 개운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기준을 확실하게 알게 된 상태라 처음으로 백두상단의 재정에 대해 물었다.